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문]
하교하기를,
“세속에서 이른바 남초라는 것이 언제부터 나온 건지 모르겠다. 소화에 이롭다고도 하고 담(痰) 치료에 긴요하다고도 하지만 과연 그런지 모르겠다. 근래에는 습속이 고칠 수 없이 굳어져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즐기지 않는 사람이 없어 어린애들조차 으레 담뱃대를 뻗쳐 문다. 세상에서 ‘팔진미(八珍味)는 없애도 남초는 없애면 안 된다.’고도 하니, 금지하고 싶어도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에 후금(後金)의 칸[汗]이 군대에 거듭 금지시켰는데도 그치지 않았다고 하는데, 후금 칸의 위세로도 금지시킬 수 없었던 것은 어째서인가?”
하니, 참찬관 이광익이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남초는 인조 때 일본에서 나와 우리나라를 통해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는데 그 당시 후금의 칸이 엄중하게 금지하던 상황이라 저들이 그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서 들어갔으며 근래에는 천하에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하고, 홍면섭이 아뢰기를,
“남초를 서도(西道)에 많이 심는데 품질도 아주 좋기 때문에 서초(西草)라고도 부릅니다. 서도의 비옥한 토지 태반이 남초 심는 데 들어가니, 사람에게는 이로울 것이 없고 폐해만 막대합니다.”
하였다. 주상이 이르기를,
“남초나 술이나 폐해를 끼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술은 제사에 쓰고 성인(聖人)도 주량에 한정이 없었으되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즐겼다고 하는데, 남초는 마땅한 데는 없고 해로움만 막심하다. 습속이 이런 지경인데 끝내 금지할 수 없단 말인가?”
하니, 박종훈이 아뢰기를,
“사람들은 모두 남초를 금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신의 생각은 다릅니다. 술도 좋아하여 깊이 빠진 자가 많기 때문에 금지하기 어려운데, 남초는 몸에 이로울 것이 없는데도 이렇게까지 좋아하니 법을 엄하게 하여 금지한다면 필시 술보다 더 심하게 죄를 무릅쓰고 금법을 범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원문]
敎曰: “俗所謂南草, 未知始於何時, 而或云利於調胃, 或云緊於治痰, 未知其果然。而至於近來俗習已痼, 無論男女老少, 莫不嗜之, 纔免孩提, 例爲橫竹。世或謂‘八珍可廢, 南草不可廢’, 雖欲禁之而末由也已。昔聞‘金汗申禁於軍中, 而猶不止’云, 以金汗之威, 尙不得禁止者, 何也?” 參贊官李光益曰: “臣聞‘仁廟時, 自日本出來, 自我國轉入中原, 時金汗切禁之, 故彼人置其種子於筆管中入去, 而近則遍於天下’云矣。” 冕燮曰: “南草多種於西路, 品亦絶佳, 故或名之爲西草。西路之良田美土太半入於種草, 無利於人, 而弊莫大矣。” 上曰: “南草之爲弊, 與酒一般, 而酒則猶用於祭祀。聖人亦云‘惟酒無量, 不及亂’, 至於南草, 則無所當, 而害莫甚矣。俗習至此, 其終不可禁止乎?” 宗薰曰: “南草之可禁, 人皆言之。而臣嘗竊思之, 酒禁之難, 蓋由於沈惑者多也; 至於南草, 旣無利益於身, 而好著至此, 若嚴法而禁之, 則其冒罪犯禁, 必有甚於酒政矣。”
- 『순조실록(純祖實錄)』 8년(1808) 11월 1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