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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빠져나온 때는 늦은 오후였다. 아직 겨울의 기세가 가시지 않아, 해는 벌써 길게 늘어져 누워 있었다. 고갯마루를 오르자 서쪽 인왕산 위까지 대기는 완연하게 붉어지는 중이었다. 그 위 하늘에는 이 고갯마루에서 산꼭대기보다 더 멀지 가까울지 가늠할 수 없는 구름이 구겨진 비단처럼 초현실적으로 (현실 너머에) 떠 있었다. 방금 전시장에서 보고 나온 그림 속의 빛깔이네—. 붉은 빛, 붉고 검은 빛, 붉은 보랏빛, 붉고 푸른 빛, 노랗고 붉은 빛, 선분홍인 붉은 빛과 마른 피같은 붉은 빛, 그것이 한 알갱이 알갱이 다른 빛깔인 채로 다 섞인 투명하고도 풍성한 붉은 빛. 모처럼 설레는 약속을 하고 나선 연인이며 관광객 사정은 알 것 없이, 북촌 이 고개 위에서, 어제나 그제나 비슷하게 완벽하고 비슷하게 불완전하던 석양이 갑자기 일렁이듯 숱한 말을 불러일으킨다. 삼십 년, 사십 년 전의, 비슷하게 완벽했고 비슷하게 불완전했던 곳곳의 석양들의 기억이 겹쳐진다. 그 때의 얼굴들, 다른 산의 표정들, 골목의 그림자들이 함께 수근거린다. 어떤 작품을 대하고서 평범하던 일상의 풍경에서 문득 다른 빛깔과 표정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작품은 제 몫을 한 것일 테다. 전시장에서 그림을 볼 때보다 그림을 술렁술렁 둘러본 다음 밖으로 나와서, 바람을 맞으며 돌아가는 길목의 석양 속에서 오래된 이야기들이 그림 속 안료 덩어리들처럼 뭉쳐진 채로 피어 올랐다. 시공을 초월해 초현실적으로 저쪽 구름 사이 허공에 훅, 펼쳐졌다가 귓바퀴 뒤쪽을 넘실거리며 돌아들던 그 이야기들은 골목들을 몇 개 가로지르는 동안 다시 해가 떨어진 도시 속으로 들어서자 서서히, 사라졌다. 며칠이 지나자 무슨 이야기들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빛깔 환한 그림자들이 넘실거리던 기억이 흐릿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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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실 작가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로마에 유학하기로 한 까닭은 하늘빛에 끌려서였다고 했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 본 적이 없고, 그 하늘빛도 알지 못한다. 그가 이탈리아를 처음 방문한 계기는, 형제자매가 가톨릭 수도자로 거기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바로크 교회 천장을 가득 메운 환영적인(trompe l’œil) 승천(Ascensio) 장면들이 떠오른다. 분홍빛 구름을 뚫고 찬란하게 승리를 선포하는 금빛 햇살의 황홀경이 천사와 성인들을 공중으로 부양시키는 그 천장화들은 막힌 천장을 허공으로 바꾸어 놓는다. 예수회의 바로크가 추구한 것은 어느 누가 상승하는지보다 상승의 느낌과 분위기였다. 예수나 성모의 형상보다 구겨진 옷자락과 구름과 빛이었다.
최영실의 집안은 박해를 피해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던 파주에 정착한 천주교 집안이었다. 포천의 옹기촌이 그렇듯, 파주의 점말(독말)에서도 그런 이들이 대대로 옹기 그릇을 만들며 생계를 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의 어느 국도로 빠져드는 길의 라일락 덤불을 추억하지만, 나는 임진강으로 굽이치며 합류하는 물줄기를 따라 멋대로 자란 오월의 아카시 향기와 그 아래 축축하게 썩은 풀 냄새를 떠올린다.
