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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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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카페.홍보.링크.스크랩 스크랩 ?*사바세계에 핀 열반의 꽃, 지화(紙花)!
보현 추천 0 조회 70 10.02.08 20:0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O.S.T - Reason (Male ver)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Reason (Male ver) - O.S.T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만 내가 눈을 감는 그순간에
어떤 후회도 없노라고 말할수 있을까
너를 잃고서 얻은 세상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의 끝에 서있는거 언제나 너뿐이야

하루하루 아침이면 눈 뜨는 이유
힘들어도 쓰러질수 없는 그이유
세상가장 높을 곳을 꿈꾸는 이유
한사람 오직 너만이 나를 살아가게해


강해질꺼야 누구보다도 세상 무엇도 우릴사랑을
갈라놓을수 없을만큼 나는 강해질꺼야

하루하루 아침이면 눈 뜨는 이유
힘들어도 쓰러질수 없는 그이유
세상가장 높을 곳을 꿈꾸는 이유
한사람 오직 너만이 나를 살아가게해
한사람 오직 너만이 나를 살아가게해

다시 한번 삶이 주어진데도 너만을 위해 살아갈꺼야
하루하루 아침이면 눈 뜨는 이유
힘들어도 쓰러질수 없는 그이유
세상가장 높을 곳을 꿈꾸는 이유
한사람 오직 너만이 나를 살아가게해


가사 출처 : Daum뮤직

 

 

 

 

 

 

 

 

*사바세계에 핀 열반의 꽃, 지화(紙花)!

 

-천년 향기를 품은 지화의 대가, 석용 스님

 

 

                                    글: 정진하

 

 

 삼국시대 이후 한국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불교문화!. 유형, 무형문화재와 각종 문화유산이 불교 문화재이거나 불교문화에서 파생되어 찬란한 민족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사에 전통문화가 말살되는 참혹한 비극이 있었다. 바로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이다. 국운(國運)이 등전풍화요, 설움이 폭풍처럼 퍼졌던 민족사의 고통이었다. 그 이후 각 분야별 명인이나 명장들은 사라져갔고, 명맥 또한 단절되어가고 있다. 잘못 이식된 국적불명의 문화들이 쓰나미처럼 번졌고, 수많은 전통공예 명인들은 가난과 창작 사이에서 고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다.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최근에야 인식, 다양한 문화정책을 펴지만, 그 지원책 또한 조족지혈이다. 다른 전통문화와 공예품들도 이런 현실인데, 지화(紙花)는 더욱 위태로운 상태이다. 역사성, 창조성, 예술성에서 타 전통공예에 비해 그 깊이는 심오하다. 천년의 역사와 향기를 머금었지만, 점점 지화에 대한 관심 부족과 외국기법으로 만든 지화가 자본의 논리로 전통적인 지화가 설 땅을 잃게 만들고 있다. 다행히 석용(石龍) 스님이 지화의 전통기법을 그대로 전수, 사라져가는 종이꽃을 그 어떤 꽃보다 향기롭게 만들고 있다.

 

성불의 꽃씨를 심어주는 지화!

 

 지화(紙花)는 종이꽃이다. 1970년대까지도 불교나 무속에서 전해지던 지화가 56종이었고, 그 중에서 불교 지화가 28종이나 된다. 그러나 지금은 몇 종류가 남아있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석용 스님은 지난 20여 년간, 전국에서 지화를 만드는 명인이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갔었다. 20년 전에 시작한 종이꽃이 비로소 그 어떤 꽃 보다 아름다운 향기를 머금게 되었다.

 지화는 옛날 장원급제를 하였을 때, 꽃상여 나갈 때, 병을 치료하는 치병을 할 때, 공양을 올릴 때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되었다. 무속, 왕실, 사대부가, 평민에 이르기까지 희로애락을 같이해온 민족의 꽃인 것이다. 종이꽃은 생화 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하며 장엄하다. 지화는 지금도 석가여래의 공덕을 찬양하는 영산재나 각종 행사에 부처님의 도량석을 장엄하게 꾸며 중생들의 마음속에 성불이라는 아름다운 꽃씨를 심어주고 있다.

