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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자유롭게 글쓰기 김용만 선생님께 - 신라 경주 김씨와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부인의 관계는?
不二堂 추천 0 조회 558 09.08.24 13:10 댓글 1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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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8.24 13:23

    첫댓글 번역좀 부탁드려요 ^^

  • 09.08.24 16:30

    흉노에 있어서 연지(閼氏) 는 '이름' 이 아니라 '직합' 입니다. 흉노에서 왕을 '선우'(單于) 라 부르는 것처럼, 왕비는 '연지'(閼氏) 라 불렀던 것이죠. <사기 흉노전>에 보면 묵특선우의 아내도 '연지', 한고조 유방이 흉노에게 패한 뒤 흉노에 보낸 공주도 '연지', 효문제가 노상선우에게 보낸 공주도 '연지' 라 불리는 데에서 '연지' 가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 왕비를 뜻하는 직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閼 는 흉노 왕비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는 '알' 보다는 '연' 으로 읽힙니다.

  • 작성자 09.08.24 16:39

    그렇다면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부인도 흉노의 왕비 이름으로 박혁거세에게 시집을 왔다는 말인지요? '연'으로 읽히는 대목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1천 9백여 년 전에 씌어진 <설문해자>라는 자전에 '金'은 '西方之行'이라 하니 아마도 알타이산맥을 일컫는 것 같습니다. 중국의 서쪽에는 예부터 금맥이 대단하였나 봅니다. 미주가효님 참 고맙습니다. 실마리가 풀릴 단서가 조금씩 보입니다.

  • 09.08.24 16:53

    <한서 흉노전> 에서는 蘇林曰 閼氏音焉支, 如漢皇后也. 라 하여 閼氏 의 발음이 '언지' 에 가까움을 알 수 있습니다.

  • 09.08.24 18:24

    불이당님/알영은 이름자이므로 보통명사인 연지와는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만약 양자 간에 연관성이 있으려면, 투후와 신라의 관련 문제부터 선결되어야 합니다. 저는 별로 관련성이 없다고 보는 쪽이라...

  • 작성자 09.08.24 18:27

    미주가효님! 점입가경입니다. 좋은 참고가 됩니다. 저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서 및 사기를 보지만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09.08.24 18:34

    신농님! 고대사는 워낙 복잡미묘하므로 '알'자가 흉노에서 와ㅆ는지 아닌지 가름이 나지 않습니다. 이미 혁거세 전에 흉노사람이 이 땅에 왔는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워 봅니다.저는 그저 억측으로 '閼氏'를 썼습니다. 혹여 관련이 있지 않나해서지요. 감사합니다. 불이당 姜相圭 드림

  • 09.08.24 18:37

    양자간에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치밀하게 여러 근거들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선언 명제로 '관련성이 있는듯 하다'는 식의 주장에 그친다면 설득력을 얻지 못합니다. 저는 지금 이 글과 덧글들만의 이야기로는 흉노 왕비를 가리키는 보통명사 '연지'와 신라의 '김알지' 내지 '알영부인'과 어떠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지가 않습니다. // 그리고 투후 문제는 예전에 카페에서 몇차례나 거론된 문제이기에 생략합니다.

  • 작성자 09.08.24 18:46

    金과 閼은 여전히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금과 알은 같은 말이 아닐런지요. 김알지도 난생설화입니다. 유목민의 난생설화와 관련이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풀어야할 과제이죠. 알과 금은 금맥이 많이 나오는 알타이산맥과 관련이 분명 있습니다. 저는 '김알지' 내지 '알영부인'이 분명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 09.08.24 20:10

    사족을 하나 달자면, 난생설화는 유목민에게서는 오히려 발견되지 않고, 제가 지금껏 본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내지 동방 고유의 문화 형태로 보는 것이 적당하다고 봅니다. 우리와 북방 유목민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것은 천강 설화입니다. 난생설화를 남방계로 보는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남방 쪽에선 베트남 정도를 제외하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 09.08.24 19:45

    김씨 투후 김일제 출자설은 사서에는 나타나지 않고 문무왕비 등 7세기 이후에 금석문에서 나타나는 기록입니다. 김씨의 출자가 흉노인 김일제라면 중국정사조선전 및 삼국사기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김씨의 출자가 흉노라면 그것은 중국정사조선전의 진한인들이 진말한초에 도망온 사람들이라는 기사와 연관성이 있지만, 김일제의 후손들 7대가 전한에서 벼슬받고 살았으니 같은 흉노인이라도 김일제가 신라의 김씨의 조상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 09.08.24 20:13

    또한 한나라에서의 김일제 가문이 더이상 흉노인이라고 할 수도 없죠. 다른 나라에 정착해서 무려 7대가 지나면 그 사람은 조상의 출자가 흉노인이었다는 것만 빼면, 사실상 흉노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조금도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 09.08.24 21:42

    신농님의 말은 일종의 편견이라고 봅니다 7대가 지나면 정체성이 없다는 말은 근거가 없습니다 임진왜란때 귀화한 일본군 장수에 벼슬까지 내리고 조선인 이름으로 조선인으로 무려 수백년동안 살았는 사람이 지금 까지도 후손들이 자신들이 일본인에서 왔다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마을을 꾸미고 일본의 계단식 농사기법을 사용하여 살고 있는것을 tv로 본적이 있습니다 더 찾아보면 이런 예는 많을 것으로 압니다

  • 09.08.24 21:28

    그리고 정성일님은 이상한 말을 하시는군요 그당시 자기 조상이 남긴 비문은 무시한체 중국정사에서 이야기를 찾고 삼국사기 후대 역사가의 편찬을 더 중시하는 인식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관념론상의 비판은 어느정도 일리가 있지만 님의 역사적 자료를 보는 인식은 좀 의아합니다

  • 09.08.25 12:49

    비문(유물)과 문헌(사서)의 기록이 다르다면 어떠한 경유로 그러한 기록이 남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문무왕비는 7세기 이후에 신라에서 발생한 신라의 시조의식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봅니다만,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겠죠.

  • 09.08.25 17:41

    한국호랑이님/금일제가 흉노로서의 주체성을 계속해서 지니고 그것을 공공연히 드러냈다면 한무제가 그를 총애했을까요. 누구보다도 더 한족화하려고 애쓴자가 바로 금일제입니다.

  • 작성자 09.08.26 05:37

    김용만 선생님의 고견울 듣고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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