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을 앓는 여성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나를 찾아온 여성은 그냥 지나쳐도 될만한 소소한 것들이라도 잘못되어 있으면 그것을 바로 잡고자 갖은 애를 다 쓴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본인이 힘든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무척 피곤해한다며 이러한 강박증을 고치고 싶다고 했다.
발병 계기를 살펴보니, 근무지인 공사에서 자신이 회계를 맡았는데 몇몇 상사가 공금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 같더란다. 아랫사람으로서 뭐라고 할 수는 처지가 아니었는데, 만약 감사에서 문제가 되면 문책을 당하는 자는 바로 자신일 게 뻔하다고 하였다. 그 후부터 이러한 불안은 확대되어 무엇이든 합당하다고 여겨지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단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아주 작은 뭐라도 가지고 오면 여기저기 다 연락해 임자를 찾아주고, 월급에서 몇 푼이라도 더 나온 것 같으면 여러 차례 시정을 주문하고, 아주 사소한 말이라도 잘못한 게 있으면 그냥 넘기지 못하고….
그녀의 성장 과정은 그리 편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가 돈을 벌러 도시로 나간 사이, 그녀는 큰아버지 집에서 눈치 보며 살았다. 어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로는 넉넉지 못한 살림 때문에 공부 욕심을 지녔던 그녀는 좀 더 악착스럽게 돈을 벌지 않고 또 딸의 마음을 전혀 헤아릴 줄 모르는 어머니를 답답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래도 악착스럽게 공부한 덕분에 좋은 곳에 취직했던 그녀는 공대 출신의 남편을 만나 자녀들을 두고 그런대로 살았다.
나는 그녀를 상담하며 증상이란 진짜 문제가 아니고 분노에 기초한 불안이 일으키는 거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가짜에 불과한 증상을 가지고 씨름할 게 아니라 진짜에 해당하는 불안에 초점을 맞추라고 했다. 즉 증상이 일어날 때마다 증상과 씨름할 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게 불편했는지를 잘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적절한 대응책을 찾게 된다고.
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강박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바로 잡는 것에 골몰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의 남편을 오라고 하여 자칫하다가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며 아내에게 신경을 써주라고 부탁했다. 현재의 생활이 만족스러우면 어떤 증상이든 누그러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간 그 남편은 아내에게 영화를 보러 가자든가 산책하러 나가자든가 하는 식으로 나름 애를 썼으나 그리 초점을 잘 맞추지도 못했고 오래도록 지속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상태가 다소 나아지는 듯했고 때마침 승진 시험을 봐야 하는 일이 있어 상담을 종결했다.
2년 정도 지난 후 그 여성은 다시 상담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에 와서는 증상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고 주로 주변 사람이나 현재 상황에 관해 말했다. 그런 걸로 봐서는 그녀가 허깨비 같은 증상과 씨름하며 붕 떠 있지는 않은 듯했다. 아무튼 그녀에게 가장 영향을 미칠 핵심적인 인물은 남편이라고 여긴 나는 남편과의 관계가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워낙 무심한 남편이라 지금은 기대하는 바가 거의 없고 그냥 동거인처럼 지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자기와는 결이 다른 친정어머니가 전혀 자기 마음을 몰라줘 답답했었는데, 남편이 그런 어머니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어머니나 남편 모두가 자기가 하는 일에나 열심이지 상대의 마음이 어떨지는 전혀 헤아릴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어떻게 자기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행불행은 가까운 사람과 얼마나 통하느냐가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녀의 고적감이 어떤 것인지 확 느껴져 딱하다는 마음을 금하기 어려웠다. 동시에 그녀가 자기 증상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아는 듯해 반가웠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게 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에는 아무리 증상이 거품에 불과한 가짜라고 해도 그것에 몰두했는데, 이제는 그것을 넘어 실재적인 사실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도 반가운지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대꾸하며 웃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때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설명했다.
“증상에 몰두할 때가 첫 단계였다면, 거기에서 벗어나 현재 서운해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둘째 단계라고 봐요. 이런 단계에서 힘을 키워 그렇게 무딘 남편을 서운하게 여기기보다 딱하게 여기고, 그가 무딤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게 셋째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홀로 사는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중생으로 서로서로 도와야 하니 말입니다.”
나의 이런 이야기에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다. 선명하진 않아도 뭔가 향해야 할 방향인 듯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설명하기를, 본인이 외로움에 찌들어 쉽게 병을 얻었듯이 남편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그렇게 감정을 무디게 만들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다시 말해, 그도 열악했거나 편편하지 못한 조건에서 불만족을 의식하고 있기에는 너무 괴로우니까 억압해 외면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습성화되어 그렇게 무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역시 아내 못지않게 불쌍한 사람이니 연민을 가지고 품으라고 일렀다. 누구든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게 마련이라고. 어차피 부부로 만났으면 두 사람 중 누구라도 먼저 도움을 주어야 다 함께 산다고 하였다.
이해력이 빨랐던 그녀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며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럴 여유가 없어요.”
이런 말에 나는 이렇게 응수했다.
“속도를 내면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며 상담하기를 꺼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고,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끈기 있게 지켜볼 테니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그러자 그녀는 다시금 환하게 웃으며 알겠다며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갔다.
첫댓글 강박증 환자 증세가 점점 좋아지기를 기대합니다..
강박증도 종류가 많지요??
이곳은 70도F
가을날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