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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80회>
만년제국의 건설을 마지막 당부로 남기며 인생을 마감한 최응의 시신앞에서 왕건과 문무신료들은 오열하고 고려는 경건한 국상을 준비한다. 한편, 견훤은 절반의 승리만을 거두고 돌아온 신검에게 운주전투의 총사직을 맡기고는 후계자문제를 뒤로 미루고 자신 또한 전투에 나설 것임을 천명한다. 고려의 왕건 역시 곡도에서 돌아온 유금필에게 운주전투의 총사직을 맡기며 친정을 선포하니 양국은 고창전투이후 다시 한번 삼한의 주도권을 놓고 피할 수 없는 승부를 벌이게 되는데... 그러나 출정일을 며칠 남기지 않고 견훤의 등쪽 종기가 등창임이 밝혀지고 군대의 사기를 걱정한 견훤은 이 사실을 숨긴채 운주길에 나서는데...
씬 최응의 집 마당
문이 열려있고 왕건 일행들이 급히 들어서고 있다. 복지겸이 소리친다.
복지겸 이놈들아.. 무얼 그렇게 꾸물거리고 있느냐? 폐하께서 납시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집사 소.. 송구하옵니다. 나으리께서 편치 않으시어...
왕건 어디 있는고...? 최응이가 어디 있는고..?
최지몽 저 쪽이 사랑이옵니다, 폐하.
왕건 오, 그런가...?
그들이 사랑 쪽으로 달려간다.
씬 동 집 사랑 마당
이들이 우 들어선다. 반쯤 열려진 사랑문 앞에 이르다 말고 최지몽이 크게 놀란다.
최지몽 폐하, 여기...
모두들 그곳을 본다. 최응이가 앉은 채 눈을 뜨고 죽어있다. 그 앞에 그가 써놓은 깨알같은 글들이 보인다. 모두들 말이 없다.
왕건 최응이가..... 최응이가 죽은 것이 아니냐?
최지몽 (울며) 그러하옵니다, 폐하. 숨을 거두셨사옵니다.
왕건 죽다니... 최응이가 죽다니...? 짐을 버려두고 가버렸다는 말이냐..? 최응이가...?
모두들 ...............
김행선 이런 세상에... 앉은 채 눈을 뜨고 죽지 않았는가? 오호.. 저런 죽음은 법력이 높은 고승들이나 한다고 들었는데....
배현경 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홍유 그러게 말이오..
왕건 (계속 울부짓는다) 최응아.... 이렇게 가다니...? 아니 된다. 어떻게 나를 두고 최응이 자네만 가버렸다는 말이냐? 최응아... (다가가 보며) 황제가 왔느니라. 짐이 왔느니라, 눈을 떠보아. 최응아... 최응아... 눈을 떠보아...
모두들 ...................
왕건 이렇게 가버리다니... 젊은 자네가 이렇게 가버리다니... 오, 하늘이시여.... 이를 어이하오리까? 이를 어이하오리까..?
왕건이 죽은 최응을 끌어안으며 통곡한다. 신료들이 보고 있다. 아무도 말을 못한다. 왕건의 오열이 계속되는 가운데
해설 최응, 본관은 황주이며 대상 우달의 아들이다. 일찍이 어머니가 그를 임신하였을 때, 그 집 오이줄기에 갑자기 참외가 맺히므로 이웃사람이 이를 이상히 여겨 나라에 고하니 궁예가 점을 쳐 말하되 생남을 하면 나라에 불리하니 기르지 말라 하였음으로 부모가 숨겨 길렀다. 나이 열 넷에 그 궁예의 조정에 발탁되었고 희대의 신동으로서 나라를 보좌하였다. 사서오경과 문장에 능통하였고 늘 궁예 옆에 머물렀으며 궁예는 그를 성인이라 하여 크게 위하고 아꼈다. 궁예가 포악해진 이후, 이른바 관심법으로 많은 사람을 죽일 때에 왕건도 누명을 쓰고 위기에 몰린 바 있었으나 그가 극적으로 구해 주어 결국 나라를 얻게 하였다. 왕건이 고려를 세운 이후, 광평성과 내봉성, 병부 등의 중책을 역임하며 총애를 받았고, 늘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며 욕심이 없었다. 이때에 홀연히 죽으니 나이가 서른 다섯이었다. 그는 후에 태자태부(太子太傅)가 증직되고 태조왕건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희개(熙愷)라 하였다.
씬 동 집 사랑 (시간경과)
상청이 마련되어 있다. 마당에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고 그 한쪽에 신료들이 모두 분향을 하고 있다. 염상, 박수문 형제, 왕충, 윤신달, 왕규, 추언규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국상을 알리는 소복차림이다. 그들은 안타까운 듯 소근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고 한쪽에서는 절을 하고 있다. 그 피어오르는 상청의 향 연기에서....
씬 송악 황궁 외경
씬 동 황후전
두 황후가 정윤 무를 보고 있다. 그리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다.
