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論語集注) - 9 - 자한(子罕) - ⑥ |
1 | 大宰問於子貢曰 夫子聖者與 何其多能也 태재가 자공에게 묻기를, “공자(孔子)는 성자(聖者)이신가? 어쩌면 그리도 능한 것이 많으신가?”라고 했다.
孔氏曰 大宰 官名 或吳或宋 未可知也 與者 疑辭 大宰蓋以多能爲聖也 공씨가 말하길, “태재는 관명이나, 혹 오나라인지 송나라인지는 알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與라는 것은 의문사다. 태재는 대체로 능한 것이 많은 자를 성인으로 여긴 것 같다.
杜氏曰 按春秋之時 以大宰名官者 惟吳宋與魯耳 吳有大宰嚭 宋有大宰華督事殤公 其後九歲至平公 乃以向帶爲大宰 平公卽位之歲 距孔子過宋 歷二公八十餘年 其間或廢或否 雖未可知 然左氏及史記 亦不復載 不可考也 況孔子過宋時 遭桓司馬之厄 遂微服而去 豈復有問子貢者歟 疑此大宰卽吳嚭也 吳與魯會繒 嚭召季康子 康子使子貢往焉 則此當是吳大宰而 亦當在此年也 魯自公子翬請於隱公欲殺桓以求大宰 其後不復見 두씨가 말하길, “살펴보건대, 춘추시대에 태재라고 관직의 이름을 지은 것은 오직 오나라와 송나라, 그리고 노나라 뿐이었다. 오나라에는 태재 백비가 있었고, 송나라에는 태재 화독이 있어 殤公을 섬겼다. 그후 9세대가 지나 平公에 이르러, 마침내 향대를 태재로 삼았으니, 평공이 즉위한 해는 공자가 송나라를 지날 때까지 2公 80여년을 거쳐야 했다. 그 사이에 혹은 폐지되었는지 혹은 아니었는지는 비록 알 수는 없지만, 좌씨 춘추전이나 사기에도 역시 더이상 실리지 않았으니, 상고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물며 공자가 송나라를 지날 때 환사마의 액운을 맞아서 마침내 미복으로 지나갔으니, 어찌 다시 자공에게 물어보는 자가 있었겠는가? 아마도 여기서의 태재는 곧 오나라 백비인 것으로 보인다. 오나라와 노나라는 繒 땅에서 회맹을 했는데, 백비가 계강자를 불렀고, 계강자는 자공으로 하여금 거기에 가도록 하였으니, 여기서는 마땅히 오나라 태재일 것이고, 또한 마땅히 이 해였을 것이다. 노나라는 공자휘가 은공에게 청하여 환공을 죽이고 이로써 태재의 직위를 구하고자 한 때로부터 그후로는 태재라는 말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
2 | 子貢曰 固天縱之將聖 又多能也 자공이 대답하기를, “선생님은 진실로 하늘이 내신 성인(聖人)이시고 또한 능함이 많으시다.”라고 했다.
縱 猶肆也 言不爲限量也 將 殆也 謙若不敢知之辭 聖 無不通 多能 乃其餘事 故言又以兼之 縱은 肆와 같은 것이니 수량을 제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將은 ‘거의’란 뜻이니, 마치 감히 알지 못하는 것처럼 겸손해하는 말이다. 성인은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잘하는 것이 많은 것은 오히려 그 나머지 일이다. 그러므로 ‘又’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겸비했던 것이다.
朱子曰 天放縱他作聖得恁地不去限量他 問愚不肖是天限之乎 曰 也是天限量他一般 如這道理 聖人知得盡 愚不肖要增進一分不得 拘定在這裏 殆庶幾也 如而今說將次 주자가 말하길, “하늘은 공자께서 이렇게 성인이 되도록 내버려두었고, 가서 그의 局量을 제한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어리석고 불초한 사람은 하늘이 제한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역시 하늘이 그를 제한한 것과 같다. 만약 이러한 이치라면, 성인께서는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어리석고 불초한 자는 한층 더 증진하고자 해도 할 수 없으니, 그저 여기에서 얽매여 멈춰 있는 것이다. 殆는 거의라는 말이니, 지금 將次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子聞之曰 大宰知我乎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공자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태재가 나를 알겠는가? 나는 젊어서 빈천했으므로 비천한 일을 많이 하여 재능이 많지만, 군자는 재능이 많은가? 많지 않은 법이다.”라고 하셨다.
言由少賤故多能 而所能者鄙事爾 非以聖而無不通也 且多能 非所以率人 故又言君子不必多能以曉之 어려서 비천하였기 때문에 잘하는 것이 많지만, 잘하는 것이 비천한 일일 따름이니, 이는 성인이라서 통달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또한 능한 것이 많은 것은 남을 통솔하는 바가 아니므로, 따라서 다시 군자는 반드시 능한 것이 많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깨우쳐준 것이다.
朱子曰 鄙事如釣弋獵較之類 주자가 말하길, “비천한 일이란 낚시나 주살 쏘기나 엽각(내기 사냥)과 같은 부류다.”라고 하였다.
