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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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隨筆분과 방 스크랩 2013.1.30. 강촌의 전원 일기,43회.(지난날 엄마가 적은 아들애의 수험일기 돌아보기.하나)
강촌(이강촌) 추천 0 조회 146 13.01.30 17:26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2013.1.30. 강촌의 전원 일기,43회.(지난날 엄마가 적은 아들애의 수험일기 돌아보기. 하나)

 

 

작은 나라 안이지만 남쪽과 북쪽의 기온 차이는 매우 크다.

남쪽 나라의 기온에 길들여진 내겐 20도를 오르내리는 중부지방의

매서운 날씨에 적응하기가 쉽지않다.

집도 자동차도 눈에 덮혀버린 날들,

그럴 때 컴퓨터 붙잡고 시간 되돌리기 하는 작업은

그런대로 외롬과 그리움 달래는데 큰 위안이 된다.

이십 여 년 전, 강촌이 40대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 살아온 모습을 긁적거려 놓았던 일기,

다행하게도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일기들을 들추어 본다.

아들 형제를 키우는 일에 정성을 쏟았던 그 시절,

거기에 삶의 큰 의미를 두고 살았던 그때를 떠올려 본다.

지금 법조인으로 일하고 있는 큰아들이 방학이 되면

대구 집에 내려와 사법시험준비를 하곤 했었다.

 

국화 향기 풍기는 청년으로 자라주길 기도하면서 적었던 일기들.

 

 

 

 

                엄마가 적은 아들애의 수험 일기

 

    96년 12월 ×일. ( 큰애가 나에게로 돌아왔다. )

 

큰애는 비어 있었던 자기 방에다 책 보따리를 풀었다. 큰 상을 펴놓고 두꺼운 법서를 쪼르래미 꼽아 놓더니, 책상의 먼지를 닦고 스탠드를 확인했다. 내가 미리 준비해 놓은 바이올렛 화분을 책상 왼쪽 모서리에 놓는 것으로 큰애는 책상 정리를 대충 끝낸 것 같았다. 큰애는 내게 그 큰 손을 내밀면서,

 

‘두어 달 신세 좀 져야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

 

‘그래, 와 주어서 고맙다. 우리 잘 지내보자.

 

큰애와 나는 서로 손을 잡고 크게 웃으면서 흔들어 댔다.

 

품안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큰애가 잠시이기는 하지만, 다시 내 품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목표한 시험 날짜를 2개월 여 앞두고 대학이 방학을 하자마자, 7.8백 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 수십 권을 큰 가방 두개에 넣어 아우의 도움을 받으면서 힘들게 이끌고 큰아이는 나에게 돌아왔다.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받으면서 공부하고 싶다는 아들애가 나는 한량없이 고맙다. 품안을 벗어나서 다시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내가 필요하단다. 한키 다 자란 큰애가 아직도 엄마인 나를 믿고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어깨가 무겁다. 그가 나를 믿고 자기의 중요한 시기를 맡긴 만큼, 나는 그 애로부터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객지에서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사는 걸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아려 오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내 앞에 있는 얼마 동안 나는 밥을 고슬고슬하게 지으며, 생선을 굽기도 하고 시금치에 깨소금과 진짜 토종 참기름을 듬뿍 넣고 묻혀서 큰애를 먹일 수 있다. 멸치를 진하게 우려내어 끓인 시래기 된장국을 큰애는 좋아했으며 무우시래기를 깔고 꽁치 통조림을 넣은 조림을 큰애는 얼마나 좋아했던가. 그리고 하얀 기름기가 촘촘하게 박힌 소고기 등심에 참기름을 듬뿍 찍어 먹는 소금구이를 큰애는 어릴 적부터 별식이라고 하면서 좋아했었지. 

 

             나는 큰애가 마치 먹기 위하여 내곁으로 돌아온 것처럼 무엇을 해 먹일까 하는 생각만 골똘

                하게 했다. 누군가를 위하여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고 또 집안을 꾸미기

                위해 몇 송이의 꽃을 사다 꽂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품안을 떠

                나자 절실하게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다시 아이들이 내 곁으로 돌아오는 기회가 생기

                면 나는 마음과 몸을 다해 그들을 사랑하리라고 별렀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 큰 아이들이

                좀처럼 그럴 기회를 내게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큰애가 내게로 온

                 것이다. 

 

사실 나는 큰애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며칠 전부터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먼데서 귀한 손님이라도 오는 것처럼, 큰애 맞을 준비를 했다. 고명을 얹어 김치를 버무려 놓았고, 집안의 구석구석마다 먼지를 털어 내며 대청소를 했다. 창가에는 바이올렛을 쪼레미 올려놓아 방긋방긋 웃도록 만들었고, 책장 앞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수선화를 올려놓았다.

 

 

큰애가 집에 오는 것을 환영하는 뜻으로 꽂아 놓은 프리지어는 스탠드가 있는 뒤쪽이 거치적거리지도 않으면서 잘 보이겠구나 싶어 그쪽으로 놓았다. 아니 아니 그러고 있을 게 아니라 식단부터 짜야지. 배부르지 않게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식단을 짜야 한다. 너무 배가 불러지면 머리가 맑아지지 않는다. 따라서 배는 부르지 않으면서 스테미너가 유지될 수 있는 식단을 짜야 한다.

 

이십 수년 전 큰애가 아우를 보게 되어 젖을 일찍 떼어야 했을 때도 나는 큰애를 위하여 식단을 만들었었다. 한창 엄마 젖을 좋아할 시기인 백일 무렵에 뱃속의 아우에게 젖을 양보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당황하고 불안하여 영양을 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식단을 짰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한키 다 자란 청년을 두고 다시 식단을 짜고 있다.

 

 

일기의 주인공인 수험생이었던 큰아들 가족, 강촌농장 뒷뜰에서... 2012, 여름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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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1.31 17:10

    첫댓글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같은 장남의 가족들을 보니, 이 사람이 공연히 눈물이 다 납니다.
    ※ 나 또한 손때가 묻어 다 낡은 일기장을 꺼내봅니다.☆이태리로 유학을 보낸 후 날이면 날마다 기도하며, 애타게 그리워하던 시절이 떠올라서요ㅎㅎㅎ

    언젠가 강촌님을 만나뵈면 이야기가 끝이 없을 것 같네요ㅎㅎㅎ ◎ 우리 엄마들은 누구라도 다 그렇겠지만...
    너무나 행복한 모습과 일기를 보니~ 저절로 미소를 금할 수 없네요.오늘도 부디 福된 날이 되소서! ♠ 강촌님!

  • 작성자 13.02.01 11:44

    속내를 바로 읽어주시는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블러그 정리하면서 적게 된글 스크랩 했슴다. 조금 쑥스럽긴 했습니다만...

    고맙습니다.
    素蘭선셍님의 나날도 평화로우시길 기도드립니다.
    샬롬!

  • 13.04.23 00:15

    한폭의 그림 설경이 너무 좋아
    갖고갈려니 잠겨 있습니다 호호호 ^.^
    일기를 감명 깊게 감상하고 행복합니다
    건강하고 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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