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자비의 땅, 영광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성지가 다 이곳에...사랑과 자비의 땅
영성의 빛이 상처를 치유하리니…
이 무엇으로도 세상 일 감당할 수 없을 때 영성(靈性)은 온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깊이 성찰하고 배려와 용서로 상처를 보듬는 마음이다.
전남 영광(靈光)은 영성의 땅. 기독교(개신교)·불교·천주교·원불교 성지(聖地)가 다 이곳에 있다. 영성[靈]의 빛[光]을 따라간다.
감성(感性)이 뛰어난 이는 시인·예술가, 지성(知性)이 남다른 이는 지식인·교수, 이성(理性)이 탁월하면 철학자일 터. 이 무엇으로도 세상 일 감당할 수 없을 때 영성(靈性)은 온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깊이 성찰하고 배려와 용서로 상처를 보듬는 마음이다. 전남 영광(靈光)은 영성의 땅. 기독교(개신교)·불교·천주교·원불교 성지(聖地)가 다 이곳에 있다. 영성[靈]의 빛[光]을 따라간다.
1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인도(현 파키스탄) 간다라 스님 마라난타는 이곳에 도착해 한반도 남쪽에 불법을 전파했다. 오른쪽 보이는 다리는 영광대교. 저 바닷길로 마라난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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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바닷가 법성포엔 '영광 굴비' 파는 직판장·식당투성이다. 영혼의 양식도 이곳에서 비롯했다. 마을 이름 '법성(法聖)'은 이 사람을 말한다. 천육백 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다. 백제 침류왕 원년인 384년 인도(현 파키스탄) 간다라를 떠난 스님 마라난타는 중국 동진을 거쳐 여기에 도착했다. 대륙과 뱃길이 이어진 국제 항구였다. 임금의 환대를 받았다. "왕이 그(마라난타)를 맞이하여 궁궐 안으로 모셔 예우하고 공경하니, 불교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삼국사기') 고구려는 이보다 12년 앞선 372년(소수림왕 2년) 받아들인다. 국제성으로는 백제가 돋보인다. 백제 불교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꽃을 피웠다. 150여 년 뒤 성왕 재위 때인 538년이었다. 법성포는 인도·중국·일본을 잇는 영성의 항구였다. 숱한 고난 겪은 백성들이 자비의 말씀에 위로를 받았다.
마라난타가 창건했다는 사찰 불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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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발 디딘 곳에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를 조성했다. 간다라 미술 양식으로 건물을 짓고 불상을 세웠다. 108계단 위에 세운 건물 부용루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 지난해 개통한 영광대교가 가깝게 보인다. 백수읍과 홍농읍을 잇는 저 다리 아래 바닷길로 법성이 왔다. 경내 간다라유물관에는 마라난타가 온 길, 불상·부조 등 간다라 유물을 전시 중이다.
침류왕은 "이듬해 봄 2월에 한산(漢山)에 절을 세우고 열 사람이 승려가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삼국사기') 한다. 영광 남동쪽에 불갑사(佛甲寺)가 있다. 1호 사찰이기에 '불갑'이다. 여러 차례 중창했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절집 풍경이 위안을 준다.
2 천주교 순교자 기념성당
천주교 순교자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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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성의 빛은 230여 년 전 이곳을 찾았다. 영광 지역은 신해박해(1791년) 이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천주교가 전파됐다. 역시 바닷길의 위력이다. 이번엔 환대받지 못했다. 신자들은 박해를 피하지 못했다. 신유박해(1801년) 때 교인 이화백과 복산리 오씨가 순교했다. 병인박해(1866년) 때는 김치명·유문보가 처형됐다.
도동리 석장승 남쪽인 현 순교자기념성당(영광성당) 정문 앞이 순교 터로 추정된다. 옛날 우시장이 있었다 한다. 현장을 지켜봤을 석장승은 지금도 그대로다. 높이 120㎝ 길쭉한 돌덩이 두 개를 세우고 익살스럽게 눈, 코, 입을 새겼다. 성당 앞에는 순교자를 기리는 기념문을 세워 아픔을 보듬고 있다.
3 기독교 순교지 염산교회·야월교회
교인 77명이 순교한 옛 염산교회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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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바닷가 도로 백수해안도로 따라 남쪽으로 간다. 염산교회는 6·25전쟁 때 김방호 목사를 비롯해 교인 77명이 희생됐다. 공산군이 무참히 살해했다. 보복은 없었다. 전쟁 후 김 목사의 유일한 생존 아들 김익 전도사는 공산군 편에 섰던 주민을 용서하고 복음을 전했다. 참회의 눈물이 흘렀다. 지금 교회 마당에는 순교자 합장묘, 순교 기념비가 있다. 지난해 9월 옛 예배당을 복원했다.
인근 야월교회에선 전 교인 65명이 죽임을 당했다. 교인들이 국군 환영 행사를 준비했다는 이유였다. 지금은 기독교인순교기념관이 서있다. '순교는 새로운 시작(Martydom is starting)'이라고 적은 글이 눈에 띈다. 1900년대 성경책 등을 전시했다.
4 원불교 발상지 영산성지
원불교창립관에 있는 소태산 대종사와 아홉 제자 석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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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땅에서 다시 깨달음이 태어난다.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고행 끝에 깨달음을 이뤘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선언했다. 아홉 제자와 함께 원불교를 창립했다. 백수읍 길용리 일대를 '영산성지'라고 부른다. 깨달음을 얻은 노루목 대각터, 최초 설법지 이씨제각, 첫 원불교 교당 영산원 등이 있다. 대종사가 태어난 초가집 뒤로 솟은 바위산은 문외한이 보아도 영기(靈氣) 가득하다. 원불교창립관에는 대종사와 제자들 모습을 재현한 석고상 등을 전시했다.
굴비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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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찢기고 갈라져 괴로운가. 영광으로 간다.
용서와 화해, 위로와 평안, 사랑과 자비의 정신이 그곳에 있다. 영성의 빛이 상처를 치유하리니…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 관리실 (061)350-5260, 불갑사 (061)352-8097, 천주교 순교자기념성당 (061)351-2276, 염산교회 (061)352-9005, 야월교회 기독교인순교기념관 (061)352-9147, 원불교 영산성지 사무소 (061)352-6344
법성리 일대에 굴비정식<사진>을 내는 식당이 즐비하다.
법성포 굴비정식 (061)356-7575. 구이, 찜, 보리굴비, 조기맑은국, 간장게장 등을 한 상에 차린다. 2인(7만원)·3인(9만원)·4인상(10만원).
영광=이한수 기자, 편집=뉴스콘텐츠팀 ,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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