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화살표의 속도는 / 황주현
화살표의 속도는
걷고 달리고 날아가는 속도다 화살표는 정지해 있으면서도 계속 이동 중이지만 뒷걸음질 치는 기능이 없다
화살표에서는 왜 짐승의 울음소리가 날까
궤적에서 공격성이 자란다 사활을 건 뾰족한 모양이 머리인지 입인지 코인지 궁금해 한 적 없지만 그것이 가끔 말을 하거나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한다
화살표는 계속 어디론가로 날아가고 도망가고 사라지려 한다 몇몇 동물들은 그런 표와 비슷한 외모를 노력 끝에 얻었지만 지금은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화살표를 발명한 사람들
혹은 진자운동처럼 0과 0 사이에거 태어나고
그 사이를 무한 반복한다
꼬리에 두느냐 머리에 두느냐를 고민하는 동안은 이미 한참이나 날아 온 거리다 어떤 사람에게선 이미 녹이 슬거나 그 끝이 뭉툭해진 화살표가 무더기로 발견되고 또 어떤 사람에겐 마치 새싹처럼 이제 막 돋는 일도 있다
빗나가는 과녁을 가진 것들도 많겠지만
명중이라는 끝을 두고 있다
공중에 초록을 박아 넣고 이리저리 여진을 앓고 있는
저것들, 혹은 그것들
지금도 화살표를 가로 막거나 되돌려 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단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화살표를 조종하는 또 다른 화살표를 개발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여전히 화살처럼 관통하는 날이다
시 부문 심사평
-심사위원장 강희근
-심사위원 복효근(심사평), 박우담, 김성진, 채수옥
일상적 언어로 깊은 울림의 사유 이끌어내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가운데 예심을 통과해서 올라온 작품은 일정한 수준에 이른 작품이 많았다. 신춘문예 작품의 성향과 경향을 대변했던 난해하고 실험적인 작품보다는 독자와의 소통도 염두에 둔 작품이 많았다.
전체 응모자 263명이 보내온 작품 1338편 중 1차 예심과 2차 예심을 거쳐서 올라온 작품은 모두 26편이었는데 최종 후보작은 세 편이었다. 황주현의 ‘화살표의 속도’, 강00의 ‘밑줄의 강도’, 금00의 ‘국수광합성’이다.
강00의 ‘밑줄의 강도’에서는, 강조하기 위해 그어놓은 밑줄이 가지는 힘을 얘기하고자 했다. 유의미한 밑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부정이거나 함정일 수도 있다. 그것을 피하려다가 낭패하거나 좌절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가 강제하는 규범이나 프로파간다가 그 밑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밑줄의 순작용과 함께 그 모순과 부작용을 그려내려고 한 작품이다. 자유연상에 기초하여 이질적인 소재와 관념을 유연하게 넘나드는 언어사용이 돋보인다. 구어체의 자연스러운 사용도 화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시적 진술들이 하나의 유의미한 질문으로 완성되거나 어떤 유기적 의미망으로 입체화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직소퍼즐 ‘윌리를 찾아라’에서 너무 많은 윌리가 아닌 것을 소거해야만 윌리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시의 중심에 닿기 전에 너무 많은 허들을 지나야 한다. 개인적 언어사용이 독자와의 소통에 장애가 되지 않는 지점을 잘 찾아내면 충분한 성장의 가능성이 보인다.
