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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석동호회 단톡방에서]
[장영봉회장님제공]
**상유심생(相由心生)**
나의 얼굴은 마음에서 생긴다
마의상법(麻衣相法)'이라는 책에는 상유심생(相由心生) 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옛날 중국 산동(山東)에 한 조각가가 있었는데,
외모가 아주 잘 생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요괴나 귀신과 같은 것들을 조각하길 좋아했고,
그의 작품은 모양이 아주 생동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앞다퉈 구매했다는데...
세월은 흘러갔고 장사도 잘되 적지않은 돈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니, 잘 생겼던 얼굴은 간데 없고 몰골이 괴상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어 두루 유명한 의사들을 찾아다녔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사찰에 들르게 되고, 그곳 주지 스님의 충고를 들었다.
"내가 당신의 소원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대신 조건이 있소.
반드시 각기 다른 모습의 관음상을 여러 개 조각해서 내게 주어야 하오."
조각가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주저없이 스님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이리하여 그는 끊임없이 관음보살의 모습과 표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半年이 지난 後 그는 각기 다른 모습의 관음상을 만들어냈고,
다시 스님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거울을 한 번 보시오.
당신의 얼굴은 자비롭고 선량한 것이 마치 관음보살처럼 보입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장중하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토록 고치고 싶었던 얼굴이 저절로 좋아진 것이다.
사람은 각자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새기며 삽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된 後, 내각을 구성할 때 비서진에게 어떤 사람을 추천 받았는데,
그 사람 얼굴을 보고는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거절한 이유를 묻자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만들어준 얼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심리 변화는 신경전달 물질의 농도 차이를 발생시키고,
근육은 표정에 변화를 만듭니다.
항상 신경질적이고 초조하고 우울했던 사람은 얼굴에 그 마음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늘 화를 내던 사람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무섭습니다.
지금 주위에 거울이 있다면,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보세요.
얼굴 단장을 하듯 보지 마시고,
그냥 전체적인 분위기를 봐 보세요.
여러분의 얼굴은 어떤가요?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상유심생(相由心生).
"외모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사람은 각자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을 새기며 산다.
우리가 지나온 세월,
생각과 가치관,
심리 상태의 모든 변화 하나하나가 얼굴에 흔적을 남긴다.
여기에는 어느 정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
심리 변화는 신경전달 물질의 농도 차이를 발생시키고,
근육을 만들어 표정에 변화를 만든다.
오랫동안 일정한 정서를 유지한 사람은 표정에 크게 변화가 없지만,
항상 초조하고 우울한 사람에게는 '불안한 얼굴'이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지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종종 거울을 봐야 합니다.
내 얼굴 속에 평온함이 있는지,
불안함이 있는지...
내 낯빛에 깃든 초조함이나 우울함을 유쾌함과 생동감으로 바꾸는 일이 자기 얼굴을 바꾸는 길입니다.
오늘도 당신이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얼굴이 된다는 평범한 사실을 기억하는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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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장에서의
"시편 23편"의 위력
독일 대학에 한 노 교수님이 계셨다.
이분은 연세가 드신 라틴어 교수님이셨는데,
그 교수님께서 구사하는 언어가 10개는 족히 되었다.
영어, 독일어, 불어는 기본이고 스페인어에다 몇 개의 동양언어까지 구사하였다.
익히 알려져 있었던 교수님의 어학 실력이었지만 그 분이 유창한 히브리어까지
구사하신다는 사실에는 신학을 전공하는 목사님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게 된 기회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히브리어까지 하시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수 십 년 전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교수님께서 갓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그때 기숙사에서 만난 한 친구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그 친구는 유대인이었는데, 그 친구랑 같은 방을 쓰고 같이 먹고 같이 다니고 물론 공부도 늘 같이 했다.
그런데 그 친구에게는 큰 버릇이 하나 있었는데 공부를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 사람이 피곤하고 지칠 때 쯤 되면, 늘 무슨 이상한 시 같은 것을 소리 높여 외우는데 그 알 수 없는 언어가 알고 보니 히브리어 였다.
교수님이 궁금해서 그 친구에게 그것이 무슨 시냐고 물었더니, 이 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시편 23편"이라고 하였다.
