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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처 (四念處)
목차
정의
개설
연원 및 변천
내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주석
몸 · 느낌 · 마음상태 · 현상[身 · 受 · 心 · 法]에 대해 주의력을 불러일으키는 불교수행법. 사념주 · 사의지 · 사지념 · 사념 · 사념수관.
이칭
사념주(四念住), 사의지(四意止), 사지념(四止念), 사념(四念), 사념수관(四念隨觀)
정의
몸 · 느낌 · 마음상태 · 현상[身 · 受 · 心 · 法]에 대해 주의력을 불러일으키는 불교수행법. 사념주 · 사의지 · 사지념 · 사념 · 사념수관.
개설
사념처(四念處, 범어 catvāri smṛty-upasthānāni, 빨리어 cattāro sati-paṭṭhānā)는 사념주(四念住), 사의지(四意止), 사지념(四止念), 사념(四念), 사념수관(四念隨觀)이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사념처는 인도의 초기불전에서 확립된 것으로서 불교명상법의 기초를 이룬다. 이에 대한 가장 방대하고도 자세한 서술은 『디가 니까야(Dīgha Nikāya)』의 『마하사띠파타나(Mahāsatipaṭṭhāna, 大念處)』경에 보인다. 초기불전 안에서도 이미 드러나고 있지만 부파불교의 수행체계에서 37보리분법(菩提分法)의 첫 번째 수행도로 등장하고 있어 사념처의 위상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점은 니까야에서 팔정도의 일곱 번째인 정념(正念)을 사념처로 설명하고 있는 사유체계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지관(止觀)’ 또는 ‘오정심관(五停心觀)’ 등의 체계로서, 사념처관의 일부가 수용 또는 계승되고 있어서 현재 남방불교 국가에서 사념처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모습과는 다른 전개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원측의 『인왕경소(仁王經疏)』와 원효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등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사념처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①신념처(身念處)
사념처의 첫 번째인 신념처란 ‘몸’에 대해 주의력을 불러 일으켜 그것을 지속시켜나감으로써 몸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거나, 시체 등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정(不淨)을 연상하여 몸에 대한 애착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수행을 말한다. 여기에 ‘호흡의 주시’를 비롯해서 모두 9가지 또는 14가지 종류의 관찰 대상이 제시되어 있다. 즉, ‘호흡, 신체 동작, 행동, 32가지 신체요소, 사대(四大), 시체의 부패, 시체가 썩어 없어짐, 갖가지 뼈의 모습, 흩어진 갖가지 뼈의 모습 등이다. 이들 신념처의 하나하나를 수행하는 과정에 대해 니까야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하나의 상용구로 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안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르고, 몸에서 몸을 밖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르며, 몸에서 몸을 안팎으로 따라가며 관찰하여 머무른다. 몸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관찰하는 자로 머물거나, 몸에서 소멸하는 현상을 따라가며 관찰하거나, 몸에서 생성 · 소멸하는 현상을 관찰하는 자로 머문다.” 이 내용은 다음의 수념처(受念處), 심념처(心念處), 법념처(法念處)의 설명에서도 동일한 서술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념처 수행의 면모를 이해하는 데 하나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②수념처(受念處)
수념처는 감각기관에 의해 발생하는 ‘느낌’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 그것의 정체를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도 모두 아홉 가지 종류가 제시된다. 즉,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육체적인 즐거움, 정신적인 즐거움,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이다. 따라서, 수념처는 마음에서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지점을 인지하는 연습을 통해서 괴로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③심념처(心念處)
심념처는 순간순간 마음에 생겨난 갖가지 상태를 그때그때 그대로 정확히 인지할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대상은 모두 열여섯 가지에 이른다. 즉, ‘탐욕이 있는 마음, 탐욕이 없는 마음, 성냄이 있는 마음, 성냄이 없는 마음,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 침체된 마음, 산만한 마음, 커진 마음, 커지지 않은 마음, 위가 있는 마음, 위없는 마음, 집중된 마음, 집중이 안 된 마음, 벗어난 마음, 벗어나지 못한 마음’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변화무쌍하게 마음속에서 전개되는 갖가지 양상이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지를 관찰함으로써 마음 상태에서 ‘늘 그러하지 않음’(無常)을 발견해내는 능력의 갖춤을 지향하는 것이다.
