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의원 혜정대종사 영결식 엄수
- “환도중생하시어 큰 복밭 일궈주소서”
지난 2월22일 원적에 든 조계종 원로의원 원파 혜정(圓坡 慧淨)대종사(법주사 회주)의 영결식이 오늘(2월26일) 오전 10시 제5교구본사 법주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됐다.
명종 5타를 시작으로 엄수된 이날 영결식은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 창혼, 혜정대종사의 행장소개, 추모입정, 영결사, 조가, 법어, 추도사, 조사, 헌화 및 헌향, 인사말씀, 사홍서원, 폐식, 발인의 순으로 진행됐다.
조계종 법전 종정예하는 원로의원 진제스님이 대독한 법어를 통해 “찾아도 볼 수 없고 떠나도 항상 우리 곁에 있는 전신탈거(全身脫去)한 스님의 면목이 어느 곳에 있냐”며 “산하대지가 이 마음을 벗어나지 않았으니 두두물물이 스님의 법신이요, 일월성진(日月星辰)이 스님의 본래 면목”이라고 애도했다.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은 원로의원 밀운스님이 대독한 영결사에서 “법이 상주하는 법주사에서 오직 법(法)에 귀의해 사시다가(住) 법의 배를 타고 법의 세계에 드셨으니 그곳의 소식은 어떠하시냐”며 “사바에 머무는 우리 불자들과 수행자들은 일체 중생의 번뇌와 망상을 여의고 열심히 정진해 반드시 청정한 법의 세계를 성취하리니, 스님 또한 열반락에 드시에 오래도록 후학들에게 감로와 같은 자비의 가르침과 법향을 전해주시길 간곡히 기원한다”고 추도했다.
이어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추도사에서 “혜정대종사께서는 이(理)와 사(事) 모두에 걸림이 없으셨고 선(禪)과 교(敎), 율(律)을 두루 겸수하셨다”면서 “생사기별이 모두 공한 것이지만 눈밝은 스승을 더 오래 모시지 못한 아쉬움이 마음속에 사무치는 만큼 부디 속히 환도중생하시어 사람과 하늘의 큰 복밭을 일구어 주소서”라며 대종사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밝혔다.
이어 불교계를 비롯해 사회각계 인사들도 조사를 통해 혜정대종사의 생전 가르침을 되새겼다. 김의정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은 손안식 중앙신도회 상임부회장이 대독한 조사를 통해 “혜정대종사께서는 오탁악세에서 미망을 벗어던지고 홀연히 깨달아 가릠을 곧게 세우셨다”면서 “우리 불자들은 혜정대종사의 가르침과 유지를 받들고 봉대하며 문화수호와 보존을 위해 더욱 열심히 정진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혜정대종사 원로회의장 장의위원회 집행위원장 노현스님(법주사 주지)은 인사말씀에서 “모든 분들게 자애스러운 자비보살로 가르침을 주신 은혜를 잊지 않으시고 큰스님 가시는 길에 사부대중이 한마음으로 모이신 것 같다”며 “큰스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영결식에 이어 혜정대종사의 법구는 법주사 연화대로 옮겨져 다비의식을 거행했다. “큰스님 불들어갑니다”라며 거화하자 1000여 명의 사부대중은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며 혜정대종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혜정대종사의 49재는 2월28일 초재를 시작으로 괴산 각연사에서 봉행된다.
이날 영결식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밀운스님을 비롯해 원로의원 초우스님, 진제스님, 명선스님, 월서스님, 정무스님, 현해스님, 법흥스님, 혜정스님(문수사), 종하스님, 월탄스님, 명예원로의원 활안스님,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 등 종단 원로 스님들이 대거 동참했다.
또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중앙종회 의장 보선스님, 교육원장 현응스님, 포교원장 혜총스님 등 중앙종무기관 소임자 스님들과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 마곡사 주지 원혜스님, 수덕사 주지 옹산스님,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해인사 주지 선각스님, 고운사 주지 호성스님, 금산사 주지 원행스님, 백양사 주지 시몽스님, 화엄사 주지 종삼스님, 대흥사 주지 범각스님, 선운사 주지 법만스님, 군종특별교구장 자광스님 등 사부대중 1000여 명이 참석해 혜정대종사의 원적을 애도했다.
법주사=박인탁 기자
사진 신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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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대종사 분향소 조문행렬 줄이어
- 2월26일 법주사서 영결식 엄수
지난 22일 원적에 든 조계종 원로의원 원파 혜정(圓坡 慧淨)대종사(법주사 회주)의 분향소가 마련된 제5교구본사 법주사 명원료에는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영결식 하루 전날인 오늘(2월25일) 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의장 지혜스님을 비롯해 원로의원 성수스님, 진제스님, 활안스님, 월파스님, 법흥스님, 원명스님, 도문스님, 명선스님 등 종단 원로의원 스님들이 잇따라 조문했다. 원로의원 성수스님은 조문 후 혜정스님 상좌들에게 “너무 슬퍼하지 말고 몸들 잘 추스르라”며 “스님은 잘 지내다 다시 오실 것”이라고 위로했다.
