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빌4:6~7절 2023.7.9. 주일오전
6,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 대개의 사람들은 ‘무슨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만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해결해주시고 평강을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들 합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 아뢰면 평강의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신다는 것이지 ‘다 들어 주겠다’것은 아닙니다. 즉 기도는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이지 우리의 소원을 이루는 것은 아닙니다. 마6:8절에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이미 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해서 얻었다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대할 때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알고 계신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기도의 의미는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나 역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에 쓰여지기를 소원하는 기도입니다. 결국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동참되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에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할 수만 있으면 그 뜻을 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정신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내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기도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아들이신 예수님을 향하신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의 죽으심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부르셔서 예수님으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고자 하십니다. 그렇다면 성도를 향하신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그 길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이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 뜻 말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도는 하는 것이 아니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소원과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게 되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됨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기도하라’고 말하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해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모른다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삶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미에서 ‘기도하라’는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기도하라는 것은 우리 개인의 뜻을 이루어주시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되어지기를 구하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기도입니다.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근심하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러한 말이 하나마나한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염려라는 것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환경과 형편에 의한 불안한 마음 상태가 우리를 염려하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염려란 ‘염려하지 말아야지’라는 우리의 의지로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하지 않는 길은 오로지 근심되고 걱정되는 상황과 형편들이 해결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라는 말을 합니다. 과연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다 해결해 줄테니까 염려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뜻이겠습니까? 분명 본문에는 그러한 의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염려’는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형편과 상황들이 우리의 의지나 뜻과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리적인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 합니다. 물론 염려와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 근본적인 방법은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경험 했겠지만 기도한다고 해서 염려가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한 대로 염려와 걱정은 형편과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은 형편과 상황이 해결됨으로써 주어지는 것이지 기도했다고 해서 평안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감에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역시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떤 상황으로 인해서 되어질 일을 미리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즉 염려는 미래에 대한 인간의 상상이 개입됨으로 인해서 생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염려에 대해서 예수님은 마6:34절에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일에 있을 염려까지 미리 앞당겨서 하지말고 오늘 일에 대해서만 염려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내일 일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일 일은 우리의 생각에 달린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내일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항상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이 있을 때 그 일로 인해서 되어질 내일의 일까지 미리 상상함으로써 염려와 근심에 빠진 경험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상상한 것과는 다르게 일이 해결될 때 ‘괜히 걱정했다’라는 자책감이 들 것입니다. 이처럼 내일의 일이 우리의 상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날의 염려만 하라’는 의미라기보다는 내일의 일은 내일이 되었을 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7절에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는 말씀이 기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쳐주는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는 것은 우리의 환경과 형편을 개선시켜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나님께 가졌던 그 마음과 생각으로 지켜주시겠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되어질 일에 대해서는 오직 아버지의 뜻에 맡겼습니다. 어떠한 환경과 형편이 주어진다고 해도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구할 것을 아뢰라’고 말하지 않고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에게 구하는 자의 마음에는 감사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 되어진 일에 대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린 수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우리의 형편과 환경을 기준으로 생각함으로써 감사할 이유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현재 처한 형편이 비록 어려움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보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으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것은 단지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시며 하나님이 베푸신 은총과 사랑과 자비하심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찾을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베푸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되어질 일에 대해서 근심하고 염려한다는 것이 하나님을 벗어난 생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형편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는 성도로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로부터 벗어나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감사함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기까지 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하고 계심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세상 그 무엇도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이 하신 일에 머물지 않고 형편과 환경에 머물기 때문에 불안해지게 되고 그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에는 결코 평강이 없습니다. 기도는 내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 두기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