④법념처(法念處)
법념처의 내용으로는 다섯 가지가 제시된다. 즉, 오개(五蓋)주3, 오온(五蘊), 육입처(六入處), 칠각지(七覺支), 사성제(四聖諦)이다. 그런데 ‘ 법(法, dhamma)’은 매우 다의적인 용어이지만 여기서는 주의력을 불러 일으켜서 관찰하는 대상 즉, 감관(感官)주4 대상으로서의 ‘현상 또는 존재’에 해당한다. 즉, 마음속에 인지되는 감관 대상이 마음에 어떠한 움직임을 낳게 되는지를 관찰하는 수행으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칠각지나 사성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천수행에 해당하므로 법념처는 그 밖의 실천수행도를 종합하고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법념처는 ‘현상 또는 존재’ 속에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아가 없음’(無我)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의의와 평가
사념처는 인도 초기불교의 갖가지 명상을 대표하는 핵심적인 방법에 해당한다. 몰입 유형의 사마타(samatha)주5 명상과 관찰 유형의 위빠사나(vipassanā) 명상과 더불어 이후 불교사상사의 전개에서 하나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특히 현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도 ‘치유’의 문제와 관련하여 크게 주목받고 있는 명상법이다.
참고문헌
『붓다와 명상』(임승택 지음, 민족사, 2011)
『불교 선수행의 핵심』(냐나포니카 지음, 송위지 옮김, 시공사, 1999)
주석
주1
석가모니 입적 뒤 백 년부터 수백 년 사이에 원시 불교가 분열을 거듭하여 20여 개의 교단으로 갈라진 시대의 불교. 독자적인 교의(敎義)를 전개하여 뒤에 유식 사상(唯識思想)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내용은 소승 불교와 같다. 우리말샘
주2
팔정도의 하나. 정견(正見)으로 파악한 모든 법의 본성과 모습을 바로 기억하여 잊지 않는 일이다. 우리말샘
주3
마음을 덮어 선법(善法)을 할 수 없게 하는 다섯 가지 번뇌. 탐욕이 마음을 덮는 탐욕개(貪慾蓋), 분노가 마음을 덮는 진에개(瞋恚蓋), 마음이 흐려지는 수면개(睡眠蓋), 마음이 요동하고 근심이 생기는 도회개(掉悔蓋), 법에 대하여 결단 없이 미루는 의법개(疑法蓋)가 있다. 우리말샘
주4
감각 기관과 그 지각 작용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5
불도를 닦기 위하여 잡념을 버리고 정신을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일. 우리말샘
사념처 수행, 올바른 초기불교 수행법, 초기불교·간화선 통합수행법
2021. 10. 5. 17:55
각산스님 정초기도법문:
깨달음. 삼매로 이르는 길
"사념처 수행, 올바른 초기불교 수행법, 초기불교·간화선 통합수행법"
정초기도 3일동안 올 한해의 원력을 세워야 합니다. 올해만큼은 하루 두시간씩 백일기도 세 번은 하겠다는 굳건한 마음을 다져야겠습니다.
적어도 백일기도 세 번은 완성하겠다는 마음을 내어 DNA에 딱하니 저장시켜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왕 귀한 두시간의 시간을 낼 거면 올바른 방법을 택해야 합니다.
부처님 법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나의 법은 확신하고 믿으면 칠년이내에는 깨치고 빠른 자는 일주일에도 가능하다. 이때의 나의 법은 사념처다.'라 하셨습니다. 어떤 걸 하더라도 사념처만 되면 불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념처는 참 만나기 어렵습니다. 부처님이 창안하시고 수행하셨고, 마침내 그것으로 깨달음을 이루셨기 때문에 해탈열반의 길에 있는 모든 중생들의 가장 오래된 수행법입니다.