금00의 ‘국수광합성’도 심사위원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광합성은 식물이 그 생명을 에너지를 얻기 위해 햇빛을 매개로 한 화학반응이다. 마찬가지로 화자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얻는데 여기서는 국수가 그 매개로 등장한다.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화해시키는 작용을 한다. 국수는 일종의 치유를 위한 레시피이다.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흐름을 유지하면서 화해라는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드러나지만, 한편 그 점이 이 작품의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비격식체인 ‘해요체’ 종결어미라든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순조롭게 화해에 이르게 하는 방식이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함께 제출한 ‘무지개 고래’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시가 품고 있는 따뜻함이나 안온한 정서가 매우 잘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적이지 않다는 점은 신인에겐 흠결일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황주현의 ‘화살표의 속도’에 심사위원들의 집중적인 관심이 모였다. 도로 위나 공사장 벽 지하철 계단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화살표에서 간단하지 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힘이 만만치 않다. 화살표 그 자체는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이게 한다. 걷거나 뛰거나 날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문명을 가리킬 때는 공격성을 가진 짐승이 된다. 그 속성으로 보아 욕망이라 이름해도 좋을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문명, 혹은 욕망의 기표라 해도 무방하다. 계속 움직여야 하는 생래적 운명 때문에 사라지거나 멸종하기도 한다. 그러나 없음0과 없음0 사이에서 무한 재생산된다. 뒷걸음질 치는 기능이 애초부터 제거되어 있는 이 화살표로부터 반성 없는 문명의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화살처럼 관통하는 날이다. 정작 아픔에 대해서 말한 바 없지만 치명적인 관통상으로 우리는 앓고 있다.
작위적 언어 조합으로 생경한 이미지를 창출하는 대신 관절이 유연한 일상적 언어로 깊은 울림의 사유를 이끌어낸다. 한 줄기로 꿰어지는 서사가 없어도 느낌과 의미의 입체적 재구성에 문제가 없다. 통찰의 힘이 느껴지는 시다.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도 고른 질을 유지하고 있다. ‘우산이라는 계절’은, 가령 우산이라는 발명된 문명의 도구가 거꾸로 본래 있었던 계절을 환기하고 인간의 의식과 언어를 규정하기 이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본말이 전도된 모순적인 현상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황주현의 작품은 실험적인 시들이 가지고 있는 소통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면서 깊은 의미의 울림을 가진 시를 쓸 역량으로 평가된다. 이에 심사위원 전원은 ‘화살표의 속도’를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로 하였다.
당선소감
고교 문예반 활동으로 글쓰기 시작
시는 세상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
공감의 속도가 짧은 시를 쓰고 싶어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경기도 수원에서 자영업(생활용품 전문할인점 ‘다팜 아울렛’ 대표)을 하고 있는 황주현입니다. 화성문인협회 회원으로, 그리고 ‘덤’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당선 연락을 받고 한 3일간은 믿기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신춘문예를 도전했습니다. 목표는 최종심에 한곳이라도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년에 딱 한 번만 더 도전할 요량으로 욕심을 비웠습니다. 일주일쯤 지나니 당선이 현실적으로 와 닿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당선 소식을 전하고 싶은데 참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어떤 좋은 일이든 행운이 늘 몇 몫을 한다는 생각과 결과는 겸손하게 받아들이자는 지론이 있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감사했습니다.
-당선작인 본인의 시에 대해 간단히 소개 바랍니다.
▲당선작 ‘화살표의 속도’는 주위에 숱하게 있는 화살표 얘기입니다. 화살표를 통해서 무의식의 세계가 늘 습관과 통념으로 길들여진 의식의 세계를 지배하는 일상의 한 단면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매장에는 수많은 크고 작은 화살표가 어떤 장소와 위치와 경로를 통제하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객분은 화살표를 본능적으로 믿고 따르고 있지만 이면에 화살표를 부정하고 의심하고 거슬러 가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현상들을 발견하면서 화살표가 우리들의 일상에 투철한 기능과 역할이 분명 있지만, 역으로 화살표에 철저히 구속된 나약한 인간의 한 단면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세상의 모든 기호나 문자는 인간의 편리성을 위해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그러나 그 도구들은 단순히 그들만의 보편적인 역할에 그치질 않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진화하고 발전합니다. 그 진화와 발전의 속도만큼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의 기능과 판단과 인지는 좁아지고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를 처음 쓴 게 언제였나요?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경북 안동에 소재한 경안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문예반 특활활동을 하면서 글쓰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안동 시내 여섯 개의 남자고등학교 학생으로 이루어진 학생문학써클 ‘맥향’에 가입하면서 공부보다는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것 같습니다. 정기적인 시화전과 낭독회, 그리고 학교 교지 편집위원을 하면서 글 쓰는 친구들과 어울렸고 그때 함께 했던 선후배들이 지금 문단에서 열심히 자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영광 시인, 피재현 시인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대략 발표하거나 보관하고 있는 시가 몇 편 정도나 되나요? 그중 대표적인 시나 특별히 아끼는 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네 좀 더 기다림이 필요하거나 수시로 들여다보고 정을 붙일 시들은 30여 편 됩니다. 그리고 나름 탈고된 작품을 첫 시집으로 엮어도 무방한 작품들은 100여편 되고요. 특별히 애정이 가는 시는 올해 예천내성천 전국문예공모전 대상작인 ‘고평역 가는 길’과 경북문예공모전 최우수작인 ‘경북선 물소리 배차 시간표’입니다. 경남도민신문 신춘당선작인 ‘화살표의 속도’도 이제 저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시를 쓸 때 주로 영감은 어디에서 찾고 시상(詩想)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요.
