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아리바우길은 2017년 10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하여 개최도시인 평창, 알파인 경기가 열린 정선, 각종 빙상경기가 펼쳐진 강릉을 연결한 둘레길이다. 정선 5일장에서 출발하여 대관령 고개를 넘어 경포 강문 해변거리까지 총 9개 구간 132km에 달하는 명품 트레킹코스로 알려져있다.
지리산 둘레길 완주에 이은 새로운 시도로서, 이번에 선택한 코스는 2박3일의 일정, 접근성, 난이도 등을 고려하여 비교적 완만하면서도 가장 강원도다운 7~9코스와 정동진 부채길을 포함 총 44km의 여정이었다.
청량리역에 집합하여 경강선 KTX 특석으로 1시간 40여분만에 강릉역에 도착하여 첫 출발지인 강릉 성산면 보광리 보현사 버스 종점으로 택시로 이동하였다. 식당정보가 빈약하여 걱정되었으나, 운좋게 유일한 개울가 식당을 발견, 선택의 여지없이 닭백숙과 옆좌석 손님이 건내준 능이,석이버섯탕, 비상용으로 가져간 캄보디아산 상황버섯술로 오찬을 즐긴 후 본격적인 상행 코스로 진입하였다.
▷7구간: 숲속에서의 풍류 (강릉 바우길 3구간: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
보현사 버스 종점 - 명주군 왕릉 11.7KM
버스 종점부터 길 동무를 해 주던 계곡물 소리와도 작별하고, 산불 감시초소를 들머리로 한 초입부터 길섭 산비탈의 소나무들이 범상치 않다. 피아노 건반 같은 나무계단을 밟고 반듯하고 잘생긴 금강소나무길로 접어들었다. 울진의 금강소나무숲에 버금가는 명품 소나무 길이란다.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금강소나무, 오른쪽은 갈참나무와 굴참나무들이 마주보고 펼쳐지며 극적인 대조를 보이는 가운데 소나무 사이로 선자령의 풍차가 시야에 잡힌다.
쾌청한 날씨였으나, 이어지는 강한 바람속에 산행을 계속하던 중 부서진 이정표의 ‘어명정’ 방향으로 나아가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재기친구가 미리 설치한 네이버지도 앱과, 희국친구의 물통 뚜껑 나침판 덕분으로 본래 코스로 진입하였다. 지리산에서 호흡을 맞춘 사이라 가능했으며,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항상 이정표 쪽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기본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숲길과 임도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던 중 길 옆에 서있는 정자를 만났다. 2007년 광화문 복원을 위해 벌채한 밑동 지름 90cm의 아름드리 노송 3그루를 벤 자리 위에 세워진 ‘어명정’이다. 문화재청은 나무를 베기 전, 위령재를 지내고 도끼로 소나무를 내려치기에 앞서 ‘어명이오’를 외쳤다는 것이다. 노송 사이로 멀리 강릉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푸른 바다도 어슴푸레하게 펄쳐진다.
소나무가 발하는 모든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들 무렵 희국이의 고전 한마디가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면서 바우길의 진면목을 표현해주었다. 채근담에 “待人春風”이요. 持己秋霜”이라. 노무현 대통령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고, 신영복 교수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 처럼 따뜻하게 하고, 자신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게 대하라” 여기에 待物謙虛 (兼愛)를 추가하고 싶다는 것이다. “소나무 처럼 잘난 체 하지 말고 겸손하며,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정자에서 임도를 가로 질러 나무 데크로 만든 산길과, 거대한 숲이 어이지는 길가에 멧돼지들이 진흙 목욕을 한다는 “멧돼지 쉼터”를 지나 펑퍼짐한 바위에 홈이 세개 패여있는 것이 술잔과 같다하여 “술잔 바위”로 명명된 쉼터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아직도 소나무숲이 이어진 편안한 내리막 임도를 지나 7구간 끝인 “명주군 왕릉”에 도착하였다. 이 곳 도래 숲도 금강소나무고, 솔향이다.
