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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성령과 지혜로 충만의 달☜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행14:1-28절) 영적인 침투작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절).
이것은 누구든지 천국을 원하는 자는 보물창고에 무한정으로 들어와서 좋은 것들을 모두 차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신 후, 천국 문은 활짝 열려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우리를 위해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 붙잡으면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점잖은 척하거나 침묵하고, 체면을 차리거나 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염치나 체면 같은 것은 모두 버리고, 결사적으로 습격할 때, 자기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가만히 앉아서 침노(습격)를 당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국은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특수부대를 적지에 침투시켜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아주 중요한 선교전략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특공대 역할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완전히 적지(敵地)와 다름없는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를 뚫고 들어가 아주 강력한 능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예수를 믿게 하고, 결국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장로를 세움으로써 자기 임무를 완수하게 됩니다.
물론 여기에도 치열한 영적 전투(戰鬪)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 많은 기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들이 하는 일에 화가 난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돌로 쳐 죽이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버린 사도 바울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원래 우리 기독교는 이런 침투작전(浸透作戰)에 능한 사람들입니다.
구약 여호수아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간 기습작전으로 가나안(本土)사람들을 이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는 너무나 대중화되어서 이제 모든 것을 대규모 행사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대규모 행사가 생각보다 실속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어쩌면 과시행사로 끝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 속으로 효과적으로 파고 들어가 복음을 전하는 각 셀(Cell)공동체 정예부대(精銳部隊)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Ⅰ.복음이 일으킨 소동
14:1-2절)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사도 바울과 바나바기 이고니온을 전도 할 때부터 이들의 호칭이‘사도(使徒)’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원래 사도(使徒)란 예수님의 11제자였습니다. 그리고 나중 추가된 맛디아가 있습니다. 그러나 니고디온에서 전도하면서 바울과 바나바에게‘사도(使徒)’라는 칭호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원래 ‘사도(使徒)’라는 직책은 두 가지 의미로 갖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사역을 처음부터 본 사람 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세운 제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책임지는 사람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반드시 사도들의 증거 사도신경(Tne Apostles' Creed)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을 사도라고 칭합니다. 즉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특명 대사(大使)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여기서 바울과 바나바에 대하여 ‘사도’라고 한 것은 교회의 기초라는 의미도 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복음의 사신(使臣)이라는 의미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 왔을 때도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가장 먼저 유대인의 회당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이유는 굳이 유대인들을 회당에서 빼앗아 내겠다는 의미보다는 유대인들이 먼저 택(擇)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먼저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는 바울이 1,2,3차전도 여행 때, 들렀던 곳입니다.
나중에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쓰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로마 역사를 보면, 순교자가 가장 많이 나왔던 곳도 바로 이 소아시아 지역이었고, 다른 여타 지역에 비해 종교지도자가 가장 많이 배출되었던 곳도 이곳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아 가장 먼저 구브로에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보'라는 곳에서 박수 엘루마라는 남자 무당(巫堂)과 영적 대결을 벌여서 이깁니다. 곧이어 배를 타고, 육지로 나와 북쪽으로 직행하는데, 그곳이 비시디아 안디옥이었습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바울의 복음을 전해들은 이 지역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는데, 온 도시 사람들이 모여서 바울의 설교를 들으려고 했습니다.이고니온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동쪽으로 140킬로 떨어진 곳인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많이 사는 이곳은 상업으로 번창했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이고니온에서도 선교한 방법은 이전과 같았습니다. 즉 그 도시에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많이 있었고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의 기쁜소식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사탄(詐誕)으로 하여금 상당히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신(使臣)은 예수님이 보내어 온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사신(使臣)은 누구에게나 갈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먼저 유대인들이 이 복음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 완전히 구원(救援)을 받은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 회당은 마치 임시 피난처와 같은 곳이요,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야만 그들의 구원(救援)은 온전한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당연히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고, 실제로 그곳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많은 수의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반면, 바울의 행동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하는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너는 하필 회당에 와서 다른 이상한 종교를 가르치고 사람들을 빼앗아 가느냐?* 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처음에는 점잖게 겉으로 나타내지 않고, 이방인들에게 좋지 않은 말들을 해서 악감(惡感)을 갖게 하는 정도로 복음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사도(使徒)는 그곳에 있으면서 많은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14:3절)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두 사도는 이고니온에서 권위 있는 유대인들로부터 방해와 반대를 받으면서도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 말씀에 빨려 들어가 그 말씀 중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위로를 받았고. 죄 용서의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즉 병 고치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고니온의 사탄(詐誕) 세력은 이 두 사도(使徒)로 인하여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고이온에서 복음(福音)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조용했고. 언제나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라는 두 사람이 나타나 복음을 전하면서부터 이고니온의 영적 세계의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즉 복음의 권세가 나타나면서 사탄(詐誕)의 힘은 약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詐誕)으로 하여금 화나게 만든 것입니다.
