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맹점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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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부부가 겪는 갈등은 서로의 성격을 참기 어려워 함께 살기 어렵다는 거였다. 남편이 내향적이라면 부인은 외향적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실질적인 문제는 그런 성향이라기보다 다른 것에 더 있었다.
대학교를 마치자마자 제대로 취업하기가 어려웠던 두 사람은 다 임시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만났다고 한다. 아내는 공부를 잘했으나 아버지를 일찍 잃는 바람에 대학교도 겨우 마쳤는데 기회가 닿으면 더 공부하였으면 했단다. 이러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자는 자기가 그녀의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며 결혼 후 아내의 공부를 도왔다. 이렇게 아내의 학업을 돕느라 그 남자는 돈을 버는 것은 물론 집안일도 도맡아 했고, 아내는 박사학위를 딴 뒤 박사후과정 코스까지 하느라 장장 10년이란 세월을 흘려보냈다.
그런데 이때부터 부부 사이에는 심심치 않게 의견 충돌을 맞이했다. 갈등을 거듭하다 내게 왔을 때 나는 왜 진작부터 싸우지 않고 학업을 마친 뒤부터 싸우느냐며 그 부인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옛말에 뒷간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데 그런 격이라며, 도움을 받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도움을 다 받고 난 뒤부터 툴툴거리는 게 비겁해 보인다고 하였다.
이렇게 심정적으로 그 남편의 헌신을 귀하게 여겼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을 답답하게 여기는 그 아내의 심정에 동조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자는 학위를 마치고 눈높이가 높아져 직장이나 주변에서 근사한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는데, 남편은 오로지 아내에게만 헌신하고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싫어하며 아내하고만 지내려고 하니, 아내로서는 갑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치로는 자기를 위해 10년간 헌신한 남편을 무조건 보듬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눈높이가 너무 벌어진 것 같아 그들을 상담하는 동안 내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 간간이 자문을 맡아주시는 철쭉 님에게 그들의 상황을 말하며 남편에게는 아내가 전부인 것 같은데, 아내는 남편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으니 이 부부를 어떤 식으로 돕는 게 좋으냐고 물었다. 다시 말해, 의리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솔직한 감정을 중시하느냐의 문제에서 나 자신도 헤맨다고 하였다.
나의 말을 들은 철쭉 님은 그가 허약하기 그지없는 사람 같다고 하였다. 아내를 뒷바라지하느라 자신의 직업 세계를 구축하지 못한 것은 자신감이 없어 아내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그녀에게 의존하는 모양이란다. 얼핏 보면 아내를 위해 헌신하는 것 같지만 엄밀히 말해 도전하듯 앞장서는 역할을 부인에게 내맡긴 꼴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말을 듣는 순간 퍼뜩 그 남자의 핵심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부인이 자기에게 헌신한 남자를 떠나는 게 가능하냐고 물었다. 1~2년도 아니고 10년이란 세월 동안 도움을 다 받고 인제서 그 남자 곁을 떠나는 게 윤리적으로 괜찮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나의 이런 의문에 철쭉 님은 그런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여자가 남편에게 애정보다 답답함을 크게 느끼는데 무슨 수로 같이 살겠느냐고 하였다. 즉 고마운 것은 어디까지나 고마울 따름이지, 그것으로 감정을 좌우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이런 조언을 받은 뒤 나는 그 남자가 자기는 아내를 사랑하고 헌신한 죄 밖에 없다고 할 때, 그가 아내에게 의존적이었다는 점을 꼬집어주었다. 이러자 그는 매우 당황해하면서도 수긍을 하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남편에게 도움을 받으면서도 든든한 의지처로 여기지 못한 점이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었구나 하고 후련해하였다.
아무튼 틈틈이 이런 발언을 곁들이긴 하였지만, 방향에 대한 욕심을 비우고 그들의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기로 하니까 상담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에게 온갖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그때그때 드는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나눠보자고 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잠복해 있던 온갖 불평불만이 다 튀어나오게 마련이고, 그 결과 서로 품을 수 있으면 함께 사는 것이고, 도저히 안 되겠으면 헤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이별에 대한 상처나 죄의식 같은 게 남을 수 있으니 최선을 다하자고 하였다.
그들도 단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나눠보자는 말에 심적 부담이 덜어지는지 동의하며 적극적으로 임했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것들이 정화되고 정리되었다.
어느 정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여유가 생기는지,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잘해보겠다며 종결을 시사하고 내게 감사를 표했다. 나도 반가운 마음을 표하였지만, 그들이 끝까지 잘 살 수 있는지는 안심하지 못했다. 무수한 요인, 즉 조건 위에 삶을 영위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인지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 같고, 더욱이 마음이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종잡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첫댓글 오늘도 상담사례,, 감사해요.
단풍 구경하러 스모키마운틴 까지 왕복
2300마일을 드라이브하고 왔네요..
대구 팔공산 단풍도 멋져요..
부부갈등 ????( 용서 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