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득용 시인이 시집 [백년이 지나도]를 발간하였다. 176쪽의 책에는 서시, 시 80여 편, 문희봉 시인이 쓴 해설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사랑학의 진한 화폭]이 수록되어 있다. 오늘의문학사 발간, 정가 8,000원이며, 한국출판협동조합을 통하여 배본된다.
* 문희봉 시인의 해설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주는 사랑학의 진한 화폭
― 권득용 시인의 작품 세계
文 熙 鳳
(시인․대전문인협회장)
1.
권득용 시인의 근작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점액질 같은 사랑에의 개성적인 접근이다. 시적 진술이 유연하고도 감칠맛 나는 수사학에 이르고 있다. 밀도 있는 수사학의 완성으로 시의 계단에서 이탈하지 않고 내일을 환하게 장식하고 있다.
시란 삶 속에서 유효하게 가동되는 진실을, 별것일 수 없는 일상의 단면을 온 것으로 담아내는 것이어서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한 것들이거나 사소해서 지나쳐버리는 것들을 온전하게 보듬어 간직하는 것이다.
권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백년이 지나도’는 시적 화자와 통일된 몸을 향하면서 자신만의 고귀한 사랑학을 누에고치처럼 술술 풀어놓는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개별 의식을 통해 시인 자신의 존재 근거이자 궁극적 귀의처가 되는 일종의 사랑에 대한 근원을 완성한다. 삶의 깊은 체험이 주제와 언어 속에 드러나고 작품을 쓰는 태도가 진지하며 표현도 힘차다.
이러한 근원적 자기 기억을 구체적 형상으로 환기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형식에 대한 질문에 확실한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사랑학의 진한 화폭이다.
오월이 오면 아버지 어머니 생각에 자꾸만 눈물이 나고, 하얀 이팝꽃을 닮은 아내가 안쓰러워지고, 보면 볼수록 짠한 마음이 들며, 아들 딸 때문에 가슴이 늘 서늘해진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각 같은 동에 불이 켜진 집은 서넛뿐이다. 컴컴한 저 공간 속에서도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행복을 꿈꾸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도 이제 불을 끄고 신이 만들어주신 가족인 빛나는 별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부모님, 조부모님을 비롯한 내 조상들은 자손 모두의 엄연한 삶의 뿌리이며, 태산처럼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다. 권 시인은 내리사랑의 전형인 조부모님, 부모님을 사모하고 존경하는 갸륵한 마음이 남다르다. 어머니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예리함이 있다. 그래서 에미 노릇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되어 별이 되었다. 그러면서 학처럼 천 년을 살아도 눈부신 사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을 나서려는데
문득
눈에 띄는
효자손
불현듯
어머님 고운 얼굴이
떠올라
차마
돌아서지 못합니다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전문
어머니의 유품이 권 시인의 발길을 잡는다.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박태기꽃을 보며 ‘아버지, 당신의 성성한 백발도 눈이 부시는 아름다움’이라 노래한다.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슬기롭게 이겨냈던 박태기의 비상하던 꿈은 바로 아버지 당신의 삶이었다고 술회한다.
가지 끝에 심어둔 희망들이
비상하던 꿈이
나비의 날개 짓으로 스러지더라도
한시도 생명의 끈을 놓은 적은 없었지요
그래요
아버지 당신의 삶도 그러하셨거늘
―「박태기나무 꽃 2」일부
아버지에 대한 불효, 아무리 잘해드렸던들 회한으로 남는 건 매한가지 아닐까. 그래서 시인은 ‘아버지 용서하소서, 천번 만번 용서하소서’라고 엎드리고 엎드리며 창백하고 두툼한 두 손이 다 닳도록 빌고 또 빌고 있다.
언제까지나
당신의 종속변수인 줄 알았는데
당신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는 암세포보다
몇천 배나 더 간악한 암 덩어리가 되어
당신을 집으로 모십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에게 주홍글씨입니다
아버지 용서하소서
천번 만번 용서하소서
―「천번 만번 용서하소서」일부
고작 팔십 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 부토(腐土)로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면 의지 없는 자식의 마음은 암연(暗然)히 수수(愁愁)롭기 짝이 없을 것이다. “부단한 날개 접으시고 편히 쉬시옵소서.”라고 말할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생시처럼
상 차리느라고 수고했네
잘 먹었네
고맙네 하시며
당신은 환하게 웃고 계시지만
아내도 나도 실어증에 걸린
적막하기만 한 겨울 아침이네요
―「아버지의 생일」일부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가신 후 첫 번째 맞이하는 생신 날,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자식은 실어증에 걸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 소일거리였던 화투 한 목, 그리고 동전 낱개들, 모두 합하니 1520원, 그 속에 아버지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무지한 부모는 자녀를 매로 다스리고, 훌륭한 부모는 말로 다스리고, 위대한 부모는 심장으로 다스린다.”고 했는데 아마도 권 시인의 부모님은 세 번째에 해당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2.