어떤 장면을 보고 ‘사건’ 을 묘사하거나 ‘인상’ 을 포착해 옮기는 대신, ‘그림이 완성되려 하는 순간의 감각’을 알고, 그 감각이 재현될 때까지 연필과 물감 묻힌 붓을 손에 들고 놀리는 최영실의 그림은, 추상화도 아니지만 사생화도 아니다. ‘거의’ 아무 형상도 없는 색면인 양 보이지만 그가 알려 주지 않아도 보는 이는 화면에서 구름과 바람을, 대기와 물결을 떠올리고 만다. 그러다가 어쩌면 습기 머금은 바람이 지나치는 흐린 오월 새벽의 보리밭이라든가, 늦가을 차를 타고 지나치던 길가 저수지의 투명하고도 탁한 물빛쯤을 떠올릴 때, 그 그림은 어떤 ‘사건’ 의 묘사보다 더 선연하게 구체적인 ‘인상’ 이 된다. 네가 비록 비겁한 뒷모습을 상처처럼 남기고 사라졌다 해도, 어쩌면 그렇기에, 낮은 구름이 엉켜 있던 그 새벽의 하늘과, 커튼 주름에 들이치던 첫 햇살의 그림자는 차츰 역사처럼 기억 속에 자리잡는다. 상처라는 사건을 헤집거나 아물게 하면서 말이다. 그 찰나의 ‘인상’은 기억 속에 영원히 박제된 듯하지만, 꺼내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빛깔이 조금씩 바래어 다른 깨달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고고한 단색화 화면 앞에서 검은 바위나 푸른 물방울 같다고 말하기는 어쩐지 주저될지라도, 그가 붓질한 그림을 마주하고서라면 우리는 잘 영근 포도로 빚은 캄파냐의 와인을 마시며, 그렇게 숙성한 각자의 기억들을 꺼내어 이야기해도 좋다.
서양 회화를 수천 년 형상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었다는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년). 말년을 생트 빅투아르 산을 그리는 데 바쳤던 자다. 그는 여러 계절과 시간마다 고향의 나즈막한 돌산을 관찰하고 그 때마다의 인상을 화폭에 꾸준히 옮겼다. 세잔의 관심사는 그러나 그 변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너머 변하지 않는 것에 가 닿아 있었다. 어떤 시간, 계절을 넘어서는 가장 견고한 산의 ‘본질’을 숭고하고 엄숙하게 포착하는 일을 겨루었다. 그 과정은 점차 남불 엑상프로방스의 어떤 산에서 모든 산으로, 순수한 기하 도형으로, 원뿔로, 화폭의 균제로 수렴되었다. 세잔의 후기-인상주의는 ‘인상’과 관련이 없다. 순간 순간 감각되는 ‘인상’으로부터 멀리, 가장 멀리 달아나야 지고하고 객관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세잔은 그 역설로서 수천 년 (형상의 굴레 속에서) 서양 회화가 추구했던 순수 기하학의 진리를 꿰뚫고 큐비즘과 추상으로 문을 열었다. 그는 산을 사생했으나 그려진 것은 산의 풍경을 넘어선다.
세잔이 지상의 사물 속에서 기하적 순수 도형을 포착해 냈다면 그것은 적어도 (시시 때때로 빛에 따라 변하는) 색깔이 아니라 형상이고, 덩어리(volume)이고, 덩어리의 윤곽(outline)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비슷한 장면을 비슷한 붓질로 반복하는 최영실의 화폭은, 윤곽이 아니라 윤곽 지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한다. 움직임이 정지한 후 응결된 덩어리 대신 더 빠르게 또는 더 느리게 움직이는 속도의 변주를 좇는다. 그의 붓 끝은 그러다가 저 견고한 산세마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풀어 헤쳐 놓고 만다. 그의 드로잉 첩에서 산의 능선은 매양 비슷하면서도 되풀이될 수 없는 다른 곡선으로 나타난다. 그는 세계의 모든 다른 산을 사생하는 중이 아니다. 수억 년 묵은 하나의 산맥이 그의 손 끝에서 매일 다른 형상으로 그려지는 셈이다. 이탈리아 로마의 학부에 늦깎이로 입학해 데생의 처음부터 시작한 그는, 서양 근대 미술의 위대한 아버지 세잔의 길을 배우지 않는다—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이 구름보다 더 구름같고 바람보다 더 바람같은 까닭은, 빛과 바람과 온도가 물 입자들을 엉기게 하여 뭉게-나 새털-이나 양떼-나 물결-구름을 형성하는 그 원리, 그 기세를 색깔 입자과 자신 팔의 힘과 속도와 교반력으로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엇비슷게 재현하는 데 있을 법하다. 화면 위에서 그의 붓 끝은 프랙탈처럼 바람의 기세를 재현한다.