오씨 그예... 내봉경 최응공이 죽었다는 말이오?
무 예, 어마마마. 지금 아바마마께오서 그 일로 다녀오시어서 크게 상심하시고 계신다 하옵니다.
유씨 세상에... 그 사람 나이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운명을 한다는 말입니까?
무 그러게 말이옵니다. 모두들 안타까워하고 있사옵니다.
유씨 사람 사는 것 참으로 허망하다고 하더니.. 이를 두고 말하는 것 같사옵니다. 어떻게 젊은 사람이 그렇게 쉽게 눈을 감는다는 말입니까?
오씨 하긴 옛말에 그런 말이 있네. 태어나는 것은 차례가 있으나 죽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하늘의 이치를 누가 알겠는가?
무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했던 신동이였사옵니다. 나라를 위해 이처럼 애석한 일은 없사옵니다.
오씨 그렇겠지요. 그 사람은 그럴만도 합니다. 남이 하나를 걱정하면 열을 걱정하는 자리에 있었고 남이 십 년을 생각하면 그 사람은 천년을 생각하는 자리를 맡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일찍 가는 것이 결코 이상할 리가 없지요. 그래요, 다 나랏일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일을 하다가 그리 되었어요.
씬 동 대전
왕건이 눈물을 흘리며 최응이 남긴 글들을 보고 있다. 김행선이 복지겸과 함께 앉아 있다. 한참을 넘긴다.
왕건 시중, 보시구려. 최응이 내게 남겨준 글이오.
김행선 예, 폐하.
왕건 최응이는 나에게 조목조목 나라 다스리는 법과 치자의 도리에 대하여 알려주고 있소이다. 우리의 통일을 절대 외세에 힘에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소이다.
복지겸 지극히 당연하고도 옳은 지적이옵니다. 일찍이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통일을 하였기로 두고두고 그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하였사옵니다.
왕건 (계속 읽으며) 맞소이다. 그리고 또 여기 이렇게 말을 하였소이다. 그 옛날 우리의 선조들인 고구려가 이루었던 영광을 되찾으라고 말이오.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삼한을 통일하는데 있어서 힘보다는 덕으로 하라고 하였소이다.
김행선 일일이 모두가 금과옥조 같은 지적이옵니다. 그러하옵니다. 백제의 견훤왕은 성정이 급하여 힘으로써 모든 것을 이루려고 하였사옵니다. 그 결과가 서라벌 침공으로 세상에 드러났으나 폐하께오서는 오히려 인정으로서 저들을 대하셨사옵니다. 결국 신라 모두가 폐하께 존경을 드리고 허리를 숙이는 것은 바로 폐하의 덕이 견훤왕의 무지한 힘을 이긴 결과가 아니겠사옵니까?
왕건 (다른 봉투의 내용을 꺼내 본다) 이것은 앞으로의 국책을 이행하는데 있어서 권하는 도움말이라고 하였소이다. (본다) 어허... 이런.. 이런, 이런...
김행선 왜 그러시옵니까, 폐하?
왕건 백제국과의 일에 대해서 적어 놓았구려. 오래지 않아서 백제는 틀림없이 무너질 것이라 하였소이다.
두 사람 그러하옵니까?
왕건 (계속 보며) 백제가 무너지는 것은 나라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저들 내분에 의하여 스스로 무너질 것 같다는구려. 이미 그러한 것을 은연중에 백제국의 책사인 최승우가 인정하였다 합니다.
복지겸 아니, 최승우가 말이옵니까?
왕건 그렇다는 구려. 얼마전 둘이 만난 모양인데 그때, 최승우는 그 스스로 어디에 뼈를 묻을까, 한탄하였다 합니다.
복지겸 세상에... 언제 그런 일들이...?
왕건 또 있소이다. 여기 이런 말을 또 적어놓았소이다. 이제부터는 통일을 대비하여 백계산 옥룡사에 있는 경보대사를 만나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이오.
두 사람 경보 대사...?
왕건 통일에 큰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하였소이다. 그래요, 경보 대사는 바로 내 스승이신 도선 대사의 제자셨지요. 경보대사라... (끄덕인다) 하긴 스승의 제자이시니 마땅히 찾아뵈어야지. 그렇고 말고.......헌데 최응이는 마치 백제가 무너지는 것을 눈 앞에 보는 것처럼 적어놓고 있구려. 그럴 리야 있나...? 그래도 그렇지... 백제의 왕이 어떤 사람인데 그렇게 쉽게..?
김행선 폐하, 최응 공이 누구이옵니까? 신동이라 자타가 인정했던 사람이옵니다. 보고 느낀 점이 있어 폐하께 드린 말씀이 아니옵니까? 지켜보시오소서. 절대로 허언이 아닐 것이옵니다.
왕건 하긴.. 그렇기는 하겠지마는...
