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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환의 명시감상
여름 한때
천양희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깬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살박이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
바람이 간혹 숲속에서 달려나온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오르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氣가-- 저렇게 기막히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
----천양희, [여름 한때]({마음의 수수밭], 창비, 1994년) 전문
태풍颱風이란 무엇인가? 그 옛날 중국에서는 태풍과 같이 바람이 강하고 바람의 방향이 선회하는 풍계風系를 ‘구풍颶風’이라는 불렀는데, 이 ‘구풍颶風’은 사방의 바람을 빙빙 돌리면서 불어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아라비아의 사람들은 이 ‘구풍’에 대한 지식을 중국인들로부터 배웠고, 그 바람의 뜻을 새겨서 ‘tūfān'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아랍어 ’타이푼tūfān'은 빙글빙글 도는 바람을 의미하고, 프랑스어의 ‘typhon'과 영어의 ’typhoon'은 이 아랍어를 그 기원으로 두고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태풍은 빙글빙글 도는 바람이며, 열대성 저기압으로 최대 풍속이 17m/s 이상인 것을 말한다. 태풍은 또한, 거대한 적란운이 형성되면서 큰비를 몰고오게 된다.
{두산백과사전}에 의하면 태풍의 이름을 명명하는 과정은 다음과도 같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1953년부터 태풍에 매년 발생순서에 따라 일련번호를 붙여서 제 몇호 태풍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괌에 있는 미국태풍합동경보센터에서 태풍의 이름을 23개씩 4개조, 총 92개로 구성하였다. 태풍의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미리 만들어 놓고 발생순서에 따라 하나씩 차례로 사용하였다. 1978년 이전에는 여성의 이름만 사용하였으나 각국 여성단체의 항의로 남성과 여성의 이름이 함께 사용되었다. 각 조의 마지막 이름 다음에는 다음조의 첫 번째 이름을 사용하며, 92개를 모두 사용하면 다시 1번부터 재사용하였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아시아 태풍위원회에서 아시아 각국 국민들의 태풍에 대한 관심과 경계를 강화하기 위해 각 국가별로 제출한 10개의 이름을 순차적으로 적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총 140개의 이름이 28개씩 5개의 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140개를 모두 사용하고 나면 처음 1번부터 다시 사용한다.
각 나라별로 제출한 이름은 아래와 같다.
한국 : 개미 Kaemi, 나리 Nari, 장미 Changmi, 수달 Sudal, 노루 Noru, 제비 Chebi, 너구리 Noguri, 고니 Koni, 메기 Megi, 나비 Nabi
북한 : 기러기 Kirogi, 도라지 Toraji, 갈매기 Kalmaegi, 매미 Maemi, 메아리 Meari, 소나무 Sonamu, 버들 Podul, 봉선화 Pongsona, 민들레 Mindulle, 날개 Nalgae
캄보디아 : 돔레이 Damrey, 콩레이 Kong-rey, 나크리 Nakri, 크로반 Krovanh, 사리카 Sarika, 보파 Bopha, 크로사 Krosa, 마이삭 Matsak, 찬투 Chanthu, 네삿 Nesat
중국 : 롱방 Longwang, 위투 Yutu, 펑셴 Fengshen, 두지앤 Dujuan, 하이마 Haima, 우콩 Wukong, 하이옌 Haiyan, 하이셴 Haishen, 디앤무 Dianmu, 하이탕 Haitang
홍콩 : 카이탁 Kai-tak, 마니 Man-yi, 퐁윙 Fung-wong, 초이완 Choi-wan, 망온 Ma-on, 산산 Shanshan, 링링 Lingling, 야냔 Yanyan, 팅팅 Tingting, 바냔 Banyan
일본 : 덴빈 Tembin, 우사기 Usagi, 간무리 Kammuri, 곳푸 Koppu, 도카게 Tokage, 야기 Yagi, 가지키 Kajiki, 구지라 Kujira, 곤파스 Kompasu, 와시 Washi
라오스 : 볼라벤 Bolaven, 파북 Pabuk, 판폰 Phanfone, 켓사나 Ketsana, 녹텐 Nock-ten, 샹산 Xangsane, 파사이 Faxai, 찬홈 Chan-hom, 남테우른 Namtheun, 맛사 Matsa
