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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체 절 명의 순 간(오작교 작전 실화)
장 태 순.
*싸워 보지도 못하고 숨겨놓은 폭발물로 3명 전사, 10여 명 중경상, 당할 때 고통받은 전우들 마음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중상자들 살아생전 트라우마로 받는 고통, 양민 학살로 두 번 상처 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보병 후반기 교육, 각개전투와 독도법을 가르치는 조교로 근무 중,
파월지원자가 없어, 제일 졸병이라는 이유로 첫 휴가증을 회수당하고,
오음리 가서 파월 교육을 받았다.
파월해서 곧바로 격전지 두코 작전에 지원하였고, 대승을 거두었다.
1967년 1월 9일, 맹호 8호 작전 때는, 소대원 절반이 바뀌는 혼란 속에
참전했는데, 대대 OP 682 고지 경비 근무라 편했다.
월남 사람 처음으로 동사했다는 소문처럼 너무 추워 애를 먹었다.
처녀 출전한 신임 소대장이 경험 부족으로 혼선을 빚을 때, 많은 조언과
협조를 해서 인정을 받아, 오작교 작전 때는 상병 3개월 차에 분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오작교 작전은 맹호 26 연대가 송카우에서 투이안까지, 1번 국도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베트콩을 소탕하고, 투이호아에 있는 백마 28 연대는 북쪽 1번 국도 주변에 활동하는
베트콩을 소탕, 민간인들 통행세 부담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펼친 군단 작전이다.
1967년 3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군단 작전 소문이 중대원들을 긴장시키고,
소대 단위 영외 훈련이 잦았다. 2 분대장으로 전입한 의장대 출신 선임 이병장은
보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의장대 시범으로 소대원들
눈을 즐겁게 했지만, 작전 발령에 겁 났는지 병 핑계로 후송 가버렸다.
20일 연대에서 검열관이 직접 나와 군장 검열을 실시했다. 검열관이
상병 분대장 임명을 지적했으나, 소대장은 철회하지 않았다.
분대장은 하사나 선임 병장이 9명의 분대원을 통솔한다. 파월 선임에 분대원들을
충분히 장악, 지휘 능력을 인정받았고, 계급장 부착이 없을 때라 가능했다.
내가 속한 기갑 연대 3 대대는 26 연대에 배속, 작전에 참전했다.
개전 이튿날, 해발 100 정도 산을 오르는데, 8부 능선쯤에 30여 m 폭 수렁논이 있었다.
진흙이 무릎까지 빠지는데 경계병도 없이 중대 병력이 횡대로 기동하고 있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초등학교 운동장 정도의 개활지가 있었고,
오른편에 마을이 있는데, 2 소대원들이 이미 마을에서 주민들을 데리고 나왔다.
20여 명이 넘는 것 같은데 마구 떠들어 댔다. 그들을 헬기 편으로 후송시키고,
밤에 그곳에서 숙영 하게 되었다. 첫 근무자 교대 무렵, 비상이 걸렸다.
무전기로 알아보니 베트콩 한 명이 지나갔다고 했다. 위치로 봐서는 이곳에서 중대
전술 기지를 구축하고 주변을 수색 정찰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희망 사항이다.
24일 우리 11 중대는 종일 여러 곳을 수색 정찰하고, 석양 무렵 숙영지를 준비했다.
중대장은 1 소대장에게 분대 병력을 인솔하고 매복을 나가라고 지시했다.
장소는 2일 전 숙영 했던 곳으로 베트콩 한 명 놓진 미련 때문에 매복을 지시한 것 같다.
그곳을 가는 길은 가파른 비탈길이었다. 소대장은 서둘러 저녁 식사를 하고,
무장한 1 분대원을 인솔 출발하고, 남은 병력들은 호 작업을 하고 있었다. 20여 분 지날 때
'따다 콩 따다 콩' 적 총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아군이 응사하는 총소리가 요란하다.
"지리산이다. 낙동강 하나 응답하라. 총소리가 웬일인가? 이상"
목소리 큰 중대장이 외쳤다.
"낙동강 하나 저격받았습니다. 분대장 전사, 소대장 부상, 분대원 두 명 부상, 잠자리 요청합니다. 이상!"
"뭐! 전사라고, 사주 경계 철저히 하라! 당장 지원 병력 출동 시키겠다.
야! 60mm 조금 전 1 소대 왼쪽으로 집중 포탄 날려라. 1 소대 잔류병 0,5초 내로
무장하고 집합하라! 중대 전 병력 비상경계 태세 임하라!"
중대장의 불호령이다. 박격포 2문이 연달아 포탄을 날렸다.
긴장과 비통에 젖은 우리는 총과 실탄, 수류탄만 휴대하고, 신속하게 집합, 출발했다.
