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항상 기쁨을 공급받는 상태를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다 비유한 것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언제든지 생수를 공급받는다. 여기서 '시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팔라그'는 팔레스틴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간헐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로(水路)를 말한다.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 '시절을 좇아'란 문자적으로 '그의 때에'이며 이는시냇가에 심은 나무 - 이는 의인의 복된 상태에 대한 비유이다. 즉, 의인 곧 인생의 추수기를 의미한다. 나무가 추수기에 열매를 맺는 것은 자연스런 결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죄악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끊임없이 기쁨을 누리는 의인은 인생의 추수기에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열매는 추수기에 맺히는 열매이므로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는 악인들의 열매와는 달리 완전히 익은 열매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의인의 행복은 인간의 잔재주로 인해 얻는 그런 종류의 행복이 아니라 끊임없는 경건의 노력을 통해 얻는 완전 무결한 행복인 것이다.
의인의 행복과는 대조적으로 악인의 실패 및 불행을 기록한 부분이다.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 곡식을 까 부를 때 낱알은 지면에 떨어지나, 겨는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따라서 여기서 '겨'란 악인의 사라져 버리고 말 허무성을 비유한 말이다.
이러한 개념은 3절의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의 견고성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 밖에 겨는 성경에서 무가치한 것을 상징하는 말로서 많이 언급되어 있다
[사 48:21]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막으로 통과하게 하시던 때에 그들로 목마르지 않게 하시되 그들을 위하여 바위에서 물이 흘러나게 하시며 바위를 쪼개사 물로 솟아나게 하셨느니라...."
본절에는 과거 광야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물을 먹이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저자가 그 사건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보증물을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비록 본서 저자는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이미 발생한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그가 서 있는 시점은 바벨론 포로 사건이 일어나기 100여 년 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대의 사람인 독자들에게 바벨론 포로 기간 이후 귀환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준하는 실제적인 보증물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이 제시하는 사건은 광야에서 일어났던 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의 모든 사건을 말라해서 대표적으로 제시된 사건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와 같이 본절은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근거로 하여 20절에 나타난 앞으로 있을 구원 사역을 튼튼하게 제시하고자 의도된 것이다. 반복하지만 바벨론에서의 귀환은 여호와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본서가 암시하는 하나님의 궁극적 구원 사역이란 옛날 출애굽으로 대표되는 구원 사역보다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놀랍고 새로운 구원 사역인 것이다.
이 새로운 구원 사역은 천지를 처음 창조한 하나님의 사역에 필적한 것이며, 그 창조의 의미를 온전히 드러내 주며, 그 목적을 완성시켜 주는 새 창조의 사역임을 이미 40장 이후부터 저자가 계속 시사해 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49-53장에 서술되고 있는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내용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