 석용 스님이 82년 초에, 구인사에 갔을 때 변춘광 스님의 손에서 얇은 종이가 소담하고 아름답게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고 묘한 흥분과 감흥을 느껴 만들기 시작했다. 때로는 손이 끊어지는 고통과 계속 반복되는 지화 만들기에 중도에 그만둘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고행도 마다하지 않은 세존과 상월원각 대조사님의 수행을 생각하며, 지화를 만드는 일도 불도(佛道)를 닦는 수행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여 정진해왔다.

 

지독한 창작의 집념과 수도정진!

 

 지화를 만드는 일은 지극한 인내와 성실함을 요구한다. 안동 한지를 짤라 칼날 하나하나로 꽃을 접어 천연물감으로 색을 낸다. 지화는 모든 작업이 수작업이다. 손으로 한지에 칼을 대고 하나하나씩 살을 접고 물감을 입히고 한 줄기씩 접어 나간다. 무척이나 똑같은 반복은 지화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이를 질리게 하고, 그 고통과 정교한 꽃 만들기를 조금만 하면 며칠을 참지 못하고 사라진다. 일주일 내내 이렇게 꽃을 만들어도 많이 만들어야 다섯 송이 정도. 그것도 추가 작업을 또 해야 하는 상태이다.

 보통 구인사 영산재를 하면 5일간 사용하는 지화를 만들기 위해 1년 6개월이 걸린다. 국화꽃을 만들기 위해서는 싸리나무를 꺾어 여름에 말려 겨울에 작업하고, 연꽃은 소나무의 두꺼운 껍질을 사용해서 만든다. 지극히 기나긴 시간동안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꽃 한 송이도 만들기 힘들다. 한여름에 작업할 때는 등줄기에 무수히 흐르는 땀을 참아야 한다. 선풍기라도 틀면 종이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만든 꽃은 방에 불을 잔뜩 때서 접은 꽃을 말려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고통과 지독한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왔기에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지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완숙기에 접어든 석용 스님은 조선 1589년(선조22)에 만들어진 감로탱화를 재현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유산인 감로탱화는 일본이 소장하고 있다. 감로탱화를 재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못 접는 꽃이 없는 경지에 오른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는 연꽃 하나를 잘 접기 위해 3박 4일을 연꽃만 바라보다가 온 적도 있다. 전통 민속인 줄타기, 광대놀이, 범패, 장구, 광대 등 그 시대상을 고증하여 꽃을 만든다. 2~3년 전부터 고증 공부를 열정적으로 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지화를 배우고, 만들고, 계승, 발전시키기를 바란다.

 

가화(假花)가 아닌 지화(紙花)!

 

 석용 스님이 덴마크 주지로 있을 때 한국문화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스님이 직접 만든 꽃을 보면서 한지로 어떻게 저런 꽃을 만들 수 있는지 외국인은 그 색의 질감과 꽃의 아름다움, 제작기법을 들으면서 ‘wonderful’만을 계속했다. 직접 만든 꽃을 하나씩 주면 무슨 보물을 얻은 듯 가슴에 소중히 품고들 갔다.

 그러나 나쁜 기억도 있다. 석용 스님이 만든 작약꽃을 누군가가 훔쳐가서 자기 꽃이라고 우겼던 것이다. 아무 말 없이 침묵으로 용서를 했다. 지화가 세상에 조금 더 알려지고, 많은 이들이 지화의 매력에 빠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정도는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석용 스님은 오직 지화 하나를 최고의 전통문화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수도정진하고 있다. 직접 염색하고, 지극한 정성을 들여 만든 종이꽃이, 가화(假花)가 아닌 지화(紙花)로 만드는 것이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지화는 아름답고 신묘한 느낌을 준다. 많은 사람들은 한지로, 어떻게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만들 수 있는지 경탄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꽃수술과 꽃잎의 섬세한 자태를 보며 기계로 만든 것 아니냐고 묻는 경우도 있다.