▲딱히 어떤 상황이라기보다 일상에서 언제든 무시로 오는 것 같습니다. 시선이 오래 머물거나 다시 뒤돌아보게 되는 어떤 지점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살아가면서 잔상으로 남아 있거나 표현하지 않았던 날것들이 많습니다. 그럴 땐 즉시 핸드폰에 한 줄이든 두 줄이든 아니면 한 단어라도 메모해 저장합니다. 아주 강하게 나를 건드리고 놓아주지 않는 어떤 무거운 감정이 솟을 때는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한 편의 시가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시들은 완성도는 좀 덜하지만 투박한 그대로가 좋아 그냥 그대로 탈고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시를 쓰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그리고 기억에 남는 분의 시가 있다면 누구였을까요?
▲영향을 주신 분은 제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부재는 뭔가를 긁적이게 했습니다. 뭔가 긁적인다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글쓰는 습관이 만들어졌고 자유롭고 조금은 각별한 나만의 세계를 만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윤석산 시인님은 오래도록 제게 용기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최근에 가장 기억에 남는 시편들은 8년 만에 낸 안도현 시인님의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 둘 수 있게 되었다’에 수록된 거의 모든 시들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시를 쓰는 일이 자신에게 가장 큰 힘이 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살다가 넘어졌을 때입니다. 용케 그때 가져다 썼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 치여 한 20여 년 동안 시를 외면했지만 늘 시는 제 언저리를 맴돌아 주었습니다. 제게 있어 시의 덕목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시란 어떤 것일까요.
▲먼저 놀라운 사유의 발견이 있는 시입니다. 생소한 경험이지만 낯설지 않은 시입니다. 내 얘기가 아니었지만 내 안으로 들어와 똬리를 트는 시, 그런 시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내려다 보거나 올려다봅니다. 결국,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시라는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시’라는 것은 제가 ‘쓰고 싶은 시’이기도 합니다.
-시인에게 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거울 앞에 서면 매번 다른 내가 그곳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거울 속으로 빠지기고 하고 겹겹의 거울 속에 나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표정으로 쓰는 일기 같은요. 단 하루도 세상은 같은 날이 없습니다. 매번 다른 날씨들은 세상의 표정을 읽습니다. 시는 낮고 높고 쓸쓸하고 무겁고 어둡고 차가운 곳에 유난히 오래 머물다 갑니다. 그런 날은 세상의 거울이 아주 두꺼워야겠지요.
-시인 등단을 꿈꾸는 많은 예비 시인들이 있습니다. 그분들께 선배로서 조언해 주고 싶은 점이 있다면?
▲이 질문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 말이 없습니다. 전 늦깎이 신춘신인이고요. 이제 막 시작입니다. 함께 손잡고 가는 거죠. 제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굳이 한 말씀 드린다면 “끝까지 시를 손에서 놓지 마세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나요.
▲공감의 속도가 짧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 한 편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는 시보다는 공감대의 평수가 좁은 다락방 같은 시, 그리고 다시 그 시를 만났을 때 조금 더 오래 머물러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 결국 독자가 함부로 주인이 되는 시를 쓰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형하선기자·사진/이용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