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 경전
김정화
수국의 계절이다. 어쩐지 수국은 바다와 잘 어울리는 꽃 같지 않은가. 푸른 수국이나 백 수국이나 붉은 수국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파스텔 꽃빛 끝에 청량한 바람이 번지는 그 물색을, 진분홍 꽃잎 위로 찬연히 물드는 일몰의 너울을.
이곳 해운대 백사장 솔밭에도 물빛 닮은 여름 수국이 수천 그루 꽃 더미로 펼쳐져 있다. 사시절 울창한 송림 사이에 무더기무더기로 벌겋게 퍼렇게 허옇게 땅꽃이 피어났다. 색색의 빨강과 세상의 파랑을 온통 초록 잎 위에 다 쏟아 놓았다. 그 붉고 푸른 꽃들은 다시 보랏빛 화관을 탄생시켰다. 소담하고 고졸하며 기품 있고 탐스럽다. 이 꽃 앞에 멈춰서서 향기를 맡고 쓰다듬는 사람들을 보라. 웃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맑지 않은 얼굴이 있는가.
수국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를 기억한다. 동네 언니들이 길섶에 수국 보러 간다 했을 때 나는 수국이 무슨 새 이름인 줄 알았다. 마치 수국수국 소리 내며 들판 보리밭을 흔드는 텃새라고 상상했다. 왜 그런 적 있지 않은가, 나의 착각, 나의 혼돈, 나의 망상을. 어릴 때 노인들만 먹는 과일인 줄 알았다가 산동네 친구 집에서 처음 맛본 대봉시의 붉은 기억, 하얀 빨랫비누를 굳은 찰떡인 줄 알고 한 덩이 꿀꺽 삼켰다가 해 저물 때까지 양잿물을 토했던 배릿한 어지럼증. 지나고 나서야 깨치게 된 내 글의 오류, 무량하게 뱉었던 날카로운 말들, 의심도 의문도 없이 아집에 빠져 있던 순간들을. 그러니 나는 수국의 이름 앞에서 늘 겸손해져야 한다.
몽글몽글 맺혔다. 다닥다닥 피었다. 나직나직 바스락댄다. 땅바닥에서 쏘아 올린 꽃 폭죽이다. 신이 뿌려놓은 물감 반죽이다. 곱게 단장한 여름날의 신부다. 천년 바윗돌도 수백 년 송목도 자리 내어주는 귀빈이다. 땅으로 곤두박질친 화花석이라 이름 붙여도 좋으리. 헤픈 울음 울지 않는 여자처럼 함부로 꽃잎 눈물 휘날리지 않으며, 가위질에 참수당할지언정 스스로 고개 꺾어 굴복하지 않는 절개를 지녔다.
수국불火로서 무명無明의 세계를 밝히고 꽃의 경전을 펼쳐주셨다. 흰빛도 푸르게 되고 푸른색도 붉게 변하니 영원한 것은 없다 이르신다. 달덩이 같은 꽃숭어리 밀어 올리며 둥글게 둥글게 살아라 말씀하신다. 아직 덜 핀 꽃도 만족하라, 그 꽃이 가장 어린 꽃임을 상기시킨다. 눈길을 잡는 꽃잎은 사실 꽃받침이고 중심부에 숨은 자잘한 참꽃이 진짜 꽃이니 치우치지 말 것을 경고한다. 헛꽃을 내세워 헛짓, 헛말, 헛생각 말라 가르친다. 세상사 헛것 아닌 것이 있는가.
수국의 바깥 꽃을 가짜라 하고 안 꽃을 진짜라 하는 것도 맞는 말일까. 매사에 참과 거짓으로, 내 편과 네 편으로, 옳고 그름과 진품과 짝퉁으로…. 어디까지 구분 지을 생각인가. 사람도 물상도 심지어 자연에까지 금 그어 분별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진짜와 가짜 같은 것은 없었다. 풀이면 전부 풀이고 꽃이면 모두 꽃이다. 쪼개고 나누어서 헛꽃과 참꽃으로 구별하는 것도 인간의 마음이 시킨 일이다. 허망한 생각을 접고 정신 차리라는 호통인지 숲모기 한 마리가 팔뚝 침을 쏘고 잽싸게 달아난다.
이 싱싱한 꽃 뭉치도 계절이 지나면 이울고 말 것을. 지난해 산청 수선사에 풍경 소리 들으러 갔다가 겨울 수국을 본 적이 있다. 서릿발이 돋은 절 마당을 거니는 동안 스님은 출타하였는지 인기척도 없었지만, 마당의 연지에는 여름날 몸피 올리던 꽃대가 얼음물에 발 담근 채 동안거에 들어 있었다. 더 젖어야 하고 더 견뎌내야 한다며 꾸짖고 있었던가. 진흙밭에 뼈를 묻듯이 글밭에 혼을 묻으라는 몸짓이었을까. 그때 도량 한구석에서 삼베 색 꽃잎을 덮어쓴 채 볏단처럼 비쩍 마른 수국 무리를 보았다. 여름내 붉은색 푸른색 자주색의 한 방울 잎 색도 남김없이 토해내고 선정에 든 꽃불. 어찌 불두화만 부처를 닮았다고 말할 수 있으리. 바스락 소리 내지 않았지만 “왔느냐?” 묵언으로 마음 전하던 꽃부처들이었다.
수국이 피면 이름난 수국 명소로 한 바퀴 돌다 오고 싶었다. 고성의 만화방초를 거쳐 거제의 저구항에 가 보리라. 나주 옥정리 수국 산책로와 신안군 팽나무 십릿길 수국정원을 걸어보리라. 좀 더 여유로우면 제주도 답다니 수국밭과 휴애리 수국공원에 다녀오리라 계획했건만 실행은 쉽지 않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멀리 수국을 보러 가지 않아도 된다.
십여 년 전 어느 늦봄이었다. 옆집 남자가 창밖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방안에 숨었다가 다시 슬그미 바라보았다. 원래 베란다 밖 앞산은 사람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 길도 없거니와 단단한 옹벽이 돋우어져 있다. 그러니까 사층 우리 집에서 쳐다보면 지상에서 솟은 나무들의 우듬지와 눈높이가 같고 앞산의 등줄기와도 맞닿아 있다. 산새와 개구리와 도롱뇽과 청설모들만의 길이다. 아무도 그곳을 오르지 못하고 감히 올라서도 아니 된다. 그런데 남자가 종일 땅을 파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묻으려 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뒷날 그곳에는 굵은 나무들 사이로 덤불들이 걷어졌고 파헤쳐진 땅에는 소복소복 푸른 식물들이 심겨 있었다.
다음 해 짐작대로 경이로운 일들이 벌어졌다. 수국꽃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해가 거듭될수록 꽃불은 번져나가 손만 뻗으면 잡힐 것같이 고개를 드높였다. 올해는 어린 파초 잎과 키를 나란히 겯고서 붉고 허옇고 푸른색의 꽃이 난개하였다. 그리고 여름 내내 화두花頭로서 화두話頭를 던지실 것이다. 그래도 밖에서 구하려 하느냐.
어느새 후드득 빗방울 떨어진다. 오늘 밤 폭우에 젖을 저 수국 경전 어떡하나. 뒤돌아보니 붉은 꽃 푸른 꽃 의연하게 서 있다. 바람이 부는 것도 비가 오는 것도 꽃이 피는 것도 순리니 어느 곳으로도 마음 기울지 말라 이르신다. 시들면 시든 채로, 마르면 마른 채로, 젖으면 젖은 채로, 있는 그대로 살아가라 다독이신다.
법문을 마친 화경花經 한 권, 곧 장마에 들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