명주군은 강릉의 옛 지명으로, 명주군 왕릉은 신라 선덕왕의 뒤를 이어 왕이 돼야했던 무열왕의 5대손 김주원의 묘다. 김주원 대신 왕위에 오른 원성왕은 훗날 김주원을 명주군왕에 봉하고 이 일대를 식읍으로 내렸다. 예약한 팬션주인의 배려로 성산면 사무소 소재지에서 강릉 별미인 대구머리찜과 곤드레 막걸리로 향토음식을 즐긴 후 복층 구조의 숙소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8구간 : 산을 울타리 삼고 들판과 바다를 마당으로 하여 복된 땅 (강릉 바우길 10구간: 심스테파노길)
명주군 왕릉 – 송양 초등학교, 11km
전 날 준비한 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던 중 터득한 비법이자 레시피다. 라면을 우선 한 번 삶아 몸에 좋지 않은 팜기름을 제거한 후(재기), 양파(혹은 콩나물)을 넣어(희국) 다시 끓여 맛있게 먹었다. 사람은 평생 배워도 모자란다는 말이 실감난다. 트레킹 도중 틈틈히 배경설정 등 사진촬영 강의를 해준 재기친구 고맙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 강풍의 징조대로 출발 후 얼마 안돼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후 늦게서야 멎었다. 8코스는 크게 숲길과 마을길로 구분되는데, 숲길은 7코스 내내 익숙했던 송림길이다. 이제 몸에서도 솔향이 나는 듯 싶다. 사실 우리는 소나무와 더불어 살았다.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와 고추를 꽂았고, 소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살았고, 솔잎(솔가리.갈비)으로 아궁이를 지폈고, 송진을 긁어내 불을 살렸고, 솔방울을 따 술을 잠갔고, 죽어서는 소나무로 짠 관에 누웠다. 소나무는 죽어서도 복령으로 건강까지 돌봤다.
고향 같이 편안한 길을 따라 소나무 숲을 에돌자 승천사가 보이면서 숲은 더 깊어지고, 야자 매트가 깔린 길을 따라 솔바우 전망대를 지나 법륜사 처마 밑에서 잠시 비도 피할 겸 휴식 시간을 가졌다. 불상과 대웅전은 안 보이고, 불경 소리는 들려 의아한 느낌을 가졌는데, 알고보니 승천사와 법륜사는 사찰이 아니라 신당이었다. 그러고 보니 도중에 평생 처음보는 “무당 연수원”도 있었고, 신이 깃든 고개의 아랫 마을이니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다. 사주 팔자에도 신이 내리고 상담 기질이 강한 오행과 사주팔자가 분명 있기도 하다. 복을 빌며, 위로를 받는 관점에서는 교회,절,신당,철학관,민간기복 신앙이 뭐가 다를까? 숲길이 끝나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편했으며, 마을 입구의 돼지갈비집을 발견하여 걱정하던 점심을 해결하던중 마침 동래 출신인 여주인이 일인분을 추가로 더 주는 넉넉한 인심 덕분에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졋다. 희국이한테는 우산도 빌려 주었으니 돌려주려 또 한번 가야 할지도.
식사 후 코스 막바지에 이를 즈음 마을 사람들이 위촌리라고 부르는 “우추리”라는 마을 간판이 나타났다. 온 주민이 모여 촌장에게 새배를 올리고 모두가 절하는 “都拜마을” 이라고도 하는데, 율곡 이이의 마을 대동계(향약의 4대 강목)가 전승되는 유일한 고장이다. 기대를 갖고 찾아간 “전통문화전승관”은 고스톱을 즐기는 동네 경로당에 다름 아니었고, 옛날 기와집들은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위촌리 남쪽 골아우 (지금의 경암동)에 병인박해(1866)때 순교환 천주교 신자 877명 중 유일한 강원도 사람인 심스테파노가 살았다고 해서 심스테파노길로 명명되었다.
▷9구간: 큰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며 바다로 가는 길 (강릉 바우길 11구간: 신사임당 길)
송양초등학교 – 경포해변 (강문 솟대다리) 17.7 km
위촌리를 벗어나 송양초등학교 9코스와 만나는 이정표를 발견하였으나 엉터리 대장의 실수로 그냥 지나쳐 되돌아오는 등의 과정 끝에 죽헌 호수에서 다시 9구간으로 합류하는 곡절을 겪었다. 이 와중에도 음식점 여사장이 꼭 봐야 한다고 소개한 신바위 간판을 발견하여 사진기록을 남겼으나,사실은 냇가에 누워 있는 남근과 건너편 숲 속에 숨어 있는 실물은 놓치고 엉뚱한 바위 두개를 실물로 착각했다는 사실은 귀경한 다음에야 알았으나 어쨌든 즐거운 순간이었다. 만지기만 해도 가정이 화목해 지고 지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는 祈子石으로, 이 부근에서 신사임당, 율곡 선생, 허균, 허난설헌 등 위인들이 태어났으니 자연의 오묘함은 끝이 없는가 보다.
죽헌 호수의 카멜카페 집에서 카페라떼로 잠시 여유를 즐긴 후, 저수지가 끝나는 곳에서 산길, 농로와 숲길을 번가르다 보니 죽헌동의 한복판인 들판이 펼쳐 진다. 논 사이로 난 농로를 따라가자 아파트가 보이는 등 한가로운 마을로 풍경이 일변한다. 아리바우 길은 우리를 오죽헌으로 이끈다. 신사임당이 용꿈을 꾸고 아들 율곡을 낳았고, 이름처럼 검은 대나무도 자란다. 유서 깊은 자리가 분명하지만 오래 전에 본 모습과는 너무 다르게 성지, 공원 처럼 꾸민 모양은 다소 마뜩찮은 느낌도 들었다.
