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으로 도망가는 중년남성의 불안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
집단상담에 참석한 50대의 남자는 불면증을 설명하는 데 그 묘사가 지루할 정도였다. 이러한 그에게 증상이란 감당하기 힘든 불안의 결과라며 대개의 사람은 표면에 나타난 증상만 가지고 씨름하느라 불안을 뒷전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즉 진짜 다루어야 할 건 불안인데 가짜일 따름인 증상에 몰두하느라 세월을 다 보내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무엇이 문제냐고 물었다.
도통 모르겠다고 하는 그에게 우선으로 가까이 있는 가족과의 관계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열렬한 구애 끝에 아내와 결혼하였지만, 사람을 지나치게 좋아해 운동을 마치고 자주 술을 마셔 오랫동안 아내와 갈등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고등학생인 아들에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술 마시는 습관도 못 이기는 아버지가 자기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해서 자기는 그때부터 술을 끊어 아내와는 크게 싸우지 않고 지낸단다.
잠을 이루지 못해 초췌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모습, 하지만 그냥 홀연히 불면증에 시달렸다고만 말해 그에게 접근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증상이 생겨나지는 않는데…. 정말 그는 불면증의 이유를 모르는지 아니면 차마 말을 할 수 없어 모른다고 하는 것인지 오리무중이었다.
어느새 헤어져야 할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때까지 그를 돕지 못했던 나는 마지막 기회다 싶어 그에게 지난밤에는 잠을 잘 잤느냐고 인사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집단상담의 마지막 밤에 열리는 여흥을 즐긴 후 잠이 올 듯해 누었는데, 마음이 허해지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마음이 허해졌다는 말에 뭔가 다가설 수 있는 단서를 잡은 듯해 나는 다시 그에게 집중했다. 무슨 생각을 하니까 허해지더냐고, 언제부터 그런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냐고, 아내가 있는데 왜 허하냐며 탐색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아내가 교감 승진을 위해 벽지 근무를 해야 하므로 몇 년 전부터 주말을 제외하고는 아들과 단둘이 지낸다고 했다. 그래서 밤에 헬스장에 갈 때는 되돌아올 때의 캄캄함이 싫어 불을 켜놓은 채 다녀오곤 한단다.
그 정도로 적적해 견디기 어려우면 아내가 집에서 출근하도록 하든지, 아니면 승진을 접도록 아내를 설득하는 게 합당하지 않느냐고 내가 말했다. 그러자 그는 술로 아내를 고생시켰던 세월이 있는데 인제 와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대답했다. 퍽 양심적인 발언처럼 들려 내가 순간적으로 주춤하자,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철쭉 님이 행여 탐색의 고삐가 느슨해질까 봐 잽싸게 물었다.
“술을 끊었던 이유가 뭐라고 했지요?”
“아들이 자기에게는 학생답게 공부하라면서 아버지는 술도 못 끊는다고 지적을 해 바로 그때부터 끊었습니다.”
“아들을 위해 끊었습니까? 아니면 아내 때문에 끊었습니까?”
철쭉 님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그는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했다. 그러자 철쭉 님은 재차 물었다.
“비율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됩니까?”
“글쎄, 아들 때문인 것이 51%이고 아내에 대한 것이 49%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가 이렇게 표현하는 순간 나는 ‘아하! 아내에 대해 번민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렸다. 표면상으로는 아들의 지적이 계기가 되어 술을 끊었지만, 아내에 대한 비중이 49%라면 작지 않은 비중이다. 그래서 내가 득달같이 물었다.
“왜 하필 그때 술 끊을 각오를 했지요?”
“아니 뭐, 늘 끊으려고 하다가 마침 수험생인 아들이 그렇게 말을 하니까 ‘그래 좋다’ 하는 심정으로 끊었지요.”
이런 대답에 철쭉 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내가 동호회 활동이니 승진이니 하며 빠져나가니까, 즉 아내의 빈자리가 점점 커지니까 나름 술을 끊는 식으로 애를 쓴 것이지요? 하지만 아내가 좀처럼 돌아오지를 않자,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 아니요?”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이렇게 콕콕 집자,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당황해하였다. 마침내 증상과 원인 간의 연결이 되는 바람에 놀란 건지 아니면 숨기고 싶었던 것을 더는 감출 수 없어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얼굴은 침통하게 일그러졌다.
모든 게 명확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아내가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에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던 그였다. 그러던 중 아들의 지적을 듣고 술을 끊으며 아내를 되돌리려 애를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가 좀처럼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자, 그는 온갖 번민을 하였던 게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대놓고 싫은 소리를 하지 못했던 그는 엄습하는 불안을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억압하는 식으로 피하고 대신 불면증을 터트려 온통 그것에 몰두했었다. 그러다 도리어 불면증에 집어삼키듯 그것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거다.
모든 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후 침통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그에게 어떤 심정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참담하다고 답변했다. 이러한 그를 바라보며 나는 증상이란 불편한 진실을 보지 않게끔 출현하는 고도의 심리 장치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다.
첫댓글 오늘도 상담사례 소개 감사해요..
영과 육 강건하세요..
다음 상담 사례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