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등대(墨湖燈臺)
여행일 : ‘14. 10. 3(금) 소재지 : 강원도 동해시 해맞이길 289(묵호진동)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묵호등대는 동해바다와 묵호항구(墨湖燈臺)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67m의 동문산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1963년에 건립되었으니 100년 넘은 등대들이 즐비한 가운데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방문은 다른 어떤 등대보다도 많은 편이다. 이름도 아예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이다. 등대가 있는 곳을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고, 주변으로 벽화마을과 묵호항 어시장 등 명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 찾아오는 길 : 동해(삼척-속초)고속도로 망상 I.C에서 내려와 T.G 앞에서 7번 국도의 강릉방면으로 좌회전한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노봉삼거리(동해시 망상동)에서는 우회전하여 해변도로인 일출로(日出路)를 따른다. 물론 동해시 방향이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오면 ’까막바위 회마을‘이라는 3층 건물이 나타난다. 출렁다리를 거쳐 묵호등대로 올라가는 탐방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근처에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正東方)이라는 ’까막바위‘가 있으니 참조한다. ▼ 들머리 근처, 그러니까 묵호항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까막바위가 있다. 까마귀가 바위에 새끼를 쳤다 하여 ‘까막바위’라 부르는데, 서울의 남대문에서 정동(正東) 방향에 있다고 한다. 까막바위 옆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을 상징하는 문어상(像)을 만들어놓았다. 조선시대 중엽, 망상현(지금의 묵호동)의 의로운 호장(戶長; 지금의 통·이장)이 문어로 환생해 왜구를 물리쳤고, 그 영혼이 까막바위 아래의 굴에 살고 있다 한다. 주민들은 이 지역에서 매년 풍어제를 지내고 있다. ▼ ’까막바위 회마을‘ 건물의 왼편으로 난 길로 들어서면서 탐방이 시작된다. 출렁다리를 거쳐 등대로 오르는 한적한 산책로이다.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 벽면(壁面)에 이곳이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2009년 SBS-TV에서 방영되었던 주말드라마로 당시 45%의 시청률을 자랑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었다. 불행을 한꺼번에 만난 여자 주인공 은성이 고난을 이겨내는 역경 극복의 스토리인데 20대 청춘들의 사랑과 성장기를 담은 드라마이다. 이승기와 한효주, 그리고 배수빈과 문채원 등 쟁쟁한 청춘스타들이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김미숙과 반효정, 전인택 등의 중견배우들이 뒤를 든든히 받쳐준 것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경사진 곳에다 계단을 놓았지만, 그 옆에는 경사진 길을 그대로 놓아두기도 했다. 계단이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모양이다. 또한 조그만 공터에는 벤치를 갖춘 정자까지 지어놓았다. 등대까지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니 쉬엄쉬엄 돌아보라는 배려일 것이다. ▼ 길이 좁아드는가 싶더니 저만큼에 다리 하나가 나타난다. 출렁다리인데 이곳도 역시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였다고 한다. 그다지 길지도,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되는 출렁다리들보다 높은 것도 아니다. 아니 다른 곳에 비해 그 규모가 훨씬 왜소하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흥미로움은 더하다. 드라마 속의 젊은이들이 사랑을 속삭였던 곳이라는 선입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 출렁다리는 드라마 속에서 매우 특별한 장소로 등장한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을 통해 국민 남동생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주인공 이승기와 풋풋한 매력을 발산하는 한효주가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던 지루한 사랑싸움에 마침표를 찍으며 첫 키스를 나누었던 곳이 바로 출렁다리이기 때문이다‘ ▼ 다리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기 짝이 없다. 탁 트인 청정 동해바다는 물론이고, 묵호항 수변공원과 횟집 거리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 출렁다리를 지나면서 오름길이 시작된다. 상당히 가파른 편이나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오르기 쉽게끔 계단을 놓아 서서히만 오른다면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버겁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보자. 짙푸른 동해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지면서 힘들다는 느낌 정도는 깔끔하게 떨쳐내버릴 것이다. ▼ 맞은편 벼랑 위에 걸터앉은 건물이 동해바다 등 주변 풍경과 어우러지며 멋진 그림으로 나타난다. ‘등대불빛 아래 펜션’일 것이다. 숙박뿐만 아니라 카페까지 겸하고 있는데, 동해바다의 조망이 시원스럽다고 해서 일출(日出)을 보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또한 잠시 후에 오르게 될 ‘묵호등대’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 등대에 오르기 직전 멋들어진 카페를 만난다. ‘등대카페’란다. 