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곤 李仁坤(1928~2003)】 「1944년 이후 한국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 활동」
1928년 11월 10일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가련면(加蓮面) 지봉리(芝峯里, 현 명사리)에서 태어났다. 1944년 제3지대에 입대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하였다. 광복군 지도부는 광복군 총사령부와 각 지대를 편성하고, 그 외에 모병 기구로서 징모처(徵募處)를 두었다. 창설 초기 징모처는 제1·2·3·5·6분처가 있었다. 그 중 징모 제6분처는 김학규(金學奎)를 주임으로 오광심(吳光心)·신송식(申松植)·서파(徐波) 등 8명이 편성되었고, 안후이성(安徽省) 푸양(阜陽)을 거점으로 두어 활동하였다. 일본군 점령지역과 근접한 푸양은 중국군 제10전구(戰區) 사령부와 중국중앙군관학교(中央軍官學校, 황포군관학교의 후신) 제10분교와 가까웠다. 징모 제6분처는 공작원을 파견해 지속적인 초모 공작 활동을 벌이며, 학도병이나 한인들을 규합하여 광복군으로 편입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적극적인 초모 활동으로 징모 제6분처의 인원이 크게 증가하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는 징모 제6분처를 광복군 지대로 개편하였다. 이에 1945년 3월, 광복군 제3지대로 편제되었고 그 해 6월 지대 성립식을 가졌다. 광복군 제3지대는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와도 합작하여 한미 공동첩보작전 독수리 작전(the Eagle Project)을 위한 첩보훈련을 실시하는 등 초모·선전·첩보·훈련 등의 영역에서 광복 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푸양에서 당시 징모 제6분처였던 광복군 제3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하였다. 1945년 6월에는 국내추진교육진훈련반(國內推進敎育進訓練班)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광복을 맞았고, 이후 카이펑(開封)지구 특파단에 편입되어 중국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였다.
귀국한 뒤 1946년 조선은행에 입사하였고, 이후 한국은행과 외환은행에서 근무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