그래도 의심쩍어 하는 왕건의 갸우뚱하는 표정에서....
씬 백제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장계를 읽다가 말고 견훤이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그 앞에 능환, 능애, 영순, 박영규, 금강들이 함께 해 있다.
견훤 어허, 이런.. 이런... 곡도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신검이가 욕심을 부리다가 또 다시 일을 망쳤어.
모두들 .................
견훤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신검이는 이거 늘 잘 나가다가 끝에 가서 일을 망쳐놓는다고 말이야.
능환 하오나 폐하, 그래도 우리 수군이 대우도 일대를 크게 위협하였다하옵니다. 어쩌다가 그만 한때 기회를 잃었던 모양이옵니다.
능애 그러하옵니다. 신검 태자마마의 전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장하셨사옵니다. 고려의 막강한 수군을 궤멸시켰을 뿐만 아니라 고려의 황도를 급습하여 그 황궁을 유린하였사옵니다. 역대에 이만한 공을 세운 장수나 신료는 없었사옵니다.
견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나는 어이없이 곡도에서 무너진 우리 수군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야. 거기서 잘못하였기 때문에 앞에 세운 공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어. 모두 다 말이야.
박영규 하오나 폐하, 우리 수군이 모두 다 무너진 것은 아니옵니다. 비록 유금필을 만나서 타격을 입기는 했사오나 과보다는 공이 크옵니다. 그리 생각하시오소서.
금강 그러하옵니다, 폐하. 전투를 하다보면 이기고 지는 것은 비일비재하옵니다. 형님께서는 공이 과보다 크시옵니다.
견훤 그래, 무어 그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이 얼마나 아쉬운가 말이야. (등을 긁는다) 아쉬워... 정말 아쉬워...
견훤은 계속 등을 긁적거린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린다. 그런 견훤의 모습을 능환들이 본다. 견훤이 눈치채고 긁기를 멈춘다.
견훤 아무튼 그대들 말마따나 공이 과보다 크다고 인정을 하세나. 허면 다음에는 우리의 목표가 운주(홍성)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그때는 짐이 직접 나갈 것이야. 아우는 듣게.
능애 예, 폐하.
견훤 지금 신검이가 도성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하니 오거들랑 자네가 함께 서둘러서 군사들을 다시 모으고 병참을 준비하도록 하게. 여세를 몰아야하네. 이 여세를 몰아서 고려의 기를 꺾어야 한다는 말이야.
능애 예, 폐하.
견훤 더군다나 고려의 그 신동 최응이라는 자가 죽었다지?
영순 예, 폐하. 그렇다하옵니다. 그 일로 하여 고려는 국상을 반포하고 신료들이 모두 상복을 입었다 하옵니다.
견훤 그 신동이라는 최응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타격을 받았었는가? 우리 백제로서는 참으로 잘된 일이 아닌가? 운주로 가세. 거기서 기선을 잡아서 다시 옛 활력을 찾아야 해. 모두들 힘을 모아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 알겠는가?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이제부터야.. 이제부터 우리 백제는 다시 시작하는 것이야. 이제부터...
하다가 견훤은 꿈틀하며 아픈 표정을 짓는다. 자기도 모르게 또 손이 등쪽으로 간다. 고개를 갸웃하는 그의 고통스런 표정... 그 모습을 보는 능환들 그리고 다시 견훤의 표정에서 디졸브
씬 궁궐 길
능환, 능애, 영순들이 걸어오고 있다.
능환 그래도 다행이올시다. 폐하께서 신검 태자마마의 일을 더 이상 나무라지 않으셨소이다.
영순 그러게 말이옵니다.
능애 그것 참... 하긴 폐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으십니다. 거 생각해보면 늘 처음에는 잘 나가시다가 뒤에 가서 운이 없으시다는
말입니다.
영순 그래도 이번에는 잘 하셨사옵니다. 아, 고려의 수군이 얼마나 막강한 존재이옵니까? 그것을 잿더미로 만들었어요. 고려의 황궁을 열었고 말이옵니다.
능애 (끄덕인다) 희망이 보입니다. 어쨌든 이번에는 그 전공을 인정하셨습니다. 떠나기 전에 그런 약조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번에 잘 한다면 다음 보위를 약속하시겠다고 말입니다.
능환 그리 하셨지요. 허나 곡도에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확실하게 약속을 지키라고 할 만한 입장에 있지는 못하십니다. 이번에 운주전투에서 무언가 확실하게 한번만 더 보여주신다면 조금 안심이 될 것인데....
영순 헌데 운주에는 폐하께서 직접 가신다고 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능환 물론 그랬지요. 하지만 지금 오고 계시는 신검 태자마마와 함께 가실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영순 조회 때 보니 폐하께서 어딘가 편치 않으신 것 같아 보였사옵니다.... 자꾸만 등쪽으로 손이 가시는 것 같았사옵니다마는...
