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76) 전 한나라당 대표는 탄식조로 말했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됐지요. 난 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는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지킨 원로 그룹인 소위 '7인회' 멤버다. 현재 야권의 표적이 되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도 같은 그룹이었다.
―거의 국정 표류(漂流), 혼돈 상황 같습니다.
"맞는 얘기요."
―얼마 전까지 떠들던 '통일 대박' '규제 개혁' 등 현 정부의 과제가 모두 실종됐습니다. 어쩌면 박근혜 정권은 임기 중 아무것도 못하고 끝날 수 있다는 걱정이 듭니다.
"내 생각도 그래요. 우리 친구들을 만나도 '큰일 났다'는 말만 해요."
―박근혜 정부가 왜 이렇게 됐을까요? 세월호 참사가 도화선은 됐겠지만.
"
굳이 생각해본다면 우리 사회가 깊이 분열돼 있잖아요.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게 아니라 자기 패거리끼리만 뭉쳐 있어요. 어떤
일이 벌어지면 그걸 꼬투리 삼아 폭격을 해대고 작살을 내고 뒤집어엎으려는 거지. 마치 정권을 적(敵)처럼 여겨 '저놈을
때려잡으면 우리가 하나 더 쥘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면이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대통령과 집권 세력에 더 문제가 있는 걸로 저는 봅니다.
"
국정의 최종 책임자가 대통령이니까 그렇게 볼 수 있지요. 반대 진영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더 자주 만나 설득을 하든가, 아니면
나라를 뒤집으려는 파괴 선동적 행위에 강하게 대응하든가, 뭔가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정말 걱정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수가
있어요. 대통령이나 참모들이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됩니다."
-
-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주완중 기자
―대통령 앞에서 장관도 비서관도 받아 적기만 할 뿐 나서서 직언하는 참모가 없다는군요.
"나도 청와대에 있어
봤지만(노태우 정부 시절 정무수석으로 재직), 대통령에게 말하기가 참 어려워요. 그렇지만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나는 단호하게 달려들었어요. 참모들이 협의해 만든 안(案)을 올리면 대통령이 대부분 받아들였습니다. 대통령이 호응해주지 않으면
참모들은 아무도 말을 못 하거든요. 지금 박 대통령은 그런 말을 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 같아요. 깐깐한 분이오.
디테일까지 자기가 다 하려고 해요."
―원로 모임인 '7인회' 멤버로서 박 대통령께 직접 이런 조언을 해주지 않았나요?
"대선 끝나고 청와대로 들어간 뒤로 대통령을 본 적이 없어요. 불러주지도 않는데 내가 가서 '할 얘기 있다'고 하면 난센스지요."
'7
인회' 멤버는 김용환(박정희 정권 시절 재무부 장관 역임)을 좌장으로 최병렬 김용갑 안병훈 김기춘 현경대 강창희 등이다. 이 중
김기춘은 청와대 비서실장, 현경대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으로 발탁됐다. 강창희는 얼마 전 국회의장 임기를 마쳤다.
―박 대통령이 '7인회' 원로를 불러 "선거 때 고마웠다"며 식사 대접도 안 했나요?
"우리 몇몇은 대통령을 만난 적 없어요. 우리끼리만 가끔 만나 밥을 먹지요. 그러면서 '여보게, 자네는 밥 먹으러 (청와대) 안 가나' 하고 서로 농담해요(웃음)."
―'경제 민주화' 공약을 만들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대선이 끝난 뒤로는 대통령을 만날 수가 없었다고 하더군요. 인간적으로 좀 섭섭하겠군요.
"그런 것 없어요. 우리끼리 만나면 누구도 대통령에 대해 일절 말을 안 해요. 사실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말해도 안 되고, 그렇게 말할 이유도 없어요. 나라만 잘 운영해주면 되는 거지."
―한때 매스컴에 '7인회'가 정권의 막후 그룹처럼 보도되니까, 구설에 오를까 봐 대통령이 거리를 둔 것일까요?
"나는 모르죠. 다만 뭔가 좀 이상해요.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같이 밥 먹고 편안하게 조크도 하면서 잘 지냈어요. 청와대에 들어가면서 달라졌으니까요. 무서운 사람입니다."
―무서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해에 따라 인간관계를 칼같이 맺고 끊고…, 냉혹하다는 건가요?
"그건 뭐,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요. 이분을 처음 만났을 때는 개인적으로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여러 면에서 상당히 훈련돼 있었어요.
어머니(육영수)한테서 여성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소양에 대해 트레이닝을 받은 것 같았어요."
―우리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품격(品格)을 갖춘 분이지요.
"그렇지요. 다만 청와대에 들어간 뒤로 달라졌어요."
―제 관찰로는 달라진 게 아니라 일관성이 있는데요. 예측됐던 부분입니다.
"그런가요?"
―가령 이분 스스로에게는 '원칙'일 수 있지만, '불통'과 '고집'은 이미 후보 시절부터 지적되지 않았나요?
"…."
―대통령에 당선되면 오히려 바뀌기를 기대했습니다. 말 타고 전쟁터에 나갈 때와 말에서 내려 통치할 때는 스타일이 달라져야 하니까요.
