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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묵상글 (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 마음의 할례.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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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마음의 할례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분이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어떤 존재인지 신명기는 오늘 이렇게 얘기합니다.
“보라,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주 너희 하느님의 것이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에게만 마음을 주시어 그들을 사랑하셨으며,
오늘 이처럼 모든 백성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자손들인 너희만을 선택하셨다.”
그러니까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아버지신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마음과 사랑을 주시어
이스라엘 백성은 모든 민족 가운데 선택된 민족 곧 선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은 사랑치 않고 이스라엘만 사랑하신다고,
이스라엘이 오해할까 봐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이방인들도 사랑하신다고 신명기는 또한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이 이러하시니, “너희도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신명기는 얘기하고, 아울러 괜히 선민의식 때문에 교만하지 말라는 뜻으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뽑힌 이유는
다른 민족들 위에서 거들먹거리고 무시하고 군림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경외하고 섬기고 사랑하듯이 그 백성도 사랑하고 섬기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제가 이 얘기를 길게 한 이유는 이스라엘이 그 뜻을 모르고
잘못된 선민의식과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런 이유로
저는 이스라엘 족속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이 아닌 인간적인 이유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싫어하고
그래서 주님 때문이 아니면 이스라엘에 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에 비해서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는 성전 세를 내십니다.
성전 세를 받으셔야 할 분이 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권을 내려놓으시는 주님의 모범이지요.
이런 주님의 모범과 신명기의 가르침에 비추어
우리는, 아니, 저는 반성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 백성인 신자가 되고,
제가 사제가 된 것은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이고,
하느님께서 이 은총을 주신 것은 하느님의 다른 자녀들을 섬기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마치 부모가 큰아들에게 재산을 더 물려준 뜻과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으로 조상들 제사를 책임지고 봉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자녀들 곧 형제들을 도우라는 뜻 말입니다.
저나 여러분 모두 신앙의 유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를 다른 사람보다 먼저 소유하고,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먼저 알고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내 것으로 꿀꺽 삼킬 것이 아니라 나눠야 하고,
나만 그 행복을 누릴 것이 아니라 같이 누리자고 이웃을 초대해야 합니다.
나만 행복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미안한 것입니다.
나만 행복한 것은 하느님 나라의 행복도 아니고,
그러라고 하느님께서 주신 유산도 아닙니다.
선교의 이유, 복음 선포의 이유가 여기에 있고,
선교의 사명, 복음 선포의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고
신명기 말씀처럼 우리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할례란 마음에서 교만이나 특권 의식 같은 것을 벗겨내고
마음에 연민과 사랑만 남게 하는 것이고
다른 이의 구원에 대한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사랑과 함께 마음을 주셨다고 신명기는 말하는데
그 마음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의 마음 곧 관심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점을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오늘 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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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마태 17,27)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인간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이지만, 결국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승리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선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미리 알려주심은 당신의 수난과 죽음이 그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미리 계획하신 섭리임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당신께서 하느님의 그 계획에 기꺼이 동의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한 준비와 부활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시는 제자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시는 장면입니다. 성전세는 모세가 “누구나 자기 영혼의 속죄를 위하여 주님께 반 세겔을 내야 한다.”(탈출 30,13)고 말한 대로, 영혼과 육신의 속죄를 위해 내는 세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금은 자신이 다스림을 받는 왕에게 내는 것임을 일깨워주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니 성전세를 면제받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곧 ‘어떻게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집을 위한 세금을 낼 수 있겠느냐?’는 반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먼저 당신께서 성전의 주인이심을, 그리고 당신의 자녀들도 성전세로부터 자유로움을 밝히십니다. 그렇게 하시면서도 성전세를 내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입니다. 자신이 옳긴 하지만, 무모한 분쟁을 가질 필요가 없기에 지혜로운 방법으로 세금을 내기로 하십니다. 곧 세금 낼 돈을 호수로 가서 낚시를 해서, 먼저 잡힌 물고기의 입을 벌려 거기에 들어있는 은전으로 세금을 내라고 하십니다. 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당신의 놀라운 권능을 드러내십니다. 당신께서는 땅에서도 동전을 취하실 수도 있었지만, 호수에서 그 기적을 이루십니다. ‘물고기’는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당신 사랑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물고기입니다. 당신 그물에 걸려든 한 마리의 물고기입니다. 그리고 제 입에는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이 물려있습니다. 당신 말씀이 물려있습니다. 제가 당신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생명의 말씀이 저를 먹여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제 영혼을 당신께 바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마태 17,27)
주님!
