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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두레박은
깊은 물을 끌어올리듯
긴 사유는
깊은 생각을 끌어올려
우리의 영혼을 시원케 합니다.
무더운 폭염에도
깊은 계곡에 가면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물이
흘러내립니다.
손을 담그고
발을 담그면
온 몸과 마음이
새롭게 됨을 경험합니다.
말씀이 하늘이 내린
생수입니다.
하늘에서 내린 생수를 마시면
영혼이 소생케됨을 경험합니다.
이번에 미주 서부야영회
김상래 목사님을 통해서 전달해 주시는
하늘의 메시지는 우리의 영혼을 시원케 하는 생수였습니다.
다시 한번 그 말씀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뿌리를 땅에 더욱 깊게 박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부는 것보다 더 두려운 사실은
뿌리가 얇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닌 지를 두려워해 합니다.
삶의 기반이 되지 못할
무너져 버릴 가벼운 것들만을 붙잡고 살아 오지는 않았는지
자신을 깊이 사유할 시간입니다.
흔들림을 통해서 우리는 더 깊이 뿌리내림과
더 간절히 주님께 의탁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주여! 우리가 만나는 모든 환란과 시련들이
더욱 주님께 가까이, 더욱 주님을 붙잡는
영혼을 정결케 하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절대로 호기심에 따라 움직이면서 호들갑스럽게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이벤트 추구자가 아니라, 성경이 주는 메시지를 깊이 새기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소식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고 조급해지는 것이 아니라, 침착하면서도 강렬한 영적 경성이 일어나야 하지요.
성경에서 "가깝다"라고 말하며 제시하는 본문 여섯 가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첫날, 로마서 13장 11절 "구원이 가까우니 빛의 갑옷을 입으라." 빛의 옷을 입는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말 조심하고, 화 잘 다스리고, 일 제대로 하라는 말씀이었어요.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 정말 말 조심하는 것부터 연습해야 합니다. 내키는 대로 말하고 뒷담화할 거면 차라리 입을 다물자고 첫날 호소드렸습니다.
둘째 날, 빌립보서 4장 5절 "주께서 가까우시니 너희 관용을 알게 하라." 좀 너그럽게 살아라, 자식들에게마저도 너그럽고 관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셋째 날, 히브리서 10장 25절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라."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모이는 것을 습관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재림 준비는 고독한 개인 영성 추구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신앙으로 함께 준비하는 것임을 말씀해 줍니다.
넷째 날, 야고보서 5장 9절.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 세상에 대해 인내하고 원망하지 말고, 공동체 내의 여러 어려움으로부터 잘 참고 인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인내란 그저 참는 것이 아니라 역지사지하여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To stand under is to understand(아래에 서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다섯째 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뜨겁게 사랑하라는 베드로전서 4장 7절 이하의 말씀을 본문으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 - 베드로전서 4장 7~11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첫 번째,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 '정신을 차리고'라는 단어는 마가복음 5장 15절에서 거라사인 지방의 군대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정신이 온전하여 앉아 있는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와 똑같습니다. 다시 말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미치지 않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3절에서도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며 '미쳤다'의 반대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이 단어의 의미가 더 선명해집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여기서 '지혜롭게 생각하라'가 바로 '정신을 차리고'와 같은 어원입니다. 즉,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마땅히 생각해야 할 생각 이상의 것을 하지 않고 지혜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마지막 때라고 해서 미친 것처럼 광분해서 움직이거나 마땅히 해야 할 생각 이상의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동해서 들뜨지 않고, 말씀 안에서 자기 상태를 침착하게 지키는 것이 정신을 차리는 것입니다.
'근신하여'라는 말도 '정신을 차리고'와 거의 동의어로, 신중하고 침착하며 자분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마음 흔들리지 말고 말씀에 근거하여 침착하고 신중하게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종말 시대의 분위기에 휩싸여 합리적인 판단을 놓치지 말고 침착해져야 합니다.
이 지음에서 우리는 재림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시대를 위한 고유한 기별에 대해 꼭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안식일 오후가 되면 자유 Q&A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어느 시골 마을에서 질의응답을 할 때 한 장로님이 일어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설교를 듣고 재산 정리하고 아이들 학교 중단시키고 시골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설교한 분 중에는 그렇게 한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에게서든 사과를 받고 싶습니다. 목사님도 교회 지도자이시니 사과하십시오."