불교의 명상 수행에서 ‘몸’이라는 대상은 조건에 따라 이런 저런 요소들이 잠시 모인 상태에 불과하다. 대상의 불변하는 실체나 모양은 존재하지 않거늘, 불가의 수행자는 제 몸에서 끊임 없이 바뀌는 느낌만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한다. 딱딱하거나 무른(地), 흐르거나 유동하는(水), 뜨겁거나 차가운(火) 느낌을 관찰한다. 지수화풍의 사대(四大) 중 무엇보다 가장 큰 관찰의 대상은 바람(風)이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며, 내장이 연동하는 작용도 바람이다. 생명에 숨길을 불어넣는 것도, 기억이 한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도, 모든 변하고 움직이는 것은 바람이라 이름한다. 자유를 목표로 삼은 수행자들은 몸을 관찰하며 불변하고 영원한 참나라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다. 전생부터 후생까지 이어지는 자아라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다. 쉼 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작용을 실낱처럼 세세한 데까지, 더 빠르게 끊이지 않게 ‘꿰뚫어 알아차리는’ 것이 그의 공부다. 그는 제 무거운 몸뚱이에서 바람을 ‘본다’. 눈을 감고서 보아야 한다. 몸-덩어리에서 보아야 하는 것은 흐름이다. 덩어리를 넘어서는 본질—이 낱말이 적절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은 물의 흐름에서, 뜨거운 불길의 흐름에서, 바람의 흐름에서 만나게 되는 까닭이다. 미동도 없이 움직임을 가만히 주시하는 수행자의 속도가 고양이의 눈길보다, 빛보다 빠르고 예민해져야 시공을 초월하고, 시공 속 삶과 죽음이라는 조건을 넘어설 것이다. 주시하는 힘이 예민해질수록, 형상은 사라지고 움직임만이 남는다. 이 몸도, 단단한 술병도, 몇억 살은 먹었을 산세도, 이 지구와 저 별들도, 모두 다른 현란한 움직임들일 뿐, 어느 것도 항상하지 않는다고 관찰하는 연습을 확장해 나감으로써, 법(法, 진리)에 가 닿는다. 세잔의 방법과 정확히 반대인 셈이다.
약관의 이응노(李應魯, 1904~1989년)가 상경해 대나무 치는 법을 배워 ‘묵죽(墨竹)’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몇 번인가 상을 타고 꽤나 이름도 얻은 다음의 일이라고 전한다. 어느 밤 문상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바람 몰아치는 대숲을 지나게 되었더란다. 젖은 댓잎이 이리저리 휘고 구겨지고 얼굴을 때릴 때 자신이 지금까지 그린 것은 살아 있는 대나무가 아니었음을, 그러므로 자신의 그림이 태작에 머물러 있었음을 벼락처럼 깨닫는다. 그 바람 치는 밤은 붓을 들고 그리는 자 이응노의 작업 여정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으로 기록된다. 이후로 그에게 흔들리는 댓잎, 주역의 64괘 차서도, 문자 추상과 춤추는 군상은 모두 하나의 붓질로 통한다. 하나이고도 다르다. 그 때 추상은 물체 속의 불변하는 형태가 아니라 솟구치는 기운에 가깝다. 주역이 이르는 생장과 변화의 원리이고, 천부경의 ‘운삼사성환(運三四成環)’이며 동학의 ‘조화정(造化定)’이려나 보다. 그 언저리 어디쯤에서 불가 수행자가 관찰해야 할 풍대(風大, 바람)와도 통할 법하다. 동양화의 사군자가 성립할 때 매난국죽이라는 형상을 그리는 붓질은 문자라는 추상을 쓰는 붓질과 서로 달라서는 안 되었다. 화폭에 담아야 할 것은 꽃과 풀잎이라는 ‘사건’의 윤곽이 아니다. 단 한 번의 붓질로써 계절이 생명을 생장시키는 기세를 어떻게 닮게 할 수 있으련가. 그래서 풀잎은 뿌리로부터 하늘을 향해 치는 것이다.
