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현실이 보여 자꾸 생각이 납니다. 우리에게도 이만한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만한 사람도 있기는 했는데 지금은 너무 차이가 나는 듯하여 안타깝기만 합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마음만 조급합니다. 작금의 상태가 더욱 마음을 지립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과연 누가 얼마나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저들은 무엇을 목표로 행하고 있는지 궁금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그저 기다리면 되는 걸까요? 하기는 당장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는 단계는 아니기에 안도가 되기는 합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지요. 변화는 요구되고 있고 현실은 뭔가 자꾸 막혀있는 느낌입니다.
국가적 위기가 닥칩니다. 이제는 건강이나 챙기면서 몸도 맘도 평안히 쉴 때입니다. 그럼에도 노인의 지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온 국민의 여망을 담아 요청을 하였겠지요. 그리고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다시 전쟁터로 기꺼이 나아갑니다. 노구이지만 그래도 옛 정신은 그대로 남아있기에 나라와 국민의 부름에 기꺼이 나섭니다. 황제가 직접 전장으로 뛰어듭니다.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용기와 희망이 솟아납니다. 그만한 인물이기에 감히 다시 나오십사 간청을 하였을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랬고요. 지휘관들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마음으로 전쟁에 임합니다. 결코 원한 것이 아니지만 나라에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1차세계대전의 시발이 되었습니다. 그곳 지역적 특징이라면 어쩌면 우리 한반도보다도 더 복잡하고 괴이합니다. 나라와 민족들이 혼합되어 서로 엉켜있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그 지역은 이러저러한 분쟁으로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20세기 초 예민했던 시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계승자였던 황태자가 그만 사라예보에서 암살당합니다. 그런데 그 범인으로 세르비아인이 지목됩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는 상황인데 민족적인 감정이 부추켜진 것입니다.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일방적으로 선전포고를 합니다. 뜻하지 않은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세르비아에서는 징집령이 내려집니다. 남자들은 군인으로 나가야 합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누구인들 피하겠습니까. 엄마 금방 돌아올게요. 희망사항이지요. 사실 기약없는 이별입니다. 살아돌아올 줄 누가 알겠습니까? 그냥 이것이 죽음의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젊은 패기로 아들은 마을 친구들 따라 떠들며 몰려가지만 떠나보내는 어미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하기야 적이 이 마을까지 침공해 들어온다면 본인도 살아남을지 그것도 모를 일입니다. 적들이 들어온 마을에서는 이미 살육이 발생합니다. 남자를 찾습니다. 부녀자들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언뜻 산으로 도망하는 남자를 발견하고는 총을 겨누어 사살합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 여자든 아이든 인정사정 없이 그 자리에서 사살합니다. 그렇게 아이는 아빠와 엄마가 자기 눈앞에서 사살되는 것을 숨어서 다 봅니다. 그리고 그 어린 나이에 전장으로 뛰어듭니다.
인구도 적고 물자도 적습니다. 적을 대항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도 황제는 옛날을 외교력으로 이 나라 저 나라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마침 프랑스에서 호의적인 답신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필요한 전쟁물자가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지나며 끊깁니다. 이제는 더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지휘관 회의를 합니다. 길은 세 가지, 죽기를 각오하고 그냥 싸우는 것입니다. 뻔합니다. 각오가 아니라 죽음입니다. 둘째는 퇴각하는 것입니다. 그 길도 쉽지 않습니다. 험난한 산맥을 넘어야 합니다. 얼마나 살아남을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협상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항복하는 것이지요. 거의 죽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의 요구가 지나칩니다.
회의하고 투표합니다. 3 : 3 이제 사령관의 결정만 남았습니다. 퇴각하기로 합니다. 항복도 할 수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무모한 죽음을 택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옆에 지켜보던 황제가 사령관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잘했다고 해줍니다. 얼마라도 살아남는 길입니다. 괜스레 목숨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는 데까지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래서 길고도 어려운 퇴각의 길을 갑니다. 좋은 날씨도 아니고 평탄한 길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견딜만한 식량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눈보라 속에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면서 산맥을 넘어야 합니다. 기나긴 행군, 도중에 쓰러지면 그대로 죽음입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지친 몸을 끌며 산을 오릅니다.
지도상에 그리스의 북쪽에 있는 발칸반도 안에는 여러 나라들이 여러 민족들과 서로 엉겨있으면서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독특한 지역분할로 늘 분쟁의 씨를 안고 있습니다. 20세기가 다가도록 그랬습니다. 그리고 서로간의 감정이 아마도 우리 한일관계 정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개인적으로 만나면 매우 우호적입니다. 그곳은 좀 다른 듯합니다. 아무튼 당시 세르비아에서는 인구 거의 1/3이 이 전쟁으로 희생당했답니다. 노구의 황제가 그 긴 퇴각의 길에도 함께 하면서 한 사병의 어머니의 부탁을 지켜주려 애쓰는 장면은 특히 감동입니다. 영화 ‘킹 페타르: 세계대전의 서막’(King Petar I)를 보았습니다. 그리스 세르비아 제작, 2018년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