여러분, 시골에 들어가라는 기별이 틀린 기별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사과하라고 하셨을까요? 그 설교를 듣고 흥분해서 준비 없이 들어갔다가 자녀 교육도 망치고 삶이 힘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설교한 지도자들은 막상 그렇게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장로님께 깊이 사과드렸습니다. 기별이 틀려서가 아니라, 성도들에게 흥분해서 서두르거나 경솔하게 결정하지 않도록, 나중에 뼈저리게 후회하는 방식으로 떠나지 않도록 차분하게 권면하고 안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엘렌 화잇의 권면을 보면 "시골 생활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기에 유익한 환경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연계와 창조주의 역사하심을 바라보고 연구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시골에 간다고 저절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 자들은 흥분한 상태에서 서두르거나 경솔하게 결정해서는 안 되며, 모든 상황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저울질해 본 후에 행동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들은 도시 안에 두고 기관들은 밖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도시는 복음을 전해야 할 현장이기 때문에 예배 드리는 성전은 도시 가운데 세우고, 출판·병원·교육 기관은 도시 밖에 두라는 균형 잡힌 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흥분이나 공포심이 아니라, 침착하고 균형 잡힌 태도로 시골 생활과 재림 준비에 임해야 합니다. 서로를 비난하거나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격려하며 건강한 재림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바울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자다가 깬다는 것은 흥분된 소문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가려 뽑은 기별에는 "오로지 하나님의 성령께서만 건전한 열성을 불어넣어 주실 수 있다. 부드럽게 행하며 깨어 기다리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깨어 기도한다는 것은 재림을 핑계로 까칠해지거나 남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악한 기질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자신의 허물을 알아차리고 성찰하며 기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깨어 기도하는 삶입니다.
이어 사도는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뜨겁게'라는 단어는 감정적인 뜨거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교인들이 간절히 기도했던 것처럼 '간절하게'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두번째, 기억해야할 것은 간절하게 사랑하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죄를 사하지만, 그 피를 흘리게 한 근본적인 동기가 바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잠언 10장 12절에도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고 했습니다. 남의 허물을 도출하고 폭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싸고 덮어주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제가 교수 시절, 학생들의 실수를 감싸주고 스스로 회개하여 바른길로 걸어가도록 덮어주었던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사랑이 죄를 덮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재림 준비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듯, 우리가 주님과 비슷해져야 주님께서 우리를 알아보실 것 아닙니다.
세번째,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원망'은 불평하거나 수군거리는 것(뒷담화)을 의미합니다. 대접할 때 뒤에서 불평하거나 투덜거리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접'에 해당하는 원어는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 이방인이나 낯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뜻합니다.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베푸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대접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사랑하게 만들고, 사상은 편을 가릅니다. 우리는 이념가가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는 신앙인입니다. 가깝지 않은 사람, 나에게 되갚을 수 없는 이웃에게 먼저 따뜻하게 다가가고 대접하는 삶이 바로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서로 봉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봉사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했다고 자랑하거나 공치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것처럼 겸손하게 섬기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말씀 사역이나 구제 사업이나 모두 똑같은 '디아코니아(섬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설교하는 일이나 부엌에서 봉사하는 일이나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한 섬김입니다. 주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근신하여 깨어 기도합시다.
무엇보다 서로 열심으로 사랑합시다.
수군거리지 말고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합시다.
겸손히 서로 봉사하며 섬기십시다.
이것이 바로 참된 재림 준비입니다.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자극적인 소식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 시간에 성경을 펼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말씀 앞에 나의 부족함을 살피며 깨어 기도하는 믿음의 가족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신사적이고 품위 있고 고상하며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이 살아있고, 성령의 지도를 따라 매일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가는 진정한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재림의 소망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세상은 온갖 증거가 있고 사도들의 기별이 있음에도 재림을 믿지 않고 초림마저 부정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종말의 공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적인 수단에 몰두하는 시대입니다.
아버지여, 우리로 하여금 냉철하게 자신을 살펴보게 하시고, 말씀에 비추어 부족한 점을 점검하며 우리 마음속에 주님의 형상이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을 닮아가며, 이웃에게 나누고 베풀고 사랑하는 따뜻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기쁨과 반가움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의 구원이 처음보다 가깝도다
뜨겁게 사랑하라
마음을 굳게 하라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