마카오 : 잔쯔 Chanchu, 우딥 Wutip, 봉퐁 Vongfong, 파마 Parma, 무이파 Muifa, 버빈카 Bebinca, 와메이 Vamei, 린파 Linfa, 말로우 Malou, 산우 Sanvu
말레이시아 : 절라왓 Jelawat, 서팟 Sepat, 루사 Rusa, 멀로 Melor, 머르복 Merbok, 룸비아 Rumbia, 타파 Tapah, 낭카 Nangka, 머란티 Meranti, 마와 Mawar
미크로네시아 : 에위냐 Ewiniar, 피토 Fitow, 신라쿠 Sinlaku, 니파탁 Nepartak, 난마돌 Nanmadol, 솔릭 Soulik, 미톡 Mitag, 소델로 Soudelor, 라나님 Rananim, 구촐 Guchol
필리핀 : 빌리스 Bilis, 다나스 Danas, 하구핏 Hagupit, 루핏 Lupit, 탈라스 Talas, 시마론 Cimaron, 하기비스 Hagibis, 임부도 Imbudo, 말라카스 Malakas, 탈림 Talim
태국 : 프라피룬 Prapiroon, 비파 Wipha, 멕클라 Mekkhala, 니다 Nida, 쿨라브 Kulap, 두리안 Durian, 라마순 Rammasun, 모라콧 Morakot, 차바 Chaba, 카눈 Khanun
미국 : 마리아 Maria, 프란시스코 Francisco, 히고스 Higos, 오마이스 Omais, 로키 Roke, 우토 Utor, 차타안 Chataan, 아타우 Etau, 아이에라이 Aere, 비센티 Vicente
베트남 : 사오마이 Saomai, 레기마 Lekima, 바비 Bavi, 콘손 conson, 손카 Sonca, 차미 Trami, 할롱 Halong, 밤코 Vamco, 송다 Songda, 사올라 Saola
세계기상기구(WNO)의 관측에 의하면 1992년, 미국 플로리다주를 강타한 ‘앤드류’는 초속 80m에 달했다고 하며, 2003년, 우리나라를 강타한 ‘매미’는 초속 5~60m이었다고 한다. ‘앤드류’는 미국의 역사상 가장 강한 태풍이었고, ‘매미’ 역시도 우리나라에 그 엄청난 물폭탄을 쏟아부은 바가 있었다. 2007년 9월 16일, 제주도를 강타한 태풍 ‘나리’ 역시도 순간 초속이 50m에 이르고, 순식간에 500mm에 가까운 물폭탄을 쏟아부었으며, 추석명절을 준비하고 있었던 제주도를 초토화시킨 바가 있었다. 내가 천양희 시인의 [여름 한때]를 생각해낸 것은 태풍이 지나가고 맑게 개인 9월 20일 날, ‘애지愛知의 숲’을 산책할 때였다. 하늘은 언제 그랬던가 싶을 만큼 시치미를 뚝 떼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기만 했었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며, 철학예술가가 산책을 하고 공부하기가 가장 좋은 계절이었다. 제주도민들과 남부지방의 수재민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기는 하지만, 태풍 ‘나리’가 그 모든 쓰레기들을 대청소해준 것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천양희 시인의 [여름 한때]는 ‘비 갠 뒤’, 그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서 우주적인 삶의 찬가를 노래한 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그는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라고 말하고,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깬다”라고 말한다. 맑게 개인 하늘에서 뜨거운 햇볕이 쏟아져 내리면, 어두운 먹구름 속에서 잠을 자고 있던 촘촘한 나뭇잎들이 화들짝 잠을 깨며 ‘탄소동화작용’을 시작하는 것이다. ‘광합성 작용’, 즉 ‘탄소동화작용’이란 산소를 뱉아내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을 말한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공기는 싱그럽고 맑고 깨끗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살박이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가게 된다. 공터는 텅 빈 공터이기는 하지만, 그 어린 아기가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할 미래의 터전이며, 두살박이 아기는 노아의 방주 이후, 새로운 세상에서 새롭게 태어난 아기를 뜻한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본다’는 것은 그 아기의 미래를 인도해주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두살박이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는 것은 비록, 두살박이 아기에 지나지 않지만, 자기 자신의 미래의 삶을 위하여,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발걸음으로 걸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공기는 싱그럽고 맑고 깨끗하다. 