신,수,심,법(身,受,心,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삼법인(三法因), 즉 무상 , 고, 무아를 깨닫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성제, 팔정도입니다. 사성제, 팔정도를 함으로써 무상, 고, 무아를 알고 이것이 절대진리라는 것을 알게 되므로 고통이 일어나도 고통의 실체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슬퍼도 비탄에 빠지지않고 사랑해도 애정에 빠지지않고 미움이 없기에 누구보다 지극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 사념처는 마음챙김, 알아차림이며 몸, 느낌, 마음,법에 대한 집중적 수행법입니다. 몸뚱이로 하는 법, 느낌, 마음관찰 그리고 법념처를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고행을 그만두시고 사념처를 수행하셔서 연기, 무아, 중도를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불교는 엄청난 진리철학입니다. 무궁무진합니다. 몇 가지 수로 입력만 해도 됩니다. 이해는 음미하고 사유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음미 사유를 넘어 툭 터지는 경지도 나올 수 있습니다. 삶의 비밀을 완전히 푸는 것이 사성제입니다.
이 우주만물의 이치를 설명했고 생로병사의 근본 뿌리를 이야기하고 행복과 불행을 완전 해탈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사성제입니다. 그것이 사념처 안의 법념처에 들어갑니다.
사념처 수행자는 수행의 대상인 몸, 느낌, 마음, 법 중에 몸의 수행으로 시작합니다. 몸이 대상과 접촉하게 되면 느낌과 마음이 생겨나며 이렇게 파악된 몸, 느낌, 마음을 토대로 법념처수행을 하게 됩니다.
개온처각제( 오개, 오온, 12처, 칠각지, 사성제)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먼저 오개(五蓋) 는 수행을 하다 보면 만나는 다섯가지 장애로서 이 다섯가지 장애는 생존본능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의 성향이라서 누구나 만나게 됩니다.
바로 감각적 욕망, 성냄, 게으름, 들뜸과 후회, 불교에 대한 의심으로 우리를 덮는 5가지 장애를 말합니다. 이러한 장애는 사념처 수행으로 닦으면 깨칠 수 있다는 확실한 믿음, 부처님 말씀에 대한 확실한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오온(五蘊)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취라고도 하며 나라고 여기는 이 몸이 오온덩어리입니다. 부모 만나기 이전의 본래면목이 무엇인지를 분석해야하는 것이 법념처대상입니다.
12처는 마음이 일어나는 곳을 말하는 것으로 여섯가지 감각기관인 육근(안,이,비,설,신,의)과 여섯가지 감각대상인 육경(색,성,향,미,촉,법)을 분류해 합친 것이 12처입니다. 예를 들어 안근(眼根)이 그 대상, 색을 인식할 때 육식이 됩니다.
이 여섯가지로 일어나는 것을 아는 이 놈은 뭣꼬?' 바로 이것이 법념처의 대상입니다. 화두는 이 신,수,심,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공부는 깨달음의 조건이 있어야합니다. 7가지 깨달음의 요소 칠각지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자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
그 다음이 사성제입니다. 4가지의 성스러운 진리인 고집멸도입니다. 이 우주만물의 철학과 원리가 들어있고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 사성제가 팔정도로 이끌어져가야 공부의 완성이 이루어집니다.
팔정도로 이끌어지지 않을 경우는 사념처를 했을 뿐이지 지혜, 해탈이 안이루어집니다. 팔정도를 행하려면 내 마음의 헐떡거림이 없어야 합니다. 헐떡거림은 오계( 살,도, 음,망,주)를 지키지 못하고 벗어날 때 헐떡거리게 됩니다. 오계를 지키게 되면 기쁨과 행복함이 있습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법이 바로 부처님의 성불명상인 참선호흡번, 즉 호흡명상입니다. 집중 안되면 염불, 절 , 걷기명상 등을 통해 내마음이 가라앉으면 호흡이 보입니다. 살아있는 동안은 숨을 쉬니 숨만 쳐다보면 고요함이 만들어집니다. 고요함이 삼매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삼매는 무엇인가? 지금 초기불교 위빠사나는 올바른 삼매가 아닙니다. 사마타 없이 깨칠 수 있다 하나 사마타의 '사마디' ,삼매의 근원을 부정한 것입니다.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찰라삼매(까니까 사마디)로 깨칠 수 있다 하는데 그 말은 아닙니다. 깨침이 일어날 때는 찰라삼매로 나타나지만. 선정을 얻은 뒤의 적적성성함이 유지되는 근접삼매상태의 찰라삼매여야만 진정한 성자계위로 가는 참라삼매입니다.
