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8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어느덧 올해도 2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참으로 화살과 같네요.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건져올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세상의 정욕과 탐심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게 나를 주의 손으로 장악하여 주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나를 씻어 주의 거룩한 신부로 세워주소서.
정결한 마음을 주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17:50-58
제목 : 이스라엘의 전쟁 영웅이 된 다윗이 당한 시험과 고난, 주님의 고난입니다.
50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51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52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소리 지르며 블레셋 사람들을 쫓아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이르렀고 블레셋 사람들의 부상자들은 사아라임 가는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더라.
53 이스라엘 자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쫓다가 돌아와서 그들의 진영을 노략하였고
54 다윗은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두니라.
55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나아감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묻되 아브넬아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아브넬이 이르되 왕이여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매
56 왕이 이르되 너는 이 청년이 누구의 아들인가 물어보라 하였더니
57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그 블레셋 사람의 머리가 그의 손에 있는 채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하니
58 사울이 그에게 묻되 소년이여 누구의 아들이냐 하니 다윗이 대답하되 나는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니이다 하니라.
* 나의 묵상
소년 다윗은 블레셋의 장수요 거인 골리앗을 물매 돌 하나로 무너뜨렸다.
그는 칼과 창 그리고 단창을 비롯한 각종 전쟁 도구로 중무장한 골리앗과는 달리 겨우 막대기 하나와 물매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완승하였다.
그의 승리는 그의 경험이나 능력도 아니고 나아가 그가 가지고 있는 전쟁 무기는 더더욱 아니다.
오직 그가 굳게 믿고 있는 여호와의 이름 안에 있는 능력이었다.
그렇게 다윗은 블레셋 사람 골리앗을 죽이고 그의 칼을 칼집에서 뽑아 그의 목을 베고 머리를 잘랐다.
이에 전쟁의 승리를 확신한 이스라엘 군사들은 블레셋 사람들을 쫓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가이와 에그론 성문까지 쫓아갔고 부상을 입은 블레셋 사람들은 사아라임 길에서부터 가드와 에그론까지 엎드러졌다.
한편 이들을 쫓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돌아와서 블레셋의 진영으로 들어가 그들의 전리품을 취하였다.
그 때 다윗은 골리앗의 머리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고 그의 갑옷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건들은 자기의 장막에 두었다.
사울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고 군사령관 아브넬에게 그가 누구냐고 묻는다.
아브넬은 맹세하면서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하여 왕은 그에게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인지 알아보라고 명한다.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 곧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오자, 아브넬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한다.
그 때 사울이 다윗에게 누구의 아들이냐고 묻자, 다윗은 주의 종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이라고 대답한다.
다윗은 아직 완전히 성인이 되기 전이지만 아버지의 심부름을 통하여 블레셋의 장수이자 거인인 골리앗을 보게 된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그 골리앗을 두려워할 때, 전혀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를 맞서서 상대한다.
그렇게 어린 소년 다윗은 블레셋의 용사요 거인인 골리앗을 무찌르면서 사울 왕의 눈에 띄게 되었고 일약 이스라엘의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소문이 이스라엘에 퍼지자 여인들이 이것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게 되고 그 노래를 들은 사울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
(삼상 18:6-8)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엇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이를 계기로 사울은 왕의 자리에 앉아서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닌다.
그렇게 이스라엘의 영웅이 된 다윗은 그를 죽이려는 사울의 손을 피해서 심지어 유대 광야로까지 도망을 한다.
그 곳 유대 광야에서 지은 시가 바로 시편 63편이다.
그는 그 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1-4)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열광하는 영웅이 되었음에도 그는 사울의 극한 시기심으로 인하여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 쫓기는 상황에서 그는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인 광야에서 주를 갈망하며 주를 앙모한다.
심지어 그가 거한 땅은 아무 것도 없는 광야이다.
아무 것도 없는 그 광야를 그는 하나님의 전 곧 성소라 일컫는다.
