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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8일 수요일 맑음.
우리가 묵은 호텔은 중국 사람이 경영하는 북경빈관이다. 러시아 글자보다 중국 한문간판을 보니 차라리 반갑다. 창문을 열면 맞은편에 솔로몬 산이 보인다. 아침은 사과로 해결했다. 오늘은 일단 오쉬를 떠나 타직을 향해 가기고 했다. 시간이 허락되면 타직의 후잔까지 가기로 맘을 먹었다. 일단 배낭을 챙겨서 호텔을 나왔다. 솔로몬 산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간다. 오쉬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솔로몬 산이다.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봉우리 4개와 많은 동굴들이 있는 솔로몬산(솔로몬의 아랍식 표기는 술래이만)은 솔로몬이 잠을 잤다고 전해지는 산이다. 솔로몬이 왜 이곳까지와 서 잠을 잤을까?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로 가는 길에 이곳을 거쳐 갔다고 한다. 중앙 아시아의 무슬림들은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에 이어 이곳 솔로몬 산이 주요 순레지이다. 이 산은 비단길의 어느 방향에서 오는 대상들이었던 그들에게 등대와 같은 역할을 오래도록 해 왔다. 산 정상에는 바부르의 큰 아버지이자 사마르칸트의 왕을 지낸 술탄 마흐무트 칸이 세운 작은 여름 궁전이 있었다. 바부르는 이보다 아래에 더 큰 궁전과 돌기둥이 일렬로 늘어선 건축물인 콜로네이드를 지었다. 아마도 1510년이었다. 쌍둥이 모스크라는 듯의 주자모스크인데 요즈음은 바브르 모스크로 알려지고 있다. 바브르는 그의 아들 후마윤(무굴 2대황제), 손자 악바르(3대)의 혈통이다. 우리가 지금 서있는 오슈는 무굴제국의 1대왕 ‘바브르’의 고향이다. 인도의 무굴제국은 몽골이라는 말이 잘못 발음되어 생겨난 말이라고 한다.
오슈는 알타이 산맥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아크부라강이 페르가나 분지로 나오는 출로에 있다. 파미르 고원으로 가는 자동차 도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오슈는 근래 중앙아시아의 상업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으며, 3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은 오랜세월 실크로드의 중심지 역할도 했다. 원래 우즈벡 땅이었기에 지금도 인구의 50%는 우즈벡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인구밀집지역인 페르가나 계곡은 넓은 벌판이다. 키르키즈의 오슈를 비롯해 우즈벡의 안디잔, 카작의 후잔드 등 세나라의 주요 도시가 이 계곡에 있어 땅 모양도 특이하게 나누어져 있다. 대체로 3각형 모양을 이루고 있다. 북서쪽으로 차트칼 산맥과 쿠라마 산맥, 북동쪽으로 페르가나 산맥, 남쪽은 5000m가 넘는 알타이 산맥과 투르키스탄 산맥이 있다. 황금의 계곡, 흙속의 진주, 중앙아시아의 보석이하고 불리는 페르가나는 동, 남, 북 세 방향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로 그 중앙을 사르강이 흐른다. 대부분 계곡은 우즈벡 동부에 있으나 일부는 타직, 키르키즈에 속한다. 강수량이 적고 기온이 높아 면화, 멜론 등이 잘 된다.
내가 본 솔로몬 산은 민둥산에 나무 몇 그루가 보이는 돌산에 불과했다. 솔로몬 산 보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거리와 시장이 더 흥미롭고 생동감이 있었다. 지진 탓이지 높은 빌딩은 없지만 오래된 가로수는 그나마 뜨거운 거리에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복잡한 시장에 들어서니 이제 막 문을 열면서 동시에 열기가 오르고 있다. 위생적으로 좀 지저분해 보이는 고기 집과 풍성해 보이는 과일, 채소들이 펼쳐지고 있어 흡족해 보이지만 사람들의 차림새는 좀 형편이 어려워 보인다. 검게 그을은 얼굴에 깊이 파인 주름이 힘든 삶을 살아온 세월을 보여준다. 복잡한 시장 입구에 권위적인 경찰들이 주민들의 삶과 마음을 통제를 하고 있다. 물건은 많으나 별로 살 것이 없어 당장 필요한 물을 하나 사가지고 거리로 나왔다.