사마타없는 위빠사나의 찰라삼매는 현자로는 이끌겠죠.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또 다음에 기회될 때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요한 선정으로 들어가 다섯장애를 일시적으로 제어할 때, 오온이 텅비어 맑아져 있을 떄 저절로 적적성성해집니다. 그때 성성히 아는 놈이 있습니다.
적적만 있고 아는 놈이 없으면 내가 무엇인지 살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펴보는 마음이 들떠 있으면 살펴보는 것이 오래 못갑니다.
따라서, 삼매, 그 고요한 선정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은 강력한 알아차림이 일어납니다. 전생도 보일 수 있으며 공부 배운 모든 것이 툭 터져 나옵니다.
도를 못 깨쳐도 호흡으로 돌아오는 고요한 과정을 거듭하면 어느날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것도 작은 적적성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사념처수행을 통해 팔정도로 이끌어져 갔을 때 여러분들은 공부를 깨치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희노애락으로 이끄는 놈이있다. 이뭣꼬?" 이는 공부를 잡아가는 명제가 될 수는 있어도 공부의 주제일 수는 없습니다. 삼매로 이끄는지 보장할 수 없습니다. 합당한 요소인 법념처의 칠각지가 곁들여야 됩니다.
그렇게 가기 위해서는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공부를 잡는 겁니다. 삼매로 이끄는 것은 부처님의 성불수행인 호흡명상입니다.
부처님 초기경전에 나오는 사유법도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밥 먹고 말하고 잠자는 이 몸뚱이를 이끄는 놈은 무엇인가?"이 화두는 머리로만 풀지 가슴은 열리지 않습니다.
화두타파 했다 하고서 자기주장, 자기아집에 가득 차 있으면 남에게 총만 맞습니다. 완전히 익지 않을 땐 행동이 안됩니다. 자비가 바탕도 안되고 화합도 안되고 아집으로만 채워질 수 있어요. 그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식덩어리, 아집덩어리입니다. 가슴이 열려야 합니다.
궁극적 대상으로 동기부여화 되는 것이 '나는 누구인가?' '부모 몸 받기 이전의 나의 본래면목은 무엇인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대상으로 가기 위해 ' 밥 먹고 말하고 잠자는 이 몸뚱이를 이끄는 놈이 있다. 그런데 이 놈이 뭐꼬?'라고 화두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초보적 일단계입니다.
시대변천과 더불어 더 나은 깨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결국은 법념처의 대상인 오온입니다.
본래의 우리의 면목은 오온입니다. 이미 화두의 대상이 됩니다. 이것을 고요히 잠재우고 들어가는 것이 화두로 들자면' 전부 내 아는 방식으로 행했구나! 모두 내가 인식하는 대로 다 가버렸구나!"입니다.
생각하는 이놈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단순히 육식으로 아는 놈이 있고 사리분별하면서 아는 놈이 있습니다. 깨침으로 전달시키는 사띠( mindfulness, memory,
awareness) 라는 마음챙김, 알아차림,기억화시키는 놈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아뢰야식에 작동시키는 이놈, 말초적으로도 생각하고 사유적으로도 생각하고 내 스스로도 인식하는 "이 아는 놈이 뭐꼬?'하며 잡아들어가게 됩니다.
이 아는 놈이 철학의 바탕이 되어서 인생사도 만들어 내고 우주만물도 만들어 내고 우주를 멸망도 시키는구나,이 아는 놈이 환경의 지배를 받아 좋아하기도 싫어 하기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양심도 속이는구나 '이렇게 들어갑니다.
아는 놈을 살핍니다. 망상속에서도 일초라도 돌리세요. 망상 속에서도 깨침이 일어납니다.이것이 화두법입니다
안되면 '숨쉬고 있나? 숨쉬고 있구나' 여기엔 두가지가 함께 들어가 있어요. 숨쉬는 것을 보기 때문에 부처님의 성불 수행법 아나빠띠사띠, 참선호흡법을 하는 것입니다.
호흡법이 안되면 염불로 돌리세요. 호흡을 보면서 염불을 하니 염불선의 염불사마타가 되는 거죠.
그런데 이 "숨쉬고 있나? 숨쉬고 있구나 하는 것 자체가 진언 즉 만트라가 됩니다.