저는 당신 생명의 호수를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물고기이오니,
당신 형상이 새겨진 고귀한 동전을 입에 물고
당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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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때로는 기다려주자
“똥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행동이 좋지 않은 사람은 서로 상종할 수 없으니 이쪽에서 삼가서 피하라는 뜻입니다. 물론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나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기다려야 하는 아량이 필요합니다. 맞서지 않는 너그러움이 요구됩니다.
성전 세를 거두는 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금은 로마 총독이 로마제국을 위해 거둬들이던 세금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자체적으로 징수하던 인두세, 사람의 머릿수에 맞춰내는 세금이었습니다. 사실 세상의 임금들은 관세나 인두세를 남에게서 받아내지 자기 가족에게 부여하지는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참 주인이시고 “성전보다 더 큰 분”(마태12,6)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세금을 바치십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돈으로 성전 세를 내십니다. 호수의 고기를 잡아 그 입 안에 있던 돈으로 베드로의 몫과 주님의 몫으로 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신다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모습에는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는 영광이 드려지며 인간의 비위는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 모습에 참 지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도 많은 일들을 접하면서 그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상황들이 있습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말하거나 일관되게 행동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엄격하게 정도를 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실천하며 살아가는 데는 적절한 순서와 아량, 배려도 있어야 합니다. 비굴하게 물러서는 것같이 보이는 때 정말 참 지혜가 필요함을 절감합니다.
오늘 기억하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는 아우슈비츠 감방에서 가족이 있으니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한 사람을 대신하여, 굶겨 죽이는 감방에 들어가 처절한 옥중생활을 하다가 감방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생전에 성모승천 대축일에 죽고 싶다고 한 그의 소원이 비극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그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자비의 순교자”라 부르며 시성하였습니다. 콜베 신부는 의연하게 다른 포로들에게 “우리는 곧 천국에 있게 될 것입니다.”라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예기치 않은 일에 하느님 안에서 여유를 갖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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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부르클린 사제관에서 지내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열쇠’입니다. 퀸즈의 사제관과 신문사의 숙소는 번호 키이기 때문에 열쇠가 필요 없지만 부르클린 사제관은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부르클린에서 교우들을 만나고 사제관에서 하루 지낼 마음으로 열쇠를 챙겼는데 그만 다른 열쇠를 가져왔습니다. 당연히 열쇠는 맞지 않았고, 다시 신문사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급한 성격 때문에 때로 이렇게 곤란한 경우가 생깁니다. 그래도 열쇠를 다른 것으로 가져온 것은 다행입니다. 예전에 성지순례를 갈 때였습니다. 한 자매님이 새 여권을 가져와야 하는데 구 여권을 가져왔습니다. 구 여권에는 미국비자가 있지만 유효기간이 지나서, 새 여권을 발급받았는데 그만 새 여권을 집에 두고 왔습니다. 아들이 급하게 집에서 구 여권을 가져와서 함께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었지만 자매님은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저도 마음이 심란했는데 ‘그럴 수도 있지요.’라는 말을 들으면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독서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크게 3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하느님의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과 규정을 성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고, 하느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부모를 섬기고, 거짓 증언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둑질 하지 않고, 남의 재물을 탐하지 않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않고, 남의 아내를 탐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방인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한 때는 이방인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열쇠를 잘못 가져가서 사제관에 들어 갈 수 없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았지만 실천하지 않았기에 하느님과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욕망과 욕심을 따랐습니다.
오늘 교회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를 기억합니다. 신부님은 포로수용소의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였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 희망을 전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셨고, 천국에서 빛나는 신앙이 별이 되셨습니다. 신부님은 이웃을 위해서 대신 죽음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콜베 신부님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제가 열쇠를 잘못 가져와서 사제관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처럼 저마다 욕망이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라는 열쇠를 굳게 쥐고 있습니다. 그런 열쇠로 세상의 문은 열 수 있겠지만 천국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욕망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많은 생명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병들어 가는 지구에서는 인간 역시 병들기 마련입니다.