능애 그건.... 꽤 되신 것 같아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십니다. 등에 아무래도 뭔가 종기가 나신 것 같은데...
영순 하긴 뭐 그런 종기 따위로 전투에 못 나가실 일은 없겠지요 마는... 그래도 그렇지...
능환 ...............?
씬 동 대전
의원 훈겸이 견훤의 등을 보고 있다. 의외로 종기는 심각하다. 훈겸이 눈을 크게 뜨고 놀라며 혀를 찬다.
견훤 왜 그러는가? 종기가 조금 심한 모양이로구나?
훈겸 예, 폐하. 어찌하시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도 신을 부르지 않으셨사옵니까?
견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종기야 조금 견디다가 곪아서 짜면 낫는 것이 아닌가?
훈겸 그런 일반 종기가 아니라 등창이옵니다.
견훤 등창.....?
훈겸 예, 폐하. 부스럼치고는 악성에 속하는 고약한 병이옵니다. 이미 뿌리가 깊이 박혔고 그 기운이 성해 있사옵니다.
견훤 과장이 심하구나. 이까짓 부스럼이야 곧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 어찌하면 좋겠는가?
훈겸 일체의 육식과 술을 금하시는 것은 물론 노여움도 참으시고 늘 성심을 편안히 하시면서 고약으로 다스리셔야 하옵니다.
견훤 허허허.... (옷 매무새를 갖추며)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은 이해하겠네마는 무슨 부스럼 따위에 노여움도 참아야 하고 고기도 금해야 한다는 말인가?
훈겸 이 등창은 혈기가 오르면 금새 주변이 굳어지고 화기가 한 곳으로 몰려 의식을 잃게 하고 고통을 뼈까지 이르게 하옵니다. 결코 소홀히 보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폐하.
그 말에 견훤은 비로소 조금 심각해진다.
견훤 빨리 나을 방법은 없겠는가?
훈겸 그리 보이옵니다. 꽤 오래 갈 것 같사옵니다. 지금부터라도 편하게 요양을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견훤 요양........? 이따위 등창 하나로 요양을 하라는 말인가? 우리는 지금 운주로 대군을 몰아가게 되어있어. 요양이라니.......?
훈겸 하오나 폐하... 이 병증은 그렇게 가벼이 보셔서는 아니 되옵니다.
견훤 정 그렇다면 그대가 자주 와서 이 병을 보아주게나. 그러나 입단속을 하게.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지 말라는 것이야. 출전을 눈앞에 둔 군사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가 있어. 알겠는가?
훈겸 예, 폐하.
견훤 아무 것도 아닌 부스럼 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성가시게 하다니 원... 쯧쯧쯧...
그러면서 또 손이 등으로 가는 그 견훤의 표정에서...
씬 황후전
황후 박씨가 이상궁과 함께 해 있다. 한숨을 길게 내쉰다.
박씨 우리 신검 태자가 돌아온다고...?
이상궁 예, 황후마마. 이미 도성 가까이 이르셨다 하옵니다.
박씨 운이 없어도 어쩌면 그리 없을꼬...? 그렇게 눈이 부신 전공을 세워놓고도 돌아오다가 기습을 받을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한숨) 그래도 폐하께서 그 정도로 끝을 내셨다니 다행이구먼.
이상궁 예, 마마. 별로 크게 나무라지는 않으셨다 하옵니다.
박씨 얼마나 중요한 시기인가? 폐하께서 다음 보위를 공공연히 약속하셨다고 하네. 이럴 때에 잘해야지. 이럴 때에 말이야.
이상궁 여러 중신들과 금강 태자마마도 신검 태자마마의 공이 과보다 크다고 하셨다 하옵니다.
박씨 그래.....? 금강이 마저 그랬다고...?
이상궁 예, 마마. 박영규 장군께서도 그리 하셨다 하옵니다.
박씨 허, 별일들일세. 금강이가 그러다니...? 그리고 박영규 장군도 사위이기는 하지만 언제부턴가 금강이 쪽에 붙어있어. 이제서야 뭔가 정신들이 드는 모양이구먼. 우리 신검이 편을 들다니 말이야. 아니 그런가?
이상궁 그러게 말이옵니다, 황후마마.
박씨 이번에 돌아오면 한번 더 보란 듯이 기회를 잡아야 할 것인데... 이런 에미 마음을 알라나 모르겠네. 참으로 간이 조려....
씬 도성 근처
신검 일행이 오고 있다. 최승우, 양검, 용검, 애술, 신덕, 최필, 상귀, 김총, 파달, 상애들이다. 신료들이 모두 맞고 있다. 능환, 능애, 영순, 박영규, 금강들이다.
능환 태자마마, 승전하고 돌아오심을 감축드리옵니다.
신검 고맙소이다. 이찬..
능환 수고하였네, 파진찬.
최승우 어인 말씀을요..
신검 한때는 큰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으나 마지막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습니다.