옴마니반메훔만 하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말에 걸려서 진언이라는 말을 만든 것이지 옴마니 반메훔을 왼다고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겠습니까?
방편으로 던진 것입니다. 방편으로 깨친 자가 쓰면 진리가 되고 깨치지 못한 자가 쓰면 사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숨쉬고 있구나 하고 지각한 이 아는 놈은 뭐꼬?' 이렇게 잡아 들어갑니다.
의심이 토대가 되지만 이치에 맞기 때문에 의심이 안걸려도 이것은 이치에 맞기때문에 단순한 의문만 던져도 됩니다. 고요해지며 큰스님 법문 듣고 책도 보고 해서 변하게 됩니다. 삼매로 이끌어서 팔정도로 가서 지혜, 해탈이 되는 것입니다.
삼매의 증명은 니밋따로 나타납니다. 내맘이 맑아진 만큼 투영됩니다. 그러나 빛으로만 드러나는 건 아닙니다. 감동(삐띠수카)을 주면 되는 겁니다. 빛만 있고 감동이 없다면 니밋따가 아닙니다.
환희롭다는 것은 칠각지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있어야 정각지의 삼매가 됩니다. 무심삼매(捨)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방향을 뚜렷이 잡고 내 공부가 사념처수행이라 확신한다면 칠년 이내에 깨치고 노력여하에 따라 일주일이면 깨칩니다.
일년에 두 번이라도 일주일 수행 아니면 삼칠일 수행을 해보겠다는 강한 의지의 서원을 세우십시오.
내가 견뎌낼 힘보다 더 큰일이 생기면 여러분들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수행을 미리 해놓고 마음의 허상을 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이 것이 무상, 고, 무아이구나.
사념처를 확신하고 정진하면 삼법인을 알게 됩니다. 삼법인을 알려면 팔정도가 되야 합니다. 팔정도는 항상 도덕적인 생활을 하면서 내마음을 고요히 시켜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이 수행법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도인을 만나지 못한다면 여러분들은 그 어떤 깨침의 길로 못갑니다. 도인을 만나면 그 어떤 길을 왔다 해도 삼매로 이끌어져 나갑니다.
염불하시는 분께 저는 염불로 깨치지 못한다 하지 않습니다. 관세음보살염불 열심히 하시는 분께 하지 말라 않습니다. 마음 편하게 해드리려한 겁니다.
어느 정도 때가 되셨을 때 부처님의 염불의 원형 '나모붓다사'로 돌립니다. 아무나 바꾸라할 수는 없습니다.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지장보살' 염불을 삼매에 이르는 염불선으로 돌립니다. '염불시수'라 합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126살까지 사신 허운큰스님이 하신 방법입니다.
어떻게 하느냐 방법이 중요한 것입니다. 염불법을 알아야 염불선이 됩니다. 칭명염불도 망상을 잡는데 효과가 있어요. 이이제이가 됩니다. 언어에도 생각이 있기에 염불에 생각을 넣습니다.
다른 세상 것이 들어오면 염불의 소리와 부딪혀 한걸음 멈출 수 있습니다. 사마타요소가 있습니다. 염불의 소리를 들으면서 소리의 삼매에 몰입이 됩니다. 신심이 있으신 분은 부처님 상호의 광명이 비추어진다 생각하며 염불할 때 세포가 바뀌며 환희로와집니다.
'나모붓다사' 염불로 몰입이 잘됩니다. 몸도 따뜻해집니다. 이를 까시나수행이라 합니다. 부처님수행은 후대에 40가지로 벌어지는데 어떤 원형을 만듭니다. 불꽃을 보거나 허공에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든지 하는 눈으로 시각을 익히는 수행입니다.
사마타적인 내 마음을 고요히 하면서 그때 "염불소리 내는 이는 뭐지?", "염불하는 것을 아는 이가 있네", "이 아는 놈이 뭣꼬" 이렇게 들어가는데 이것이 염불선입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에게 되돌려집니다.
올해 한해 원력을 하루 두시간 기도하고 염불하는 것으로 하십시요. 그리하면 여러분들 DNA가 바뀌고 인생사 완전히 바뀌는 정초기도회향입니다. 성불하십시오.
2015년 각산스님 정초기도 법문 옮김
이법문은 보문성, 선덕화보살님이 정리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