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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적 자의식'과 만물상 콤플렉스: 586세대는 군부 독재라는 거대한 악과 싸우며 대중을 계몽하고 사회를 이끌었다는 강렬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자신이 사회의 모든 이슈에 대해 발언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강박'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전문 분야(근현대사)를 넘어 고중세사 대중서적을 쉽게 내거나, 잘 모르는 신학을 가볍게 폄하하는 것은 "나는 똑똑하고 올바르니, 내 직관과 교양이 비전문가들보다는 낫다"는 오만에서 출발합니다.
선악의 이분법과 패키지화된 진영 논리: 어느 한쪽이 거의 재론의 여지 없이 "Evil"이 분명했던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이들은 세상을 '선과 악',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으로 보는 데 익숙합니다. 적어도 이것은 그들의 청년기에 실재했던 현실이었고 절대로 유치한 판타지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당시 한국 사회 자체가 정말 유치했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따라서 'PC(정치적 올바름)' 같은 최신 진보 담론이 등장하면, 그 담론의 논리적 허점이나 현실적 부작용을 치열하게 따져보기보다는 "우리는 진보니까 당연히 옹호해야 한다"며 무비판적으로 수용(패키지화)해 버립니다.
지식 업데이트의 지체와 아마추어리즘: 제시하신 글에서 고중세사 역덕들에게 논파당한다고 하신 부분이 핵심입니다. 2000년대 이후 학문은 고도로 세분화되고 대중의 정보력(인터넷, 해외 원서 접근 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하지만 일부 586 지식인들은 80~90년대식 거시적이고 이념적인 독서 수준에 머무른 채, 과거의 '이름값'으로 학문적 권위를 유지하려다 보니 최신 전문 지식을 갖춘 대중에게 밑천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2.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오류를 인지하고 반성하기에는 심리적, 구조적 방어막이 너무 두텁다는 데 있습니다.
견고한 '도덕적 우월감': 이들은 스스로를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뤄낸 세대'이자 언제나 '정의로운 편'에 서 있다는 도덕적 우월감을 무기로 삼습니다. 물론 이것이 나름 근거 있는 주장이라는 게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확실히 8090년대까지는 그들이 늘 정의로운 편이었던 것도 사실이고, 민주화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비판을 수용하고 오류를 인정하는 것을 단순한 '지식의 수정'이 아니라, 상대 진영(일베, 보수 우파 등)에게 이념적으로 굴복하거나 패배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글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일베/DC의 행태를 혐오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이 신학을 조롱할 때는 그들과 똑같은 태도를 취하는 '내로남불' 역시 이러한 도덕적 맹점 때문입니다.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에코체임버(Echo Chamber)': 이 세대는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 언론, 출판, 학계의 주류 기득권입니다. 자신이 헛소리를 하거나 깊이 없는 책을 내더라도, 진영 논리에 의해 맹목적으로 환호해 주는 확고한 지지층과 팬덤이 존재합니다. 내부의 비판은 "내부 총질"로 치부되어 차단되므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교정할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권위 실추에 대한 두려움: 오랜 기간 진영의 스피커이자 '지식인'으로 대접받아 왔기 때문에, "내가 이 분야는 잘 모른다", "내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순간 밥줄(생계, 인세, 방송 출연 등)과 권위가 모두 무너질 수 있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작용합니다.
3. 궁극적 해결책은 무엇인가?
586세대 개인들의 자발적 반성을 기대하는 건 비현실적 발상입니다. 포기하셔야 합니다.
사회의 공론장 구조와 지식 소비 방식이 바뀌어야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름값'이 아닌 '데이터와 논리' 중심의 공론장 재편: 제시해주신 글처럼, 아무리 뛰어난 586 지식인이라도 그의 전문 분야(근현대사)와 비전문 분야(고중세사, 신학 등)를 철저히 분리해서 평가하는 대중의 냉정함이 필요합니다. "A가 훌륭한 민주화 운동가/정치 평론가이니, 그의 역사관이나 문화 비평도 다 맞을 것이다"라는 후광효과를 깨버려야 합니다.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의 문화 정착: 지식인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사실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되, 모르는 것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은 가혹하게 비판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학자와 평론가들이 "이 부분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어서 판단을 유보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을 용기 있는 태도로 존중해 주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세대의 치열하고 정교한 논파 (세대교체): 궁극적인 해결책은 글쓴이처럼 오류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전문적 소양을 갖춘 젊은 세대가 끊임없이 팩트 체크를 하고 논파하는 것입니다. 이념과 감성에 호소하는 586식 거대 담론 대신, 나노 단위의 팩트, 정확한 사료, 세밀한 논리로 무장한 새로운 오피니언 리더들이 출판과 미디어의 주도권을 가져와야 합니다.
요약하자면, 해당 세대의 지식인들은 '과거의 영광', '근거 있는 몇몇 시대적 FACT들' , '진영 논리'에 갇혀 지적 성장을 멈추었으며, 도덕적 우월감 때문에 오류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대중이 특정 권위자의 이름에 맹종하지 않고, 사안별로 팩트와 논리만을 철저하게 따져 묻는 '지식의 실용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첫댓글 으음 흥미롭군요
저도 좀 더 노력하면서 살아야겠습니다.
후광 효과에서 탈피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대나무숲, 대기업 블라인드, 하버드대, 미국 출신 등등..
논리는 집어치우고 권위자의 답변을 진리화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권위 만큼 반발을 짓누르기 쉬운 방법이 없죠.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든거긴 합니다만..
그래서 백마 탄 초인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개 A는 백날 헛소리만 하며 아무개 B는 백날 맞는 소리만 한다 따위에 함몰되던데, 이런 놈들부터 걸러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