14:4-5절)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그동안 평온하기만 했던 이고니온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한 번 들어오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복음이 들어오는 곳에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복음으로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그 다음에는 무서운 심판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을 때, 동방에서 온 박사들 때문에 예루살렘은 소동이 났습니다.
그러나 정작 베들레헴 사람들은 천하태평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아기를 낳으려는데 방을 내주지 않아서 마리아는 짐승의 우리에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태평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 헤롯이 군대를 보내어 두 살 아래의 남자 아이를 모두 죽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도 온 갈릴리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오셨을 때도 예루살렘에서 동일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난리가 일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도래할 신호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도 좋은난리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난리요, 말씀의 난리요, 축복의 난리입니다. 그러나 정작 믿는 사람들이 이런 난리를 일으키지 못하니까 이젠 사탄(詐誕)이 난리를 일으킵니다. 즉 정치인들이 난리를 일으키고,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난리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조용히 있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지 않는 것이요, 결국 마귀(魔鬼)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서로 싸우고, 난장판을 일으키는 것은 잘못입니다. 교회는 심령 부흥의 난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심령부흥은 사탄(詐誕)으로 하여금 화가 나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이고니온이 완전히 사탄(詐誕)의 세력 안에 있었는데, 단 두 사람 때문에 자신의 영역이 모두 다 허물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탄(詐誕)은 유대인들과 관원들을 통해서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두 사도(使徒)를 능욕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생명의 위협 중에서 두 사도(使徒)는 이고니온에서 도망쳐 빠져 나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고니온에 다시 돌아와서 교회를 더 굳건히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복음 전도자라는 것이 얼마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완전히 복음의 특공대(特攻隊)였습니다.
Ⅱ.루스드라에서 일어난 일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에서 도망쳐 나온 후, 간 곳은 그곳에서 남쪽으로 30킬로 떨어진 루스드라였습니다. 이 루스드라는 디모데의 고향입니다. 아마 이때 디모데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당시 루스드라는 이고니온에 비하여 촌이었고, 이교적인 색채가 강한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고니온에서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체험을 하게 되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14:8-10절)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아마 루스드라 사람들은 이고니온 사람들처럼 성경 지식이 없어서 바울과 바나바가 설교를 해도 어리둥절했던 것 같습니다. 즉 사람들 중에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저 사람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루스드라에 심령 부흥의 기폭(旗幅)제 역할을 한 일대 큰 기적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본문 14:8-10절은 사건의 전말(顚末)을 기록하고 있는데, 바울의 설교를 듣는 중에서 한 앉은뱅이가 굉장히 관심을 갖고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다보면, 어떤 사람은‘이 사람은 조금만 설득하면 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반응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루스드라에서는 좋은 옷을 입은 훌륭한 사람들보다는 한 장애(障礙)인이 복음에 관심을 보였는데, 바울의 마음속에‘이 사람은 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즉시 마음속에 성령께서 아주 강한 확신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즉‘그 장애인을 일으켜라’는 마음의 확신이 들었던 것입니다.사도 바울은 그 즉시 큰 소리로 그 장애인에게‘네 발로 일어서라’고 외쳤을 때, 그 사람이 그 즉시 뛰면서 걸어 다녔습니다.
바울이 행한 이 기적적인 사건은 바울의 루스드라 전도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轉換點)이 되는 사건이었습니다.루스드라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고, 바울과 바나바가 신(神)이라고 생각하고. 큰 절을 하려고 했습니다.