가는 길은 바위가 듬성 있었고, 사람이 왕래한 길을 때라 가다 보니 비탈길은
70도 경사는 되는 것 같았다. 바나나 숲, 왼쪽으로 견제 사격을 실시하며 진격,
8부 능선쯤에서 아연실색, 파랗게 질려 있는 1 분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소대장은 전사한 분대장을 붙잡고 오열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김하사와
부상자들을 정상 헬기장으로 옮겼다. 그곳은 이틀 전중대가 숙영 했던 장소였다.
멀리 우회하지 말고, 위에서 바나나 숲을 수색했더라면 지금 같은 불상사가 없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더욱 분했다. 헬기로 그들을 보내고, 태양이 서산에 기울어
서둘러서 바나나 숲에 위협사격을 하면서, 수색해 보니 땅굴이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입구가 너무 좁아 우리는 아무리 작은 체구라도 들어갈 수 없었다. 수류탄이나
몇 발씩 투척하고 귀대했다. 파월 8개월여 만에 처음 당하는 참사라 충격이 컸다.
김하사는 하사관 학교도 졸업한 장기 복무자인데도 1차 파월자들을 선임 대우해 주고, 소대에서
기둥 역할했는데, 너무 안타까운 손실이다. 소대장이 새로 오면 또 혼란이 올까 봐 그것도 걱정이다.
부중대장 곽중위가 소대장으로 부임했다. 이곳 지형은 높은 산은 서쪽으로 멀리 보이고,
해발 50 ~ 200 정도 산들이 있고, 사이에 농경지가 있었다. 울창한 정글은 없었다.
소대장 인솔로 첫 수색 정찰을 나가는데, 오전 내내 기동 중 산을 넘게 되었다. 산아래에
이곳에서 보기 드문 아주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쉬지 않고 이동한 우리는 벌써 땀으로
온몸이 젖어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견제할 틈도 없이 뛰어들었다. 소대장이 소리 질렀다.
"야! 분대장들 경계병 세워! 이곳에서 점심 식사하고 출발한다.
수통물에는 반드시 소독약을 넣도록 하라!"
분대장들은 사주경계를 세우고, 교대로 너무 물이 깨끗해 옷 입은 대로 물에 들어가라고 했다.
소독약 넣도록 강요했지만 냄새가 독해 말들을 듣지 않았다.
2시간여 냇물을 거슬러 오르다 보니 약간 언덕에 촌락이 있었다. 첫 번째 접근하던 첨병이
열린 대문으로 들어가다 코를 막고 뛰쳐나왔다. 외양간에 어미소 세 마리가 죽어 있었고,
구더기들이 내장을 다 파먹어, 썩는 냄새가 진동한 것이다.
소 썩은 오물이 냇물로 내려갔다고 생각하니 먹을 수도 없고, 급수가 어려운
상황인데 버릴 수도 없어 난처했다.
우리는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작전에 임했지만 멀리 피난 갔는지, 방공호에 숨었는지, 베트콩은
커녕 민간인도 첫날 본 후로는 나타나지 않았고, 개, 돼지 등 가축들이 뛰쳐나와 약 올렸다.
4월 10일, 200 고지 계곡에 베트콩이 있다는 첩보로 수색정찰 명령이 하달되었다.
소대장은 병력을 횡대로 투입했다. 우리는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임무 수행했다.
'군인은 자기를 알아주는 상관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말이 있다.
소대 단위 파견생활이 많아 중대장은 관등 성명만 알다가, 민만 쾌 중대장이 부임,
20여 일 같이 생활하면서 그의 소탈한 성품과 부하를 아끼는 마음을 읽고,
중대장의 명예 회복과 전사한 김하사 복수를 위해 베트콩을 잡자고 다짐했다.
오전 내내 베트콩 색출에 혈안이 되어 강행군하고, 목표 X1 지점에 도착했는데 바람
한 점 없고, 약간 경사라 병력들 휴식하기가 못마땅했다. 20여 m 아래로 볼록한 봉우리에
지도상 100 고지인데 개인호를 팠다, 묻은 흔적이 어렴풋이 보여 소대장이 그리로 인솔했다.
북동쪽 300여 m 전방에 50여 호쯤 되는 마을이 보이는데 집들이 크고 부촌 같았다.
A.R부사수 이상병이 물이 없다고 죽을 상이라 남은 물을 주었다.
"오늘 여기서 매복할까 한다. 각 분대에서 세 명씩 차출, 수통들을 수거해서 저 아래 강물에
가서 물을 떠 오자, 야간에 전방 보이는 마을을 세심히 관찰하고, 내일 수색하도록 한다."
민둥산에 허리 정도 닿는 나무가 몇 그루 있어, 내려 쬐는 태양에 참지 못하고
방탄조끼들을 벗어 놓고 풀어헤친 모습들이다.