한 주간이 시작되는 월요일입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 자신을 위해서 계획한 것들, 생각한 것들을 실천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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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성경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있습니다. 특히 주님께서 주인공으로 활약하시는 복음은 읽으면 읽을수록 그 재미가 두 배 혹은 세 배 이상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그 흐름을 잘 읽어야 합니다. 처음에 주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십니다. 분명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슬퍼합니다. 왜 슬퍼했을까요? 그들은 죽음 이후의 살아남을 들은 적도, 본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되살아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슬픔은 아주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런 후 세금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주님은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세상 임금은 누구에게서 관세나 세금을 거두느냐?’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남들에게서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라고 응답하십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모든 세상의 임금은 나의 아버지 한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분의 자녀들이다. 그런데 왜 자녀들이 성전 세를 내야 하느냐? 성전 세는 그저 지위를 가진자들의 배를 불리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임을 다시금 알려주시고 그러한 명예로움으로 세상을 당당히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세상을 거스르지 않으셨던 주님의 모습도 우리는 가슴속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메뉴판
맛집 좋아하시나요?
저도 좋아합니다.
세상의 맛있는 음식은 왜그리 많은걸까요?
맛있게 만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걸까요?
맛집에 갔습니다.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봅니다.
큰일 났습니다.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머리 아프지만 참으로 행복한 고민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던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이라는 메뉴판을 보세요.
그리고 나를 무조건 행복하게 해줄 하나를 골라보세요.
그 행복으로 오늘 하루가 즐겁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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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그러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을 읽었습니다.
“지금 당장 ‘남’이라는 글자를 써보아라. ‘남’이라는 글자는 ‘ㅁ’ 위에 ‘나’를 올려놓은 것이다. 그렇다. 남을 위해 살면 내가 더 돋보이고 내가 원하는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을 위해 사는 사람을 향해서 사람들은 좋은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이기주의자, 위선자라는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깎아내립니다. 그에 반해 남을 위해 사는 사람에게는 존경과 사랑이 멈추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위로만 올라갑니다. 결국 ‘남’을 위해 사는 것이 곧 ‘나’를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존경과 사랑을 받고 싶다면,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남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남보다 먼저를 나를 바라보려는 마음이 생길 때, ‘ㅁ’ 위에 올려진 ‘나’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계속해서 높아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을 강조하셨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이야기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하기에 당신이 먼저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의 모범을 따라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모든 유다인은 매년 스타테르 반 닢의 성전 세를 바쳐야 했습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전의 유지, 관리, 보수 등의 운영을 위해 유다인에게 부과된 종교세였습니다. 단, 사제와 율법 학자는 성전 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제나 율법 학자로 평가하곤 했었지요. 그래서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마태 17,24)라고 베드로에게 성전 세를 거두는 이들이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와 율법 학자처럼 단순히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높으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주인이 세금을 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오히려 세금을 받아야 할 분이십니다. 그러나 불필요한 논쟁과 충돌을 피하십니다.
성전 세를 내지 않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향한 공격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 아니라는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의 신원을 부정하는 것으로 죄의 영역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죄의 영역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지요. 그래서 성전 세 논쟁으로 걸려 넘어질까 봐 베드로에게 낚시를 던지라고 하시며, 잡힌 물고기 입 속에 있던 스타테르 한 닢을 가지고 자신과 베드로의 몫으로 성전 세를 내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배려와 사랑을 보면서 우리의 배려와 사랑을 바라봅니다. 정의만을 외치면서 사랑의 마음을 완전히 버리는 모습, 합리적이지 못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사랑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모습, 세상의 법칙을 내세워서 주님의 법칙인 사랑을 잊어버리는 모습 등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처럼 ‘나’보다 ‘남’에 대한 사랑이 우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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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독해력이란 문자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읽건 거기에서 삶을 바라보는 능력이다(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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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분별력의 지혜는 사랑
-사랑이 답이다-
내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앞둔 오늘은 만 47세에 순교한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20세기에 시성된 최근의 성인입니다. 폴란드인이자 꼰벤투알 프란치스코의 수도사제로 유난히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강했던 성인은 성모신심단체인 성모기사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성인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정복당한 폴란드에서 유대인을 숨겨주었다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끌려 갔으며 그곳에서 탈옥한 수감자를 대신하여 스스로 죽음을 자원하며 순교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1982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에게 '자비의 순교자'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시성식을 거행합니다. 그는 수감자들의 주보성인이기도 합니다. 그가 죽음을 자원하든 장면은 늘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도망친 놈이 안 잡혔다. 너희중 10명이 저 아사감방에서 죽어야 한다”
수용소장은 10명을 .채워가고 있을 때, 그 대열에서 한 사람이 뛰어나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나는 안돼. 나는 죽을 수 없어. 내가 죽으면 나의 처자식은 어떻게 살란 말이냐?”