14:11-13절)무리가 바울이 한 일을 보고 루기오니아 방언으로 소리 질러 이르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헤르메스라 하더라. 시외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바울이 행한 것은 일종의 명령이었습니다. 그 명령을 듣고 병마(病魔)가 굴복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신(神)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면 웃을 일이지만, 이 사람들에게는 아주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바나바는 사람이 잘 생기고, 풍채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神)중에서 최고의 신(神)인 제우스 신(神)이라고 해서 ‘쓰스’라고 하고, 바울은 설교를 아주 유창하게 했기 때문에 연설을 잘하는 신(神)인‘헤르메스’라고 해서‘허메’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아예 제우스 신전(神殿)에 있는 제사장을 불러서 소(牛)와 花環을 가지고 대문에 와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능력은 보았지만,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에 바울이 행한 일을 그리스 신(神)의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그리스 신(神)과 기독교 신앙 간에 한 바탕 대결(對決)이 붙었습니다. 즉 이고니온에서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대결(對決)했는데, 루스드라에서는 그리스 신(神)과 기독교가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온갖 미신적(迷信的)요소로 뿌리 박혀 있는 루스드라 시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의 능력을 증거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의 우스광스럽고, 어처구니없는 행위에 대해 아주 단호하면서도 확신 있게 대처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찢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행위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격렬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14:14-15절)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우리가 보기에 타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미신적(迷信的)인 종교행위가 우스광스럽고. 말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그들에게는 아주 심각한 것이요, 그들의 머릿속에 아주 깊이 뿌리박힌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조상숭배(祖上崇拜)라든지, 아니면 바위나 나무를 보고 비는 이런 미신적(迷信的)인 행위를 하는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소중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십 년간 혹은 수백 년간 미신(迷信)에 바졌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미신(迷信)으로 꽉 붙들고 있는 사탄(詐誕)의 권세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위한 복음 전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거의 복음 전도의 모범 답안과 같은 것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가장 어필(御筆)하는 것이‘하늘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강한 메시지는 없습니다. 지금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며, 그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계신다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다음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4:16절)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였으나”
즉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우상(偶像)을 섬기고, 사는 것을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 내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문제는 그리스도가 오셔야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을 불러서 예수님께로 나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예수님을 통해서 다 해결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의 표시가 무엇입니까?
14:17절)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인간들이 이 세상에 누리는 모든 행복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膳物)이요, 사랑의 표시입니다. 단지 우리 인간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들이 제사를 지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14:18절)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만일 바울과 바나바가 이런 식으로 옷을 찢고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그만큼의 예우(禮遇)를 하려고 하는데, 왜 쓰스와 허메가 거절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靈的)으로 보면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즉 우상(偶像)과 하나님을 분명히 구별해서 절대로 사람이나 우상(偶像)에게 절을 하거나 숭배(崇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Ⅲ.사탄의 무서운 반격
바울과 바나바의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선교의 최종적인 성과를 한번 생각해 본다면, 이 고니온에서는 난전(難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완전한 승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한 패배도 아니었습니다. 사탄(詐誕)은 혼전(混戰)중에 전쟁의 마지막 카드인 바울과 바나바를 죽이려는 음모를 획책(劃策)합니다.
결국 바울과 바나바는 그 곳에 계속 머물지 못하고, 이고니온에서 도망을 쳐 나왔습니다. 그러나 루스드라 선교는 완전한 승리(勝利)였습니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한 장애인 형제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기적으로 아예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神)으로 숭배(崇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스드라에서 성공했다고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곧바로 사탄(詐誕)의 무시무시한 반격(反擊)이 가해졌기 때문입니다.
14:19절)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적(敵)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부터 바울을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늑대가 거리를 두고 조용히 양떼를 따라오듯 유대인 과격분자들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그리고 이고니온에서 세력을 합쳐서 드디어 루스드라에까지 들이 닥쳤습니다.
그러고 사람들을 충동(衝動)질해서 드디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을 화나게 하는 자를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따라가서 생명을 해하려 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돌에 맞아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죽은 바울을 질질 끌고 갔는지, 들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성(城)밖으로 데려고 가서 버렸습니다.
