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미 소 필 살의 모 정
장 태 순
시제나 명절 때 선산 성묘를 가려면 미호대교 밑 도로를 지나는데 그때마다 옛날 일이 생각난다.
중학교 때 대전으로 통학을 했었다.
그때는 증기기관차가 시커먼 연기를 ‘칙칙폭폭’ 내 품으며 달리다가 흰 연기를 쪽 뽑고는 ‘뻐어 억’ 소리를 내 질렀다. 조치원역에서 기차가 흰 연기를 품어내고, 기적을 울린 다음 출발해서 내판역에 도착하려면 7~8분 걸렸다. 집에서 내판역까지 2 Km 정도였다. 집 앞에서 흰 연기를 보고는 곧바로 책가방을 옆에 끼고 달리기 시작, 기차와 경주를 한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죽어라 달린다. 철길로 겨우 올라갈 때 기차가 앞지른다.
기차가 출발하려고 흰 연기를 품어내고 ‘뻐어 억’ 소리를 지를 때 헐래 벌떡 달려가 꽁무니 칸 문에
겨우 주저앉고, 숨 고르기를 한다. 가슴이 아프다. 겨울인데도 등 계곡에 땀이 흐른다.
오후에는 대전에서 해질 무렵 출발했으니, 내판역에서 걸어올 때는 캄캄한 초저녁이다.
큰 동네 끝 자락에 웅크린 오두막은 상여 집이다. 옆길로 항상 다녀야 했는데, 상여 집 안에서 쥐들이 인기척에
놀랬는지, 박쥐들이 놀랬는지, 아니면 귀신들이 신음하는지, 소리가 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다.
2학년 겨울방학도 끝나고, 음력 설날이 가까울 때였으니 일 년 중 제일 추울 때다.
집에 들어 서자 식구들 저녁 식사가 모두 끝나고, 아버지와 형님은 큰 동네로 일 보러 갔는지 조용하다.
수저를 들고 식사를 하려는데, 외양간에서 어미 소가 ‘움머이~ 움머이~’ 울더니 ‘덜커덩!’ 소리가 났다.
“형수님, 소가 왜 저러지요?” 묻자,
“오늘 시장에 가서 송아지를 팔았어요.”
또다시 밖에서 ‘덜커덩!’ 소리가 났다. 심상찮은 일이다. 수저를 놓고 입에든 밥을 삼키며 문을 열자,
어미 소가 외양간 가로막을 뛰어넘어, 마당을 거쳐 도로로 나가는 찰나다.
“형수님 아버지와 형님께 빨리 알려요!”
외치며 나는 운동화를 급히 신고 소를 따라갔다.
어미 소는 집 옆 개울을 건너 신작로로 올라서더니, 조치원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캄캄한 밤이다. 어미 소는 벌써 30여 m를 앞서 달린다.
여름에는 산이나 강둑으로 끌고 다니며 풀을 먹이고, 꼴을 베어다가 먹이던 소라 정이 들었었다.
이대로 도망가고 못 잡으면 보통 낭패가 아니다. 더구나 어미 소는 임대 소로 주인이 따로 있었다.
우리 집 재산 목록에는 없지만 끝내 못 잡는다면 집안에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될 것이다.
어미 소는 힘껏 달리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100여 m 더 가다 우측 개울 건너 골짜기는 아기들 죽으면 묻는 곳이다.(애장 골) 이곳은 낮에도
무서워 나무나 소 꼴을 베러도 안 갔었다. 캄캄한 밤에 혼자 소를 따라 가는데 섬뜩했다.
교회를 다닐 때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소가 되돌아오게 해 주세요. 제발 소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를
계속 입속으로 외우며 거리를 좁혀 갔다.
빨리 잡으러 다가가면 더 멀리 달아날 듯하고, 또 지친 몸으로 감당 못할 것 같았다.
숨을 두 번 마시고, 두 번 뱉으며 숨 고르기를 하면서 10여 m를 계속 유지했다.
마지막 동네 미꾸지 앞을 지나고 있다. 캄캄한 신작로에는 섣달 찬바람만 몰아칠 뿐
인기척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앞에 달려가는 소 발자국 소리와 내 품는 숨소리가 들릴 뿐이다.
강 건너 멀리 조치원 읍내의 전기 불빛이 먼 산 아래 좌우로 비추고 있었다
2년 전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소가 없을 때였다.
겨울에 논을 갈아엎어야 해서 출가한 큰 누님 댁에서 소를 3일간 빌려 왔었다.
소를 다시 돌려주러 가는데, 누님네 집을 가려면 합강을 건너야 했다. 폭은 30여 m 밖에 안 되었다.
처음 얕은 데는 바닥까지 얼어 미끄러웠지만 조심조심 소를 앞세우고 걸었다.
10여 m를 갔을까, 소가 걸을 때마다‘우지직 쩍!’ 얼음 바닥에 금이 갔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다. 동행한 누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물이 너무 깨끗하고 맑아 바닥이 훤히 보였다. 깊이가 3m는 넘는 것 같았다.
얼음이 깨져 빠진다면 꼼작 없이 죽을 것 같다.