타직을 향해 가기로 했다. 날씨가 뜨거워 배낭 메고 걸어 다니는 것도 슬슬 짜증이 난다. 몇 대 서있는 미니버스 정류장에 국경 마을인 바트칸을 외치니, 좀 더 올라가라고 손짓해 준다. 미국에 살고 있는 막내가 오슈에 가면 찾아보라는 2선교사를 연락해 보려고 해도 막연했다. 마침 길을 건너다 한국 청년을 만났다. 미국에서 온 청년인데 이곳에서 원어민 교사를 하고 있단다. 전화번호를 보여주며 사정을 얘기하니 바쁜 중에도 친절하게 여기저기 교포들과 연락을 해 준다. 2선교사의 전화번호까지는 알아냈는데 연락이 안 된다. 전화 요금을 체불하면 자동으로 끊어진단다. 아쉽지만 그냥 오슈를 떠나기로 했다.
오슈를 흐르는 강물위로 허름한 다리가 놓여있다. 약간 탁한 강물이 제법 양이 많다. 거리의 주민들, 특히 여자들은 모두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있다. 사람들이 알려준 장소에 가니 말탄 동상이 하나 있고 그 밑에 택시들이 10여대가 주차해 있다. 그곳으로 배낭을 메고 가니 택시 기사들이 달려든다. 모두 바트켄으로 가는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들이다. 택시라기보다 중고 승용차를 갖고 영업하는 사람들이다. 흥정을 시작했다. 바트켄 까지는 3000솜(75000원)을 달란다. 이왕 흥정하는 것, 우리의 목적지 타직의 후잔까지 아려주고 얘기를 했다. 150불에서 100불까지 내렸다. 문제는 누구차를 타느냐이다. 제일 목청 크고 거친 운전자에게 끌려가다시피 했다. 먼저, 타직의 이스파나를 가는 아주머니 둘이 타고 있어 바로 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요금을 달라는 것을 타직 후잔드에 도착하여 주기로 하고 가격도 수첩에 기록해서 서로 확인을 했다. 시간은 7시간 정도 걸린단다. 차는 아우디 구형 흰색이다. 바로 차는 출발했다. 내가 앞에 타고 아내는 아주머니와 뒤에 탔다. 아침 9시다. 출발한지 5분도 안되서 차는 멈췄다. 자기 먹을 빵과 2L짜리 콜라를 사 온다. 동상이 있는 로터리다. 오른손에 홀을 들고 있는 왕 사면에 창과 방패를 든 군사 4명이 세워져 있다. 이제는 기사에게 몸을 맡긴다. 기사는 달리면서 연신 콜라를 벌컥벌컥 마셔댄다. 꼭 중독자 같다.
차는 비포장 도로를 달려가는데 먼지가 엄청 난다. 창문을 열면 흙먼지가 들어오고 창문을 닫으면 엄청 뜨겁다. 정말 살인적인 더위다. 보통 차에 찍힌 기온이 47℃~50℃ 이다. 거친 운전자에 비포장 도로, 뜨거운 열기에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래도 차는 목적지를 향해 멈춤 없이 달려간다. 이렇게 7시간을 가야하다니, 자연환경이야 그렇다 치고 정신병자 같은 기사가 맘에 들지 않는다. 건조한 기후에 풀이나 나무도 없이 황량한 지역에 멀리 설산이 보이는 이상한 풍경이 이어진다. 다행히도 초원이 나온다. 옥수수 밭도 나오고 나무들이 쭉쭉 뻗은 평지도 스쳐간다. 포장도로도 만난다. 살 것 같다. 중앙선도 없는 오래된 길이지만 먼지가 안 나서 살 것 같다. 에어컨이 없으니 창문을 열고 달린다.
도로 정면에 국경초소가 나타난다. 우즈벡 비자가 있느냐고 묻는다.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끊어온 우즈벡 비자는 단수라 이곳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다시 우즈벡에 들어가려면 어려움이 있다. 또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상하게 이곳 키르키즈 땅에 우즈벡 땅이 섬처럼 자리 잡고 있다. 우즈벡 당을 통과해 가면 직선 길로 가깝지만 비자가 없으니 빙 돌아가야 한다. 차는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비포장 길을 달린다. 뜨거움과 먼지가 살인적이다. 오른쪽 철조망 안이 우즈벡이라고 알려준다. 철조망 안은 푸른 녹색 숲이다. 흙먼지 시골길을 비틀비틀 가는데 정말 짜증이 날 정도로 태양빛이 뜨겁다. 창문을 열지 못하니 한증막이다. 하늘만 우리를 놀리듯 푸른색이다. 30여분을 달려 포장된 길을 만났다. 창문을 열고 달리니 좀 살 것 같다. 이 길은 새로 만든 것 같다.
바트켄 마을을 오른쪽에 두고 계속 달린다. 이제는 국경을 향해 간다. 오후 2시경에 드디어 국경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기서 차를 갈아탄다. 마침 SUV 차량, 도요타가 길가에 있다. 운전자들 끼리 서로 알고 있나보다. 얘기를 잠시 나눈 뒤 우리는 도요타 차량에 바꿔 탔다. 새로운 손님 아가씨도 한 사람 추가되었다. 차는 마을을 벗어나 국경에 도착했다. 차는 비포장도 잘 달린다. 맘도 편하다. 차량보다도 마약 중독자 같은 운전기사와 헤어졌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이 운전자는 참 조용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갖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다. 적처럼 느껴지지 않고 아군처럼 느껴진다.