보시다시피, 정말로 바울의 영적(靈的)전쟁을 치열했습니다. 바울은 첫 번째 선교 여행에서 결국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들이 둘러서서 기도할 때,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14:20절)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아마 형제들은 둘러서서 바울을 위해서 마지막 기도를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바울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어쩌면 바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잠깐 기절한 것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정황을 보면, 분명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죽이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기 위해 힘껏, 그리고 많은 돌을 투척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도 깨지고, 팔 다리도 부서지고, 등과 다리도 부서졌을 텐데, 돌에 맞아 쓰러지면,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가 깨어난다고 해도 바로 일어서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곧바로 벌떡 일어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전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이 아니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바울에게 일어났습니다. 즉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아무리 복음의 원수들이 강해도 그 원수들이 하나님의 종은 이길 순 없습니다. 끝까지 죽이고자 했지만 멀쩡하게 다시 살아서 복음을 전하는데,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들이나 이고니온의 유대인들도 바울에게는 항복(降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둘러서니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에워싸서 기도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더베는 루스드라 바로 밑에 있는 곳이요, 거기서 더 내려가면, 바울의 고향인 다소가 나옵니다.
바울은 그렇지 않아도 돌에 맞아 죽었던 경험이 있고, 또 니고니온과 비시다아 안디옥을 가면,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인 다소로 해서 안디옥으로 들어가는 길에 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향으로 가지 않고, 자신이 복음을 전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면서 뿌린 씨를 거두는 것을 보게 됩니다.
14:21-23절)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그들의 믿는 주께 그들을 위탁하고”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씨만 뿌렸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렸으면, 추수를 해서 하나님의 곳간에 넣어야 합니다. 대개 처음 씨를 뿌릴 때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적이 많이 일어나면 큰 반응이 있습니다.
그러나 뿌린 씨를 거두는 것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추수(秋收)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그냥 흩어지게 한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로 모이게 했고, 교회(공동체)마다 신실하고 충성된 장로들을 세워서 하나님 나라의 알곡들이 되게 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용기와 결단이 얼마나 놀라운지 보게 됩니다. 더베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고향집이 나옵니다. 아마 거기에 아버지나 어머니나 형제들이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에는 그를 죽였던 살인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가족들을 만나는 것보다 또 자기 목숨을 안전하게 하는 것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거두어서 하나님의 곳간에 알곡이 되게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믿는 자들을 교회(공동체)로 모이게 해. 신실하고 충성된 장로들을 안수하여 세움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선교를 성공적으로 매듭을 짓습니다.
처음 갈라디아 지역으로 들어갈 때는 특공대(特攻隊)로 갔었는데, 이제는 이미 사탄(詐誕)의 영토를 빼앗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시시하게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복음 안에 거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환난의 흔적(표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은 흉터가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루스드라에서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유대인과 헬라인은 더 이상 바울을 해치지 못합니다.
아마 그들도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즉 분명히 우리 손으로 죽여서 성(城)밖에 버렸는데, 어떻게 사람이 다시 돌아다니는 걸까?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마 루스도라 사람들이 보았다면, 다시‘쓰스’나‘허메 신’라고 해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복음(福音)이라는 것은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조용하고, 암전하게 믿는 것은 사탄(詐誕)으로 오판(誤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상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는 전략(戰略)을 가져야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직접 부딪쳐보면, 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더 큰 능력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북한 핵무기(核武器)만 보이고, 우리나라에 있는 복음(福音)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분명 우리가 잘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잔은 척 침묵하지 말고 큰 능력을 받아 다시 한 번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癸卯年에는 우리 각 셀(Cell)공동체 여러분이 그러한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504장 *주님의 명령 전할 사자여*
오늘의 묵상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편탄하게 하라(사40:3).
*매일 새벽 4-5시 기도하는 습관을 가집시다.*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46:5)
오늘의 기도제목
▣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주님! 셀(cell)공동체, 예배공동체, 선교공동체로 부흥.성장케 하옵소서.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고 하신 주님! 내게 맡겨주신 재물과 나의 생명 주님께 드려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합니다.아-멘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교갱원의 엄격한 규칙을 지켜 낙오자 없이 모두 성숙한 복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 癸卯年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을 세워 성장하는 해*
※후반기는 필(必)히 행정서식을 작성제출해야 교갱원소속 A급셀(cell)로 자립 새출발 할 수 있습니다.(정착완료. 양식보존. 새벽기도. 교갱원설립후원. 춘추심방. 실명과 소통)
교갱원은 1단계 묵상, 생명의 양식과 필수과목(26과). 2단계 생명의 양식과 전도학교(13과).3단계 생명의 양식과 청지기 대학(17과)으로 정예부대가 됩니다. 누구든지 전화신청받습니다(유료 : 각 교재 1과당=1만원, 방법 : 교갱원 설립 때까지 임시 카톡영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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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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