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 내가 우연한 기회에 접한 시론까지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로 약간은 고심중이다.
물론 그 계기를 마련케 된 것은 청담동벙개를 통해서이기도 하다.
시에 대한 관심이 싹튼것은 언어적 묘사의 치밀성이 소설안에 큰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도정일씨의 평론이나 심사평을 통해 깨닫고서 부터일 것이다.
또하나는 어떤이들은 말에 대한 사랑으로 3년간을 넘게 문채와 관련, 언어를 다듬는데 온힘을 쏟기도 했다는 말을 듣고서이기도 하다.
사실 문학에 있어서의 주원료인 이 언어들. 언어 그자체로 언어를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가 최근에 내게 있었다.
또한 길을 가다 문득 <말과사물>_푸코의저서로 기억됨_이라는 책의 제목을 떠올린채 묵상하다가 이제껏 내가 무시해왔던 사물을 지칭하는 성격을 떼어낸 말 그자체란 무엇일수 있을까'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즉, 말과 사물일때 말이란 무엇이고 사물이란 무엇인가의 물음이 그것이다. 다시말해 구체적사물을 가리키지(지칭) 않는 말이거나 언어로 표현되어지지 않은 사물(이미지이거나...) 그자체.
그렇다, 시안에서의언어들은 전혀 실용적이거나 일상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의 기능은 무엇일까. 시어들의 역할은...?
거기서 그러한 것들의 자기해석이 선행하는 지대가 바로 시라는 장르일 것이다.
시인마다 각자가 다른 언어관들을 갖고 자기의 문법과 자기의 언어로 빚어진 세계를 누리거나 건축한다함이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하는 것일 것이다.
또 하나. 시로부터 그러니까 더 자세히 말한다면 시어로부터 이데올로기떼어내기'가 그것이다.
난 이제껏 시를 자기내부의 사상을 표출하는 도구의 하나로써 적극적으로 사용해왔다. 허나 그것이 미학일수 있었을까는 참으로 의문이다.
하여 시란 진정으로 언어로 빚어내는 일상적으로는 전혀 무용한 미학으로서의 몽상성을 지닌다고 하는 점. 난 다시 크레용이나 물감등을 들고 시어라는 재료를 빠레트에 풀어 순수미학적인 그림을 그려낼수 있다는 점.(사실 이제껏 제대로 시도해 본적이 없는 듯함)
그러한 것들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다시 말하기의 그침과 보여주기'라는 소설적 방법론의 하나를 시론안에 끌어들일수 조차 있을 듯하다.
허나 시론이란 무엇인가. 시를 사용하여 미학을 탐닉함이 아니라 그 미학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사유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시에 대해 진정 그어떤 시론을 조립해내길 소설에서 처럼 다해냈을 때 난 시를 앎을 통해서 시쓰기에 좀더 다가설수 있을지 어떨지는 정말 의문이다.
또 하나의 그 시작으로서의 방법론은 소설비평에 도입되었던 7가지 방법들을 시론에 하나씩 대응시켜보는 것을 난 고안해냈다.즉, 김욱동씨의 <광장을 읽는 일곱가지 방법>을 시를 읽는 방법으로 개칭해보는 것이다.
즉, 역사주의, 형식주의, 사회학적 방법,구조주의, 심리주의,해체주의, 신화나 원형비평의 방법등이 그것이다. 또 필요하다면 페미니즘이나 주제론등 여타의 방법도 도입해볼 생각이다.
또한 소설내부에서 통용되었던 시점이라든가 시제 혹은 화자, 시 내부의 이야기성(그 이야기성이 대체 시안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 지는 미루어두고서라도)등은 여전히 유효한 개념이 될 듯하다. 다만 플롯이라든가, 해설등의 서사적 기능들은 배제되고 사진찍기나 보여주기로서의 묘사등은 채택될 것같다.
또한 시는 시나름대로의 시적 형식들을 플롯대신으로 가질 것이다.
이 형식적 요소들은 또한 음악적 시의 요소를 산출해내는데도 아마 유용한 역할을 할듯하다. 여기서 시의 형식과 내용이라는 형식주의자들의 관점이 도입될 것이다. 허나 형식주의는 그 뿌리로 보자면 영미의 크리티시즘이거나 모더니즘등으로 불리워 온 현대적 요소들과 과격한 실험성들을 포함한다. 즉 그들은 내용이라는 심층구조 주축성을 믿지 않고 외면적인 형식의 확대와 파격적 실험들을 꾀해 온 탓이다.
여기에 하이데거가 비판해온 기법이거나 기술주의의 정신이 잔존해 있는듯하다.
또한 내가 관심있는 것은 시적 상상력의 영역이거나 그 가능성들이다.그것은 곧바로 사실위주의 역사주의와 대립한다. 이같은 시내부의 환상성은 소설에 나타나는 그 은유성과 현대적 양상에 있어 어느정도 상통하는듯한 느낌을 주는 듯하다.
즉 사실적 환상주의라는 보르헤스나 <백년동안의 고독>의 저자 마르께스로 나타나는 일련의 첨단 경향을 말함이다.
하지만 모더니즘적 실험성을 넘어선 현대시에 있어서의 해체주의적 양상이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또한 대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결국 나는 소설에서 처럼 시안에 드러나는 현대적인 모든 요소들과 특히 해체주의적 시론의 윤곽에 일차적인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시에 있어서의 전망이란 오늘날 존재하는가와 존재한다면 과연 그것은 어떤 양태일까 하는 것이 또 그것이다.
끝으로 시라는 장르가 이미지라는 회화적 요소를 중시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미술이라는 예술적 장르와 결부시켜 응용적으로 비교하거나 대입시켜 볼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이다.또한 실제로도 그림과 문학적 세계는 서로 조응한 부분들이 많다.
첫댓글 배려로써의 글쓰기,아, 누가 내게 말했던가? 이 사회학적인 용어를...! 난 진정 반영자일 뿐...반사체이다.그표면에 약간의 왜곡을 가진.
김수영씨 시를 읽고 시론을 포기하다. 시란 붙잡기 힘든 것. 구름같은 것.
시간은 가고 다시 계절이 바뀌고 있다. 세월은 그 무엇도 그 자리에 있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수적인 것은 없다, 그마저 흘러가 버릴 테니... 금요일 밤, 혜화동 회합이나 어떻게 잘 구성해 보시지... 책 읽지 못하는 내가 이러저러한 귀동냥이라도 좀 하게 말이시... 내가 늦게 도착하니 들은 걸 다시 내게 일러주시게.
노트잘해놓고 있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