국경 출국사무소에 차는 멈추었다. 너무 더워서인지 출국심사 업무를 볼 생각도 안한다. 그때 갑자기 군인들이 바빠졌다. 높은 사람들의 차가 도착한 것이다. 출국심사도 보기 시작한다. 별 탈 없이 출국을 했다. 다시 차에 탑승하여 이번에는 타직 입국장에 들어선다. 타직 국경은 성의껏 즉시 처리한다. 사는 모습은 키르키즈 보다 못 살아 보이고 초라한 복장을 한 군인들이지만 업무는 성실하게 본다. 다시 탑승을 해서 조금 달려가니 큰 광장이 나오고 택시들이 많이 보이고 사람들도 북적대고 건물들도 보인다. 이곳은 타직 국경 마을이다. 여기에서 또 우리는 차를 갈아탄다. 도요다 차량은 키르키즈 차이기 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단다. 키르키즈 돈도 적당한 가격으로 환전해 주었다. 여기에서 함께 타고 온 손님들이 모두 흩어졌다. 우리 둘만 승용차 운전자에게 넘겨졌다. 독일 오펠 승용차 구형에 덩치 큰 운전사다. 택시 영업에 이권을 갖고 있는 조직들이 있나보다. 운전자가 약간의 돈을 상납하고 강제로 돈을 빌려가게 한다. 높은 이자를 지불하는 시스템이 눈에 보인다. 주변에는 놀고 있는 젊은이들이 많다. 바로 출발하지 않고 또 함께 갈 손님을 찾는다. 우리는 느티나무 그늘에서 손님이 채워지기를 기다렸다.
두명의 손님을 채운 후에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후잔을 향해 간다. 오후 3시경에 출발했다. 차는 도로사정도 좋지 않고 낡은 중고차인데 시속 140km로 달린다. 오른쪽에는 기차길과 커다란 호수가 함께 간다. 주변에는 풀이나 나무가 한그루도 없는 황량한 지역인데 보석같이 푸른 호수가 매우 특이해 보인다. 갈라꿈 호수란다. 이 호수는 시르다리야 강물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로 이곳에서 수력발전을 하고 있단다. 타직도 전력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 여름보다 겨울이 더욱 열악하여 힘들게 추운 겨울을 보낸다. 호수가 잔잔하여 유리 같다. 기온은 높고 건조하여 창문을 열고 달리니 더운 바람이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아침도 부실하게 먹고 점심도 걸러서 힘이 없다. 머리까지 지끈지끈 아프다. 달리고 또 달리고 드디어 후잔 입구에 도착해서 두 명의 청년을 내려주고 우리는 두산베 행 터미널에 내렸다. 시내 중심에서 좀 더 지나간다. 드디어 차에서 내리니 살 것 같다. 요금을 낸다. 기사는 좀 더 내란다. 기록된 수첩을 보여주며 100$, 약속한 금액을 주니 말이 없이 사라진다. Pay after 의 맛을 진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이렇게 험한 여정인줄 몰랐다. 또 운전자가 3번이나 바뀌어야 하는지도 알 지 못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후잔드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는 숙소를 찾아야한다. 아직 해가 질려면 좀 시간이 남았다. 배낭을 매고 시내를 향해서 걷는데 어찌나 더운지, 얼굴을 태양열이 때리는 것 같다. 슈퍼가 보이고 수박이 눈에 들어온다. 무조건 들어가 수박을 하나 샀다. 슈퍼 건물 그늘에 주저앉아 수박을 잘라서 아내와 둘이서 수박 속을 파먹었다. 얼마나 달고 맛있던지 눈이 번쩍 떠진다. 갈증이 사라지고 기운이 좀 회복되니 웃음이 나온다. 다 먹지 못한 수박은 주택가 담장 밑에 버려두고 서둘러 길을 간다. 재미있다. 시내 중심가로 가까이 오니 BATAH(VATAN) Hotel이 보인다. 2층짜리 아담한 호텔이다. 숙박비를 물으니 좀 우리 생각보다는 비싼 편이다. 그래도 시원한 에어컨에 넓고 깨끗한 것이 맘에 들어 묵기로 했다. 카드결재는 안 되고 현금결재란다. 우리는 아직 타직 돈이 없다. 호텔 주인이 ATM 기계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우리가 갖고 있는 마스터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인출기는 찾기 어려웠고, 비자카드 인출기는 흔했다. 배낭을 메고 호텔을 나와 인출기를 찾으러 갔다. 일러주는 창구에 찾아갔으나 웬일인지 돈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 뒤에 있던 사람이 다른 곳의 인출기를 알려준다. 은근히 걱정이 된다. 서둘러 길을 건너 알려준 곳에 가니 기계가 있다. 반가웠다. 1500소마니를 인출했다. 약 300불, 40만 원 정도다. 돈을 손에 쥐니 참 맘이 흐뭇했다.
