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酒)과 잔(盞)
술은 필요악이다. 지구촌에 술 문화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삭막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우스갯소리인지는 모르지만, 신이 가장 잘 만든 게 술이라고 한다. 적당히 마시면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묘약이다. 하지만 과음하면 건강에 독이 될 뿐 아니라 술의 힘을 빌려 범죄를 저지르게도 하니 절제의 힘이 필요하다.
술을 마시는 잔은 대개 규격화되어 있다. 양주, 맥주, 소주의 잔이 통일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술인 막걸리의 잔은 가지각색이다. 세계적인 술로 명성을 얻으려면 술맛도 좋아야 하지만, 일정한 규격화된 잔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식당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려는데 소주잔을 내놓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술잔의 규격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술 속의 알코올의 농도에 따라 만든다. 양주, 소주, 맥주의 한 잔 속 알코올의 양은 같게 규격화되어 있다. 흔히 주당들이 같은 잔의 술을 마셨을 때 양주가 가장 많이 취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분으로 그렇게 느껴질 뿐 같은 잔의 양을 마셨을 때 취하는 정도는 같다. 막걸리는 맥주의 농도와 같으며 우리의 전통 도자기로 잔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주점이나 식당에 가면 잔이 크고 작음이 제멋대로이다. 맥주 한 병이 750ml로 맥주잔 3잔이다. 막걸리도 맥주와 도수와 용량이 같으므로 3잔이 나오도록 만들어 일반화시키면 된다. 막걸리는 발효주로 적당히 마시면 몸에 좋다고 한다. 세계의 으뜸가는 술로 평가되고 있어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종류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얼마 전에 구미의 박정희 대통령 생가에 다녀왔다. 기념관에 들러 막걸리 술잔이 눈에 띄었다. 도자기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에는 ‘勤勉, 自助, 協同’의 친필과 서명이 된 문양으로 새겨져 있었다. 잔의 크기도 적당하며 모양도 예뻐서 한 쌍(2개)을 샀다. 집에서 반주로 밥그릇에 따라 마셨는데 새로 사 온 잔에 마시니 좋았다. 마실 적마다 그분이 일궈 놓은 업적을 떠올리며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술 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다. 전에는 잔에 술을 가득 채웠으며 잔을 돌리기도 했으며 주고받기도 했다. 또 원샷으로 잔을 비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잔을 돌리지도 않고 자기가 마실만큼 따라서 마신다. 옛 성현들은 절주로 ‘계영배’의 잔에다 마셨다고 한다. 술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다. 거기에 따라서 우리의 고유한 전통주 막걸리의 통일된 잔도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