제2부의 ‘백년이 지나도’는 시집 제목이기도 하려니와 부부애의 전형을 노래하고 있어 주목 받는 시 중의 하나다. 부부는 항상 서로 마주보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부부는 평행선과 같다. 부부는 무촌이다. 부부는 반쪽과 반쪽의 만남이다. 부부는 한쪽 발 묶고 같이 걷는 사람이다.
내 청춘의 광장에 초대된 그대, 내가 뛰어들 수 있는 사랑의 바다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기쁨이다. 나는 그대에게 이미 사랑의 화살을 당겼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내가 이 세상에 없는 까닭일 거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달라. 그리고 부디 “미소 때문에, 미모 때문에, 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그리고 또 내 생각과 잘 어울리는 재치 있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그런 날엔 나에게 느긋한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고는 정말이지 말하지 마라. 오직 사랑을 위해서만 날 사랑해 달라. 그대와 함께 있으면 전부가 사랑인데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부부간의 사랑은 신의, 배려, 베풂에서 비롯되는 것이겠다. “우리 부부 제대로 살고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우리 부부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거야?” 라고 의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부부들도 있다고 들었다.
권 시인의 가정에선 이런 질문은 웃음거리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며, 불행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아내의 실명이 그대로 노출되어 나타남으로써 아내에 대한 사랑의 도(度)를 진하게 더해준다.
남자는 성공하면 십중팔구 한눈을 판다는데 권 시인은 그런 얘기하곤 절대 무관한 사랑을 한다. 그런 사랑학은 아내를 위한 장편의 시 ‘I love young mi’ 속에 모든 것이 다 담겨 있다. 그러니 아내는 이끼이고 참나리가 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나 보다. 보잘것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야생초, 그 끈질긴 생명력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건 다름 아닌 베풂으로 축조된 성이 아니겠는가?
그래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아름답지만
평생토록
나를 울렁이게 하는
꽃
아내는
이끼고
참나리다
―「아내 1」전문
젊었을 적 불 같았던 성미(性味), 나이 들어가며 제풀에 꺾이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낀다. 아내가 오히려 권 시인을 보고 측은해 한다. 그런 아내이기에 ’법화경‘은 가족들을 모두 부처로 만들어 준다.
당신은 기품 가득한 금강송이다
지고지순한 학이다
정갈한 조선의 정경부인이다
우린 푸른 달빛에도 일렁이는 사랑이다
어찌 천상의 사랑만이 아름다우랴
당신이 금쪽같은 당신이
다시 내 영혼의 불을 지핀다
사랑의 화인을 찍는다
당신만이 나의 사람이다
―「당신만이 나의 사람이다」일부
만나기 전까지 날 수 없었던 시인은 외눈박이 비익조였다. 당신을 만나고 나서 완전한 기러기가 되었다. 당신은 기품 가득한 금강송이고, 지고지순한 학이며, 정갈한 조선의 정경부인이다. 그러니 “당신만이 나의 사람이다.”라고 단언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겠다.
아마도 권 시인의 아내는 “나는 몽당연필이 되고 싶다. 낡은 전축이 되겠다. 당신의 정원에 가득가득 채워질 청포도가 되겠다. 기다림에 익숙한 당신의 사람이 되겠다. 향기로운 꽃이 되겠다. 한 그루의 나무가 되겠으니 어서 당신은 작은 램프가 되어 어두운 내 가슴을 비춰 달라.”고 화답하지 않을까?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다른 사람과는 본질적으로 같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다.
삶이란 부족함을 채우는 일이다. 넉넉함으로 행복해지는 일이다. 아내의 사랑은 천년의 향기로 리필이 된다. 당신 생각만하면 작은 근심 하나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느새 가슴속엔 당신의 사랑스런 모습에 행복만이 가득하다.
