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국이 쓰는
청죽 칼럼
◈ 이사 떡 : 엊그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봤더니 위층에 새로 이사를 오셨다는 분이 따끈따끈한 떡을 놓고 가셨다. 내가 좋아하는 시루떡이었는데 그분의 마음이 너무 귀하고 소중해서 한동안 물끄러미 떡을 바라보았다. 떡이 귀하다는 것보다 새로 이사 오신 분의 그 따뜻한 정과 마음이 너무 감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옆집으로 이사를 와도 거의 떡을 돌리지 않는다. 나만 하더라도 지난 1993년 가을에 입주한 이후 아마 처음 받아본 떡이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이유가 없지 않지만 이사 떡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각박하고 삭막해졌다는 뜻이 아닐까. 물론 다 그렇진 않겠지만, 이웃도 믿지 못하는 데다 젊은 세대일수록 인터폰으로 확인을 한 후엔 아예 필요 없다는 집도 있고 그냥 놓고 가라는 세대는 물론 어떤 집은 아이가 막 잠들었는데 깬다며 화를 내기도 한단다. 문을 열어주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러다 보니 아예 떡을 돌리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불신 시대! 이런 시대를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까움을 넘어 때론 아프고 슬프기까지 하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이렇게 각박해졌을까. 이웃을 믿지 못하고 사람을 믿지 못한다. 오늘도 예배당은 그렇게 많은데 떡 하나 받아줄 가슴조차 잃어버리게 만드는 종교라면 차라리 그것을 내다 버리고 싶어진다.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질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 생각하는 시인의 가슴으로 떡을 돌리고 받을 줄 아는 그런 삶이고만 싶다.
◈ 만나면 반가운 사람 : 지난주 안식일 날 지하철에서 막 내렸을 때 뜻밖의 지인을 그곳에서 만났다. 어찌나 반가운지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사람을 만났을 때 반갑다는 것처럼 큰 행복이 또 있을까. 나는 과연 누구에게 이렇게 반가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또 누군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세상엔 수많은 만남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의 일생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기에 만남의 종류 또한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만남이 반가운 만남일까. 나는 단연코 손익의 잣대 위에 놓인 만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남이라고 반갑지 말란 법이야 없겠지만, 조건으로 얽힌 만남은 생명이 짧다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도 반가운 그런 만남을 가장 좋아한다. 그 혹은 그녀가 그냥 그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살고 있다는 것처럼 인생에 든든한 존재감이 있을까. 자주 연락을 못 하고 살아도 열심히 잘살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감사가 절로 나오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진다. 가끔은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내가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다. 욕심 같지만 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향기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또 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는 사람을 조건으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또한 당연히 없다. 다만 바라고 원하는 만남은 생각만으로도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만남이며 무장해제가 되는 향기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오늘도 지상에서 천국을 산자가 아닐까.
첫댓글 공감백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