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 생계비가 올해보다 8.9% 올라 4인 가족 기준 113만6천원으로 결정됐다. 물가 상승률에 맞춰 3~3.5%를 올렸던 예년에 견줘 인상폭은 갑절이 넘지만 현실화에는 많이 못미친다.
최저 생계비는 5년마다 빈곤가구의 실제 생활을 조사해 그 결과를 반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올해가 그에 해당된다. 정부는 생활의 질적 변화를 반영해 컴퓨터, 인터넷 사용료 등을 새로 포함시켰다. 그러나 식료품비를 줄이고 휴대전화, 우편요금 등을 제외해 실상에 충실하기보다 예산에 꿰어맞추려 한 것으로 보인다. 보건사회연구원이 4인 가족의 최저 생계비를 최소한 123만원으로 13% 인상해야 한다고 제시한 데도 크게 모자란다. 국민 평균소득에 비춰보더라도 최저 생계비는 더 인상돼야 한다. 1999년 4인 가구의 최저 생계비는 근로자 가구 평균소득의 38.2%, 전체가구 평균 지출의 48.7% 수준이었으나 2004년 상반기에는 각각 31.7%, 40.3%로 떨어졌다.
최저 생계비의 예산 부담은, 정부 방안을 따를 때 올해 1조5천억원에서 2500억원 정도 추가되는 데 그친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계층간 소득 격차는 외환위기 수준으로 확대됐으며, 잠재적 절대 빈곤층이 크게 늘고 있다. 최저 생계비의 현실화와 예산 증액이 급하고 꼭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상대적으로 더 낮은 수준이었던 3인 이하 가구의 최저 생계비를 올리기로 한 것은 그나마 성과다.
최저 생계비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다. 2000년에 기초생활 보장이라는 제도 도입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내년은 실질적인 최저 생계비가 보장되는 원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7월 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최저 생계비로 ‘한 달 나기’ 체험을 한 결과에서도 미흡하다는 것이 입증됐다. 다섯가구의 체험자들은 아끼고 아꼈지만 모두 적자를 냈다. 최저 생계비로 최저 생활조차 할 수 없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