아직 해가 있으니 다른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지도에 표시된 강가의 호텔 가격을 알아보려고 길을 건넜다. 웬 총각이 하나 달라붙는다. 덩치는 큰데 얘기를 해 보니 고등학생이다. 우리를 도와준단다. 한참을 걸어 강가에 있는 커다란 호텔에 도착했다. 6층 정도 되는 긴 호텔이 좀 미완성인 듯 세워져 있다. 호텔에 들어서니 좀 썰렁하다. 실내 마무리 공사가 중단되어 흉물스럽다.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하고, 조명시설이 어설퍼 낮인데도 컴컴하다. 아가씨가 아닌 중년 남자들이 카운터에 앉아있다. 숙박비는 120솜, 좀 저렴한 편인데 일단 방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층계를 걸어 3층에 올라서니 아주머니 한분이 키를 들고 숙소를 보여준다. 전망은 좋은데 시설이 엉망이다. 시멘트 벽돌이 드러난 욕실, 합판으로 막아놓은 침실에 백열전구가 한 개 천장에서 흔들린다. 밤에 아내와 들이서 이 큰 건물에 있으려니 겁이 난다. 두말도 하지 않고 성큼 걸어 내려왔다.
문제는 이 거머리 같이 따라다니는 고등학생이다. 능글맞게 좀처럼 갈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음식이라도 함께 먹고 보내기로 했다. 식당을 물어봤다. 햄버거 가게로 우리를 안내해 준다. 상가건물 지하다. 총각은 먹지 않고 안내만 해준다. 인도 스타일의 식당이다. 레모네이드 한 병과 햄버거를 주문했다. 고맙게도 총각은 이제 간단다. 쉽게 작별하고 처음 먹어보는 햄버거를 먹는다. 맛있다. 특히 레모네이드 음료수는 시원하고 향미가 좋다.
일단 숙소를 처음 찾아간 호텔로 정했다. 180소마니(약 45000원)다. 뜨거운 물도 잘나오고 천장이 높고 고급스럽다. 호텔 앞 큰 길 가에 수박과 메론을 엄청 많이 갖다 놓고 판ㄹ고 있다. 메론 1개에 1250원 정도를 주고 사왔다. 내 머리 통 만 한 메론이다. 생긴 것은 둥근 호박 같은데 맛은 정말 꿀맛이다. 갈증이 싹 가시고 기분이 무척 좋은 정말 환상적인 맛이다. 이곳이 기후적으로 수박과 메론이 잘 된다는 말이 정말 실감난다. 값이 싸고 맛있다. 앞으로 이 메론과 많이 친해질 것 같다. 동남아시아의 파파야, 열대지방의 망고, 이곳의 메론이 늘 그리울 것 같다.
기운을 차리고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하고 샤워를 하니 살 것 같다. 먼지와 바람과 더위에 지든 땀을 모두 씻어내니 기분이 상쾌하다. 저녁이 된다. 거리가 조용하다. 전기 사정은 비쉬켁 보다, 키르키즈 보다 좋은 것 같다. 저녁을 해결하러 나갔다. 더위가 아직 식지않은 거리에 찬물을 뿌린다. 먹을 만 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우리 호텔 바로 옆에 새로 생긴 페스트 푸드점으로 갔다. 들어가니 아무도 없어 썰렁하다. 통닭 튀김을 팔고 있어 반가웠다. 닭다리 4개를 주문하고 앉아서 기다렸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3명이 들어온다. 아주 살결이 깨끗하고 기름기가 흐르는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모습이 부잣집 아이들 같다. 얼굴도 참 예쁘다. 해 맑게 웃으니 더욱 얼굴이 빛난다. 중앙아시아 나라에서 타직 아이들이 제일 잘생기고 예쁜 것 같다.
러시아, 유럽, 인도, 아시아 종족이 모두 혼합되어 다양한 얼굴 속에서 체형이 아담하고 얼굴이 작고 날씬한 것이 타직 여자들인 것 같다. 닭튀김을 들고서 숙소에 와 정말 맛있게 저녁식사를 했다. 3번째 나라 타직에 왔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멀고 험난했던 길을 무사히 달려와 이렇게 편안하게 쉴 수 있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누우니 종일 달려온 아찔한 순간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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