朱子嘗問學者曰 大宰云夫子聖者歟 何其多能也 是以多能爲聖也 子貢對以夫子固天縱之將聖又多能也 是以多能爲聖人餘事也 子曰 吾少也賤 故多能鄙事 君子多乎哉 不多也 是以聖爲不在於多能也 三者之說不同 諸君且道誰說得聖人地位著 諸生多主夫子之言 曰 大宰以多能爲聖 固不是 若要形容聖人地位 則子貢之言爲盡 蓋聖生於德 固不在多能 然聖人未有不多能者 夫子以多能不可以律人 故言君子不多 尙德而不尙藝之意 而其實聖人未嘗不多能也 주자가 일찍이 배우는 자들에게 물어 말하길, “태재는 ‘공자가 성인일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 것이 많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는데, 이는 잘하는 것이 많은 자를 성인으로 여긴 것이다. 자공은 ‘공자는 본래 하늘이 거의 성인이 되도록 풀어주셨고 또한 잘하는 것도 많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잘하는 것이 많은 것을 성인의 나머지 일로 여긴 것이다. 공자님께서는 ‘나는 어렸을 적에 비천했기 때문에 잘하는 비천한 일이 많다. 군자가 이렇게 많을 수 있는가? 많지 않은 법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聖이란 잘하는 것이 많은 것에 있지 않다고 여기신 것이다. 세 사람의 말이 같지 않으니, 제군들은 또한 누가 성인의 경지를 잘 드러나게 말했는지 말해 보거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학생들은 대부분 공자님의 말씀에 주안점을 두었다. 말하길, “태재가 잘하는 것이 많은 것을 聖으로 여긴 것은 본래 잘못된 것이다. 만약 성인의 경지를 형용해야 한다면, 자공의 말이 지극한 것이 된다. 대체로 聖은 덕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본래 잘하는 것이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성인 중에서 잘하는 것이 많지 않은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공자께서는 잘하는 것이 많은 것으로써 사람들을 규율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군자는 많지 않은 법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덕을 숭상하지 기예를 숭상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사실은 성인께서 잘하는 것이 많지 않았던 적이 일찍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又曰 大宰知我乎以下 煞有曲折意思 聖人不直謂大宰不足以知我 只說大宰也知我 這便見聖人待人恁地溫厚 또 말하길, “태재 같은 사람이 나를 알겠는가? 라는 글 이하에는 迂餘曲折한 뜻이 많이 들어있다. 성인께서 태재가 나를 알기에 족하지 않다고 곧장 말씀하시지 않고, 그저 태재 같은 사람이 나를 알겠는가? 라고만 말씀하셨으니, 여기에서 곧 성인께서 사람을 대함이 이렇게 온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多能雖不害其爲君子 然爲君子不在乎多能 남헌장씨가 말하길, “잘하는 것이 많은 것은 비록 군자가 됨에 해가 되지 않지만, 그러나 군자가 되는 것은 잘하는 것이 많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若以多能率人 則人將徇末而忘本 尙才而不務德 卒無以入聖賢之域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만약 잘하는 것이 많은 것으로써 사람들을 통솔한다면, 사람들은 장차 말단을 따르면서 근본은 잊어버릴 것이고, 재주를 숭상하되 덕에는 힘쓰지 않게 되어, 결국은 성현의 경지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
4 | 牢曰 子云 吾不試 故藝 뇌가 말하기를, “옛날에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등용되지 못했기 때문에 재주가 많다.’라고 하셨다.”고 했다.
牢 孔子弟子 姓琴 字子開 一字子張 試 用也 言由不爲世用故 得以習於藝而通之 뢰는 공자의 제자이고 성은 금이며, 자는 자개이고 또 다른 자는 자장이다. 試는 기용한다는 뜻이다. 이는 공자가 세상에 쓰이지 않았기 때문에 재주를 익혀서 그것에 통달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 吳氏曰 弟子記夫子此言之時 子牢因言昔之所聞 有如此者 其意相近 故幷記之 오씨가 말하길, “제자들이 공자 선생님의 이 말을 기록할 때, 금뢰가 옛날에 들은 바 중에서 이와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하였고, 그 의미가 서로 비슷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아울러 기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吾不試故藝 朱子曰 想見聖人事事會 但不見用 所以人只見小小技藝 若使其得用 便做出大功業來 不復有小小技藝之可見矣 누군가 ‘내가 기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예에 능하다’는 말에 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생각하건대, 성인께서는 일마다 모두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지만, 그러나 기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작디작은 기예만을 보았던 것이다. 만약 공자께서 기용될 수 있었다면, 큰 공업을 해내셨을 것이니, 다시는 작디작은 기예를 보는 경우가 있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多能亦聖德無不通之驗 大宰認多能爲聖 知其末不知其本也 子貢謂聖而又多能 知其由本而該末也 孔子自言與琴牢所聞 皆謙辭耳 신안진씨가 말하길, “잘하는 것이 많은 것 또한 聖德이 통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의 징험이다. 태재는 多能을 聖으로 인식하였는데, 이는 그 말단만을 알고서 그 근본은 알지 못한 것이다. 자공은 聖이면서 또한 多能을 말하였는데, 이는 근본에 말미암으면서 말단도 갖출 줄 안 것이다. 공자님께서 스스로 하신 말씀과 금뢰가 들은 바는 모두 겸손의 말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