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집필 역사교재와 막상막하인 '초중등논술교재', 그 책에서 정말 아쉬웠던 바는?
-우파 네티즌분들, 제도화된 '논술교육'을 믿지 마세요!-
1. '논술교육'은 반드시 '학제적'이어야. '국어교육학과' 관습 위에 집 지어질 수 없어.
이명박시장의 '수도분할반대'투쟁에서 처음부터 '사기빨'이 있었음을 확신하는 바는, 건축법과 국토종합계획에 복종하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지상 1미터를 넘는 '개집'보다 큰 건축물을 지을 권리가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어졌다면, 스스로 때려 부술 때까지 '불법으로 지어진 크기'에 비례하여 '이행강제금'의 벌금을 물게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건축물'에 관한 한 정부 입법 방향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이들에만, 건설이 사실상 허락되고 있다. 막연한 '느낌' 수준이 아니라 부동산 개발업의 현실을 염두에 둔다면, '수도분할반대'투쟁을 하면서 '개발프로젝트'를 내세우는 동시의 일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발업'을 하면서도 수도분할에 내면에서의 협력이 아닐 수 있다는 식의 외부 기만을 계속 하는 것은 결국은 '막연한 느낌'에 치중된 이들의 생각 때문이다.
이명박시장 스타일의 '수도분할반대투쟁'은 위선 이란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1) 건축법 (2) 국토계획법 (3) 부동산 개발론 에 대한 탐구를 거친 이들이라면, 거의 100% 정답이 같다. 좋은 '에세이'(논술문)를 쓰기 위해서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반드시 학제적 수준으로 나아가야 된다. 근거 없는 칭송과 근거 없는 비난은 똑같이 논술문에서 나쁜 점수를 받아야 싸다. 정말로, 사회의 발전을 기대한다면 '근거를 갖춘' 비판과, 더 나은 논증에 승복할 수 있는 열린 가치의 존중이어야 한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나오기 전에 이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의 역사해석방법론 기반의 '논술작문교재'를 써서, 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주도의 관습의 나쁜 면모를 다 비판했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강만길교수'가 밥그릇 쥔 '국사학과'의 우파교육할 권리를 뺐는 독점권에 저항하려 했고, 바다를 건너다는 조선일보에 자주 기고하여 울화통을 터뜨리게 하는 사실상 [한겨레신문]의 논지를 철저하게 따라가는 최혜실교수(서울대 국어교육학과 출신인 김동환교수의 부인인)의 대학작문 교재의 편파성에 저항하려 했었다. (물론, 결과는 이 모양으로 인터넷에서 쭉쭉 화병 걸린 글을 쓰는 네티즌이 되었지만)
사실상, 원했던 것은 단 하나였다. 최혜실교수가 [조선일보]에 기고해서 명망을 올리면서도 '대학교재'로 사실상 기술적으로 조선일보를 까대는 '학술적 호박씨'를 빈정거리려는 목적이 아니다. 최혜실교수가 길러내려고 한 논술인재가, 막말로 '*만한 글쓰기'로 머물 것 같다는 것 때문에 저항하고 싶었다. 대학생이라면 마땅히 '뇌사모식'으로 조선일보는 무조건 나쁘고 한겨레신문은 무조건 좋다라고 편집된 라인에 유도질문당하지 않고, 스스로 탐구하며 글쓰기를 해야만 된다고 보며 그래야 나라꼴이 제대로 된다고 믿었다.(조선일보 어떤 논설위원을 묵사발 낼 만큼, 조선일보 논설에 무조건 충성파는 절대로 아닌 입장에서의 발언이다.) 대학작문교재의 모습을 보고서 교육부 국어교육 가이드라인을 탐구한 입장에서, 오늘 초중등 논술교재를 보았었다. 우파 네티즌 분들께 초중등 논술교재 과외를 위해서 돈을 쓰기 위해서, 초중등 논술교재가 원하는 방향성 같은 것을 생각해 보셨으면 하는 차원에서 글을 적는다. 물론, 바다를 건너다의 결론은 현행 초중등 논술교재는 '전교조 역사교재'와 같은 수준으로 믿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다.
2. 국민국가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 없이, 좌파 정부 시대에 '국어교육학과'가 살아남는 법.
'국어교육학과'는 '국문과' '국사학과'와 더불어 애국심 없이는 학과존재가 어려운 과이다. 그런데, 좌파 정부 시대는 과거의 방식대로의 존재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한 시대에도 '국어교육학과'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사투리 만개와 통신 은어 만개 시대에 교육적으로 개입할 권리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의 '국어교육학과'의 생존법은 어떠한 것인가?
여기에서, '논술교재'의 비극을 생각해 봐야 한다.
최혜실교수의 '대학작문교재'의 방향을 보았다면, 초중등교재의 논술교재를 예측 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혜실교수의 대학작문교재가 '안티조선'에의 충성을 이상스러운 '대학인'으로 설정했다면, 현재에 가장 많이 팔리는 초중등 교재는 노무현참여정부의 이슈와 아젠다에 대하여 획일적 복종을 이상스러운 어린이로 설정했던 것이다.
가령, 이러하다.
한나라당이 '자유무역협정'에서 원희룡 등의 이탈표 나올까봐 당론 총집결을 했다는 기사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왜 원희룡 등이 착해질 가능성을 믿지 않고서 '원천봉쇄'했는가 하는 식의 글이 적혀 있다. 글쓰기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니, 논술교육으로서 과외짓으로 등록금 보충할 대학생들은 여과없이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다. 좌파정부의 이슈와 아젠다를 곳곳에 걸고서, 그게 왜 옳은가 하는 것을 정답으로서의 대화와 토론의 논술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논술교재 어디에도 "왜?"의 반대증거 제출을 허락하는 부분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논술독서교육에서 "많이 아는 것보다 어떻게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카피는, 현재의 초중등 논술교육을 정확히 짚어준다. 초중등 논술교육은 좌파 정부에 이해하고 충성하고 복종하는 습관을 '쓰기'로서 몸에 익히는 과정이지, 아무런 실질적 논술행위의 진전이 없다.