숙박이 가능한 펜션도 겸하고 있다는데, 바다 풍경을 창 가득 담고 있는 카페로 알려져 있다. 꼬마 자동차나 꼬마 정자(亭子)의 안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도록 멋을 부렸고, 또한 연인과 함께 사랑이라도 키우라는 듯이 작은 그네까지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는 포토죤(photo zone)이 더 흥미로운가보다. 벽에 그려진 천사의 날개 앞이 더 붐비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가운데에 서서 양팔을 벌릴 경우 영락없는 천사로 다시 태어난다. 비록 사진에서이지만... ▼ 몇 걸음 더 올라서자 오늘의 주인공인 ‘묵호등대(墨湖燈臺)’가 그 자태를 드러낸다. 1941년에 개항(開港)한 묵호항은 기본이 어항(漁港)이나 무연탄 관련 무역항을 겸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묵호항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안전운항을 위해 1963년에 문을 연 시설이 ’묵호등대‘이다. 해발 67m의 동문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으며 강원도 해역 최대 항만인 묵호항의 연안표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백원형 철근콘크리트구조로 높이는 12m, 내부 2층형 건물로 되어 있으며, 특히 2003년에 설치한 국내기술의 프리즘렌즈 회전식 대형 등명기의 불빛은 42km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등대의 또 다른 볼거리는 야경(夜景)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색상을 연출하는 LED 조명등을 설치하여 야간에 아름다운 빛을 연출하고 있단다. ▼ 봄철이면 개나리가 화사하게 피어난다는 등대 주변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소공원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과 지역주민들에게 볼거리와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주며, 공원에 마련된 작은 해양수산홍보관은 해양수산 변천사를 알려준다. 이곳은 1968년 상영되었던 정소영 감독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주요촬영지라고 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3년에 ’영화의 고향‘기념비가 세워졌다고 하는데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다. 세심하게 살펴보지 못하는 평소의 내 습관 때문일 것이다. ▼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널따란 광장의 한쪽 면은 최남선의 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벽면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방파제 끝에 선 등대가 거대한 파도에 부딪히는 듯 느껴진다. 다른 한쪽에는 한국 등대 100주년 공모 작품전에서 선보인 작품들이 걸려 있다. 그 외에도 다른 시인들의 시도 몇 편 보인다. 왜 이곳을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이라 부르는지 이해가 간다. ▼ 전망대에 서면 일망무제의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끝도 없이 뻗어 나간 동해바다가 두 눈에 가득하다. 거침없는 게 해맞이 장소로 딱 이겠다. 하긴 각종 언론매체에서 소개하는 ‘새해 일출 명소’에 빠짐없이 들어있을 정도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 등대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가 아득하다. 한눈에 담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이곳 묵호 등대를 찾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해가 저물 무렵이라고 한다. 등대에 불이 들어올 때면 수평선 가득 오징어잡이배의 불빛이 돋는단다. 망망한 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어화(漁火)가 꿈결처럼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무튼 비탈진 사면을 따라 이어지는 지붕 너머의 바다가... 파란색이 저리도 짙을 수 없다. ▼ 오른편에는 묵호항(墨湖港)이 또렷하다. 동해의 중심은 예나 지금이나 묵호항이다. 지금은 쇠락하고 말았지만 묵호항은 한때 밤새 불이 꺼지지 않고 흥청거리던 항구였다. 그러나 어업의 쇠퇴로 하나둘 주민들이 떠나고, 불빛도 하나둘 꺼져가고 있다. 쇠락한 항구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건 관광객들과 생선 좌판을 펼치고 앉은 억세지만 잔정 많은 아주머니들이란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이른 아침 포구에 부려놓는 오징어들일 것이다. ▼ 등대를 다 둘러봤다면 이제 그만 내려가야 할 차례이다. 내려가는 길의 초입에 ’논골담길‘ 마을지도(이 글의 머리 부분에 붙여 놓았다)가 보인다. 묵호 어시장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모두 네 개의 코스, 지금 내려가고 있는 코스는 그중 '등대오름길'이지 싶다. 아무튼 이 ’논골담길‘은 주민들이 직접 지은 시(詩)와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뱃사람과 시멘트, 무연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 냈던 그들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그려 놓았다고 보면 된다. 참고로 묵호 등대마을에는 등대(燈臺)를 중심으로 논골1길, 논골2길, 논골3길, 등대오름길 등 네 개의 대표적인 골목길이 있으며 각기 다른 주제의 벽화(壁?)가 그려져 있다. 논골 1길은 ‘묵호의 현재’, 등대 오름길은 ‘희망과 미래’, 논골 2길은 ‘모두의 묵호, 시간의 혼재’ 논골 3길 벽화는 ‘묵호의 과거’ 등 각각의 주제를 담고 있다. 