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살고싶은 곳 - 들판 가운데 자리 잡은 시냇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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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1.04. 21:32조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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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가운데 자리 잡은 시냇가 마을
원주의 주천강(酒泉江)이다. 아주 두메 속이지만 들판이 제법 틔었다. 산이 그리 높지 않으며, 물이 매우 맑고 푸르다. 다만 논이 없는 것이 아쉽고, 주민들은 기장과 조를 심어 생활한다. 서쪽은 적악산(지금의 치악산)이 하늘에 치솟아 인간세계와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난리를 피하거나 세상을 피해서 살기에는 알맞지만, 청천과 상주의 병천과 비교하면 훨씬 메마른 곳이다.
- 『택리지』 「복거총론」
그러나 택리지의 기록과 달리 원주 일대는 조용한 날이 별로 없었다. 삼국시대부터 이 지역은 백제, 신라, 고구려가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던 각축장이었다. 남북국시대는 이곳에 북원경을 두었고 남북국시대 말기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양길이 세력을 키웠다. 한편 횡성군 청일면 봉명리 수리봉에서 발원한 섬강(일명 주천강)과 치악산에서부터 비롯된 원주천에 산골짜기가 많고 수량이 넉넉해서 여러 고을을 적신다. 그중 횡성읍과 원주시 문막읍은 넓은 평야로 인하여 예로부터 다른 고장에 비해 풍요로웠던 곳이다. 그런 연유로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사대부들이 터를 잡고 대대로 이어 살았다. 조선 후기에는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이 지역으로 숨어들었고 오늘날 산이 깊지만 서울이 멀지 않은 원주 일대가 이 지역의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다음에는 고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시냇가에 자리 잡은 지역 중 나라 안에 살 만하다는 곳이다.
고개를 떠나서 들판 가운데 자리 잡은 시냇가 마을은 이루 다 손가락을 꼽을 수 없다. 그러나 공주의 갑천(甲川)을 첫째로, 전주의 율담(栗潭)을 둘째로, 청주의 작천(鵲川)을 셋째로, 선산의 감천(甘川)을 넷째로, 구례의 구만(九灣)을 다섯째로 치는 것이 보통이다.
갑천은 들판이 아주 넓고 사방 산이 맑고 수려하다. 세 줄기 큰 냇물이 들 가운데에서 합류하여 관개할 수가 있고, 땅은 모두 1묘(苗)에 1종(種)을 수확하며, 목화 재배에도 알맞다. 강경이 멀지 않고, 앞에 큰 시장이 있어서 바다와 육지의 이로운 점이 있으니 영원히 대를 이어 살 만하다.
율담은 동쪽으로 높은 산이 솟아 있고 서쪽에는 좋은 밭이 있으며, 남쪽에는 큰 냇물 (고산천이라고도 부르는 만경강 상류)이 있어 논은 모두 1묘에 1종을 수확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기를 잡는 즐거움과 농사를 짓는 이로움이 갑천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또 전주와도 아주 가까워서 이용(利用)과 후생(厚生)이 아울러 갖추어져 있다.
- 『택리지』 「복거총론」
금강의 지류인 갑천이 시내 한가운데를 흐르는 대전은 지금은 옛 시절을 도저히 떠올릴 수 없을 만큼 변화를 거듭한 곳이다. 최근에는 세종특별자치시가 그 인근인 연기와 공주시 일대에 들어선다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중환이 살았던 당시, 물이 좋고 들이 넓어서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고 했으며, 오늘날에도 지리상의 이점 때문에 발전성이 점쳐지고 있다.
