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차례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일하다 보니
슬리퍼가 헐거워 자칫하면 계단에 걸려 넘어질뻔 했다.
슬리퍼가 다소 크기도하지만 워낙 낡아서 조심스레
신다 보니 평소엔 그럭저럭 신고 지냈지만 요즘처럼
꾸준하게 미뤄 둔 집안일을 하다 보면 거의 온종일을
작업에 소요하게 되며 혼자서 일을 하므로 공구나 다른
비품이 필요할 땐 공구와 부품을 놓아 둔 4층과 1층을
번갈아 뒤지며 바쁘게 움직이는 게 다반사다.
다행히 넘어지진 않았지만 오른쪽 팔꿈치를 방화문에 부딪혀
멍이 든 듯 욱신거리며 힘을 쓸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던 일을 멈추고 판다팜에 가서 발에 딱 맞는 고급 슬리퍼를
구입하여 신으니 지근거리라면 슬리퍼 차림으로 외출을 해도
초라하지 않을 정도로 잘 맞으며 품위가 있어 보인다.
집에 돌아와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샌들을 착용한 채 공감의원에 가서 진찰 후 약을 처방받았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고 잠자다 보니 감기기운이 돌아
어젯밤에는 초저녁에 골아떨어졌나부다.
피트니스에 들러 20여 분 동안 가볍게 스윙을 하였는데
이미 구면으로 친근한 사이가 된 젊은 부부가 하길중학교
옆에 시에서 운영하는 새로운 18홀 경기장이 생겼다면서
시간 있을 때 9월쯤 함께 나가서 경기를 즐겨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욕심없이 휘두르는 내 스윙이 부드러워서 긍정적인 평가를 했는지
친절하고 사근사근하게 대해줘서 반갑고 기뻤다.
산책 삼아 향남프라자를 거쳐 짜장면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향남성당의 요셉회장인 허장수씨를 하나로마트에서
만나 한동안 일상의 이야기로 회포를 푼 다음 컵걸이 한 개를
더 사다가 1층 화장실의 세면대 주변을 편리하게 구성하였다.
3년 넘도록 미뤄 둔 집안일을 점검하며 처리하다 보니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널려 있음을 깨닫게 되어
레오가 공주에서 휴가를 즐기는 금주 내내 꾸준히 작업을 진행함으로써
어느 정도는 우리집이 깔끔하게 정돈될 수 있게끔 손질해 둬야겠다.
이처럼 바쁘게 일하면서 6.25 한국전쟁 때 뱃속에 9개월 된 나를
품은 채 산골짜기로 피란 다니시던 어머님의 노고가 떠올랐으며,
그런 상황에서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견뎌낼 수 있게끔
힘을 부여해 주신 주님의 은총을 더불어 느끼면서 그에 비하면 이깟
더위 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감사드리는 가운데 집안일과
오늘의 번잡한 일정을 가벼운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울러 1856년생이실 증조부님의 행적을 추상하고 그분과 더불어
할아버지들께서 이루신 일들을 곰곰 생각하는 가운데 나와 형제들과
사촌들과 나의 자녀들에게 유전되었을 법한, 대를 이어 면면히 전해오는
트라우마를 어쩌면 머지않아 해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일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