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치 전투는 1592년 7월 8일을 전후로 하여 전라도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오는 고개인 웅치에서 전주 부성을 공격하고자 하는 왜군을 호남 지역의 관군과 의병이 사투를 전개하여 왜군의 전력을 약화시키고, 안덕원까지 진출하였던 왜군을 격퇴하여 호남을 지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전투이다.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전라도의 역할이었다. 무엇보다도 임진왜란 시기 동안 전라도 지역으로부터 병력과 물자가 계속 조달 공급되어 조선이 장기 항전을 통해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진주성 제2차 전투가 끝난 직후인 1593년 7월 16일에 이순신(李舜臣)은 사헌부 지평 현덕승(玄德升)에게 보낸 편지에서 ‘호남은 국가의 보장이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곧 국가도 없다[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말을 남겼다. 이순신의 이 말은 임진왜란 극복 과정에서 호남이 보여준 결정적 역할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호남의 역할이 가능하였던 것은 호남이 지켜졌기 때문이었고, 호남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웅치 전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웅치 전투는 전라도 지역에서 여러 수령들이 거느린 관군과 지역의 의병이 참전하였다. 관군으로서는 웅치에서 순절한 김제 군수 정담이 거느리는 김제 지역의 사졸, 나주 지역의 사졸을 거느린 나주 판관 이복남. 그리고 동복 현감 황진이 거느리는 동복 지역의 군사 등 참전하였던 것으로 나타나며, 기록에 따라서는 해남 현감 변응정(邊應井)이 거느리는 해남 지역의 군사도 참전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김제 군수 정담을 따라 참전한 안휘(安徽) 박석정(朴石精), 박정영(朴廷榮), 조성립(趙成立) 등과 같이 각 지역의 여러 인사들도 수령을 따라서 참전하였다. 의병으로는 전주 지역에서 의병장 황박이 거느리는 의병, 고부의 김제민(金齊民)·김안(金晏) 부자가 중심이 된 의병, 진안의 김수(金粹)·김정(金精) 형제가 거느리는 의병 등도 참전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웅치 전적지 전라북도에서는 1976년에 전주와 진안을 잇는 구 신작로 상의 곰티재 부근인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을 웅치 전적지로 설정하여 전라북도 기념물 제25호로 지정하였으며, 1979년 12월에 곰티재 정상으로부터 약 200m 되는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쪽에 웅치 전적비(熊峙戰蹟碑)를 세웠다.
전적비가 세워진 지역은 조선 후기 전주-진안 간의 대로가 지나는 곳이므로 이 일대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가능성은 있지만, 실제 전투는 진안에서 웅치로 넘어오던 길목에서 전개되었기 때문에 웅치 전적지의 대부분 지역은 오늘날의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지역에 해당하는 웅치의 동쪽 지역에 해당한다.
진안군 세동리 지역에서 완주군 소양면으로 넘어오는 길은 전적비가 서 있는 웅령로를 비롯해서 덕봉 마을을 지나 두목리로 이어지는 덕봉길, 적천치 마을에서 삼중리로 이어지는 적래재길 등 세 갈래가 있다. 따라서 웅치 전투는 이 세 곳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웅치 전적지의 위치는 현재 전적비가 서 있는 곰티재의 길목과 덕봉길로 들어오는 길목, 그리고 덕봉 마을 북쪽의 적천 마을 등의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지역과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대에 걸치는 지역으로 비정된다.
특히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덕봉 마을에는 조선 전기 요광원 터로 비정되는 원터와 구 웅치동 등의 지명이 전하고 있어서 이곳이 임진왜란 당시 웅령로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또한 임진왜란과 관련한 지형 지물과 지명 등 전승 자료가 전해오고 있어서 이곳이 웅치 전투의 주 전적지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덕봉 마을에 웅치 전투에서 순절할 사람들을 모시는 창렬사(彰烈祠)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 『난중잡록(亂中雜錄)』
- 『쇄미록(鎖尾錄)』
- 『징비록(懲毖錄)』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 『포저집(浦渚集)』
- 『백사집(白沙集)』
- 이형석, 『임진 전란사』(신현실사, 1974)
- 하태규, 「임란에 있어서 웅치전의 위상에 대하여」(『전라 문화 논총』5, 1990 )
- 하태규 외, 『임진왜란 웅치 전투와 그 전적지』(전라 문화 연구소, 2006)
- 하태규,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관군의 동향과 호남 방어」(『한일 관계사 연구』26, 2007)
- 하태규, 「웅치 전적지 위치에 대한 재론」(『전북 사학』30, 전북 사학회, 2007)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