내 사랑의 언덕배기에서
아침마다 내 등을 닦으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빚는다
강물 위에 빛나는 윤슬로
내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천상의 바람
오늘도 아내의 사랑은
천년의 향기로 리필이 된다
―「아내의 사랑은 리필된다」일부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출하고 있다.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살아가는 갈대이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당신을 만난 자체가 행복이다. 내 삶의 끝자락에 사랑으로 다가온 당신은 내가 살아있는 이생에 마지막 사랑이고 싶다. 장미꽃이 아름다운들 당신 미소만큼이나 더 어여쁘고 아름답겠는가? 당신은 내 마음에 사랑꽃이며, 가슴속 깊은 곳에 끝도 없이 솟아오르는 사랑의 샘물이다. 당신을 정녕 사랑한다. 사랑의 고차원 방정식의 해법은 존경, 배려, 베풂이라 누누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나를 안아 준 사람이다. 내 눈물 닦아주며 가슴으로 함께 울어 준 사람이다. 보잘것없는 내 삶 속으로 들어와 작은 등불 하나 밝혀 준 사람이다. 눈부신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게 해준 사람이다. 이상의 것들은 ‘천생의 연이라 해도’, ‘이제 그대의 별이 아니고’, ‘백년이 지나도’를 통해 표출하고 있는 권 시인만의 독백이다.
3.
숲에는 산소가 풍부하다, 도시보다 2%가 많다는 학술자료를 본 적이 있다. 나뭇잎은 뒷면의 기공을 통해 미세먼지, 방사능 물질, 매연, 이산화탄소 등을 흡수해내는 환경정화의 선두주자이다.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없는 말기 암환자도 숲속에서 자연생활과 식사요법으로 치료했다는 사람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숲이 아토피 환자에게 좋다는 보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숲은 네 계절 언제 찾아도 좋다, 녹음 짙어가는 봄이나 여름은 더 없이 좋은 계절이다. 피톤치드 발산량이 많기 때문이다. 산에서 노는 기분으로 산책을 즐기기를 권한다. 걸으면 육체 운동이 되어 좋고, 피톤치드를 마음껏 마실 수 있으니 몸과 마음 건강에도 좋다.
주변에 산이 많이 있어 좋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자주 산에 오르자. 그러면 휴일 날 집에서 소파에 누워 T.V 연속극에 심취하는 것보다 훨씬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평온해질 것이다.
권 시인의 환경에 대한 특별한 관심(사랑)이 독자들의 시선을 끈다. ‘(주)푸른 환경’의 대표로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고 있다. 북극의 얼음은 녹아내리는데 권 시인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안다. “세상에 먹을 것을 것이 없어졌다면 어찌 하겠는가? 너무나 심각한 사태 앞에 우리 인간은 어찌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하고 있다. ‘환경위기의 시계’, ‘아무도 나를 먹지 않는다’, ‘생태맹’, ‘소방귀세’ 등에서 말이다.
그렇잖아도
바쁜 세상
그까짓 나무 새 꽃 물고기 벌 나비
흔해빠진 풀 이름 하나쯤 모른다고
세상이 어찌되는 건 아니겠지만
멀쩡한 내가
어쩌다 자연의 귀머거리가 되고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고
보고도 모르는 청맹과니가 되었는지
세상이 혀를 찰 노릇이다
―「생태맹」전문
색맹만 걱정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색맹이 아닌 생태맹은 어찌 하겠는가? 왜 자연의 귀머거리가 되고,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고, 보고도 모르는 청맹과니가 되었는지 궁금해 한다. 세상이 혀를 찰 일이라고 한다. 일상의 이면을 신선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다. 잔잔하고 단단하게 세상살이의 고랑을 파고 일궈내는 감수성이 돋보인다. 언어와 절제, 한층 높은 도약, 발상이 참신하고 언어감각이 뛰어나다.
참 어처구니없는 밤
낮인 줄 알고 돌아다니다
항로를 잃은 철새들과
알에서 깨어난 바다거북새끼들이
육지로 기어오르면
매미들은 왜 그렇게 울어쌓는거야
이제 어떡할거야
제발 부탁이야
잠시라도 불을 꺼줘
별을 보게 해줘
나는 지금이라도 밤하늘 별을 따다 줘야 해
―「별을 보게 해줘」일부
별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별과 별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밤낮이 구별이 안 된다면 걱정이 아닌가? 바다거북새끼들이 육지로 기어오르다 며칠이나 견디겠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모기가 극성인 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으실으실하다
소태나무 한 그루로 서 있는 겨울이 지독하다
내 몸 속을 빠져 나오는 금속성 소리
발가벗은 바이러스는
탐욕의 재채기 숨길 수 없어
마찰음을 내고
꼴깍 꼴깍 침 삼키는
뱀파이어의 선홍빛 입술이
끈적이는 애액을 온몸으로 쥐어짠다
―「고뿔」일부
건듯하면 고뿔 걸리게 되는 시인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건강 현주소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환경오염의 피해, 지금 이 순간 깨달아야 한다. 환경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여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라고 권 시인은 우리 모두를 설득하고 있다.