그 숨막히는 상황에서 포로들의 대열을 뚫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오는 사람이 수용소장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합니다.
“저 사형수 대신 내가 죽겠소. 나는 처자식도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오.”
“도대체 너는 누구냐?”
“가톨릭 사제요.”
“좋다, 함께 가라!”
그리고 그는 아우슈비츠 아사 감방에서 자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을 위해 대신 죽으니 그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베이다.-
콜베 신부가 목숨을 구해준 가요브니체크는 1995년 3월13일 94세의 나이로 천수를 다할 때까지, 콜베 성인의 영웅적 사랑이 널리 알려지도록 세계 각지에서 강연했으며 시복식과 시성식에도 참여했습니다. 콜베 성인의 사랑의 선택과 죽음의 결단이 놀랍고 감동적입니다. 그의 평상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반영입니다. 다음 제1독서 신명기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것은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모든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마라.
주 너희 하느님은 신들의 신이고 주님들의 주님이시며, 사람을 차별 대우하지 않으시고,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나라에도 얼마나 많은 이방인들, 이주민들이 살고 있는지요.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고 이방인들로 떠돌 때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었던 조상들의 모습을 상기한다면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무시도 많이 약화될 것입니다. 얼마전 지중해를 바라보며 난민들의 공동묘지가 됐다며 슬퍼하던 교황님 사진을 잊지 못합니다. 북아프리카에서 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온 난민이 지난해 9만명이며 9만명은 지중해에서 난파되어 수장됐다는 것이니 말그대로 지중해는 이들의 공동묘지가 된 것입니다. 참 부끄럽고 슬픈 현실이자 오늘날 전인류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두 번째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고, 제자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합니다. 늘 당신의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이어 부활에 궁극의 희망을 두고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경천애인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셨던 주님이심을 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하느님의 시야를 지니고 살게 합니다. 오늘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 문제를 주님은 이런 사랑에서 나오는 분별력의 지혜로 지체없이 해결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성전의 주인이기에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바친다 하시며 다음 같이 명쾌한 답변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숫가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 보아라.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모두가 주님의 것이며 전능하신 주님께는 기적의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초점은 자연이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성전세를 바친다는 것입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내다가 크게 잃는다는 사자성어가 생각납니다. 모든 덕이 어머니가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시키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분별력의 지혜를 발휘하라는 말씀입니다.
일의 성취를 위한 세 필수적 전제 조건이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이라 하는데 균형감각이 바로 분별력의 지혜에 해당되겠습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분별력의 지혜는 은총의 선물이자 사랑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사랑과 지혜는 함께 가기 때문에 분별의 잣대는 사랑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삶은 영적전쟁입니다. 주님의 전사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바둑은 인생사의 축소판이라 합니다. 바둑의 십계명이라 할 수 있는 위기십결 역시 삶의 지혜, 분별력의 지혜에 좋은 도움이 된다 싶어, 영적승리의 삶을 위해 필요하다 싶어 나눕니다.
1.부득탐승(不得貪勝) : 승리를 탐하지 마라
2.입계의완(入界宜緩) : 상대의 세력권에 깊이 들어 갈 때는 여유를 가져라
3.공피고아(攻彼顧我) :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라
4.기자쟁선(棄子爭先) : 희생하더라도 선수를 쟁취하라
5.사소취대(捨小就大) :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6.봉위수기(逢危須棄) : 위기에 봉착하면 불필요한 것은 버려라
7.신물경속(愼勿輕速) : 서두르지 말고 신중 하여라
8.동수상응(動須相應) : 흐름을 타라
9.피강자보(彼强自保) :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자중하라
10.세고취하(勢孤取和) : 고립되었을 때는 화친하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분별력의 지혜와 사랑을 주시어 우리 모두 삶의 현장에서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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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4.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부딪히지 않으니>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마태 17,27)
빛은
부딪히지 않고
비출 뿐이니
감추려는 이조차
마침내 품는다
물은
부딪히지 않고
흐를 뿐이니
멈추려는 이조차
마침내 적신다
바람은
부딪히지 않고
불 뿐이니
맞서려는 이조차
마침내 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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