 

부처님의 꽃, 정토의 꽃!

 

 지화(紙花)는 종이꽃이지만, 생물인 생화 보다 더 깊은 향기를 가지고 있다. 그 향기란 20여 년에 걸친 고행과 창작의 결실이며, 종이꽃 하나하나를 숨 쉬게 하고, 향기로운 불심의 꽃으로 승화되기 때문이다. 생화가 나비를 불러 모은다면, 석용 스님의 지화는 사람의 마음을 모으고, 가슴 저 깊은 곳에 잠재하고 있는 감성을 울리는 진짜 향기가 있다. 그 속에는 지치지 않는 열정과 정성, 그리고 땀과 구도정신이 함께 아우러져 피운 꽃이기에, 부처님의 꽃이자 정토의 꽃인 것이다. 그의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직 한길을 진실하게 살다 가신 서산대사님의 시가 생각난다.

 

-서산대사의 답설(踏雪)-

 

눈 내린 들 판을 걸어 갈 때는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모름지기 발걸음을 어지러이 걷지 말라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오늘 내가 걷는 나의발자국은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반드시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테니. (須作後人程*수작후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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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용 스님 프로필*

 

1982년 권수근 스님으로 변춘광 스님 사사받음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50호 범음범패 보유자 장벽응 스님 사사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50호 지화장엄 보유자 정지광 스님 사사

1999년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50호 지화장엄 전수생

1999년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50호 옥천범음대학 제3회 졸업 (2.5) 96학번

1993년 대한불교 천태종 구인사 수륙영산대재 및 생전 예수재 전통지화장엄

1995년 //

1998년 //

1999년 //

2001년 //

2004년 //

2006년 // (8.18~22)

2009년 //

1993년~2009년 부산삼광사. 대전광수사. 서울관문사. 연기래운사. 전국종단산하 100개지역 영산대 전통지화 장엄준비 다수봉행

1993년 청송 장안사 주지 역임

1997년 청송 장안사 주지 재임

2000년 봉원사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50호 영산재 시연회 지화장엄

2001년 연기 래운사 주지역임

2001년 덴마크 티볼리 공원 영산재 공연 전통지화장엄

2004년 대전시청 근향회전 작품전시(12.13~20)

2005년 덴마크 고광사 주지역임

2005년 연기 래운사 주지재임

2005년 총무원 교무부 의전국장

2005년 김태연 교수 지화 박물관 작품전시(7.17)

2006년 캐나다 토론토 평화사 영산대재 전통지화장엄 (7.1~2)

2006년 조계종 광제사 영산대재 전통지화 장엄봉행 (9.18~20)

MBS 신돈 드라마 전통지화 장엄

2007년 제5군단 호국금강사 전몰장병 영산재 (6.23)

2008년 서울 남산 한옥마을 전통지화 전시회 (6.8~6.28)

2008년 서울 코엑스 한스타일 박람회 (2008.7.31~8.3)

2008년 서울 관문사 성보박물관 전통지화(마음으로 피운꽃)초대전 (10.3~11.3)

2008년 중요무형문화재 영산재 50호 벨기에 한국문화체험 영산재공연 (11)

2008년 MBC 내여자 드라마 전통지화 방영

2009년 송탄 송덕사 현 주지

2009년 남산 한옥마을 복을 부르는 꽃 (1.24~2.29)

2009년 부산 팔관회 석용 스님 전통지화 특별전 (12.3~6)

2009년 삼광사 전통사찰음식 문화한마당 전통지화 특별전 (12.19~20)

2006년 제주 문강사 영산재 (10.27~28)

2007년 서울 관문사 영산재 (11.21~25)

2007년 인천 황용사 영산재 (12.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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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02.11 21:14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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