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올림픽은 한국인들에게 과연 한국에 제대로 된 체육이 있는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빨리 빨리 그리고 모든 것이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어떠해도 상관이 없다는 그 결과주의의 결과는 스포츠의 총아라는 올림픽에서 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 스프츠계의 대단히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대한체육회 그리고 그 산하에 각종 협회에서 벌어지는 해괴망칙한 상황들이 그동안 물밑아래에 감추어져 왔습니다. 협회장과 협회 임원들 그리고 그 협회 직원들, 협회와 감독들사이에 연관관계, 선수선발을 둘러싼 각종 잡음, 감독과 코치 그리고 선수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한국 스포츠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척 넘어가면서 지금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그 신호탄은 이미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시작됐습니다. 대표팀 감독 인선을 둘러싼 이해할 수 없는 각종 사안들이 들추어지고 그와 관련된 증언들이 잇따랐습니다. 한국 축구에 외국감독이 왜 절실히 필요했는가를 여실히 증명하는 일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혈연과 학연 그리고 지연에 함몰된 사슬속에 어떻게 제대로 된 축구행정과 축구발전이 이뤄질 수 있었겠습니까. 흙속에 감춰진 재능들을 발굴해 키워나가는 것이 지도자들의 덕목이지만 한국 축구현장에서는 연줄에 연줄로 이어진 선수선발 등으로 갈등과 불화는 이미 치유단계를 넘어선 상황입니다.
지난 8월 5일 파리 포르트드 라샤펠 경기장에 거행된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한국의 안세영선수는 중국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하지만 안 선수는 잠시 하늘을 향해 포효를 하는 것으로 승리의 기쁨을 종료했습니다. 그리고 안 선수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감돌았습니다. 이어서 안 선수의 입을 통해 그동안 한국 배트민턴 세계에서 존재하는 믿기 어려운 상황이 터져 나왔습니다. 배드민턴 협회를 향한 22살의 어린 선수의 외침은 부끄러운 한국 스포츠의 단면을 그대로 만천하에 알리는 신호탄이 됐습니다. 오로지 성적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선수를 기계처럼 다루는 그 처참한 현실이 전해졌습니다. 물론 그런 안 선수의 주장을 거부하고 응수하는 유일한 집단이 존재합니다. 바로 배트민턴 협회입니다. 협회는 안세영의 눈높이는 손흥민과 김연아급이다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합니다. 협회는 자신들은 물심양면으로 안 선수를 지원했지만 안 선수의 눈높이가 다른 것 같다면서 안 선수의 주장을 일축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협회의 난맥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파리 올림픽 도중 갑자기 대한사격연맹 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힌 것입니다. 배트민턴과 축구처럼 선수와 협회의 연관관계도 아닌 것 같습니다. 사격연맹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해 온 것으로 보도되자 갑자기 사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사격연맹 측은 회장에 대한 고발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격연맹측은 회장이 올림픽 기간동안 이른바 황제의전을 받으며 연맹 비용을 탕진하고 후원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격 연맹은 당장 선수단에 지급해야 하는 포상금부터 걱정하는 상황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는 정몽규 축구협회장의 모습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축구협회장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런 저런 구설에 올라 사퇴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받는 인물입니다. 또한 이번 올림픽 축구에서는 예선전에서 이미 탈락해 올림픽 출전도 좌절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축구협회장은 떳떳하게 국제축구연맹 즉 FIFA 회장과 면담했습니다. 돈 많은 재벌 회장이 올림픽 관전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그렇게 비판을 받고 사퇴를 요구받으면 좀 자숙하고 자신의 거취을 고민하는 흔적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세계 축구계의 큰 손들이 모인 그 자리에 참석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모르는 참으로 딱한 처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파리 올림픽 주변에서 한국 스포츠 협회 관계자들이 벌이는 추태도 세계언론의 질타를 받고 있습니다. 파리 올림픽에 출전한 유일한 구기종목인 핸드볼 대표팀을 지원하는 협회 관계자들이 파리 현지 식당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별리그에서 사실상 탈락이 확정된 날 벌어진 일입니다. 이들은 주변에서 식사하다 피하려는 손님들까지 붙잡고 시비를 걸었다고 합니다. 파리 올림픽 양궁 경기장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비매너행위도 발생했습니다.일부 체육회 관계자들은 고가의 A 석을 차지하고 상대 선수를 자극하는 소리를 내거나 경기 중 큰 소리로 전화를 사용하는 등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짓을 해 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의 빈축을 샀다는 말입니다.
참 가지가지합니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기량을 선보이는 그런 자리에서 마친 그동안 숨겨놓았던 비리들을 모두 쏟아내 보이는 그런 올림픽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거둔 대단한 성적이 정말 무색해지는 모습들입니다. 그동안 저편 아래에서 괴물처럼 도사린 그 비스포츠적인 행위들이 적나라하게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고 보입니다. 국민들은 분개하고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 수준이 이정도밖에 되지 않았나는 것에 대한 자괴심도 엄청납니다. 역대급 폭염을 잠시 잊으려고 올림픽 경기를 보다가 더 화가 치솟는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는 그동안 국민의 눈높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들만의 리그였습니다. 자신들만의 공화국을 만들고 끼리끼리 다해먹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협회장과 임원 그리고 직원들 그리고 해당 종목의 감독과 코치진 그리고 선수들과의 사이에서 그동안 벌어진 일들이 얼마나 해괴망칙했는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대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가 터진 축구협회, 배드맨턴협회, 사격연맹만의 문제이겠습니까. 일부 협회장의 숨은 노력을 제외하고 한국 체육계 그리고 협회는 대수술이 절실해 보입니다. 정부도 이번 기회를 혁신과 개혁의 계기로 삼겠다는 모습이니 과연 어떤 과정이 이어질 지 지켜볼 일입니다. 22살의 어린 선수 안세영이 쏘아올린 결코 작지 않은 큰 공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한국 체육계가 혁신하는 그런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2024년 8월 8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