능애 알고 있사옵니다. 이미 전령을 보내지 않으셨사옵니까? 폐하께오서도 그 일을 크게 생각지 않으시옵니다. 어서 궁으로 드시오소서.
능환 모두들 고생하시었소. 폐하께오서 기다리고 계시니 어서 들 안으로 드십시다.
모두들 예, 이찬 어른.
능환 자, 어서들 가십시다.
상귀 서둘러라.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서둘러라.
행군이 계속되기 시작한다. 신검의 표정은 그리 밝지가 않다. 그들 그렇게 가면서 디졸브되면...
씬 동 편전
견훤이 신검과 장수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모두들 잠시 말이 없다.
견훤 보내준 장계도 잘 받아 보았고 소식도 충분히 들었다. 볼만한 전과도 있었으나 아쉬운 점도 많았다.
신검 그러하옵니다, 폐하. 끝까지 소임을 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돌아온 것을 용서하시오소서, 폐하.
견훤 스스로의 잘못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 다음의 실수를 막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를 스스로 깨닫고 있다면 다음에는 똑같은 위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하거라.
신검 예, 폐하.
견훤 나는 여기 중신들에게 영을 내려놓았다. 이번을 계기로 하여 지금까지 침체되어 있던 우리 백제국의 입지를 바꾸어 보겠다고 말이다. 우리는 지금 양군이 크게 대처하고 있는 운주로 갈 것이다.
모두들 ...............
견훤 이번 운주 전투에서 너의 다하지 못한 소임을 완성해 보이도록 하거라.
신검 예, 폐하.
견훤 제왕의 자리는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금강석처럼 단련되고 혹독하게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신검이 너에게 믿음을 가지고 있다.
능환들 ...............
견훤 그러나 이 아비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 그것에 대한 분명한 답을 주었으면 좋겠다. 분명한 답 말이다. 그것은 이번 운주 전투에 달려 있다. 우리 백제는 고창전투 이후 크게 뒤로 밀려났다. 그것을 뒤집어야 한다. 운주에서 말이다. 너의 힘을 거기서 다시금 확인해 보이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신검 예, 폐하.
최승우 (눈치를 보다가) 폐하, 신 최승우 아뢰옵니다.
견훤 오, 파진찬.. 말해보라. 무슨 말인가..?
최승우 운주 전투는 지금으로써는 서두르실 일이 아니옵니다.
견훤 서두를 일이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최승우 운주는 이곳에서 먼 길이옵니다. 또한 고려의 수군이 비록 큰 타격을 입었다 하나 아직도 보군은 강하기가 이를데 없사옵니다. 우리 백제군이 아직까지 지난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조금 더 휴식과 정비가 필요하옵니다.
능환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한없이 열세로 치닫던 나라의 기운이 신검 태자께서 파진찬 그대와 더불어 크게 바꾸어 놓았네. 이럴 때에 형편을 바꾸지 못한다면 언제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최승우 폐하의 성심과 신료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오나 급한 것은 금물이옵니다. 아직도 우리 군사들이 지쳐있고 힘들어하고 있사옵니다. 운주는 어느 때이든 공격할 수 있는 곳이옵니다. 서두르지 마시오소서. 우리의 힘을 충분히 비축하고 난 뒤에 하셔도 늦지 않사옵니다.
신검 하오나 폐하, 아직 소자의 힘과 의지는 펄펄 끓고 있사옵니다. 운주로 보내주시오소서. 군사들의 사기가 아직은 쓸만하옵니다.
견훤 가히 내 생각과 같다. 파진찬은 너무 조심스럽게 말을 하고 있는데 더는 기다릴 수가 없어. 이 기회에 대대적인 반격으로 기선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다 싸울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신검 그러하옵니다. 싸울 수 있사옵니다, 폐하.
견훤 암, 그래야지. 어차피 고려의 왕건 아우가 되었든 아니면 내가 되었든 통일의 결과는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싸워야 하고 끝을 볼 수밖에 없는 일이야.
최승우 여유를 가지시오소서, 폐하. 서두르실 이유가 없사옵니다.
애술 지금까지 파진찬께서는 우리 신검 태자마마를 도와 잘 싸워 오셨사옵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시고서 왜 갑자기 운주의 일은 그토록 몸을 사리시옵니까?
신덕 소장도 이해가 아니 가옵니다. 우리는 승리한 군대이옵니다.
능애 운주는 고창과 더불어 동서를 가르는 전 전선의 분기점이옵니다. 우리는 동쪽의 고창을 잃어버리면서 상당한 타격을 입었사옵니다. 이번에 운주까지 밀리게 된다면 서쪽으로 해서 위로 올라가는 모든 길목이 다 막힐 것이옵니다.
견훤 들었는가, 파진찬...? 모두들 운주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네. 한결같이 모두들 가야한다고 하고 있어.