소가 발을 옮길 때마다 ‘쩌어억’‘쩌어억’ 소리가 나는데 이마에 소름이 돋았다.
20여 m 거리를 건너는데 10년 감수하는 것 같았다.
소와 무슨 악연으로 이렇게 또 애를 태워야 하나! 신작로로 계속 달리던 어미 소는 신작로를 벗어나 나루터
쪽으로 난 내리막 길로 달려 내려간다.
100여 m만 가면 미호천 강이다. 미호천은 청주 쪽에서 흘러와 오송읍과 동면 사이 경계를 흘러가 합강에 합류, 금강으로 흐른다.
쇠붙이라도 소화시킬 수 있는 청소년기 점심 도시락 먹은 지 오래고, 저녁도 두 수저 넘기고, 1.5km 정도를 쉬지 않고 뛰었으니,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절로 난다.
미호천이 최후 보루, 강물이 소를 막아 줘야 한다.
어미 소가 쉬지 않고 달리니 숨이 차도 쫓아가야 했다. 50여 m만 가면 강이다.
읍내 불빛이 건너편 강둑으로 가려져 더욱 캄캄해졌다.
어미 소는 이 어두운 밤에 송아지를 어떻게 찾으려는지 모르지만 낮에 갔던
시장에 가면 새끼를 찾을 것 같아 시장 쪽으로 달려 가는가 보다.
강바닥 모레로 접어들었다. 10m만 가면 강물이다.
강물 앞에서 주춤한다면 코뚜레를 낚아채려고 급히 접근했다.
그러나 소는 망설이지 않고, 힘차게 강물로 들어갔다.
새끼를 찾아가는 모정은 어둠과 깊은 강물도 장애가 될 수 없는가 보다. 나는 깜짝 놀라
“하나님 주무십니까?”
무의식 중에 소리지르자 어둠 속에서 메아리 져 왔다.
다시 마음속으로 ‘하나님 제발 저 소 좀 되돌아오게 해 주세요.’ 다리의 힘이 풀려 버렸다.
주저앉아 두 손 모으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소용없나 보다. 절망적이다.
소는 5m 정도 첨벙첨벙 걷더니 물속이 깊어지는지 등허리만 보인다. 소는 수영을 잘한다.
위쪽 대각선으로 올라간다. 서서히 멀어져 가는데 강물 위에 먹물처럼 어둠이 엉켜있었고,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많이 떠내려 왔다. 강물 폭이 50여 m 쯤 되는 듯싶다.
어미 소가 이대로 무정하게 떠나간다면, 가정에 닥쳐올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가슴이 먹먹하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도와줄 사람, 그 누구도 없다. 인간은 약해졌을 때 신을 찾는다고 했던가!
쫓아오는 동안 계속 하나님을 찾으며 간절히 기도했건만, 어미 소의 모정을 더 동정했는지!
그렇다고 절망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앉은 자세로 두 손을 잡고 또
“예수님 저 소가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는 절망입니다. 소가 꼭 돌아오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기적은 일어났다. 20여 m 쯤에서 검은 물체가 서서히 떠내려 왔다.
눈여겨보니 얼음이 얼마나 큰지, 소가 얼음을 타고 떠내려 오고 있었다.
얼음이 빙글빙글 돌면서 떠내려 오는데, 천만다행인 것은 나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나에겐 모세의 기적만큼이나 신비로웠다.
“오! 하나님!” 소리를 지를 번 하다가 속으로 “감사합니다.” 했다.
가까이 접근하더니 얕은 물속 모래톱에 걸렸는지 얼음이 ‘우지직!’ 깨지며 소가 다시 빠졌다.
꼼작 못하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소가 첨벙첨벙 다가왔다.
얼음덩이가 빙글빙글 돌아 방향 감각을 잃었는지 나를 의식하지 않고 지나쳐 걸어갔다.
순간 나는 날쌔게 소의 코뚜레를 움켜 잡았다. 소가 깜짝 놀라 저항했다.
정면에 안 서고 옆으로 서서 코뚜레 잡은 손에 힘을 가하자 순순히 따랐다.
한 손으로 코뚜레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 소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고맙습니다. 소야 미안하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구나. 다시 와서 고맙다.”
추워 언 강물에 빠졌던 소가 부르르 떨며 몸서리를 치자, 찬 얼음 가루가 날리는 것 같았다.
추워 꽁꽁 언 온누리에, 섣달 찬바람이 싸늘하고, 섬뜩하게 안겨왔다.
새끼와 이별한 슬픔에 절망하는 어미 소를 위로하며,
한편으로는 소와 동행하게 된 기쁨으로, 발걸음이 가벼웠다.
ㅡ 끝 ㅡ
첫댓글
추억의 지난날은
차곡차곡의 곡식 여물듯
잊혀지지 않는굴레가 있음이지요
새상사에 어릴적 기억은
소슬하게 남아 있음도 좋음이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나 건강 하시고
행복하세요.
장태순 작가.
축하 축하!
예상 외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장군님 덕분입니다.
동화 같은 수필, 어린 나이 중학생이 깜깜한 밤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용기가 가상합니다.
가난했던 그 당시 어미소를
지킨거는 큰일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