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나를 찾아온 60대 전후의 부부는 냉랭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내의 얼굴에는 노기가 역력했고, 남편은 초췌한 모습으로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아내는 고개 숙인 남편을 가리키며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나 탓에 자기가 죽게 생겼다고 말했다. 작은 규모의 생산업에 종사하는 남편은 미수금을 받지 못하기 일쑤였고 노다지 술에 절어 살았단다. 이러한 남편을 대신해 자기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도록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볼 겨를 없이 일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겨우 남들처럼 살게 되는가 싶었는데, 저 속 없는 인간이 노래방 도우미를 사귀어 희희낙락하며 바람을 피웠단다. 그런 것을 끊어내고자 속을 끓였던 탓에 그만 자기는 암에 걸리고 말았단다.
그런 연유로 자기가 미친 사람처럼 길길이 뛰었고, 남편은 손발이 닳도록 잘못했다고 빌어도 화가 가라앉지를 않는다고 하였다. 그렇게 집안이 시끄러우니까 아들이 제발 상담을 받아보라며 이미 비용을 냈으니 가보라고 하여 왔다고 했다.
아내가 이렇게 고발성 발언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남편은 시종일관 입을 다문 채 웅크리고 있었다. 내가 그 남편을 바라보며 무슨 말이든지 해보라고 하자, 그는 할 말이 없다고 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아내가 어찌나 벌컥거리는지 살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한다며 그는 울음을 터트렸다.
그 부인은 허약한 남편을 돕고자 몸이 부서지도록 일했는데, 정작 남편이 엉뚱한 짓을 하니까 속을 끓이던 중 암 진단을 받고는 주체할 수 있는 분노에 휩싸여 있게 된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화를 내봐야 도리어 자기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알아도 제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의 상태가 심각한 것 같다며 약물치료를 권했다. 그러자 이미 2년 전부터 그렇게 하고 있는데 약을 세게 먹으면 축 늘어져 아무것도 못 하고, 조금이라도 약을 줄이면 화가 끓어올라 견디기 어렵다고 했다.
2년이 지나도록 그런 상태라면 그녀의 분노는 남편의 문제 때문이라기보다 그녀 자체가 지닌 문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그리하여 살펴보니, 그녀는 일찍이 친정 부모에게 딸이라고 하여 내침을 당했다. 그런 연유로 친척 집으로 내돌려진 그녀는 어떻게든 자기 가정을 이루어 잘살아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흐리멍덩한 남편일지라도 자기 사람이라는 의식으로 죽을힘을 다해 보좌했는데, 정작 그가 바람을 피우니까 예전에 부모에게 내침을 당했던 상처가 가세하는 바람에 그녀는 분노의 화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부모는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향했어야 할 분노가 허튼짓한 남편에게 온통 쏠렸던 것으로 보였다.
나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그녀가 친정 부모에게 배신감을 가진 것 같다고 일러주었다. 나아가 그녀가 고아 의식을 갖고 자기가 새롭게 만든 가정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하니까 조금이라도 허튼 것을 보면 불안 및 분노가 치솟아 견디지를 못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러한 역동적 해석에 대해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하다가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전반적인 그림이 그려지는지 눈에 눈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제가 그렇게 불쌍하게 살아나왔던 사람이군요.”
“부모 슬하에서 자라지 못한 게 큰 아픔이었고, 그래서 자기가 이룬 가족에 대한 애착이 컸던 연유로 남편을 더 용서하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 합니다.”
“병에 걸리고 나니까 분통이 터져 살 수가 없어요.”
“불안하니까 그 틈새에 눌러두었던 많은 것들이 솟아오르는가 봅니다.”
“...”
그 부인이 마침내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데 마치 둑이 터지는 듯했다. 이러한 부인의 모습이 생소한 듯 멀뚱거리며 바라보던 남편이 이윽고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미안해!”하고 말했다. 진두지휘하던 억척스럽던 부인이 그렇게 허물어져 우는 모습에 기어들어가 듯 그렇게 말하는 남편,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꺽꺽거리고 울기나 할 따름이었다.
저 심연으로부터 토해내는 울음소리를 들으며 상담자인 나도 코가 찡하게 시려와 고개를 숙였다. 꿀리지 않게 살려고 온갖 애를 써왔는데 그렇게 병에 걸리고 나니 허망하기 짝이 없어 미친 듯이 발광하는 그녀가 바로 우리 각자의 한 단면이라는 생각을 금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에게 득이 되지 않는 짓은 해봐야 독이 될 뿐이라며 이 시점에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게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자고 하였다. 이러한 내게 그녀는 어떤 것이 득이 되는 거냐고 묻길래,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아픔에 대해 위로를 받으며 열심히 건강을 챙기는 것 외에 뭐가 더 필요하겠느냐며 달랬다. 이러한 상담자의 말이 따듯하게 들렸는지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첫댓글 “병에 걸리고 나니까 분통이 터져 살 수가 없어요.”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상담..
잘~~치유되었네요..
오늘도 상담 사례
감사해요....
늘 적극적으로 격려를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 겨울이니 건강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상담하신 주부님께서는
모든일을 혼자 감당
하시느라 병을 얻으신것 같습니다.
부군님깨도 함께 하시도록 하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모든것을 부군님과
함께 하시도록 권고하시면 병세도
좋아지시고
함께하는 보람으로
가정의 평화가 오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그릇이 다소 약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 남편를 아내가 딱하게 여기는 연민을 갖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저는 부모 되는 것도 자동차 운전면허증 따듯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부모가 하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한 인간의 삶을 분노하게도 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게도 하니 말입니다. 그 부인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그걸 풀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는 심리학이 흥미롭네요.
심리학에서도 상담이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그것이 매력적인 것은 상담자의 성장을 도모한다는 사실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