‘꽃 향기가 없다’를 통해 어쩌면 꽃향기가 벌 나비를 부르는 게 아니고, 벌 나비가 사라져 꽃의 향기가 덜 한지도 모른다는 말에 공감한다. 사랑할 수 없는 세상은 향기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환경은 보호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눈사람이 대장암에 걸렸다면 어찌 하겠는지 권 시인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수빅만은 지구온난화의 동영상이다. 우리가 지어 놓은 업보 앞에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물어본다. 인공보다는 자연이 좋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거꾸로 살아야 한다.
‘하얀 농약 뒤집어 쓰다’에서 각박한 세상 인심에 애궂은 호박만 농약 세례를 받는다. 결국은 환경이 파괴되고 사람 사이에서도 신뢰가 깨지게 된다.
산성비도 아랑곳 하지 않는 요즘 사람들의 심성의 세태를 꼬집는다. 색도 냄새도 없는 저 순수의 덩어리가 저주스런 도회의 비가 된다고 경고한다. 이는 친정부모 부음에 머리 풀어 우는 광경 못 보는 것과 어찌도 흡사한지…. 바다라고 안전지대일 수는 없다. ‘이따이이따이’ 병에 걸린 낙지 먹은 사람도 이젠 걱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환경호르몬도 역시 무서운 것이라고 알려준다. 애인에게 보내야 할 문자메시지가 아내에게 가버렸으니 이걸 어찌하는가? 사랑도 불륜도 한 뿌리가 되었다는 데 이게 보통 문제인가? 좌장지(座藏之) 되어버린 남자의 ‘거시기’는 확실히 환경의 피해라고 단언할 수 있겠다. 수컷의 상징인 ‘거시기’도 퇴화해 버렸고, 수컷의 젖통은 처녀 가슴보다 크고, 뱃살 아래 작대기는 무말랭이가 되어 버린 것도 역시 환경호르몬 때문이라는 것이다.
4.
인생을 가장 멋있게 사는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스탕달이 말했다.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밖에 없다.고.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사랑이 아닐까 곱씹어 본다. 사랑이란 좋은 것이다. 고가치의 것이다. 진실이 담긴 말은 그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 영원히 기억된다. 후회 없는 삶을 보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 것이라 한다. 인생을 가장 멋있게 사는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남을 배려하고, 격려가 되는 말을 일상화하고 있다면, 당신이 바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비추는 빛이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저 작은 것들 좀 봐
파란 하늘을 닮고 있네
바위
나무
흙
거기, 생명의 자궁 열어놓고
하늘 아래
그대가 어머니가 되고
우주가 되고
누구라서 보잘것없다 하는가
이미 그대 삶에 이끼가 되어버린 나
―「이끼」전문
보잘것없다 생각했던 미물, 생명의 자궁 열어 놓고 어머니가 되고 우주가 된다. 나는 이미 그대 삶에 특별한 의미를 갖는 미물이 되어버렸다. 미물이지만 성물인 것을 미천한 사람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다정한 가을이여
벌 나비 불러
내 영혼 씻김 굿 벌릴 때
눈에
보이는 사랑
보랏빛 향기만을
탐하지 마라
살아있는 것은
다 한 목숨이거늘
사람들아
그대 사랑
먼저 눈 닦고 볼 일이다
―「꽃향유」일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보랏빛 향기만 탐하지 마라. 살아있는 것은 다 한 목숨이거늘, 고차원의 사랑학을 보는 것 같다. 사랑은 리얼이고, 필링이고, 터치이다. 당신을 완전히 가질 수 없다면 반쪽이라도 갖겠다는 각오가 사랑을 만든다.
자연과 울돌목이 조화를 이루는 속에서 권 시인은 문학을 이야기한다. 문학은 좋은 것이다. 문학을 하면서 생의 보람을 느끼는 권 시인의 가슴은 그래서 따스함으로 충만돼 있다. 우리는 시다운 시, 수필다운 수필, 소설다운 소설 한 편을 낳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진통과 출혈을 거듭하는가? 인생의 골수를 깨고, 뼛속 깊이 흐르는 진액이 솟아난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스런 밤을 지새우는가?