묵호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 ‘논골’이란 마을 지명은 이곳 주민들의 삶과 애환이 묻어나는 이름이다. 1960년 동해안은 오징어잡이가 활성화 되던 때였다. 마을 사람들은 묵호항으로 입항하는 배로부터 오징어를 받아 지게에 짊어지거나 머리에 이고 비탈길을 올랐다고 한다. 이때 바닥에 흘러내린 바닷물이 길가의 흙을 쓸어내릴 정도였단다. 그 모양이 마치 계단식 논과 같아 ‘논골’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는 것이다. 논골은 묵호항이 명태와 오징어잡이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 아녀자와 노인들이 오징어를 만국기처럼 걸어두고 말리던 동네였다. ‘개도 돈을 입에 물고 다녔다’던 비탈 동네는 대규모 덕장과 건조공장이 들어서며 차츰차츰 쇠퇴해갔다. 하지만 예쁜 벽화로 골목이 치장되고 관광객의 발길이 늘어나면서 지금은 또 다른 의미의 명소가 됐다. ▼ 한 때, 2만 명이 살던 마을은 어족자원이 고갈되면서 하나둘 떠나가고 현재는 4,000여 명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동해문화원은 문화체육관광부에 '묵호등대 담화(談話)마을, 논골담길' 사업을 신청하는 한편, 논골마을 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가 그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바탕으로 골목길과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미대생 출신들로 구성된 '공공미술 공동체 마주 보기' 회원이 스케치하고 60∼70대의 마을 어르신들이 색칠을 맡아 벽화길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논골담길의 벽화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벽화가 아닌 묵호항을 배경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1960년대 오징어를 실어오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묵호항 개항 이후 판잣집, 어부의 애환 등 묵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삶을 그려낸 독특한 벽화들은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할 것이다. ▼ 골목에는 시와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이 인기 드라마였던 ‘상속자들’의 촬영지였음을 알리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여자 주인공이었던 ‘차은상’이 살던 집도 보인다. 주인공 ‘은상(박신혜)’이 어머니와 도망쳐 나와 살던 집이란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상속자들’은 2013년 SBS-TV에서 방영했던 20부 작의 드라마로 25.6%의 시청률을 자랑했을 정도로 인기 절정이었다.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하는 재벌가에서 자란 10대 고교생들의 이야기’라는 다소 생소한 소재를 다루었는데도, 이민호와 김우빈, 그리고 박신혜와 크리스탈 등 젊고 잘생긴 배우들이 열연을 한 덕분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아니 김성령과 김미경, 박준금, 정동환 등 노련한 배우들의 도움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덕분에 젊은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나이 지긋한, 그러니까 나 같은 시청자들까지 TV 앞으로 불러 모을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 길을 따라 팔랑개비들을 세워 놓았다. 동해바다를 향해 쉼 없이 돌고 있는 것이 흡사 이곳 논골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풍요로움에 넘쳤던 옛날의 그 바다로 다시 나가고 싶은 그들의 바램 말이다. 아무튼 적막한 골목이 환기해내는 건 아련한 추억이다. 꼭 여기 묵호나 바닷가 마을이 고향이 아니라도 좋다. 너나없이 어려웠던 시절을 건너온 중년 이상의 이들에게는 이 누추한 집들 사이로 이어진 비탈진 골목에서 아릿하고 따스했던 오래전의 추억과 딱 마주치게 된다. ▼ 전국의 흔한 벽화마을 중에서도 논골마을의 벽화는 진정성과 참신성, 지속성으로 주목받는다. 지역의 삶과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위트 있게 담았고 무엇보다도 꾸준히 관리해 온 것이다. 그 진정성을 알아본 여행자들이 열렬히 화답했다. 이런 차이를 들어 이곳의 벽화를 ‘담화’, 이 길을 ‘논골담길’이라고 부른다. 사이사이에 들어선 시들도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 그림과 시들은 눈부신 바다 풍경과도 어우러져 또 다른 그림을 그려 낸다. ▼ 길가에는 의자도 놓아두었다. 힘이 드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쉬었다 가라는 모양이다. 의자를 본 집사람이 ‘이 정도의 경사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까요?’라며 넌지시 물어온다. 이에 대한 답은 할 필요도 없었다.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내 답변을 대신할 팻말을 만났기 때문이다. ▼ ‘헉 ! 헉 ! 담배 끊으셔야죠.’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글귀가 보인다. 담배만 끊으면 이 정도는 거칠 것 없이 오를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맞는 말이다. 금연을 시작한지 15년이 지난 요즘의 나는 1천 미터 이상의 산들을 너끈히 올라 다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 마을은 1960∼70년대 선창가 달동네의 풍경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한두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골목길 양쪽으로는 슬레이트와 양철 지붕을 얹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언덕에 깃든 집들 또한 방 두어 개를 둔 작은 규모가 대부분이다. 