그리고 율담은 현재의 완주군 봉동읍 율소리다. 이곳 율소리 북쪽에 있는 밤소는 『한국지명총람』에 “전에는 소가 매우 깊고 둘레에 밤나무가 많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방을 막기 전에는 만경강이 흘렀고, 나라 안에 이름난 생강의 주산지로서 생강 값이 올랐을 때는 살기가 괜찮았는데 중국에서 수입 생강이 들어온 뒤로 농사짓기가 힘들어졌다는 얘기가 들린다. 게다가 봉동에 전주의 제2공단이 들어오면서 땅값이 치솟았으나 지금은 그 거품마저도 사라졌다고 한다. 봉동읍 근처에는 들이 평평하게 펼쳐져 있어서 낙평(洛平)이라고 불린 낙평리가 있으며, 거기서 마그내 다리를 건너면 전주가 지척이다. 또 율소리 근처의 만경강가에는 지형이 오리형국이라 하는 앞대산이 있으며 마그내 다리에서 이어진 삼례의 비비정 앞 만경강(옛 이름은 사탄)은 그 옛날 소금배가 드나들던 곳이다.
이중환은 청주의 작천(지금의 무심천)을 두고 “서쪽에 장명ㆍ금성ㆍ자적ㆍ정좌 등의 마을이 있는데, 골짜기가 아주 많으며 냇물을 농사에 이용할 수가 있어서 옛날부터 부잣집이 많았다”라고 하였다. 지금은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하고 청주시가 충청권의 중심도시로 집중 개발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어 그때나 지금이나 살기에 넉넉한 곳이다.
또한 발원지가 황악산인 감천 유역의 경우, “물을 기름진 논에 관개할 수 있어 논이 비옥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풍년과 흉년을 모른다. 여러 대로 부유한 자가 많아서 풍속 또한 매우 순후하다”라고 하였다. 이곳 감천은 오늘날의 김천 지역인데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고속철도 등 교통의 요지로서 경상도 서북쪽 일대의 중심도시가 되었지만 기상이변이 속출하면서 두 해를 연이은 태풍과 폭우로 인해 큰 피해를 보았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구만은 오늘날 전남 구례군 광의면 일대를 말한다. 이중환은 “지리산은 동쪽으로는 원래 줄기가 있지만 서쪽에는 줄기가 없다. 그러나 작은 줄기 하나가 서쪽으로 뻗었다가 끊어진 곳이 있는데 거기가 곧 구만이다”라고 하여 이곳의 지리적인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이곳은 잔잔하게 굽이쳐 흐르는 강과 그 너머 남쪽에 오봉산이 있어서 산수를 겸비한 데다, 영남과 호남 사이에 끼여서 물자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매우 기름진 넓은 들이 있다. 그래서 “구만 한 마을만을 다른 시냇가 마을과 비교해보면 그곳의 이익이 풍족한 편”이라 하여 생리가 좋은 곳임을 알려 주고 있다.
이중환의 말대로 오늘날의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 일대, 즉 구만은 섬진강 물굽이의 안쪽이 되므로 구만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구만리에는 잔지냇들과 뒷들이 펼쳐져 있고 바로 근처의 오미리에는 금가락지가 떨어진 형국이라는 오리골과, 풍수가들의 전하는 말로 남한의 3대 길지라는 운조루(雲鳥樓)가 있다. 이중환은 이곳을 단지 남해에 인접해 있어서 ‘수질과 토질이 위쪽의 마을들보다 못하다’는 것을 단점으로 들었다. 그러나 현재의 구만리 일대는 온난한 기후도 그렇지만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변에 위치해 있어서 수많은 관광객과 속세를 벗어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몰려들고 있는 곳이다. 이중환은 아래와 같이 이 부분을 마무리한다.
토지 구만리
‘구만’은 섬진강 물굽이의 안쪽이라는 뜻이다. 이 일대는 기후가 온난할뿐더러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변에 위치해 있어 외지인들이 소리 소문 없이 몰려든다.
이 다섯 곳은 지세와 생리가 모두 뛰어나 도산ㆍ하회보다 더욱 훌륭하다. 그러므로 평시에는 여러 대를 이어 살 만한 곳이지만 고개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난리를 피하기에는 불리한 편이다. 이 점이 황강 북쪽 여러 마을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다. 그러나 구만은 동쪽에 지리산이 있어 평시에나 난시에나 모두 살 만한 곳이다.
- 『택리지』 「복거총론」
[네이버 지식백과] 들판 가운데 자리 잡은 시냇가 마을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1 : 살고 싶은 곳,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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