시를 읽는 소녀가 사는 마을은 향기롭다 했다. 시를 닮는 소년이 사는 마을은 싱그럽다 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자유롭다 했다. 잘 삶아 건져놓은 국수가닥같이 매끈하고 목에 술술 넘어가는 미려하고도 감칠 맛 나는 글이라면 오죽 좋겠는가? 창작은 산고와 같다고 했다. 수태(受胎)는 확실히 신비하고도 환희로운 일이다. 권 시인은 이런 생각으로 울돌목만이 아닌 자연과 하나 되면서 문학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이 한 편의 시로 환생하여 이 시집에 얼굴을 내민 것이다.
적도는
삼백육십오일 열대야
정글을 막 탈출한
모기들의 공포에
혼미한 밤 중
눈을 떠 보니
도마뱀 한 마리
부적처럼 꿈쩍않고 있다
하룻밤 동침하는 사이
모기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세상에 기우였다
―「도마뱀」전문
모기와 도마뱀의 하룻밤 동침을 권 시인은 걱정하고 있다. 그런 걱정은 하나의 기우, 세상은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잘도 굴러가는데 말이다. 인간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대리전을 치루고 있는 닭들의 모습을 본다. 생기는 것 없는 처절한 싸움이다. 왜 싸우는 지도 모른다. 그들은 무대 위의 정신 나간 배우가 된다. 그렇게 싸움을 시켜놓고 인간들은 날선 혓바닥 낼름거리고 있다. 그런 모순된 사회를 권 시인은 꼬집고 있다.
5.
세상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은 사랑하는 이들의 웃음이다. ‘웃음’이라는 것, 참으로 신비한 힘을 지녔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좋은 날’ 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권 시인이다. 좋은 아침이 좋은 하루를 만든다. 거울을 보며 활짝 웃어본다. 그러면 거울 속의 사람도 나를 보고 웃게 된다.
‘콩대가리’, ‘노잣돈’을 통하여 고차원의 유머를 접할 수 있게 해준다. ‘콩대가리’ 얘기를 하면서 “남자와 여자의 사랑하는 일도/ 콩깍지가 눈에 씌워지면서/ 비로소 시작된다.”며 갓 시집 온 여자를 ‘콩대가리’라 일러준다. 웃음을 자아낸다.
‘대가리’에 얽힌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가 마치 마술가 같다. 그 속에 웃음이 녹아 흐른다. 내가 왜 웃을 수 없는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과 하도 웃어서 너무너무 행복해서 몇 년치 웃음을 그때 다 웃어버려서 지금 미소가 안 만들어진다는 걸. 웃음은 핵무기보다도 강하다고 했다. 웃음은 전염된다 했다. 감염된다 했다. 웃음은 정신의 보약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웃음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김오대(金正大)」전문
고향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김홍기’란 사람이 ‘김정대(金正大)’를 ‘김오대(金五大)’로 바꿔 부르는 실수(?)를 범하는 장면을 묘사한 ‘김오대(金正大)’를 읽으면 배꼽이 두어 자 늘어남을 느낀다.
교통사고 환자를 빗대 ‘나이롱환자’란 제목의 시도 역시 마찬가지다. ‘마음이 편치 않다/ 도덕과 양심의 차이가/ 생선가시가 되어 목에 걸린다.’ 정의를 위해, 정도(正道)를 위해 세상을 이끌어가는 세심함이 엿보인다. 그것뿐이 아니다. 불의를 고발하는 자세도 여기저기서 강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추억의 대전역 ‘나는 못난이’를 십팔번으로 달고 살았던 학수가 기다릴 듯한 대전역을 ‘벤자민 버튼의 시계’라고 자랑하고 있다. 웃음에는 교훈이 있다. 깨달음이 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화내지 않고 꾸짖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긍정적 세계관을 심는다. 웃음은 기쁨을 준다. 건강을 준다. 웃자.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기뻐진다.
권 시인의 시는 사랑을 빼고는 논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부모를, 자식을, 아내를, 자연을, 이웃을 사랑하자 한다. 사랑에 국경이 없다. 어느 것이건 사랑하자 한다. 그런 사랑을 매개로 상상력의 전개, 형상성의 풍부, 언어는 맛깔스럽고 재기에 넘친다. 시를 형성할 줄 아는 능력과 선명한 환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한 편 한 편이 장미나 백합처럼 화려하고 탐스럽지는 않을지라도 마치 들꽃처럼 소박하고 자연스러우며 읽을수록 우러나는 삶의 진한 향내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권 시인을 은유로 이루어진다는 시의 기본을 가장 충실히 지키고 있는 일급 언어예술가이며 언어조련사라고 말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도 수압이 센 한국시의 해저에 끊임없는 잠수를 계속하여 가치 있는 보물을 많이 건져 올리는 시인으로 계속 활동해 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