또한 통도사 주지 정우스님, 관음사 주지 원종스님, 동국대 이사장 정련스님 등 종단 중진 스님들도 잇따라 법주사를 찾아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에 앞서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지난 23일 조문했으며 26일 열리는 영결식에도 참석해 추도사를 할 계획이다.
한편 혜정대종사의 영결식은 오는 26일 오전 10시 법주사 경내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된다. 이어 혜정대종사의 법구는 법주사 연화대로 옮겨 다비하게 된다.
혜정대종사의 49재는 오는 28일 초재를 시작으로 4월11일까지 괴산 각연사에서 봉행될 예정이다.
원로의원 성수스님이 만장에 글을 남기고 있다.
법주사=박인탁 기자
사진 신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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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정대종사 열반송
사대육식본래공(四大六識本來空)
육근육진희롱극(六根六塵戱弄劇)
천희만락일춘몽(千喜萬樂一春夢)
대휴관처견성구(大休觀處見性具)
지수화풍 사대와 여섯 감각기관의 모든 인식이 본래 공하니
그 인식들은 여섯 감각기관과 그 대상사이에서 일어나는 희롱극에 불과하다.
밖의 경계에 의해서 기뻐하고 즐기는 것들에 빠지지 말라. 모두가 한 토막의 봄꿈일 뿐이다.
이 육신의 헐떡거림을 지우고 유정무정의 모든 생멸을 평등하게 관해 보라. 내 본성에 갖추어져 있는 부처와 지옥을 보살도의 발원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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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의원 혜정대종사 원적
“마음 찾아 깨치면 누구나 부처님입니다”
조계종 원로의원 혜정대종사가 지난 22일 입적했다. 1953년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60년 간 법주사에 주석하며 올곧은 불제자로서의 길을 걸었다. 불교정화운동의 격변기에는 금오스님을 도와 청정가풍을 세우는 데 일조했고, 제14대 조계종 총무원장 등 주요 소임을 맡으며 종단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물론 스님의 본분사(本分事)는 수행이었다. “수행자로 출가해 깨닫지 못한다면 사회낙오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은사 스님의 서슬 퍼런 경책을 되새기며 화두를 들었다.
지난 2005년 여름 인터뷰를 위해 법주사를 찾은 적이 있다. “번잡한 세상사에 얽매이다 보면 발심도 희미해지기 마련”이라며 방에 전화 한 대 두지 않았던 스님이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말투, 온화한 미소로 기억되는 스님이다. 불교와 깨달음에 관한 당신의 일상 속 법문엔 지혜와 활기가 넘쳤다. 오랜 참구와 정진의 결실이었다.
수행 ‘본분사’로 60년 쉼없는 정진
“삼라만상 모두가 삶의 주인” 역설
“부처님이 오시기 전에도 물은 흘렀고 나무는 자랐습니다. 만물이 서로 어울려 활발하게 순환하는 이 세계가 불법이자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꾸만 실상을 거부하거나 혹은 집착하면서 스스로 병을 키웁니다.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순리를 따르면 그뿐인데, 고프지 않은 데도 배를 채우려 허덕이고, 안 오는 잠을 재촉하느라 탈이 납니다.” 혜정스님은 부처님의 탄생을 ‘평지풍파’라고 표현했다. “왜 산이 솟아오르고 물이 흐르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중생의 고통이 워낙 크니 부처님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습니다. 자비의 화신이 투여한 약은 만병의 화근인 아상(我相)을 부수었죠. ‘나’라고 하는 좁은 경계를 지우면 온 천지가 내 것입니다.”
스님은 불교정화운동의 주역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혜정스님은 금오스님을 처음 친견하고 중국 선종의 초조 보리달마를 떠올렸다. 경허 만공으로 내려오는 덕숭산 법맥을 이은 스님답게 범상치 않은 풍모가 여실히 느껴졌다. “선사답게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분이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늘 아버지처럼 자상했지만 분이었지만, 사소하더라도 잘못을 저지르면 그 자리에서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편안하지만 무서운 선지식이었죠.” 은사 스님이 강조한 것은 오로지 참선이었다. 스승은 “마음 단단히 먹고 출가했는데 깨닫지 못한다면 ‘사회 도피자’라는 오명만 뒤집어쓸 뿐”이라며 오롯한 정진을 누차 당부했다. 출가 사문의 목적은 선(禪)이라는 은사 스님의 말을 되새기며 60년을 살았다. 연기(緣起)를 깨우치고 견성을 일궈냈다.