최승우 폐하, 지금은 동절기로 접어들고 있사옵니다. 군사들이 싸우기에 힘이 들고 운주는 또한 지리적으로 산악과 구릉이 많아 그 지형이 험하다 들었사옵니다. 모든 것이 너무 서두르는 감이 있사옵니다, 폐하.
견훤 절대로 그렇지가 않아. 얼마나 기다려온 기회인가? 잘 될 것 같아. 모든게 잘 될 것 같아. 내가 직접 가는 전투일세. 나는 아직 늦지 않았어. 잘 될 터이니까 파진찬도 준비를 하도록 하세. 전 신료들은 들으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운주 전투는 짐이 친정을 하기로 이미 공표한 전투이니라. 이곳에서 대 역전을 시도할 것이다. 모두 승리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각오들을 새로이 하라. 그리고 그 준비에 만전을 기하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이번에는 단단히 보여줄 것이다. 왕건 아우에게 아주 단단히 보여줄 것이야.
그런 표정에서...
씬 고려 황궁 외경
씬 동 대전
왕건과 유금필이 마주해 있다. 김행선을 비롯하여 복지겸, 박술희, 홍유, 배현경, 왕식렴들이 함께 해 있다.
유금필 죄인 유금필 다시금 불러주시니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건 그게 무슨 소리인가? 자네가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우리 고려군의 체면은 땅바닥에 떨어질 뻔하였네. 그나마도 자네 때문에 끝까지 비참한 꼴은 면했어.
유금필 망극하옵니다.
김행선 유장군이야말로 이 난세의 영웅이올시다. 불과 몇 척의 어선과 오랑캐 군사들로 백제의 수군을 절반이나 무너뜨렸소이다.
박술희 그렇고 말구요. 유금필 형님이 아니시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왕식렴 그러하옵니다. 유장군, 참으로 잘 싸워 주셨습니다.
유금필 고맙소이다, 왕총관.
홍유 지난날 다소 섭섭함이 있었을 것이외다. 다 나라를 생각하는 우국충정에서들 나온 일이니 그리 생각해 주시구려. 잘 와주셨소이다, 장군.
유금필 고맙소이다, 홍장군.
배현경 참으로 어려울 때에 잘 와주셨습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유금필 고맙습니다. 이번에 병부를 맡으셨다니 오히려 배장군께서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허허허....
왕건 자, 이제 다시금 전선이 운주로 옮겨지고 있다 하네. 금필 아우..?
유금필 예, 폐하.
왕건 이제 자네도 머리가 희끗희끗해 보이는구먼. 허나 어쩌겠는가? 아직도 통일의 길은 멀고 해야할 일은 많네. 이번에 운주로 함께 가세나. 자네가 총사를 맡게. 아무래도 그곳에서 백제와 크게 부딪혀야 할 것 같다는구먼.
유금필 나라를 위한 일에 어찌 몸을 사리겠사옵니까? 영을 따르겠사옵니다.
왕건 이번에 백제군이 우리 황도까지 들어온 것은 작은 방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부르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네. 우리가 자랑하던 수군도 잿더미가 되어 버렸고 황도도 엉망이 되었어. 이제 그 빚을 운주에서 갚을 생각이네. 금필 아우가 정남대장군을 맡아서 그 전투를 지휘하도록 하게.
유금필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배현경 우리 병부에서 살펴보니 백제의 상당한 군사력이 서쪽 운주에서 위로 북상하려고 모여들고 있다 하오이다, 유장군. 아마 이번 전투는 그 규모로 보아 백제의 왕이 직접 나올 가능성이 있소이다.
왕건 백제의 왕이 나온다....? 허면 나도 가야지. 백제의 왕이 나온다는데 짐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김행선 하오나 폐하께서 가신다면 이 황도는 어찌하옵니까?
왕건 황도는 정윤 무가 지키라 할 것이오. 백제의 왕이 나온다면 짐이 꼭 가야하오. 금필 아우는 그리 알고 작전을 숙의해 주기를 바라네.
유금필 예, 폐하.
왕건 그리고 병부에서는 막대하게 타격을 입은 우리 수군을 다시 옛날처럼 재건하도록 하시오. 바다를 장악하는 것은 고려의 황제인 짐의 자존심에 속하는 문제요.
배현경 예, 폐하.
왕건 고창에서의 지난 설욕을 백제는 이번에 꼭 갚으려 할 것이오. 운주 전투는 서쪽 길목을 누가 장악해서 기선을 잡느냐 하는 아주 의미가 큰 싸움이 될 것이오. 병부령의 말처럼 반드시 백제의 왕이 나올 공산이 크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오. 그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 주기를 바랍니다.
배현경 예, 폐하. 여기 유금필 장군이 왔사옵고 폐하께서 그 총사를 명하셨사옵니다. 무엇을 염려하겠사옵니까? 하하하.......
김행선 그러하옵니다. 유금필 장군 이름만 들어도 백성들이 열렬히 환호하옵니다. 운주에서도 유장군이 앞을 서면 틀림없이 백제군은 크게 동요할 것이옵니다. 싸울 때마다 백전백승하지 않았사옵니까?