차가 다닐 수 없으니 주민들은 아직도 짐을 직접 들고 골목을 오르내린다. 그나마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끝날 만큼 골목이 길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무연탄과 시멘트, 그리고 고기잡이에 생계를 위탁하기 위해 묵호로 들어온 가난한 이들은 항구 가까운 비탈진 언덕배기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곳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기항지’로 불리던 이곳 ‘논골담 마을’이다. 논골담 마을에 얼기설기 판자를 잇고 덧대 겨우 거처를 마련한 이들은 거기서 매운 해풍의 겨울을 났다. 사내들은 배를 타고 나가거나 그물에서 생선을 걸러 내거나 지게질로 고된 삶을 이어갔고, 아낙네들은 젖은 명태나 오징어를 대야에 싣고 산동네를 올라와 빨랫줄에 이들 생선을 내걸고, 바다를 내려다보며 가장이 탄 고깃배의 귀환을 기다렸다. ▼ 저만큼에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걸로 보아 거의 다 내려왔나 보다. 그렇다면 ‘논골담마을’, 즉 작은 집들이 산비탈에 의지해서 오손도손 마주보고 있는 골목길을 다 구경했다는 얘기가 된다. 아무튼 푸른 동해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진다. 어떤 이들은 저 바다를 보고 아름답다고 한다. 하지만 긴긴 세월을 아찔한 골목길을 오르내리며 포구에서 일하던 지역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곳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 동네는 바다와 함께한 지역의 이야기와 예술로 재탄생시킨 벽화 작품들로 인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 진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동해문화원’ 주도로 지역 어르신과 작가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마을이야기를 반영하는 벽화 등을 그리며 마을을 새롭게 꾸며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 해변에 내려선다. 그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탐방을 시작했던 곳으로 올라간다. ‘아름다운 바다의 도시’라고 쓰인 조형물이 보인다. 이곳 동해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니 묵호라고 하는 게 더 옳겠다. 이곳 묵호(墨湖)는 새들이 새카맣게 몰려든다고 해서 그 옛날 새나루 또는 오이진(烏伊津)이라 불렸다. 그러던 것이 바다빛깔이 먹물 같다고 해서 묵호(墨湖)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 순조 때 들이닥친 큰 해일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파견된 ‘이유옹’이라는 부사(府使)의 작품이란다. 마을의 이름이 속지명과 한자로 나뉜다는 것을 안 그가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다’는 뜻으로 먹묵(墨)자를 써서 묵호(墨湖)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 해안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다. 벤치는 물론이고, 식탁까지 놓아두었다. 준비해온 음식들을 먹으면서 주변 풍광에 빠져보라는 자부심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인근의 경관이 빼어나다는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하긴 이곳 ‘망상해변길’은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전국의 52개 걷기 좋은 해안길, 해안누리길로 선정된바 있다. 동해 망상해변에서 묵호항을 지나 송정동에 이르는 10.5㎞의 이 길은, 길과 포구의 정취뿐만 아니라 바다와 고단한 바다 사람들의 생까지 엿보게 해준단다. 그리고 한때 번성했던 포구와 마을의 흔적, 그리고 새롭게 바뀌는 포구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단다. ▼ 해안을 따라 걷다보면 아까 탐방을 시작했던 ‘까막바위 회마을’ 건물이 나타난다. 이젠 출출해진 배를 달래야 할 시간이다. 이곳 묵호항은 경매(競賣)에 열을 올리는 경매사들과 동해시 횟집에서 나온 상인들로 늘 북적이는 곳이다. 오징어가 한참 올라올 때는 항구가 온통 오징어 천지란다. 이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이 지방의 명물인 오징어나 가자미 정도는 먹어보고 가야하지 않겠는가. 특히 싱싱한 생선으로 만드는 ‘물회’를 먹어보지 않고 어찌 묵호를 다녀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찾아든 곳이 ‘오부자 횟집’이다. 이곳은 ‘냄비 물회’로 유명한 집이다. SBS-TV에서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생활의 달인’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물회’ 분야에서는 그 실력이 뛰어나단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니 더 말하면 뭐하겠는가. 참고로 물회에 넣는 생선의 종류는 그날그날 다르단다. 묵호항에서 경매되는 어황(漁況)에 영향을 받지 않나 싶다. 아무튼 살얼음이 동동 떠있는 물회가 나오면 육수에다 야채와 회를 골고루 섞어 어느 정도 먹다가 소면을 넣어 함께 먹는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밥을 말아먹으면 상황 끝이다. 맛은 물론 환상적이다. 생선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니 비린내 때문에 거부하다시피 하는 내 입에까지도 맞았으니 두말하면 뭐하겠는가. 양 또한 풍족하게 나오니 서두르지 말고 서서히 음미하면서 먹어볼 일이다. |
출처: 가을하늘네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