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린지만
나는 영매의 물질화 모임에서
전에 언급했던 위엄 있는
영과 늘 함께했습니다.
이제 그분의 이름을
알아냈는데,
동양 출신의 인도자
'아린지만' 선생입니다.
이제는 전보다 휠씬
더 뚜렷이 보이기 때문에
그분의 외모에 대해
설명해볼까 합니다
키가 크고, 근엄한 얼굴에
황색 단을 댄 긴 옷을 입고,
허리엔 황색 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얼굴빛은 동양인답게
약간 거무스름하구요.
동양인이라 완벽한
그리스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목구비가 아폴로 조각상처럼
반듯하고 아름답습니다.
검고 큰 눈동자는
부드럽고 상냥해 보이면서도
강렬한 열정이
내면 깊숙이 엿보입니다.
지상에 살아 있을 적에
격정적인 애정을 두루
겪어봤음직한 얼굴이지요.
지금이야 그러한 열정이
세속의 찌든 때로부터 많이
정화되었지만
나처럼 오욕칠정을 극복 못해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능력이
훈장처럼 남았달까요
짧고 부드러운 수염은
뺨과 턱을 뒤덮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검은 머리가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습니다.
장신에 강인한 풍모이지만
동양인 특유의 부드럽고
유순한 분위기가 배어 있고요.
사람이 죽은 뒤에도
지상에 있을 때의 인종적,
민족적 특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아린지만 선생은 육체를 떠난 지
몇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양인과는 다른
동양인의 특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차원 영들의 형언할 수 없이
눈부시고 밝은 형체와
독특하고 신비로운 영묘함,
그러면서도
뚜렷이 구분되는 실체성은
직접 본 사람이 아니면
짐작할 수가 없답니다.
아린지만 선생은
지상에 있을 때
신비학에 심취해 있었는데
영계로 온 뒤엔
그 지식을 더욱 향상시켜서,
나에겐 그분의 능력이
거의 무한대처럼 보입니다.
그분도 나처럼
정열적인 기질을 가졌지만
영계에 있는 동안
열정을 자제하고
극복하는 법을 익혀서
지금은 능력의 정점에 있으며,
나처럼 고생하는 영혼들을
구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인간의 나약한 본능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의 도움은 우리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지닙니다.
만일 한 번도
타락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우리는 오히려
외면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분은
온화함이나 동정심 외에도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의지의 힘
또한 갖고 있습니다.
나는 난폭한 영들이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려 들 때
아린지만 선생한테 저지당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마법 같은 힘으로
꼼짝 못하게 만들더군요.
정말 강력한 의지의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마비시켜놓고
차근차근 따지면서,
자신들의 행동이 차후에
몰고 올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런 뒤 마비를 풀고
자유롭게 놓아 주면
그 행동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못하지요.
얼마나 끔찍한 결과가
이어지는지를
미리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도 고집이 센 편이라 어지간한
사람한테는 굽히는 법이 없는데,
이분 앞에만 서면
어린아이처럼 되어버립니다.
그 강력한 힘 앞에서 여러 번
고개를 숙여야만 했습니다
영계에서는 모든 게 자유롭습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자신의 성향과
욕망을 따를 수 있고
조언을 거부할 수도 있지요.
영계에서 지나친 방종이나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 등은
자신이 속한 영역의
법과 질서에 따라 규제됩니다.
예를 들어 영계의
가장 낮은 영역에서는
강자의 논리가 지배합니다.
누구든 내키는 대로 행할 수 있고,
상대방이 도저히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해를 입히거나
학대를 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서 똑같은 학대를
받아도 할 말이 없지요.
이 영역에선 힘센 사람이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에서 가장 학대 받는
노예라 할지라도
이곳의 거주자들보다는
덜 불행할 것입니다.
이곳은 법도 원칙도 없고,
하느님의 법을
무시하는 영들만 있을 뿐입니다.
이들에겐 자신이 곧 법이라서
서로에게 거침없는
학대와 과오를 저지릅니다.
어떤 영이 아무리 힘세고
포악하고 가학적이라 해도
그 영보다 더 강하고 포악한 영이
어딘가엔 반드시 존재하는 법인데,
그렇게 사슬을 이루어가다 보면
결국 지옥의 마왕이라
할 만한 존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국 언젠가는
넘쳐나는 악이 스스로를
치유하려 애쓰게 되지요.
현재와는 뭔가 다른 상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이라든가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가 첫 단계,
즉 더 나은 삶을 향한 소망을 품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상태에 이르면
희망의 형제단 같은 사람들이
그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과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영혼의 등급이 위로 올라가면
각 영역마다
법과 질서의 정도가 높아져서
영들은 너나없이
법질서를 존중합니다.
가장 높은 도덕률을
완벽하게 준수하는 사람들은
가장 높은 영역의 영들뿐입니다.
그 준수에는
다양한 수준이 있는데,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사람은
자신의 권리도 존중받고
타인을 짓밟는 사람은 더 강한
누군가에게 똑 같이 짓밟히지요.
영계에서는 일을 하든,
빈둥거리든,
선한 일을 해서 은총을 받든,
악한 일을 저질러 저주를 받든
모두가 본인의 자유입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냐에 따라
주변 환경이 결정되지요.
자신에게 맞는 영역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역이며,
좀더 높은 영역에 거주하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영은 악한 영을
굳이 방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의 상태가 다르므로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그들 사이에 생기기 때문입니다.
높은 영역의 영은
언제든지 아래로 내려와
다른 영을 도울 수 있지만,
낮은 영들에게 높은 영역은
통과할 수 없는
장벽으로 가로막혀 있지요.
물질계가 존재하는
지구 같은 행성에서만
선과 악이 거의 대등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거의 대등한' 이란
표현을 쓴 이유는
인간이 비천한 열정에 사로잡혀서
선한 세력의 도움에
마음의 빗장을 걸지 않는 한,
지상에서조차 선이 더 강한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던 태곳적엔
영계와 물질계가 지금보다
서로 휠씬 더 가까웠지만,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뗏목을 타고 짙은 안갯속을
헤매는 표류자들처럼
영계의 실체를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영계의
친절한 수로水路 안내인들이
지상의 삶에 지친 이들을
밝은 희망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