유금필 칭찬이 과하시옵니다, 시중어른.
왕건 하하하... 모두들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이처럼 크네. 잘 해주게.
유금필 예, 폐하. 신명을 다 바치겠사옵니다.
끄덕이는 왕건의 그 표정에서...
씬 인서트
군사훈련이 한참이다. 왕건이 참관해 있고 거기 염상을 비롯한 박수문 형제, 윤신달, 왕충, 홍유, 배현경, 유금필, 박술희, 복지겸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대대적인 훈련이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해설 운주전투, 운주는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 지방을 일컫는 옛 지명이다. 지도의 위도를 보면 운주는 서쪽, 그리고 지난날 견훤이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던 고창은 동쪽으로서 나란히 선이 이어져있다. 즉, 그 횡선이 고려와 백제의 전선이 된다면 맞는 말이 될 것이다. 고려의 왕건은 운주를 통하여 백제를 치려고 하였고 또한 백제는 그쪽을 통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려고 했다. 이때가 단기 3267년, 서기로는 934년 9월이 다하던 무렵이었다. 따라서 이 운주전투는 백제로서는 지난날 고창전투의 대 참패를 만회할 기회가 되는 것이었고 고려로서는 또한 예성강 기습으로 인해 막심한 타격을 입었던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이기도 했다. 어쨌든 양군은 늦가을로 접어드는 그 무렵, 서로의 군사를 정비하여 운주로 향할 준비를 마쳤다.
씬 백제 황도 외경 어느 곳
초겨울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치고 있다. 거기서도 수많은 장졸들이 훈련에 임해 있다. 신검을 총사로 하고 그 형제들인 양검, 용검과 금강, 그리고 장수들인 박영규, 애술, 최필, 신덕, 김총, 상귀, 파달, 상애들이 보고 있다. 신검은 무언가 기대감과 만족감으로 끄덕이고 있고....
씬 동 대전
훈겸이 견훤의 등창을 치료하고 있다. 견훤이 아픔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훈겸이 고름을 짜고 있는 것이다. 훈겸이 도리질을 한다. 등창은 깊게도 파여서 두 곳, 세 곳에 번져 있다. 온 등어리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견훤 (비명 계속) ........... 고통이 심하구나. 참기가 어렵다. 그렇게도 근이 깊이 박혀 있는가?
훈겸 예,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고름을 다 짜내면 근을 다시 뽑아내야 하는 것인데 그 근이 나오지를 않고 있사옵니다.
견훤 다시 짜 보게.
훈겸 고통이 심하실 것이옵니다.
견훤 해 보게.
훈겸 용서하시오소서.
힘을 주어 고름을 짠다. 입술을 깨물던 견훤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소리친다.
견훤 그만... 그만 하게. 그만... 그만.....
견훤의 얼굴이 땀투성이다. 훈겸이 어쩔 줄을 모른다.
훈겸 폐하, 다시 한번 말씀 드리옵니다. 이번 전투에는 나가지 마시오소서. 이러한 병증으로는 가실 수 없사옵니다.
견훤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전 장졸이 나만 바라보고 있어. 가지 않다니...? 어떻게 가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훈겸 병증이 너무 심하시옵니다. 이 부스럼은 자꾸만 옆으로 번질 것이옵니다. 앞으로는 자주 열이 오르실 것이고 온 몸에 기운이 빠지실 것이옵니다. 전장에 나가심은 무리이옵니다, 폐하.
견훤 그래도 가야 하네. 내가 간다면 틀림없이 저쪽에서도 고려의 왕이 나오게 되어 있어. 얼마나 중요한 전투인지 아는가? 이번에는 자네가 함께 가세. 함께 가면 될 것이 아닌가?
훈겸 폐하, 한번 더 생각하시오소서. 가실 수가 없사옵니다.
견훤 (버럭) 닥치라고 하였어. 국가의 운명이 걸려있는 한판이야. 자네도 출전 준비를 하게. 알겠는가? 함께 가는 것이야.
훈겸 예, 폐하.
그때, 대전내관의 아뢰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소리) 폐하, 이찬과 파진찬 어른 입시이옵니다.
견훤 이찬이.....? 들라 하라.
능환과 최승우가 들어선다. 견훤이 위엄을 되찾는다.
견훤 그렇지 않아도 곧 나갈 참이었네. 장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능환 그러하옵니다, 폐하. 하옵고 드디어 저쪽에서도 고려의 왕이 군대를 움직였다 하옵니다.
견훤 허허, 왕건 아우가 말인가? 군대를 움직였다....?
최승우 (훈겸을 흘깃 보다가) 폐하, 한번 더 청을 올리옵니다. 이번만은 쉬심이 어떠하시옵니까?
