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48]“천년의 침묵” 오수獒樹 의견비義犬碑
오수獒樹 의견비義犬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 의견비는 아니더라도 오수 의견설화는 한번쯤 들어봄직 하다. 술 취해 잠든 주인을 구하고 숨진 개 이야기이다. 설화說話가 아니고 실화實話였음을 1254년 최자崔滋가 펴낸 《보한집補閑集》이 증언하고 있다. 주인의 이름은 김개인(임실 거령현, 현 지사면 영천리), 술에서 깨어난 김개인은 자신을 구하고 숨진 개를 정중히 묻어주고 무덤에 자신이 갖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주며 슬피 울었다던가. 노랫말은 전하지 않으나 <견분곡犬墳曲>이라는 곡명은 전해오고 있다. 그 지팡이에 싹이 터 엄청 큰 느티나무로 자라났다하여, 그 지역의 지명이 ‘큰 개 오獒’ ‘나무 수樹’내 고향 오수이다.
1937년인가 전라선 공사를 하면서 금암교 아래에서 커다란 돌비가 발굴됐다. 의견과 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비의 전면이 개형상이었기 때문이다. 1939년 5월 14일(동아일보 보도), 현재의 원동산공원으로 이 비를 옮겨 의견비각을 세웠다. 18년 전 뜬 탁본을 바탕으로 학술대회도 열었지만, 뒷면에 거의 마모돼가는 시주자 명단을 읽을 수 있었다. 비의 앞면은 숨진 개가 발자국 네 개를 남기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최근 비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금석문 학자를 초빙, 정밀하게 탁본을 했다. 비의 두제頭題로 보이는 네 글자 판독은 어려우나 맨 끝글자는 ‘비碑’자가 확실했다. 단월檀越(두제를 제외한 시주자 명단)은 7단이 확실했으나 마지막 7단은 완전히 떡이 된 상태로 한 글자도 판독할 수 없다한다. 1단에 14-15명 이름이 적혀 있으니, 6단으로만 해도 80명은 넘는다. 당시 임실 오수리 사람 100여명이 시주를 하여 이 비를 세웠을 것이니, 거주민은 거의 다 참여한 듯. ‘금물대시주’와 ‘대시주’의 이름도 보인다. 사람 인(人)변에 또 우又자를 합한 글자는 ‘거동 의儀’자가 확실한데, 중국의 위진남북조시대에 쓰던 글자이므로, 이 비의 건립연대를 위진남북조시대로 추정할 수 있고, 시주자 이름이 넉 자가 몇 명 되는 것으로 봐 통일신라말이나 고려초일 것이다. 그렇다면, 1천년이 넘은 게 확실한데, 이번 고증에서 비명碑銘과 간지干支만 확인된다면, 세계적인 토픽감이 확실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 1천년 전에 세운 이런 ‘개 비’가 있단 말인가. 오수면민, 임실군민, 전북도민을 넘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비의 건립연대가 밝혀지기를 빌고 또 빌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반려동물 인구가 1500만명이라는데, 지구촌의 반려동물 인구는 몇 억명일까? 독일이든 프랑스든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개 비’를 보러 오지 않겠는가. 오수는 이 유서깊은 비 하나로 그냥 ‘세계적인 반려동물의 성지’로 비상할 것이 틀림없다. 탁본의 글자 하나 하나가 비상한 관심을 끄는 까닭이다. 전북민속문화자료 1호가 될 말인가? 국가문화재 승격은 물론이거니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가 안되란 법도 없을 터.
금석문金石文 학자는 손환일(70) 박사. 대전 유성의 한적한 마을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 탁본을 들여다보고 있다. 조명을 껐다켰다, 옆에서 플래시로 비춰보기도 하고. 그렇게 한 달여, 두제頭題 넉 자 중 현재 두 자를 판독했다. 1단의 시주자 명단 위 마모된 글자 중에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간지干支가 나올 것인가? 아니면 시주자의 벼슬이름일지, 아무도 알 수 없는 ‘1천년 동안의 수수께끼’다. 손박사는 금석문 뿐만 아니라 고문서 번역이 전공인 한문학자라 한다. 민추 교육과정을 수료한 후 청명 임창순 선생의 지곡서당에서 3년여 동안 4서3경을 달달달 외웠다고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많은 성과를 냈다는데, 최근 의견비 탁본 판독 용역을 맡아 머리카락이 빠지고 있다.
세밀한 탁본, 자외선 촬영 그리고 3D 입체촬영 등 새로운 첨단의 과학적 기법까지 동원했으니, 오는 11월이면 마침내 ‘비밀의 문’을 열게 될 것같다. 아, 그날이 오면, 오수개 복원의 주인공들은 춤을 추고도 남을 터. 제발 그리 되기를. 원석原石 사이사이에 새긴 한자를 파악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사람이름 한 명 한 명 읽어질 때마다 신기했다. 손박사와 금석문의 이모저모에 대해 듣는 시간은 유익하고 즐거웠다. 추사 김정희가 발견한 북한산 순수비가 생각났다. 추사는 우리 민족을 위하여 얼마나 큰 업적을 남긴 것일까? 그것을 어찌 돈으로 헤아릴 수 있는 일인가. 손박사의 작업이 탄력을 받아 두제와 벼슬이름이든 간지든
부디 속시원하게 풀어주시기를 빌면서 두손 모아 합자을 한 후 헤어지는데, 왠지 몇 개월 후 빅뉴스, 굿뉴스가 들려올 것같은 즐거운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