한 여름의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촘촘한 나무들은 화들짝 잠을 깨면서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싱그러운 산소를 뱉아 놓는다. 구름이 길을 인도하고, 바위는 샘물을 내뿜고, 하늘에서는 만나가 쏟아져 내리며, 홍해바다는 쩌억 갈라진다. 공터는 천지창조의 공터이며, 그 두살박이 아기가 살아가야 할 미래의 삶의 터전이다. 그 어린 아기는 축복받은 아기이지, 저주받은 아기가 아니다.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라는 시구는 바로 이러한 우주적인 삶의 찬가인 것이다. 따라서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에서의 ‘고통’은 사나운 비바람(태풍) 속에서---그 역경을 극복해나가면서----삶의 지혜를 깨닫는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라는 시구는 그 고통과는 정반대 방향에서, 삶의 ‘기쁨’ 역시도 ‘내 선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고통은 삶의 지혜를 깨우쳐 주는 선생이고, 기쁨은 삶의 보람과 그 향유를 깨우쳐 주는 선생이다.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기 때문에, 사나운 비바람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서도 또다시 삶에의 의지를 불태워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때에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라는 시구는 고통 속에서 삶의 기쁨으로 건너갈 때에 그 몸의 균형을 잠시 잡지 못한 것을 뜻하고, 그것은 어쨌든 존재론적 상승을 뜻하게 된다. 내가 고통만이 선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 고통을 벗어나 삶의 기쁨 속으로 건너갈 때, “바람은 간혹 숲속에서 달려”나오고, “놀란 새들은 공처럼 튀어오르고”, 그리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리게 된다. 모든 생명들이 살아 움직이며, 그 역동적인 모습으로 ‘생생한 生’을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조화롭게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천양희 시인은 “웬 氣가-- 저렇게 기막히다”라고, 그 놀라움과 감탄의 의문문을 저절로 표현해보이고 있는 것이다. “웬 氣가”는 “웬 氣가?!”라고 표기하는 것이 더욱 더 어울리는 놀라움과 감탄의 의문문이고, ‘기가 막히다’는 ‘기가 막히다!’라고 표기하는 것이 더욱 더 어울리는 감탄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웬 氣가”는 만물을 생성하는 우주의 힘에 대한 놀라움과 감탄의 의문문이며, 따라서, ‘생생한 生’에 대하여 “저렇게 기막히다”라는 표현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저렇게’는 만물이 살아 움직이는 우주적인 힘을 가리키는 부사어이며, 이때의 ‘기막히다’는,
1, 숨이 막히다;
2, 어떤 일이 하도 어이가 없거나 엄청나서 질릴 정도이다;
3, 너무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4,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 모양이나 경치가 너무나도 아름답다;
라는 국어사전적인 의미에 가 닿아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저렇게 기가 막히다’라는 가장 아름답고 유효적절한 표현은 만물을 생성하는 우주의 힘이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랍고, 그리고, 또한,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하고 아름답다는 표현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발밑에는 시름꽃이 밟히고, 삶이란 그 시름꽃처럼 기가 막힌다. 천양희 시인은 어느 누구보다도 언어에 민감하고, 이 언어의 다의적인 의미에 주목하여 ‘펀 효과’를 가장 잘 사용할 줄 아는 시인이다. 제3연의 ‘기氣’와 제4연의 ‘기氣’는, 따라서 정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氣’는 ‘기운 기’와 ‘숨 기’이며, 그 뜻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가 있다.
1, 동양철학에서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을 세기勢氣라고 부름.
2, 생활, 활동의 힘. 기(힘)가 부족하다.
3, 있는 힘의 전부. 기(힘)를 쓰다.
4, 인간의 정신 활동. 정신력.
5, 숨쉴 때에 나오는 기운. 기(숨)가 막히다.
6, 객기를 쓰는 기운. 기를 꺾다.
7, 막연한 전체적인 느낌. 분위기. 살벌한 느낌. 살벌한 분위기.