그 성소에서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주를 바라본다.
이러한 시험은 다윗만 아니라 다윗으로 예표되는 예수님도 동일한 시험을 받으셨다.
공생애를 시작할 무렵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나가신다.
그 때 그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다.
세 가지 시험 모두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친다.
그렇게 주님은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하셨지만 마귀는 아주 물러나지 않는다.
잠시 동안 떠나갔을 뿐이다.
(눅 4: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그리고 마귀는 다시 주님을 시험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 등 유대인들을 통하여 너 자신을 구원해 보라, 이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시험하는 것이다.
(마 27:40-42)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귀의 미혹에 넘어간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모욕하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채근하였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으시고 그냥 그 십자가에서 고개를 떨구셨다.
그렇게 죽음을 택하신 예수님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에 의하여 돌무덤에 장사되셨다.
그 죽음은 육신은 죽으셨으나 그의 영은 살아서 지옥에까지 내려가셨으며 그곳에서 모든 영혼들에게 승리를 선포하셨다.
무엇보다 죽은 아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시 살리셨다.
그 승리를 믿는 자들은 오늘도 아들의 생명으로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사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보란 듯이 뛰어내려주길 그렇게도 간절히 원하던 자였다.
예수님을 조롱하고 무시하며 모욕하던 그들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뛰어내리심으로 개박살내 주시기를 그렇게도 원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것이 예수님의 승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의 너무나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남들이 보기에 보란 듯하게 승리하시는 세상적 영웅이나 용사 그리고 거인이 결코 아니시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기에 전혀 거리낌없는 지극히 연약한 분이셨다.
주님은 그렇게 가장 연약한 자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사 53장).
그런 분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100% 복종하셨기 때문이며 그 복종은 또한 우리를 그 말씀에 복종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노력하고 젖먹던 힘까지 사용해서 애를 써도 그 복종이 안 된다.
물론 나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힘과 의지로는 불가능함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에 나는 날마다 시험을 받으며 또한 그 시험 앞에서 쉽게 넘어지고 자빠진다.
그렇기에 내가 윤리 도덕적으로 잘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내가 바로 티끌이요 먼지임을 자각하여 오직 주님의 은혜만 구할 뿐이다.
내가 만약 윤리 도덕적으로 무엇이든 잘 행한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그 뒤에서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고자 하는 자기 義로 덮고 말 것이다.
그것을 가장 싫어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 아니시던가?
아담에게 그러셨고, 다윗의 자기주장의지를 깨부수시고자 그에게 고난을 주셨으며 욥의 자기 의를 뿌리 뽑고자 말로 감당할 수 없는 모진 고난을 주시지 않았는가?
그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참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이 바로 예수님을 예표하는 자들이 된 것이다.
그런 자들이 곧 예수를 증거하는 자들이다.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나 역시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시험을 받는다.
그 시험 앞에서 나는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
그러나 나는 결코 실망하거나 낙망하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 주님의 은혜가 나를 살리기 때문이다.
그것이 복음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께서 하신 일임을 드러낼 뿐이다.
날 구원하신 우리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주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주님을 잘못 알았고 또한 잘못 믿는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당하시는 고난을 나는 받기 싫어하였고 그 시험 또한 어떻게든지 피하려고만 애쓰던 자였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모욕하고 조롱하던 자들을 보란 듯이 박살내서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를 원하던 자가 바로 나였습니다.
하여 나 또한 이 땅에서 남들 보기에 보란 듯하고 멋져 보이는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상위 몇 %에 들고자 애를 쓰기도 했습니다.
나름대로는 젊었을 때 남들보다 좀 빠른 성공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나의 헛된 욕심이며 탐욕이었음을 목회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내가 이룬 성공과 업적들을 한꺼번에 거두어 가셨습니다.
나는 욥과 같이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였지만 그 즈음에 복음을 듣게 하시고 복음을 알게 하셔서 그 복음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고난이 내게 진짜 복이요 은혜였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모든 것 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