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47]소리꾼 배일동 명창의 ‘폭포 목청’
만난 적은 없이 카톡으로만 교류하는 순천고 32회 소모씨(60)가 포스터 한 장을 보내왔다. 32회라니? <전라도닷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발행인 황풍년(현 광주문화재단 대표)이 32회라던데. 그래? 또 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더불어민주당 전 원내대표 김태년. 황풍년-오연호, 이런 언론인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모씨는 거의 날마다 주역 괘를 풀이해 보내주고 있고, 나는 하릴없이 생활글을 보내주는 사이다.
그런데 포스터에 박힌 사진과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배일동 명창 K-클래식/6.17. 순천 오천그린광장>, 으잉? 배일동? 맞아. 순천 출신이었지. 한양에 있을 때 몇 번 만나 짧은 소리도 듣고 술도 기울인 적이 있었지. 아무리 바빠도 만나러, 들으러 가야겠다. 순천에 사는 외우畏友와 모처럼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고. 하여, 어제 밤7시, 몇 년만에 반갑게 만나 서로 보듬고 즐거워했다. 소리꾼답게 그 넓은 오천그린광장의 공중空中을 휘어잡았다. 단가인 <사철가>로 목을 다듬더니, 월매와 이몽룡이 만난 장면과 심봉사와 심청이 만난 장면을 절절하게 토해낸다. 아예, 운다. 울어. 듣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저 ‘폭포 목청’에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앉아 듣고 있던 1000여명의 청중 박수가 쏟아진다. 아아-, 저런 목청과 재주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내가 아는 배명창(60)은 젊은 시절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7년을 독공獨功하여 득음得音을 한 친구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는 《독공-홀로 닦아 궁극에 이르다》(배일동 지음, 세종서적 펴냄, 18000원)과 《득음》(배일동 지음, 시대의 창 펴냄, 27000원)이라는 책에서도 공력을 도저到底하게 펼쳐졌다. 순천이 낳은 독특한 소리꾼으로 순천국가정원박람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고 한다. 또한 2010년에 방영된 <땡큐, 마스터 킴>이라는 영화에 출연, 소리꾼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호주의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가 무형문화재 82호 故김석출 명인을 찾아 한국을 제집처럼 들랑날랑(7년간 17번)하다 배일동 소리꾼을 만나 ‘동서양의 음악적 교감’을 보여주는, 너무나 인상적인 영화였다. 소리꾼 배명창은 주로 해외공연으로 15여년간 활동했다. 내년 환갑을 앞둔 그는 이제 국내 활동도 열심히 할 생각이란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폭포 목청’일까? 폭포 밑에서 부채로 바위를 두들기며 독공하기 몇 년만에 바위조각이 떨어져 나갔다던가. 일단 시원시원하다. 그동안 일상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같다. 투박한 전라남도 사투리로 청중을 웃겨가며 시작과 마무리를 하는데, 재밌기도 하다. 재창으로 노래한 <춘향가>의 <사랑가>는 재창의 필수곡이다. ‘1고수 2명창’이라더니, 고수鼓手 김동원교수(원광디지털대학교)의 맞짱구, 추임새는 그들만의 환상이 아니고, 청중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있다. 오래된 친구가 최고라는 말처럼, 수년만에 만났어도 격의가 하나도 없이 어제 본 듯 반가웠다. 그는 인정人情이 많은 소리꾼이라는 말을 들었다. 얼마 전에도 펜화작가의 전시회장에서 소공연을 했는데, 자원하여 재능기부를 했다하여 나부터 고맙게 생각했다. 진보진영에서 초대하는 공연도 잦는데, 그때마다 느낀 것은 진보쪽이 ‘문화文化’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짜다’(최소 공연료)고 하여 웃었다.
그의 소리를 들으면 김수영 시인의 <폭포>라는 시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그를 '폭포목청'이라고 부르는 때문일 터이나, 시 구절 '곧은 소리는 소리다/곧은 소리는 곧은/소리를 부른다'가 절로 생각난다.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마구마구 밀려밀려, 내려내려 오는 것같다. 대단한 시의 전문을 옮기는 까닭이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태와 안정을 뒤집어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뒤풀이에 오라는 요청을 뿌리치고, 외우의 아파트에서 캔맥주 한잔 하고, 밤11시 무궁화호를 타고 올라오는 길, 명창의 전화다. “아이구. 성님, 한잔도 못기울이고 미안허요. 조만간 동료와 임실 한번 들르것슴당” 언제 들어도 반가운 목소리. “언제든지 환영” 초여름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오랜만에 숙면을 했다. 배명창님. 건강하시라. 건승하시라. 글로벌 명창이 되어 지구촌을 휘어잡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