사실, 교육부에 제출된 인지 발달 상황에 맞추어본 '국어교과'의 글쓰기 전진 방향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현재의 교육체제에서 초중등 논술 시도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이 땅에 '국어선생님'들에겐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국문과 박사학위를 준비하다가 공인중개사가 된 입장에서 바라볼 때는, 초중등 논술교재의 연령 별 발전 속도는 숨막혀 못 볼 정도로 더디고 더딘 것이다.(하기야, 최혜실교수의 안티조선에 복종하는 인간형 만들기가 최종 목적이니,.....) 그러나, 사회과나 철학과 등 중고등학교에서 사회과학 부분의 과거 시대에 비한 대폭 강화를 인정한다면, 어느 정도의 정착화는 기대하기가 그렇게 무리라고 할 수는 없다.
3. 중등 논술교재의 좌파정부의 핵심 아젠다 제시법. 이 수준으로서 우파의 핵심 아젠다 홍보는 왜 못하나?
바다를 건너다가 '만화'를 통한 홍보를 주장했었다. 만화 전문 출판사 대원문화사에서 나온 채지충의 동양고전 총서 만화를 즐겨 읽는 입장에서, 중학생들에 '만화'나 기타 비주얼한 방법을 사용해서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것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감탄을 했었다.
논술교재에 논술은 없고 참여정부에 복종하는 인간형 만들기로서 '복종 고백' 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 참으로 평이하게 좌파 정부의 이슈를 퍼뜨리는 면모에 감탄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물론, 우파의 정치 홍보가 반드시 교재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그러한 수준으로 퍼질 수 있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고등부의 대입논술 직전에는 '좋은 에세이'만드는 법의 테크닉을 많이 가르칠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 그것의 복습 수준으로 그칠 것이다. 우파들은 그러한 테크닉 채점 법(가히, 운전면허 시험의 '기능시험'수준이라 할)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고, 글쓰기에서도 깊이 있게 쓰지도 못하면서, 정작 젊은 세대들을 겨냥한다면서 중학생들의 사유방식에 어필할 수 있는 제시방법은 하지 못하고 있다.
"웃찾사'가 재미있다. 그 '웃찾사'의 중심 시청층은 초등학생이다.
주말 저녁 시간대가 재미있다. 그 오락프로는 중고등부와 대학저학년이 중심이다.
그런데, 우파의 정보 제시법은 학력 수준은 낮고 정신연령은 대단히 높게 제시되어 있다. 그것을 반복해서 비판하고 싶다. '채지충'의 동양고전 해설은 어려운 철학적인 내용을 만화로 극화하는 데에서, 만화장르를 가장 잘 활용한 예이다. 좋은 교사가 있다면, 채지충의 책은 넉넉히 중학생에 동양고전을 퍼뜨릴 만한 것이다.
'뉴라이트'작문 교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바다를 건너다와 초중등교사가 연합하는 프로젝트까지는 없는 편이 나을 것이다. 논술 테크닉 배우기로서 대학입시 전에 속전속결 배우는 것으로 대다수가 멈출 것이고, 그것은 운전면허처럼 누구나에게 노력만 하면 평등하게 개방된 것이라고 본다. 정말로, 테크닉 배우기를 넘어서서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운다면 '국어교육학과'의 마인드로 기초된 교재론 정말로 안된다는 사실을 이해하셨으면 한다.
정말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필진이 원하는 학제적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대학생들의 학제적 대화에 기초가 될 수 있는 '작문교재'를 바다를 건너다가 다시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첫댓글 그래서 학부모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며, 제도적인 장치가 이루어 질 때까지는 그런 힘으로 바로 잡아 가야 할 것입니다.
정신연령과 독자 세대층은 최대한 높게, 서술의 지식집약도는 최대한 낮게..... ====> 정신연령과 독자 세대층은 최대한 낮게, 서술의 지식집약도는 최대한 높게 (이러한 방향이 되어야, 김대중씨의 연방제 음모의 방북이 봉쇄될 텐데, 맨날 있는 성과도 다 종합못하는 어설픈 노년 세대 기준의 에세이만 가득한 일은 답
답합니다. 그 메세지는 못 보시는 군요. "고향땅"님께도 성인을 위한 글쓰기 클리닉(?)으로서 (감히) 가르침을 전달할 날이 왔으면 하고 바랍니다. 지식집약도가 높은 것들을 쉽게 풀어야 하는데, 현재는 지식집약도가 낮으면서도 연령층을 높게 하고 있습니다.
예의는 아니나 시간은 많이 없고 제목으로 감잡은 것입니다. 님이 가지고 계신 분야의 체험적 지식이 득세하는 좌파를 누르고 대표님이 집권하는 데 유용하게 적용되는 계기가 오기를 바라며, 현실적으로 보면 지금의 학교는 여러가지 유형으로 학부모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많이 끼치고 있고 좋은 현상으로 봅니다.
'에세이' 접근법은 이래서 나빠요. 지식축적 전제로 집필되는 '중학생'이 바로 바로 알 수 있는 '비주얼'한 방식이래야 합니다. 시간이 있어도 성미가 급해진 현대인들은, 좋은 에세이를 꼼꼼이 읽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문스러워집니다. 다수의 조선일보100자평이 원문과 무관함을 보면서 그 생각이 들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