"우리가 대통령을 만든다고 노력했는데, 이제 그의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을 하면 옳지 않죠. 오늘 질문을 받으니까 답변하는 것이지만."
―집권 초 조각(組閣) 인사부터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보여줬지요. 공적인 인사 검증 시스템을 거치지 않아 모든 인선이 시끄러웠지요.
"세부적인 것은 모르겠어요. 대통령께서 누구를 불러 상의를 하는지 알 길이 없고. 다만 대통령은 가뜩이나 혼자인데 퇴근 후 청와대 안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보고서만 읽는 것인지, 이런 상식적인 걱정을 하는 거죠."
―측근들이 인(人)의 장막을 친다고 봅니까?
"세상이 다 알다시피 몇몇 사람이 따라다니잖아요. 구체적으로 얘기는 못 하지만…. 그런 사람들만으로는 안 돼요."
―대통령 주위에는 자신의 생각과 입장이 다른 참모들도 있어야 하는데,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
왜 그럴까. 대통령이 분위기를 바꿔줘야 해요. '누구는 안 만난다'는 식으로 하지 말고, 대통령이라고 만날 바쁜 것은 아니니까요.
바깥사람들을 불러서 이런저런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여유를 좀 가졌으면 합니다. 저녁 자리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을 불러 직접
얘기도 들어보고. 이러면 뭔가 소통이 되는 게 아닐까. 그게 본인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다고 알려진 김기춘 비서실장은 지금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데.
"그는 스마트한 사람입니다. 내 가까운 친구이고. 얼마 전에 봤을 때 조금 걱정스러웠어요. 뭔가 흔들리고 정신이 없더라고. 비서실장이라도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는데."
―안대희 총리 내정자의 중도 사퇴에 대해 인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기춘 실장이 책임질 수밖에 없겠지요.
"글쎄, 뭐라고 말하기는…. 하여튼 고생이 많은 것 같았어요."
―그가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될 때 '구(舊)시대로의 회귀'라고 저는 비판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교체를 하면 박 대통령이 완전히 기반을 잃게 되겠지요.
"그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야당에서 물고 늘어진다 해도 계속 밀려나면 더 깊이 수렁에 빠질 수가 있어요."
―그를 경질하지 않으면 여론이 나빠질 텐데.
"그런 점을 고려해 테크니컬하게 해야지요."
―설령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을 전면 교체해도 국정 추진 동력을 회복할지는 의문입니다.
"
그게 걱정이오. 하지만 이대로는 계속 갈 수가 없으니 일단 바꿔봐야지요.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지금의 분위기를 바꿨으면
좋겠어요. 내가 모셔본 대통령(노태우)은 특별히 문제가 없으면 모든 사람을 편하게 해줬어요. 아랫사람을 보면 어깨를 툭 치며
격려했어요. 가끔 용돈도 주고. 조금만 노력하면 주위 사람들을 완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가 있어요. 대통령이 좀 따뜻하면 좋지
않을까…, 훈풍(薰風)이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 도심 시위에서는 '대통령 하야'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되고. 선거로 대통령이 된 사람을 어떻게 할 겁니까. 대통령으로서 잘하도록 만들어가야지.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어렵게 되면 결국 나라가 길을 잃게 돼요."
―요즘 어떻게 소일합니까? 현재 직책이 새누리당 상임고문으로 되어 있는데.
"늙은 사람이 뭐 할 일이 있겠어요. 집에 있다가 친구들과 약속 있으면 밥이나 먹고. 당에는 안 나간 지 오래됐어요. 그쪽과는 일절 만나는 사람이 없어요. "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앞두고 정몽준 후보의 선대위원장 수락 해프닝이 있었지요?
"
그쪽 전화를 받았을 때 여러 사람과 술자리에 있었어요. 감기 기운까지 있어 얼른 판단이 안 됐어요. 다음 날 정신이 깨고 나서
'안 되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사람의 도리가 있지. 정 후보가 선거운동하는 현장에 찾아가 박수라도 쳐줄 생각입니다."
―포스코 회장설도 있었지요?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왜 그런 설이 돌았는지."
―여전히 무대 위에 서는 것에 마음이 있습니까?
"
없어요. 내가 안 해본 게 뭐 있나. 이 나이에 그걸 해서 뭘 하겠어요.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있어요. 하지만 나는 집사람을
앉혀놓고 '쓸 돈이 있고 밥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놀러 가고 싶으면 어디든 갈 수도 있다. 이제 다른 욕심을 모두 포기했다'고
말했어요."
―다들 그런 말씀을 하지만 자리 제안이 오면….
"괜히 하는 얘기가 아니고. 이제 살면 얼마나 살 것인데, 뭐 때문에 그런 것에 매달리겠나."
그는 조선일보 편집국장, 청와대 정무수석, 문공부 장관, 노동부 장관, 서울시장, 국회의원, 한나라당 대표 등을 거쳤다.
―본인이 살면서 언제가 황금기였습니까?
"청와대 정무수석 때지. 참 열심히 했어요. 그때 모셨던 노 대통령이 지금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람도 못 알아보고 몇 년째 병상에 누워 있어요. 일국의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모습일 수 있는지, 진짜 눈물이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