겸재 정선(鄭歚, 1676~1759년)의 금강산 그림을 ‘진경산수’, 곧 ‘진리’를 담은 ‘풍경(風景, 바람의 경관)’이라 찬(讚)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겸재는 물론 세잔이 그랬듯 금강산을 여러 차례 찾아 사생했다. 그러나, 세잔처럼 금강산 아래에 살며 매일 관찰해 묘사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어렵게 산 속에 들어 눈으로 보고 소리 들으며 체험한, 또는 사생(드로잉)한 금강산을, 집으로 돌아와 기억 속에서 떠올린다. 그렇게 떠오른 상념을 거듭 그리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이른바 와유(臥遊), 동양에서 산수화를 그리는 까닭은 집안 골방에 드러누워서 그 절경을 다시 유람하려는 뜻이다. 그 때 우리의 기억은 무엇을 불러일으키는가. 기운찬 물소리, 깎아지른 바위들이 하늘을 찌르던 기세, 그 위에서 아찔하게 내려다보던 수평선의 아지랑이 빛깔 따위. 옛 사람은 더 나아간다. 마치 새처럼 그리는 이가 허공으로 상승(ascencio)한다. 이 땅의 오래된 산마다 관음봉이여, 문수봉이여. 높은 저 위에서 내려다본 양 상상하며, 인간 몸뚱이의 눈높이에서 겪은 장면들을 다시 짜맞춘다. 그 과정이 한 번에 될 수도 있지만, 금강산 봉우리는 일만 이천이나 되니, 저 구름인들 한 번에 오르랴. 그렇게 초현실적으로 (현실 너머를) 통찰해 문리(격물치지)를 꿰뚫는 겸재의 붓질은 어느 틈에 신필(神筆), 사람의 묘사를 넘어선다. 아무렴 그는 상승한 자인 것이다. 그의 거듭된 붓질 속에서 금강산의 봉우리들은 거칠게 죽죽 내려치는 선이나[裂麻], 부드럽고 둥근 점으로[米點] 환원된다. 들여다 보노라면 선만 있고 점만 남더니, 멀리 떨어져 보니 마침내 진흙과 바위—부드러움과 단단함의 태극으로 휘돈다. 겸재가 꿰뚫은 금강(다이아몬드)와 같은 진리는, 이 산과 그 주변이 빠르게 내리닫고 온화하게 퍼지며 움직이고 있다는 데 있다. 산이라는 덩어리가 아니라, 덩어리의 윤곽이 아니라 움직임만 남는다.