아홉 번 장원 급제하고 이조 등 4개 판서와 조선 성리학을 완성한 대학자와, 세계 최초 모자 화폐 탄생지로는 성역화된 오죽헌의 현재 모습이, 사임당과 율곡의 생애와 비교하면 검박하여 아름다운 건물 오직 그것 만이 두 사람과 어울리지 않나 쉽다.
강릉의 신도시 격인 교1동 모텔에 짐을 풀고 채선당 샤브샤브로 체력을 보강한 후, 방이 너무 더워 잠을 다소 설친 다음날 콩나무 국밥으로 해장을 한 후, 선교장으로 직행하였다. 세종의 둘째형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약 300년 전에 터를 잡은 관동 제일 사대부가의 99칸 가옥으로 국내 전통 가옥 중 가장 크다. 김시습 기념관을 지나 경포 8경의 하나이며, 증봉낙조로 유명하면서 떡 시루를 닮은 시루봉에 도착, 서울서 낙항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는 노부부의 인생 얘기, 강릉 최부자의 식솔이었던 모자가 환생한 경포 호수와 시루봉에 얽힌 전설을 듣고는 경포 8경 중에서 달맞이 장소로도 유명하고, 가장 수려한 조망을 지닌 경포대로 올라가 달빛이 환한 밤 누각에 누우면, 5개의 달 (하늘,바다,술잔,호수, 임의 눈동자에 비친 달)이 뜬다는 옛말을 음미하면서 양주 한 잔씩으로 기분을 내고, 원래 예정이었던 초당 순두부 마을과 홍길동 전의 작가 허균의 누나이면서 조선 중기 최고 여류 시인 이었던 허난설헌 생가는, 지척에 두고도 다음 기회에 보기로 하고,대신 찾아간 참소리 박물관은 시간 관계상 외관만 보고, 최근 북관 고위급이 식사를 했다는skybay를 지나 드디어 바다! 아리바우길의 끝자락인 경포해변에 도착하여 잠시 해변을 산보한 후, 인근 식당에서 초당 순두부로 점심 해결 후 택시로 심곡항으로 이동하였다.
“정동심곡 바다 부채길”은 국내 유일의 해안단구 지역으로 정동진의 “부채끝” 지명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2106년 개방되었다. 2300만년 전 지각 변동이 그대로 남아 있어 웅장한 기암 괴석과, 부채 바위전설, 바위의 생김새가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과 비슷하여 강감찬 장군의 설화가 전해 내려 오는 “투구 바위”등, 그리고 푸른 동해 바다 그 자체로도 천혜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둘레길 트레킹에 부채길 정보를 제공해 준 친구들 고맙다. 개인적으로는 같은 날 시간대는 다르지만 집사람도 부채길을 걷는 인연이 있었다.
정동진 도착 후 하루에 한 번 있는 좌석버스를 이용, 강릉역 도착 후 목욕과 중앙시장 지하 어시장 생선회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감자전, 국수 등으로 이른 저녁 해결 후, KTX로 귀경하는 뿌듯하고 빈틈없는 다소 호사를 부린 일정이었다.
걷기 열풍이 한창인 요즘 가장 핫한 길이며, 예로부터 산수가 천하의 으뜸이라는 강릉의 승경,역사,문화의 정수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행운이었다. 왕복 KTX와 강원도의 별미 등 지리산 둘레길에 비해 호사을 누린 편이다. 바다향, 솔향, 커피거리가 어우러진 강릉, 하늘,나무,돌,들,흙,숲,새,구름 등 하나같이 친구가 되어 종주할 수 있었던 바우길! 나그네에게는 아낌없이 반겨주는 보석 같은 소재들이다.
세상 만사가 옮겨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인생의 도전은 굳이 종교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분명 순례의 길이란 생각이 든다. 비슷한 시기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선 허남정 친구도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다. 물이 있어 몸을 담글 수 있고, 술이 있어 목을 축일 수 있고, 길이 있어 걸을 수 있는 강릉 바우길! 이번에 못 본 초희 생가도 볼 겸 다시 한 번 찾아가마. 생각하기에 따라 인생은 충분히 여유가 있으니까.











첫댓글 좋구나 좋아.걷는 것보다 즐거움이 있는 것이 있을까.내가 항상 주장하는 것이 여행은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
영곤친구,합동등산기록남기느라. 수고했다.
합동등산기록남기느라
하대장 글솜씨가 쓸수록 깊어지고 오묘해지네. 아주 실감나는 묘사로 잠깐 즐거운 추억에 잠겼네. 글 쓰느라 수고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