“연기란 쉽게 말해 여러 인연과 인연이 얽혀 사는 것입니다. 부모님 없이 태어날 수 없고 하다못해 대야가 없으면 세수도 못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타인과 환경에 맞닥뜨리며 그때그때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생(生)이라는 숙명입니다. 나와 관계없는 남이라고 백안시하거나 등한시하던 존재가 사실은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기 마련입니다.” 결과가 행복이든 불행이든 삶의 또 다른 길을 여는 것이 인연이다. 인연은 인간사뿐만 아니라 우주법계에도 뻗쳐있다. “달빛만 비추는 길을 걸어본 적 있습니까. 당신은 그 순간 우주와 소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님은 “잘 살려면 ‘그릇’이 커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을 열고 남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더 큰 나’로 성장할 수 없다는 충고였다. 마음공부를 향한 혜정스님의 열정엔 당시 종단의 역사 사회적 배경도 깔려 있다. 스님이 갓 출가한 1950년대 후반은 불교정화운동으로 어수선했다. 격변기였고 종단의 수행 및 교육환경은 아직 기틀이 잡하지 않은 “교육제도라는 뼈대가 미흡했기 때문에 믿을 것은 나 자신의 의지와 은사스님의 지도밖엔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대의 혼란함이 공부의 윤활유가 된 것 같아요.”
스님은 정진 외엔 아무것도 모르는 선사였다. “탐내는 마음(貪), 성내는 마음(嗔), 어리석은 마음(癡) 삼독(三毒)을 지니고 있어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즉각 반응하는 게 우리 중생입니다. 각자가 불만표출 방법이 다양한데 결과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죄가 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늘 인욕(忍辱)을 강조했습니다. 동시에 자기탐구를 통해 업장을 소멸시켜 본래 청정하고 자비하고 무심한 마음을 찾으라 했습니다.” 당시 청결하고 단출한 스님의 방엔 전화 한 대가 없었다. “‘한 생각’ 잘못 쓰면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쑤입니다. 번잡한 세상사에 얽매이다 보면 발심도 희미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 문명을 멀리하는 이유다. 도반의 입적 등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바깥출입도 삼가는 편이었다.
그렇게 세속과 단절한 채 오직 본성만을 살폈다. “지금 머문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하게 성찰하는 것. 그것이 수행입니다. 불교는 마음을 찾아 깨치면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연기는 우주만물 개개가 주인이라는 가르침입니다. 바꾸어 말해 우주 전체가 주인이라면 결국 나 자신도 우주의 중심인 셈입니다.”
혜정스님은 “수행의 기본은 마음을 잠재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흐려진 판단력에서 나온 행동은 잘못되기 마련이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법입니다. 계(戒)를 잘 지켜야 하는 이유도 청정한 마음을 갖기 위한 텃밭을 다지는 일이에요. 욕심을 줄이고 삶의 형식을 최대한 단순하게 하십시오.” 마음이 불교요 한 생각이 수행의 근본이라는 가르침이다. “수행법은 무엇을 골라도 무방합니다. 참선이든 기도든 염불이든 간경이든 절이든 자기 성향과 근기에 맞는 수행법으로 마음을 다스리세요. 여러분에게 주어진 인생이란 무심하게 흘려보내어도 되는 우연의 시간이 아닙니다. 속절없이 계속되는 생사의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반드시 ‘생사일대사’를 끊겠다는 한 생각,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정진하십시오.” 인간의 본질적 화두,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탐문하던 스님이 우리 곁에서 천화(遷化)했다.
혜정스님은 불기 2550(2006)년 병술년 신년을 맞아 불자들의 정진을 당부하는 휘호를 불교신문에 보내왔다. ‘고목에 꽃이 핀다(枯木生花)〈왼쪽〉.’와 ‘바다 밑에서 연기가 피어난다(海底發煙).’ 스님의 선풍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귀다. ‘고목’은 움직임이 없는 것, ‘화’는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양 극단(極端)을 뜻한다. 도저히 꽃이 필 수 없는 고목에서 꽃이 핀다는 의미는 “양 극단을 초탈한 중도(中道)가 제법의 실상이라는 가르침이다. ‘해저발연’도 마찬가지다. 바다 밑에서 연기가 피어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바다 밑’과 ‘연기(煙氣)’라는 분별을 떠나면 거기가 곧 깨달음임을 보여주는 격외(格外)의 어구다.
혜정대종사는…
193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혜정(慧淨)스님은 1953년 금오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경남대 종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부의장 등을 거쳐 조계종 총무원장, 불교신문 사장을 역임했다. 2002년부터 법주사 회주를 맡았으며 2003년 원로회의 의원으로 추대됐다.
[불교신문 2698호/ 2월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