최영실의 그림에서 한학자 하영휘 선생이 읽어 낸 “정중동이자 동중정”도 기세가 유동하는 속도일 것이다. 속도를 말하자면, 서구 근대 회화의 한 축을 견인했던 또 한 인물의 그림이 떠오른다. 달리는 증기 기관차의 등불, 눈보라 치는 바다, 화재로 타고 있는 국회 의사당. 터너(William Turner, 1775~1851년)의 화폭에서 빛-색채들은 유동하며 방사한다. 터너가 빛을 방사하는 색채를 굴려 종내에 포착하고자 한 것은 산업혁명 시대의 신문물이 가져온, 거대한 자연의 숭고미에서 터져 나오는 ‘강함’과 ‘빠름’이었다. 석양이 아니라 해질녘에 불꽃과 증기를 내뿜는 베수비오 화산이었다. 알프스가 아니라 알프스의 눈보라였다. 먹의 농담 하나를 굴리는 사의(寫意)의 붓끝이 겨누는 속도는 그와 다르다. 단 한 번의 획에 ‘거침없이’ 간취해 응축하려는 것은, 설마, 한 계절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다. 대나무 한 대가 죽순에서 솟아 잎을 벌리기까지, 난초 잎 한 줄기가 땅에서 돋아 자라나기까지의 전체를 재현한다. ‘정중동’의 정은 멈춤일 수 없다.[靜中靜非眞靜 動處靜得來] 정중동은 묶여서 그 자체로 본바탕[性天]이며, 참다운 움직임[眞機]이다. 곧 느리고 고요한(정) 움직임과, 빠르게 움직이는(동)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이쯤에 와서야, 정작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느림’임을 알아차린다. 최영실 작가의 화폭을 처음 볼 때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터너의 빛처럼이나 ‘빠른’ 붓질과 그로 인한 안료들의 격동적인 뒤섞임일 수 있다. 아아, 여기, 정말 좋네요—! 초보 수행자들은 빠르고 강한 움직임을 먼저 관찰할 따름이다. 관찰이 점차 고요해지고 세밀해지면 느린 움직임,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되고, 그러다가 마침내 대기가, 흙과 바위가 모두 유동하는 입자들임을 현란하고 황홀하게 만나게 된다. 이를테면 하늘이나 물결을 그린 화폭에서 빠름을 증거하는 안료들은 한두 부분에 불과하다. 삶의 격정은 평생에 며칠뿐. 나머지 모든 부분들이 대조적으로 느리기 때문에, 빠름은 빠름으로서 눈에 띄는 것이다. 대기 중에 산포한 물 입자들 가운데 가장 재빨리 움직여 강하게 응결된 물 알갱이들이 구름으로 드러나듯이. 그러나 구름 없는 대기 중에도 서로 다른 곳을 여행하며 다른 빛을 머금은 물 입자들은 산포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지금 거대한 기운으로 감아들고 몰아치며 그 입자들을 퍼트리고 있지 않은가. 그처럼 화폭의 나머지 부분들을 채우는 그 느림이, 거의 변하지 않는 듯한 색조의 미묘한 변화가 보는 이의 마음을 마침내는 길고 오래 붙잡는다. 반대로 수풀과 산 능선을 그린 그의 그림들에서는 빠른 붓들이 끊임없이 겹쳐진다. 이런 그림들에서, 빠른 붓들의 누적은 느린 시간의 퇴적을 지시한다. 진양조와 휘몰이가 끝에 끝을 물고 돌아간다.
그 새벽에, 비겁한 뒷모습을 남긴 채로 헤어졌다 해도, 우리는 그로부터 아주 길게, 거의 보이지 않지만 끈질기게, 서로를 멀리서 지켜본다. 가만한 느림으로 격절의 시간을 채운다. 격렬함 뒤에 남은 상처의 고통을, 투명해질 때까지 고요하게 바라본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깨달음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힘-움직임으로 끈질기게 연결된 그 끈을 알아차리고 말 것이다. 다시 최영실 작가는 그림에서 무엇을 그려 내려 하는 의도 이전에, 언제쯤 그 때가 왔는지, 그 격정과 격정의 끝이 왔는지, 그 느낌을 알아차려 마무리한다. 거의 비슷비슷해 보이는 그림을, 수행자처럼 지루하지만 새롭게 그려 간다. 그는 그렇게 매일 알지 못하는 알아차림을 거듭하고 있다. 어제나 그제나 비슷하게 완벽하고 비슷하게 불완전하던 석양은 어느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서쪽 산을 넘어 마무리되고 밤이 내린다. 내일도 비슷하게 완벽하고 비슷하게 불완전한 새벽과 노을이 완전한 새로움으로 되풀이될 것이다. 그, 거의 비슷한 새벽과 노을은 우주 속에 결코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2022. 06. 21. 夏至.
沈世仲 Shim Se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