차출된 병력이 분대별로 서고, 앞에 소대장, 선임하사 등 소대본부 요원들이 서자
이하사가 집합 신고한 뒤 우리 분대원을 첨병으로 보냈다. 정삼석이 내리막길로 내려가고
권영준까지 내려간 잠시뒤 "쾅!!" 지축을 뒤 흔들리는 폭발음과 동시 새까만
연기와 파편, 흙먼지가 뒤범벅 하늘을 가리더니 우수수 쏟아지면서,
앞에 정렬해 있던 전우들 순간에 쓰러지며, 잠시 정적이 감돌고 이어
"아이코! 나 좀 살려줘! 위생병!?" 외마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기 시작했다.
귀가 먹먹하고 눈이 아찔해졌다. 첨병 나간 분대원이 걱정되어 "정삼석! 권영준!" 불렀더니
"분대장 우리 괜찮아요." 정삼석 대답했다.
"태순아 나 좀 살려줘!" 돌아보니 위생병이 다 죽어가는 소리로 불렀다. 위생병은 한때
작전지에서 (8호 작전) 잠자리도 같이하며 이놈 저놈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전우였다.
"야! 너 이게 웬일이냐?" 달려들어 품에 안아 보니 전신에서 피가 나고 파편에 그을려 엉망이었다.
우선 옷을 벗기고 피가 많이 나는 부위부터 압박붕대로 감았다.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야! 태순아, 구급낭 속에서 모르핀 좀 찾아서 꽂아줘!"
놀란 가슴에 구급낭을 거꾸로 쏟아 버렸다. 2개를 찾았으나 방법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지?" 묻자 "바늘 쪽을 팔뚝에 꽂고 뒷부분을 눌러!" 시키는 대로 했다.
"위생병 자식 어데 갔어! 나 좀 살려줘! 아파 죽을 것 같다!" 소대장이 악을 쓰고 불렀지만
"위생병 중상입니다." 말하고 접근해 보니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엉망인데
명치 부위에서 출혈이 심해 달려들어 붕대를 겹쳐 대고 등으로 감아 묶어 줬다.
언뜻 모르핀은 한 번만 맞아야 된다는 말이 떠올라 나머지 한 개는 소대장한테 놓았다.
선임하사와 전령은 "악!" 소리도 못 지르고 전사했다. 선임하사는 기혼, 초등학교 딸이 보낸
편지를 자랑했는데 어찌하랴! 전령은 소대장이 데리고 온 전입 신병인데 너무 야속하다.
나는 분대원들 수통을 손가락에 끼고 있어 뒤에 서 있어서 무사했다.
"분대장님 나 좀 살려 주세요!" 뒤 돌아보니 1 분대원 성상병이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고,
어깨에서 피가 많이 나는데 외마디 하고 혼절했다. 차마 볼 수 없었다.
상처들이 너무 커 붕대가 모자라 메리야스들을 찢어 동여 매야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아비규환이다.
원망할 겨를도 슬퍼할 사이도 없었다. 오후 한 복판 태양은 사정없이 내려 쬐었다.
땀이 흘러 눈으로 들어가 쓰리고 아팠지만 씻을 수도 없었다.
무전병이 헬기가 X1 지점으로 온다고 부상자와 전사자 모두 그리로 옮기라고 한다.
제일 선임 이하사 마저 중상이니 상병 중참이지만 분대장 역할이라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X1 지점은 비스듬히 올라가야 있어 애를 먹었다. 부상자는 업어서 나르면 되었으나,
전사자는 넷이서 들고 갔는데도 그렇게 무거울 줄 처음 알았다.
억울하고 슬퍼도 울새도 없이 젖 먹었던 힘까지 쏟아가며, 헬기 2대에 순서도 못 챙기고 싣다 보니
중상자 위에 전사자를 걸치는 실수를 했다. 위생병과 성상병은 혼절했다. (성상병 헬기 안에서 전사)
가까스로 헬기를 보내고 인원 파악해 보니 18명 밖에 안 남았다. 오음리 훈련받을 때
부비트랩을 조심하라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내리막 소로 옆 나무에 숨겨 놓은 걸 알 수 없었다.
위력이 이렇게 강하고, 피해가 크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전쟁에서 승패는 병가지 상사'라는 고사성어가 있지만 두 번의 실패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ㅡ 끝 ㅡ
첫댓글 격한 전쟁 속에
작전 수행은 엄청났네요
타국에서 겪은 그 전쟁의 굴레는
세월이가도 잊혀지지 않는
평생의 전쟁사에 페이지 일 것입니다!
맹호 마크 선명합니다.
땅개는 운명이지 싶고,후에 기록을 남기라는운명, 어쩌면 그런 느낌,
재파월 해서도 특수정찰대
생활, 다음 기회에 기록 하런지?
그저 순응 할 겁니다.
위로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