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방주 | 날짜 : 18-02-11 22:50 조회 : 494 |
| | | 영화와 거울 효과 - 영화 <1987>의 경우-
차가운 눈이 내린다. 강둑에도 둔치 모래 위에도 눈이 하얗다. 강물은 얼어붙었고 얼음 위에도 눈이 쌓였다. 세상이 온통 차갑다. 추위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잔뜩 웅크린 아버지는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그 뒤를 유골 상자를 든 고박종철군의 형이 따른다. 형은 뼛가루를 한 움큼 강물에 뿌린다. 뼛가루가 거뭇거뭇 바람에 날린다. 얼음 위에 쏟아진 잿빛 죽음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눈물조차 흘릴 수 없고 마음 놓고 목 놓아 울 수조차도 없는 아비는 차가운 강물에 빠진 채 자식의 유골을 언 손으로 강물에 쓸어 넣으며 “철아 잘 가그래이”만 되뇔 뿐이다. ‘죽음, 잿빛, 뼛가루, 유골, 얼어붙은 강물’ 이런 것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어찌할 수 없는 처절한 슬픔이 스크린을 넘어 넘실넘실 객석으로 넘어왔다.
영화 <1987>은 관객에게 차가웠던 80년대를 명경에 비치듯 그렇게 내비치었다. 생각해 보니 영화는 거울이다. 영화라는 거울이 비치고자하는 것은 현상만이 아니다. 영화는 내면 깊숙이까지 내비치고자 한다. 인간의 마음을 얼비치고, 역사의 속셈을 비치고, 사회의 정의를 비친다. 과거를 드러내 현재를 깨우치고자 하는 것이 최근에 변화된 한국 영화의 지향점인 것 같다. 영화 <1987>이 내비치고자 한 것은 역사의 전환점이 어떻게 오는지에 대한 대중의 깨달음이다.
‘80년의 봄’이라던 1980년 군부독재가 끝나고, 이제는 온 세상에 하얗게 목련이 피어나는 봄이 올 듯했는데, 신군부의 더 살벌한 독재로 소망하던 목련은 최루탄만 하얗게 뒤집어썼다. 실낱같은 희망이 뚝뚝 떨어져 버리자 우리는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 하며 좌절과 무기력 속에서 체념하고 살았다.
이 영화는 ‘세상은 정말로 바뀔까.’하는 의문에 명확한 대답을 준다. 1987년 당시의 상황이 기억에 생생한 우리 세대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다. ‘물고문 도중 질식사’ 라는 제목의 당시 동아일보 기사가 인서트insert되자 가슴이 먹먹해왔다.
‘서울대생 박종철 사망 사건, 박처원 대공단장, 탁치니 억하고 죽더라, 남영동 분실’ 이런 어휘들은 당시를 떨며 지냈던 우리 세대를 30년 지난 지금도 소름끼치게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들이 말이 되던 사고를 사위게 한 것은 바로 진실에 대한 용기이다. 부검 결과를 진실대로 발표한 의사의 용기, 진실을 보도한 언론의 용기가 박종철이라는 청춘의 죽음을 ‘개죽음’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한 ‘희생’이 되게 했다. 이런 양심이 ‘세상이 정말로 바뀔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주었다. 진실은 바늘과 같아서 아무리 두꺼운 천으로 싸고 또 싸도 비집고 나온다. 진실은 해머와 같아서 아무리 육중한 바위문으로 닫아도 깨고 나온다. 6월 항쟁은 박종철의 죽음으로 불이 붙어 이한열의 죽음으로 활활 타올라 결국 대중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독재의 차꼬와 수갑을 벗어던지고 민중이 자유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쟁취한 드라마 같은 역사이다.
영화 <1987>은 당시 많은 기록 사진이 삽입화면으로 인용되었다. 이런 경우 관객의 예술적 감동을 덜게 되는데, 이 영화는 오히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항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택시 기사들이 거리에 차를 세우고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장면에서는 나도 벌떡 일어나 ‘독재 타도’를 함께 외칠 뻔했다. 그만큼 화면이 관객을 빨아들인 것이다. 이한열 열사를 연기한 배우 강동원이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최루탄을 맞고 사망하는 장면이 점점 흑백으로 옅어지다가 실제 당시 흑백사진으로 바뀌었는데, 이 화면은 마치 허구적 예술에 받아들여진 당시 현실이 다시 사실로 관객에게 되비치는 영적 거울이 된 것처럼 사람들의 정서를 사로잡았다. 가장 슬픔을 느끼게 한 화면은 모두에서 말한 것처럼 박종철의 유골을 얼어붙은 강물에 뿌리는 장면임은 말할 것도 없다. 엔딩화면은 관객을 좌석에 붙들어 매어 놓는 것 같았다. 항쟁 당시의 실화 흑백 사진 위로 출연자 이름이 자막으로 겹쳐 빠르게 올라가는 화면을 바라보며 먹먹해진 가슴으로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87>의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캐스팅된 배우 중 어느 누구도 톱스타로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정우, 설경구, 유해진, 강동원, 오달수 같은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여 명연기를 보이면서도 스토리가 어느 한 배우에게 집중되지 않아 작품이 지향하고 있는 평등주의를 이루어냈다.
영화 <1987>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잦은 거울의 등장이다. 거울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지나간 역사가 오늘의 거울이 된다면 이 영화는 지난날을 되새겨 오늘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었다. 오늘의 정치, 사회, 문화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무엇보다 나를 돌아보았다. 교직에 있었던 나는 당시 젊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나 생각하니 부끄럽기만 하다. 거울을 보면서 누구나 자기 얼굴의 티끌을 떼어내지 남의 얼굴에 묻은 티끌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제 한국 영화는 그 위상이 달라졌다. 영화 <1987>은 그런 면에서 거울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본다. 한국영화의 가치를 몇 계단 상승시킨 감독과 출연진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2018. 1. 8.) |
| 임재문 | 18-02-12 01:58 | | 1984년 부터 1988년도까지 서울구치소에 근무했었습니다. 격동의 세월 ! 박종철군 사망사건 ! 이한열군 사망사건 ! 또 미문화원사건 건국대 시위사건 등등 서울구치소의 하루하루는 풍전등화와 같은 세월의 몸부림 속에서 보내야 했던 씀쓸안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횟불로 타오른 민주화의 불꽃이 이제 온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음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이방주 선생님 ! | |
| | 이방주 | 18-02-12 21:07 | | 임재문 선생님, 1987년 그 현장에 계셨군요. 저는 다른 사람의 의사와 가치관을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나를 따르라 강요하는 것은 총칼이든 촛불이든 모두 폭력이고 독재라고 생각합니다. 내 의견과 다르다 하여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집단으로 무시하고 덤비는 것은 모두 폭력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어떤 폭력이 두려워 하고 싶은 말을 맘놓고 하지 못한다면 1987 그 시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을 거울에 비추어 보아야합니다. 감사합니다. | |
| | 김권섭 | 18-02-22 17:28 | | 우리나라의 헌정사에 1987년 박종철열사, 이한열열사는 1960년 4,19혁명의 김주열열사를 버금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탄압의 몸통인 전두환, 노태우같은 자들이 번득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서글픕니다. 다수 선량한 국민을 학살한 자는 응분의 엄벌이 있어야 국격이 섭니다. 프랑스정부는 비시정권에 동조한자는 지위 고하 불문 처단하여 민족정기를 세웠으니 말입니다. | |
| | 이방주 | 18-02-27 10:00 | | 김권섭 선생님 말씀 들으니 정말 그렇군요. 그래도 영화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그날의 악몽을 되새기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영화도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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