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휴가 중이었습니다.
초보 엄마라 미리 준비한다고 했는데도 늘 뭔가 부족해서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 잠시도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하고,
회복도 덜 되어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집으로 놀러 와 저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서로 바빠서 못 봤지만 고등학교 시절 영원한 우정을 약속했던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빨래 건조대부터 아이 손톱 깎기,
제가 좋아하는 과일을 모두 사와서는 성심성의껏 저를 보살펴 주었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찾아온 친구는 성경 공부를 같이 하자고 권유했습니다.
예전에 성당에 열심히 다녔던 친구였는데
지금은 개신교회를 다닌다고 하여 조금은 놀랐지만,
친구가 좋다고 하니 단번에 거절하기도 어려워 모임에 같이 나가기로 했습니다.
그 친구는 성경 공부를 하는 저를 위해 성경책과 성가집,
그리고 예쁜 노트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다섯 명 정도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성가를 부르고,
간식을 나누어 먹고서는 약간의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습니다.
친구는 이 모임 외에 또 다른 기도모임을 이끌고 있었고,
수요일마다 수요 예배, 목요일에는 제단 꽃꽂이 봉사,
그리고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음식을 만들어
일주일이 교회 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성경 모임에 이어,
친구는 저를 교회로 데려가기 위해 주일 아침 우리 집 앞에 차를 대기시켰습니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가니 다들 저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과 여유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교회로 바꾸기만 하면,
하느님을 믿는 건 그대로이고,
종교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비롯해 많은 걸 나눌 수 있어 보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교회의 소식지 맨 위에 있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관계를 세속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져 있는 것입니다.
왠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뜨끔했습니다.
애초부터 교회에 다닐 생각이 없었던 저는 친구에게
성당에 다니겠다고 용기내어 말했습니다.
그런 저를 안타까워하면서 얄팍한 신앙심을 답답해하던 친구는
교회 안에서의 영적인 관계가 아닌 관계는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며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좀 씁쓸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좋으신 주님을 주변의 소중한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어하고,
선교를 자신의 소중한 의무로 생각하는 친구의 적극성은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성당에서는 단 한 번도 누군가 저를 붙잡은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 누군가 그랬으면
“성당에서 이러시면 안됩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했을지도 모르지요.
이런 분위기가 쿨한 제 성격에는 딱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천주교인의 인적 자원을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하느님께 큰 영광이 될텐데….’ 하면서 아쉬워합니다.
우리는 쿨한 사람들이 모인 걸까요?
아니면 성당에서 쿨해지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