나는 시름꽃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러나 그것은 늘 마음에 걸리는 근심과 걱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름꽃은 그의 생활의 현실에 피어 있는 꽃이며, 그 근심과 걱정으로 인하여 영양분이 부족한 식물이나 병든 짐승처럼 삶의 기운이 빠져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은 만물이 생성하는 우주의 힘에 비하여, 더없이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는 어떤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그 기가 막힌 현실 속에서도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라고 만물의 역동적인 힘을 발견해내는 천양희 시인의 시적 직관력은 놀랍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은 천양희 시인의 어렵고 힘든 생활의 현실을 지시하고, 그 생활의 현실에서는 우주적인 아름다움에 반하여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이때의 기가 막히다는 제3연에서의 긍정의 힘이 모조리 제거된 채, 어떤 장애물에 의하여 그 기가 꺾이고 위축된 것을 뜻하게 된다. ‘기가 꺾이고, 기가 부족하고, 살벌한 느낌과 살벌한 분위기 뿐이다’가 바로 그 ‘기가 막히다’라는 말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천양희 시인의 생활 현실은 상승곡선이 아닌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최소한도의 의식주의 해결마저도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고백하는 시구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장엄한 우주적인 힘과 기가 막히게 그 힘이 꺾이고 위축된 시름꽃(시인), 이 조물주와 시인의 대비는 그러나 제5연에서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라는 시구에 의해서 그 대립 자체가 지양되고 우주적인 힘과 그 질서로 자리잡게 된다. 천양희 시인의 [여름 한때]는 ‘기氣’의 이중적인 의미에 의해서 변증법적(正反合)인 구조를 간직하게 된다. 변증법이란 하나의 명제를 정하면(正), 그에 대한 반대명제를 정하고(反), 그리하여 상호모순점을 지양해나가는 것을 말한다. 천양희 시인의 [여름 한때]를 변증법적으로 설명을 해본다면,
1,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쏟아지고,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깨고, 두살박이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오르고 가파픈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氣가----저렇게 기막힌다(正};
2,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反);
3,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合);
라는 것이 될 것이다. 1은 비 갠 뒤의 ‘생생한 生’의 정립이며, 2는 그 명제에 반하여 어둡고 암울한 생에 대한 정립이고, 3은 그 명제와 반명제를 지양하여 우주적인 생명(삶)의 질서를 긍정한 것이다. 비 갠 뒤, 하늘에서 땡볕이 쏟아져 나올 때, ‘나’는 그 땡볕이 더욱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쏟아져 나올 수 있도록 먹구름이 되었던 것이고, ‘두살박이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나오고, 새들이 공처럼 튀어오르고, 생생한 生과 우주가 펼쳐질 때’, ‘나’는 그 우주가 펼쳐지기 위한 고통의 초상, 즉, ‘시름꽃’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비 온 뒤가 아니면 햇볕이 그토록 아름답고 찬란할 수가 없는 것이고, 내가 시름꽃처럼 기막힌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두살박이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음이 없으면 양이 없고, 어머니가 없으면 아이도 없다. 고통이 없으면 기쁨도 없고, 시름꽃이 없으면 생생한 生도 없다. 천양희 시인은 언어의 다의성에 민감한 시인이며, 따라서 그 언어의 이중효과(혹은 다중효과)를 통하여 극적인 반어와 극적인 구조를 구축할 줄 아는 시인이다. 제3연의 “웬 氣가-- 저렇게 기막히다”라는 시구를, 제4연,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라고, 그토록 순식간에 뒤집어 버리는 그 솜씨를 보라! 가히 일도필살一刀必殺의 검법이며, 제일급의 언어의 마술사의 솜씨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는 것은 그 삶의 역경을 딛고서 또다시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는 것이고, 또한 “살아 붐빈다”는 것은 수많은 생명들과 함께, 우주적인 삶의 질서에 참가하고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천양희 시인의 [여름 한때]는 그 전체가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공간이며, 그토록 아름답고 멋진 잠언적인 경구들로 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깬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살박이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생생한 生!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우뚱한다
바람이 간혹 숲속에서 달려나온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오르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氣가-- 저렇게 기막히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
태풍은 천지창조의 어머니이고, 텅 빈 공터는 미래의 삶의 텃밭이다. 어머니의 시름꽃은 삶의 잉태의 꽃이며, 어린 아기는 어머니의 시름꽃 속에서 참으로 아름답고 환하게 피어난다.
어린 아기는 새시대와 새로운 우주의 주인공이다. 그 어린 아기의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찌 즐겁고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만인이 공유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어떤것은 시가 되고, 어떤 것은 잡음이 된다. 시인은 그 잡음마저도 더욱 더 순치시켜 잠언적이고도 경구적인 언어, 즉, 아름다운 시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시인은 예술가 중의 예술가이며, 영원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