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 강빛나
검지가 긴 나는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어둠,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기대를 물고 어린 봄처럼
당신을 가볍게 통과할 줄 알았나 봐요 어디에서나 나 전달법이 좋은데 대답은 머나요 당신을 많이 가져서,
아무 것도 안 가져서
목청을 새긴 창문 너머로
약지를 흔들며 사라지는 당신
말의 속도를 늦추고 아만다마이드
가진 것이 없어서 배부른 하늘
몰라서 좋았던 바닥
어쩌면 검지에 낀 담배연기의 저녁
잎들은 퍼런 먼지를 털며 살 속으로 미끄러지는 것 같아요
불안한 다리를 흔드는 당신보다 푸성귀를 좋아하는 토끼를 따를까요
당신의 주기는 반반으로 어우러지는 궁수자리, 그 아래 원죄가 납작하게 자라고 있어요 바둑판은 고요할 때
숨을 참는지 뱉는지, 반듯한 슬픔은 당신 눈에 띄지 않게 무명지로 결의를 다지곤 해요
배고픔과 보고픔을 품고 당신 어디쯤에 자리를 잡았어요 여물지 못한 생각은 방랑벽처럼 흩어져
켄타우로스를 따라가요 물에서 소주로 바뀌기까지 소량의 진통제를 흡입해 봐요 무엇이든 반으로 자르면
빈 곳이 많아서, 천적이 많은 토끼는 원시처럼 고리타분해요
생각해 보니 아무 것도 아닌 풍선 하나
높이 띄워 목이 따라갈 때
전신을 덮은 수피가 뒤틀어져 당신,
내가 아파요 아프다고요
ㅡ 시집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미네르바, 2024.04)
* 강빛나 시인
경남 통영 출생,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박사.
2017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 『만지면 없는 당신을 가졌어요』
제2회 예천내성천문예공모 대상 수상.
현재 계간 『미네르바』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