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산다는 것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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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낀다며 나를 찾아온 부인이 주는 인상은 참하고 소박해 보였다. 상담자까지 찾아온 결정적인 계기를 찾아보니, 성당에서 함께 활동하는 자매들이 너무 드세어 부대낀다고 하였다. 그런 주위 사람이 마땅치 않으면 피해버리면 그만인데,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로 보아 여린 사람 같았다.
그녀는 학위를 취득했어도 교수로 임용되지 못한 것에 대해 위축감을 느끼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자신의 가방끈이 길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냥 조용히 지내는 편인데, 성당 자매들은 이 여성이 많이 배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만만하게 취급했던 것 같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새어머니 손에서 자란 탓에 여리여리했던 그녀는 결혼해서도 남편이 서운하게 하여도 섭섭함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왔던 것 같다. 대기업 임원인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에 열중하는 사람으로 자기는 할 만큼 했다는 식의 의식을 지녔고, 그래서인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면모를 지닌 듯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당 자매들과의 불편함은 작은 계기에 불과하고 그녀가 참으로 원하는 것은 누군가와 속내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온갖 정성을 기울였던 아이들도 이제는 다 자랐으므로 자신의 본질적인 문제인 외로움이 슬슬 번져오던 참에 때마침 성당 자매들의 태도가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이지 싶었다.
큰 사건이나 증상을 다루는 심각한 수준의 상담이라기보다 소소하게 일상을 나누는 식의 상담을 이어가면서 나는 그녀가 내적인 갈증을 해소하고 현실에 힘있게 발을 디디도록 돕고자 했다. 즉 그녀가 느끼는 헛헛함은 결핍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에 불과하지, 치명적인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도왔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게 언니나 벗처럼 대화 상대자가 되어주고자 노력했다. 다행히 그녀는 외견상 크나큰 문제가 없어도 나와의 대화를 즐기는 듯했고 그런 덕분인지 여리여리한 모습을 탈피하여 생활인의 모습으로 자신을 다져갔다. 특히 남편에 대한 감정의 기복을 몇 차례 경험하며 그가 그리 대단한 인물이거나 형편없는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에게 맞춰가는 모습을 보였다. 즉 남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 딸이 충돌했다며 당혹스러워했다. 결혼을 앞둔 딸이 떠나기 전에 나름 효도한다고 애를 썼는데, 남편이 평소 버릇대로 딸을 긁듯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딸이 폭발하면서 아버지에게 대들었는데, 이러한 광경을 지켜본 자기는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한다. 아버지 기질을 닮았던 딸은 그동안 아버지와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이러한 딸이 아버지와 충돌하니까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경계를 넘어서는 것 같아 철렁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단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자기가 친구들에게 딸이 너무 되바라진 것 아니냐고 묻자, 친구들의 답변은 요즈음 젊은이들이 다 그렇다며 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게 정상적이라고 대꾸해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 딸이 똑똑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위아래를 식별하는 태도를 지니지 못한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그 부인에게 다른 젊은이들이 다 그런다고 하여 그것이 옳은 것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나아가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어른의 상, 즉 부모의 상을 제대로 심어주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쓴소리를 하였다. 설사 아버지가 잘못했다손 치더라도 아버지에게 그렇게 함부로 발톱을 들어대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것이 자녀가 지녀야 할 덕목이며 진정한 의미의 숙녀가 되는 조건이라고 하였다. 상황이 좋을 때는 누구나 다 잘하게 마련이기 때문에 그때는 그 사람의 됨됨이를 식별하기 어렵고,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 게 바로 그 사람의 수준이며 교양이라고 한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그 부인은 민망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히며 그럼 이제라도 어머니로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러한 질문을 받은 나는 어머니로서 딸이 아버지의 부당한 언급에 화가 났으리라는 것을 알아주되, 그렇더라도 아버지에게 그렇게 되바라지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듣게끔 알려주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사람의 품격이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여야 앞으로 딸이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품격을 지키게 된다고 하였다. 그 딸이야말로 곧 결혼하는데 그녀의 남편이 시종일관 실수를 안 할 리 없고 또 시부모도 때에 따라서는 무리한 말도 할 수 있는데, 그럴 때마다 이빨을 드러내면 결국은 자신의 모습이 추락하게 마련이라고 하였다.
다시금 부모의 역할이란 죽을 때까지 벗겨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의 최대 과업은 자기를 다듬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그 못지않게 부모 역할도 덧붙여지는 것 같다. 그만큼 부모와 자녀의 인연은 지중하다는 것이다.
첫댓글 "부모와 자녀의 인연은 지중"
"또 시부모도 때에 따라서는 무리한 말도 할 수 있는데"
저런 여자 며느리로 ???
소름끼치네요..
발톱? 이빨 ?
무섭네요..
며느리의 이간질도 ??
좋은 상담사례
감사해요..
장성숙 선생님!
안녕하세요?
자신을 잘 다듬는것이
좋은 부모도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딸의 아버지에 대한 행위는 알게모르게 그 어머니의 평소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은연중 보고 배웠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