견훤 허허, 사람하고는... 다 결정된 일을 또 들고 나오면 어찌하는가? 이번에는 모두 다 함께 가는 것일세. 그 이야기는 그만 하세. 준비들은 끝났는가? 왕건 아우가 움직였다면 우리도 가야지. 이찬은 능애 아우와 더불어 황도를 잘 지켜주게.
능환 예, 폐하. 안심하시고 다녀오시오소서. 어서 밖으로 납시오소서. 장졸들이 폐하를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견훤 알겠네. 그렇지 않아도 나가려던 참이었지. 자, 훈겸이 자네도 준비를 하게. (능환들에게) 허허허... 내가 좀 고뿔끼가 있어서 말이야. 전의를 함께 데려갈 것일세.
능환 그야 폐하께서 가시는데 당연한 일이 아니옵니까? 잘 살펴드리게.
훈겸 예, 이찬어른.
견훤 자, 그럼 먼길 갈 준비를 해야겠구먼. 허허허... 운주라?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이네 그려. 허허허.... 왕건 아우가 오고 있다고... 왕건 아우가....?
견훤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선다. 그러다 그 상처가 걸리는 듯 또 아픔을 참는다. 그 표정에서...
씬 어느 산길
왕건의 군대가 오고 있다. 천둥과 번개가 계속되고 있다. 왕건을 비롯하여 유금필, 홍유, 배현경, 박술희, 복지겸, 박수문 형제, 최지몽, 윤신달, 염상, 왕충들의 모습이 보인다. 왕건이 하늘을 본다. 엄청난 바람이 불어치고 있다
왕건 이보아라, 내의성령?
최지몽 예, 폐하.
왕건 날씨가 영 좋지를 않아 보이는구나.
최지몽 그러하옵니다. 하늘을 보니 예사롭지 않아 보이옵니다. 구름과 바람의 방향을 보니 아무래도 폭풍이 오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왕건 폭풍이라.......?
최지몽 그리 보이옵니다, 폐하.
왕건 허허... 이거 운주까지는 길이 먼데 낭패가 아닌가? 서둘러야겠구먼. 서둘러야겠어... 이보게 금필 아우?
유금필 예, 폐하.
왕건 폭풍이 온다고 하네. 아직 길이 멀고 넘어야 할 강이 많은데 낭패가 아닌가? 서두르게.
유금필 예, 폐하. 부장들은 들으라. 날씨가 참으로 좋지가 않다. 길을 서둘러라. 해가 저물기 전에 야영지를 찾을 것이다. 서둘러라.
부장들 예, 장군. 길을 서둘랍신다. 길을 서둘랍신다.
그 부산한 표정에서 하늘을 보는 왕건의 우울한 얼굴을 잡으면... 들려오는 백제군의 환호소리들...
씬 백제 황궁 밖 열병장
견훤이 그의 어마를 타고 장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충성을 다짐하는 군례가 하늘을 진동한다. 여기에서도 천둥과 번개는 쉬임 없이 들려오고 있다. 거기 능환과 최승우들의 모습도 보인다. 모든 문무신료가 다 나와있다.
견훤 (하례를 받고 나서) 장졸들은 들으라. 짐은 오늘 그 동안 침체되었던 대 백제국의 위용을 되찾고자 운주전선의 친정을 결심하였도다.
모두들 (와- 함성) .......
견훤 얼마 전 신검 태자는 적국인 고려의 황도로 들어가 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바가 있다. 지난번 고창에서는 우리가 운이 없어 큰 상처를 입었지만 이번에는 그 반대편 운주에서 우리가 당한 치욕을 되돌려 주게 될 것이다. 모두 짐을 믿고 전선으로 가도록 하라. 내가 앞장서서 장졸들의 모든 한을 풀도록 할 것이다.
모두들 환호성이 대단하다. 그 장수들의 면면이 지나쳐 간다.
견훤 이미 고려군도 고려의 왕이 앞장을 서서 운주로 출발하였다 한다. 우리도 곧 그리로 향할 것이다. 그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도착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운주 전투는 그야말로 우리 백제국과 고려가 명운을 건 대단한 한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계속해 환호성이 터진다. 견훤도 손을 들어 답례를 하다가 밀려오는 통증을 감추려 한다. 그것을 신검이 보았고 최승우와 능환들도 보았다. 그러나 견훤은 애써 감춘다. 계속해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고 있다. 그때다. 갑자기 더더욱 큰 천둥 번개가 때려오기 시작한다. 모두들 놀라서 하늘을 본다. 짙은 먹구름이 수없이 빠르게 밀려가고 있다.
견훤 하늘이 우리의 승리를 다짐해 주는 전조이다. 두려워들 말라. 자, 모두들 짐을 따르라. 운주로 갈 것이다.
신검 황제폐하 만세... 만만세.... 만세....
그러자 장졸들이 모두 신검을 따라 만세를 부른다. 천둥 번개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그 모습들에서 상기되는 견훤의 그 표정에서 디졸브...
<180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