교수님이 궁금해서 왜 피곤해지고 집중이 안 될 때 그 시를 외우느냐고 물으니까, 자기는 이 시를 외우고 있으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이 느껴지고 마음도 가벼워지며 정신도 맑아지고 자신이 알 수 없는 힘이 밀려온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교수님도 그 날부터 그 친구에게 배워 시편 23편을 같이 외우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 친구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렇게 1년, 2년을 함께 보내는 동안 두 친구는, 공부하다 지겨워질 때쯤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시편 23편"을 히브리어로 소리 높여 외웠다.
그러나 당시 나찌의 핍박이 점점 심해져서 학교를 그만 두고 은신처에 숨어 있어야만 했던 친구에게서 어느 날 급하게 연락이 왔다.
지금 나찌 비밀경찰들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잡아가는데 자신도 잡혀서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교수님은 급히 자전거를 타고 친구의 은신처로 달려 갔다. 친구의 마지막 얼굴이라도 보려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달려갔는데 이미 친구를 태운 차가 마을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트럭을 뒤따라가면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 갑자기 트럭 옆으로 친 포장을 들치고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는데 그가 바로 그 친구였다.
눈물에 가려 희미하게만 보인 친구의 얼굴은, 놀랍게도 싱긋이 웃고 있었다. 그 때 친구가 갑자기 소리 높여 외우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 하시는 도다..."
죽음의 길로 끌려가는 친구가 미소 지으며 외우고 있는 것은, 바로 "시편 23편"이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그 시절, 아무 걱정 없던 그 때와 같이 평온한 얼굴에 미소 띤 모습으로, 친구는 시편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시편을 외우고 있었다. 교수님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친구의 얼굴을 보며 같이 암송하기 시작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 시편을 외우고 있는데 어느새 차는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그것이 친구를 본 마지막 날이었고 마지막 모습이라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독일의 패색은 더 짙어갔고 나찌는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님도 군대에 끌려가는 것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러시아의 전장에서 나찌가 패전하여 포로로 잡혀서 총살을 당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죽음의 대열에 끼여 걸으면서, 젊은 독일군 포로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때 교수님의 머릿속에 갑자기 가스실로 끌려가면서도 웃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죽음의 길을 웃으며 떠난 그 친구처럼, 나도 담담하게 죽음으로 맞이하자."
어느새 형장에 도착을 하였고 동료들이 하나 둘씩 총알에 쓰러지고, 드디어 교수님의 차례가 되었을 때, 교수님은 형 집행관에게 마지막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무슨 할 말인지 해보라는 허락을 받고 교수님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친구가 죽음의 길을 떠나면서도 환한 얼굴로 외우던 "시편 23편"을 자신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싶었다.
그는 조용히 외우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 하시는 도다"
그 순간 왠지 나도 알 수 없는 힘이 밀려왔다.
용기가 생겼다. 마음에 평안이 임했다.
교수님은 자신을 겨눈 총구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크게 높이기 시작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때,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형장을 지키고 있던 연합군 장교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높여, 같이 시편 23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것도 히브리어로...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연합군 장교는 유대인이었다.
장교는 곧 바로 교수님을 풀어주라고 명령했고 사형중지 서류에 싸인을 했다.
놀라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장교는 조용히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비록 악마의 제복을 입었다고 할찌라도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라고 하고는 자기를 살려 주었다.
이 교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잊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그때 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은 형장에서 죽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죽고 싶다는 자신의 그 마음 때문이였다.
자신도 놀랐던 것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낼 때, 하나님께서 사는 길을 주셨고 지금까지도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은혜를 주셨다는 것이다.
히브리어 시편 23장
https://youtu.be/XsFtqR_zPOQ?si=cmACoxe688eDlU3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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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8일 아침편지
" 내게 맞는 삶 "
내가 걸어온 길이 결코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네가 꼭 알아주었으면 해.
난 예외적인 사람이 아니야.
누구나 나처럼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어.
약간의 용기, 결단,
그리고 자의식만 있으면 돼.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거 말이야. 진정한 삶, 내게 맞는 삶,
자신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거지.
- 티찌아노 테르짜니의《네 마음껏 살아라》중에서 -
* 누구에게나 자기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모두 자기 길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자기 길을 찾아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나다운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곧 '내게 맞는 삶'을 올바로
사는 것이며 ' 내가 내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어 가는 것
https://m.cafe.daum.net/dusktrain/9HU8/27672
love is the answer - Natalie Taylor
https://youtu.be/1xFg2eCHP64?
그리우면 - 박강수
https://youtu.be/PE14PhT5o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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